특이점 사냥(4)
완벽하게 제압된 상황이다. 아무리 특이점이라고 해도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안도혁은 한 마디 한 마디를 씹어먹듯이 내뱉었다.
"누가, 목숨을, 구걸한다는 건가?"
와지직
있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적어도 이 상황에서 들릴 수 있는 소리는 아니다.
- 꺗?!
발가락에서 느껴지는 격한 통증에 셀리테라가 반사적으로 힘을 품과 동시에 안도혁의 몸이 그녀의 압박에서 빠져나갔다. 반사적으로 힘을 푼 생리적 반응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적절한 곳에 앉은 안도혁의 입가엔 무언가가 물려 있었다.
우적 우적
안도혁은 입 안 가득히 들어온 용족의 고기를 씹어댔다. 방금 전에 고개만 돌려 뜯어낸 셀리테라의 살점이다.
비늘로 가득한 피부가 입 천장을 사정없이 긁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안도혁은 씹고 또 씹었다. 그 광기 어린 모습에 용족들이 잠시 공격을 멈출 정도였다.
꿀꺽
"생각보다는 먹을 만하군."
피를 보충할 방법을 찾아냈다. 그래, 방법은 이거다.
상식적으로 음식을, 피를 섭취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신체 일부가 되지는 않는다. 소화 과정을 거쳐야 뭐라도 되지 않겠는가?
생리적으로는 그렇다. 상식적으로는 말이다.
그러나 이건 가능한 일이다.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캘러무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벌레는 그것을 가능케 한다.'
그렇다. 물리적으론 불가능한 일이지만, 벌레가 끼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물며 특이점의 능력이 저래서야 더더욱!
하지만.
캘러무스의 노성이 하늘을 뒤덮었다.
- 이런 것도 예상치 못했다고 생각하는가!
그의 노성이 신호가 되었다.
지금까지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저 멀리서 상황을 관조하던 마레아도스의 머리가 격하게 뒤로 젖혀졌다. 백 미터에 달하는 몸체이다 보니, 그 목이 움직이는 단순한 행동조차 육중하기 짝이 없었다.
반동을 이용해 고개를 다시 앞으로 내뻗은 마레아도스의 입에서 무언가가 쏟아졌다.
눈으로 쉽게 포착할 수 있는 형태의 공격이 아니었다.
푸아악
타 용족과 달리, 해룡의 숨결은 화기(火氣)를 내포하고 있지 않다. 어차피 바다에서만 생활하는 이들인데, 불을 뿜어 무엇 하겠는가? 일말의 쓸모조차 없는 능력이다.
그렇기에 해룡은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
물을 쏘는 것? 아니다. 물 속에서 물을 뿜어서 의미가 있나?
해룡의 숨결은 폭풍이다. 포탄처럼 바람을 뿜어낸다.
총알보다 빠르고, 대포보다 육중하다. 범위 또한 어마어마하게 넓다.
본능적으로 안도혁은 도약하여 공격을 피했으나 해룡은 고개를 돌려 표적지를 변경했다. 공중에 뜬 사냥감 따위, 좋은 먹이일 뿐이다.
'이전에 이런 공격을 한 번 겪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공격이었을 뿐이다. 지금 당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잠깐 의식을 놓을 뻔했으나, 안도혁은 가까스로 혀를 악물어 정신을 차렸다.
'살아야 한다.'
이제야 조용한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제야 자신만을 위해 살 수 있다.
이 기회를 놓치고 죽을 것 같으냐?
폭풍의 압력은 어마어마했다. 눈을 채 뜨기도 힘들 정도였다. 게다가 숨결에 휩쓸린 나뭇조각과 돌 파편, 시체의 뼈 등까지 날아드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큭."
오만상을 쓰며 안도혁은 팔에 박힌 못을 뽑아냈다. 어찌나 세차게 날아왔는지, 못은 그의 피부를 두부처럼 뚫어버렸다.
이 공격은 분명 강렬하다. 그것에 이견을 제시할 생각은 없었다. 허나 안도혁은 고작 이 정도로는 자신을 제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대의 수뇌가 깨닫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과연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콰아아아
"허어."
눈앞이 아득해졌다. 바람의 압력에 한숨조차 내쉬지 못하는 신세인데, 거기에 하나가 추가되었다.
폭풍을 타고 오는 용암의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는 폭풍 속에 용암을 부어넣는 지룡들이 보인다.
거센 해룡의 숨결에 지룡들이 용암을 토해내니, 그것은 용암의 폭풍이라 부르기 적합한 모습으로 변해 안도혁에게 날아들었다.
저런 직선적인 공격 따위, 몸만 멀쩡했다면 옆으로 슬쩍 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지금은 바람에 구속당하는 상태다. 손발이라도 움직이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수준이다.
'불꽃이라도 오지 않는 걸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절망이라는 이름의 용암 폭풍이 직격했다.
안도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푸아아악
상대가 용암에 파묻힌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음에도, 마레아도스는 숨결을 토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끝없이 바람이 쏟아져 나오니, 그 폭풍에 용암을 더하는 지룡들이 먼저 지칠 정도였다.
해룡은 단 한 번의 들숨도 없이 5분여 간 바람을 뿜어냈다.
'역시 괴물 같은 녀석이야.'
