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밖은 위험해(7)
“말이라고 묻는 겁니까?”
격한 분노가 차오른 표정을 미처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는 속사포처럼 말을 쏘아댔다.
“항상 인생이 검과 함께였습니다. 처음 검을 잡은 열두 살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 년 365일 동안! 몸이 아픈 날, 비가 오는 날, 눈이 오는 날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지. 그런 내 노력을, 재능을 타고난 놈이 감히 폄하해!!”
안도혁은 귀를 후빌 뿐이었다.
“뭐야, 평범했구만.”
“뭐, 뭐라고?”
묵과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지만, 어찌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초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노력한다. 노력하지 않은 인간 중 초인이 된 케이스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아저씨, 잘 들어 두길 바랍니다. 아저씨는 근본적인 게 빠져 있습니다.”
“근본······?”
“애초에 왜 초인이 되고 싶었던 건데?”
그 말에 코델의 표정이 멍해졌다.
‘초인이 되고자 하는 동기?’
딱히 검을 동경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먹고 살 길이 없을 뿐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농의 넷째 아들이 택할 수 있는 인생은 많지 않았다.
영지전에 휘말려 병사로 차출된 것은 어찌 보면 천운이었다. 몇 번의 전투에서 운 좋게 살아남자, 이미 고향은 영지전의 여파에 의해 박살이 나 버렸다.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져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상황이었다.
검을 휘두르는 데 감이 붙자, 어느새 그는 귀족의 사병이 되어 있었다.
의식주에 걱정이 없어진 몸이 되었지만, 그는 검술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것밖에 모른다. 이것을 했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실력을 평가받은 그는 평민 출신의 백부장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는 곧 기사 계급을 의미했다.
잠시 인생을 돌이켜 본 코델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기······위해서?”
“살기 위해서 검을 휘두른 거요, 아니면 검을 휘둘렀기 때문에 살아남은 거요?”
“그건······.”
굳이 말하자면 후자에 가까웠다. 아니, 어쩌면 전자일 수도 있다.
‘애초에 이 화두에 무슨 의미가 있지?’
안도혁은 피우던 담배를 퉤 하고 뱉어냈다.
“거 봐요. 초인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아저씨는 그냥 살아남고 싶은 거였잖아. 아닙니까?”
“그건······.”
반박을 하기가 어려웠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노력을 한다고 초인이 된다는 것도 이상해. 아니, 사람마다 노력하는 수준이 다르고 그 양도 다른데 말이야. 열 시간 동안 생각 없이 검을 휘두르는 거랑, 열 시간 동안 최대로 집중해서 수련하는 것, 둘의 시간은 같지만 효율은 분명히 다르겠지. 또, 누군가는 두 시간 노력해도 진이 다 빠져 버리지만, 누구는 다섯 시간을 노력해도 힘든 티조차 내지 않을 것이고.”
“······.”
“비가 오고, 눈이 올 때 수련을 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비바람 속에선 수련이 더 잘 되기라도 하나. 문제는 목적과 방향성, 그리고 강한 의지에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강해지겠다는 열망을 바탕으로 한.”
안도혁은 머리를 감싸던 두건을 거칠게 풀어헤쳤다. 한 올의 털도 없는 민머리가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러다 보면, 이런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고.”
잠시 멍한 표정이 된 코델은 눈을 깜빡였다. 갓 태어난 아기보다 숱이 없는 그의 머리를 바라본 그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지, 진짜로 수련을 하다 그렇게 된 겁니까?”
안도혁은 다시 두건을 묶으며 말했다.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됐으니까. 어쩌면 그냥 내가 재수가 없는 것일 수도. 다만, 내가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코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상은 입을 열어봐야 별 의미가 없다.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은인께 함부로 말을 해서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안도혁은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지 마시길.”
코델이 사라지자, 이윽고 고즈넉함이 사위를 덮었다. 달빛 또한 구름에 가려져, 횃불이라도 없으면 한 치 앞도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안도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치료할 수 있기는 할까?’
가능성이 없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있다는 확신은 더더욱 없다. 희망을 찾았으니 어떻게든 거기에 매달리는 것이지만, 동앗줄은 필요 이상으로 가늘고 얇았다.
그래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안도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반드시 되찾아 보이겠어.”
안도혁의 눈이 열정으로 불타올랐다.
그럴 동안, 서석진은 오랜만에 먹은 술에 취해 통나무처럼 잘 잤다.
새벽부터 일어나 짐을 싸고 있을 무렵, 알리시아가 시녀와 함께 찾아왔다.
서석진은 아직도 퍼질러 자고 있기에, 불쑥 방문한 집주인을 맞은 것은 안도혁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하루 대접을 받고 다음 날 바로 떠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에요.”
알리시아는 최대한 안도혁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말했다. 그 상황에 안도혁은 의문이 들었다.
‘이제 와서?’
인상이 좋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지만, 단순히 자신이 두려워서 눈을 안 마주친다는 건 확실히 이상하다. 지금까지 여행한 날들이 제법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눈앞의 이 아가씨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안도혁은 거기까지 파악했지만, 진실이 뭐냐고 꼬치꼬치 캐물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왜 거짓말을 하는지도 대충 알겠고.’
음식도 맛있고, 시간도 여유가 있다. 하루쯤 더 머무른다고 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아침 식사를 대접받은 안도혁은 거리로 나갔다.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우선 그는 잡화점을 들러 지도를 구입했다. 양피지 위에 그려진 지도는 조잡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 근처 지리가 그냥저냥 나와 있는 수준의 지도였다. 즉, 이거 하나만으론 신뢰할 수 없다.