캘러무스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마레아도스를 바라보았다.
본디 해룡은 다른 용족보다 거대하고 강력하지만, 몸의 생김새와 생리적 특성상 지상에서 활동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밖으로 나온 해룡족의 전투력은 수중에서 펼칠 수 있는 수준의 반도 채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숨을 쉴 수 없다.
'저 녀석. 한 번에 전부 다 꺼내놓는군.'
해룡은 폐호흡과 아가미호흡을 동시에 하는 괴상한 종족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폐호흡보단 아가미호흡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으며, 비강으로 들이마시는 산소의 양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 속을 힘차게 헤엄치며 공기를 빨아들이는 게 그들의 기본 호흡 방식이다.
따라서 저렇듯 공기란 공기는 죄다 털어내고 나면 남은 여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폐호흡만으로는 운신이나 간신히 할 정도일 테니까. 아무리 강력한 마레아도스라도 그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윽고 바람이 멈추었다.
- 후욱, 후욱!
마레아도스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산소 부족 현상으로 얼굴 색이 바뀌어 있었다. 지쳤다는 것을 이만큼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도 달리 없을 것이다.
폭풍에 휩싸인 거리는 조용했다. 식어버린 용암 조각만이 남아있을 뿐, 원래 존재했던 건물이나 사람 등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한참 멀리 떨어진 성벽도 박살이 나, 원래의 형태를 유추할 수조차 없었다.
이쯤이면 특이점도 죽었을 것이다. 생물이라면, 이 정도면 죽어주는 게 예의다.
방심 따위는 하지 않는 캘러무스도 마음을 약간 놓았다. 특이점이 아니라 특이점 할애비라도 이 상황에서 살아나갈 방법은 없으니까.
그렇게 모두가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콰르르르
- 끄르으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지룡 한 명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피부가 찢겨 나갔으나,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입가에서 격하게 피를 토하는 모습은 그가 예사롭지 않은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 무슨 일이냐!
- 내상을 입은 거야?
지룡은 대답 없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그저 비명뿐이었다.
고통에 찬 신음이 터졌다. 구리로 만든 성대를 강철 현으로 긁어내는 듯한 끔찍한 신음. 쇳소리와도 같은 그 울림은 용족의 머릿속에 공포를 심어두었다.
불뚝
용의 배가 꿈틀거렸다. 마치 포유동물이 출산 시기가 되어, 뱃속에 있는 태아가 몸부림치는 것 같은 이질적인 움직임이었다.
순간 임신했나 생각하던 캘러무스는 스스로의 면상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용은 난생이다. 뱃속에서 새끼가 부화하는 경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 뱃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 끄아악. 사, 살려······!
지룡은 온몸을 비틀며 괴성을 질렀다. 마치 스스로가 뱀이라도 된 것처럼 꼬아대는 모습에, 그 몸 안에 사냥감이 있음을 앎에도 용족들은 쉽사리 공격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목표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쫘아악
살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지룡의 배 밖으로 거대한 손이 튀어나왔다. 손은 두 개가 되고, 이윽고 사람의 머리가 불뚝 모습을 내밀었다.
배를 찢고 튀어나온 안도혁. 당연하게도 그 몸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의 얼굴과 몸은 원형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화상으로 피부 가죽이 타들어, 아니 녹아내렸다. 얼굴의 피부가 대부분 날아가서 잇몸이 훤히 드러나 있었고, 눈두덩이 반쯤 녹아내려 안구가 훤히 드러났다.
마치 괴물 같은 모양새였다. 그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멀쩡했다. 손가락의 움직임도, 근육의 박동도 이상이 없다.
아직 그는 살아 있었다.
불뚝 불뚝
안도혁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희미하게 박동하고 있는 무언가가. 그는 그것을 잠시 응시하며 기묘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본디 미소라고 생각될 모습이었으나, 피부가 거의 사라진 그의 얼굴에서 표정을 읽어내기란 극히 어려웠다.
"사냥을 해 본 적은 있는가?"
입을 쩌억 벌린 안도혁은 심장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우적 우적
"사냥감을 맨 처음 잡았을 때, 가장 먼저 먹어치워야 하는 부위는 내장이다. 특히나 간은 쉽게 상하기에 가능한 한 빨리 먹어야 하지. 하지만 가장 맛있는 부위가 무엇인지 아는가?"
불뚝불뚝 뛰는 물체에 용족들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정답은 심장이다. 방금 전까지 살아 숨쉬던 용의 심장이었다.
와자작
안도혁은 튼튼한 이빨로 심혈관을 뜯어내 씹었다. 근육으로 가득한 심장에 송곳니가 박혀, 용서없이 그것을 찢어냈다. 씹기 좋게 분리된 고깃덩어리는 혀에 의해 입 뒤쪽으로 넘어가, 어금니에 의해 분쇄되고 뜯겼다.
화상으로 가득한 몸이 피로 물들어 있다. 지옥에서 막 올라온 악마도 저보다 더 흉악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끔찍한 외양과는 달리, 안도혁의 눈에는 다시금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자아. 이제 날 죽일 방법이 있는가?"
여유는 돌아왔다. 확실하게 승기를 잡을 방법이 생겼다. 아주 단순하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방법이다.
캘러무스가 처절하게 소리쳤다.
- 그래, 있다. 이 괴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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