그래서 안도혁은 도시 내에 있는 여러 잡화점을 뒤져 유사한 지도를 모두 구입했다.
이후, 지도들을 비교한 그의 표정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뭐가 이렇게 제각각이야?”
근처의 지형에서부터 축척에 이르기까지 같은 모양의 지도가 하나도 없다. 이쯤 되면 어린애 낙서가 더 신뢰가 가는 수준이다.
‘젠장, 일부러 저질 물품을 준 거 아니야?’
알 수 없는 일이다. 지도를 죄다 갈무리한 안도혁은 다시 클라우드 가로 발걸음을 돌렸다.
‘클라우드 가문에서 지도를 얻으면, 한 번 비교해 봐야지.’
그 때였다.
대낮부터 비틀거리던 한 취객이 안도혁에게 다가와 부딪혔다.
터억
피하려면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제 좋은 대접을 받아 기분이 살짝 좋아진 안도혁은 – 지도 따위는 사소한 문제였다 - 취객이 넘어지는 것을 가볍게 잡아 주었다.
취객은 갑자기 전해지는 힘에, 게슴츠레한 눈으로 자신을 붙잡은 손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뭐야, 이 커다란 원숭이 새끼는?”
여태껏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는 들었다. 그의 이질적인 외모는, 고려족 마을 바깥에선 누가 봐도 특이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욕적인 언사였지만, 안도혁은 이런 것 하나로 화를 낼 만큼 분노조절에 능하지 못한 사람은 아니었다.
“음, 취한 것 같네. 갈 길 가쇼.”
옆으로 피하려는 찰나, 취객은 안도혁을 붙잡더니 그의 다리를 힘껏 찼다.
파악
“어딜 튀어, 지금 인간님이 말씀하시고 계시잖아!”
일반인의 공격 따위는 아프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아픈 게 문제가 아니다.
안도혁의 이마가 꿈틀했다. 팔뚝에 울뚝불뚝한 혈관이 맥동했지만, 안도혁은 다시금 화를 가라앉히는 데에 성공했다.
“그럼 이만.”
무시하고 가려는 순간, 무언가가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안도혁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것을 막아냈다.
챙그랑
안도혁의 손에서 보랏빛 액체가 방울져 떨어졌다.
술병이었다. 취객이 들고 있던 술병을 안도혁에게 집어 던진 것이었다.
“······.”
얼음장처럼 굳어버린 안도혁을 보며 취객은 배를 잡고 웃었다.
“케헤헤. 시원하지? 원숭이를 샤워시키는 데엔 비싼 술이지.”
등을 돌리려 할 때, 그의 몸은 억센 팔에 의해 붙잡혔다.
“어억?!”
이상 사태에 취객은 바둥거렸지만, 안도혁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취객을 나뭇가지 잡아들듯 천천히 들어 올렸다.
선을 넘었다. 안도혁은 이를 뿌득 갈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술이 덜 깬 모양인데······.”
다음 순간, 구경하던 사람들은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우우웅
수직으로 공을 던지면 저 정도 날아갈까 싶은 높이였다.
안도혁은 취객의 몸을 잡고, 하늘 높이 던져 버렸다. 참새들이 깜짝 놀라 이 불청객을 잽싸게 피해 날아갔다.
“끄아아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취객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술 좀 깨시나?”
이죽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날아오른 취객. 그러나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던져지는 방법이 달랐다. 안도혁은 부메랑 던지듯 사람을 빙글빙글 돌려버린 것이다.
얼굴이 시퍼렇게 죽은 취객은 땅으로 다시 추락했고, 안도혁은 그를 가볍게 받아 바닥에 집어던졌다.
“우웩, 웨에엑.”
토사물을 흩뿌리며 주저앉은 취객의 가랑이 사이에서는 소변까지 흘러나왔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안도혁이 말했다.
“그래서, 대답은?”
대답은 없었다. 안도혁은 취객을 다시 한 번 하늘로 집어던졌다.
좀 더 높이, 회전을 더해서.
다시 한 번 땅으로 떨어진 취객의 몰골은 만신창이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대답은?”
대답이 없었다. 안도혁은 별 말 없이 한 번 더 인간 저글링을 시도했다.
하늘 구경을 한 공은 다시 땅으로 달아왔다.
취객의 몰골은 더 이상 사람의 것이라 보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저글링하는 사람은 그걸 감안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대답.”
차릴 정신이 있을 리 없었지만, 취객은 다시금 등을 잡아 오는 저 악몽 같은 손길에 기겁하여 소리쳤다.
“죄, 죄송! 죄송, 합, 케헥, 니다. 정, 말로, 죄송······.”
폐부를 쥐어짜는 목소리였다. 안도혁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 손을 놓았다.
일련의 상황이 있을 동안, 좌중에서 개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순찰병들이 신고를 받고 달려왔지만, 상식을 벗어난 상황에 그저 얼어붙어 있을 뿐이었다.
당연했다. 누구라도 목숨은 하나였으니까. 저글링하는 공의 심정을 느끼고 싶은 사람은 여기에 아무도 없었다.
안도혁은 군중들을 흘끗 쳐다보더니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뒤쪽에서 순찰대가 사람들을 취조하는 것이 들렸지만, 멈춰 설 생각도 들지 않았다.
‘기분이 확 나빠지는군.’
걸음을 빨리 하여 클라우드 저택 앞에 도착하자, 복잡한 표정으로 가문 앞을 서성이는 서석진이 있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냐?”
“어, 왔냐.”
서석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까 잠깐 산책을 나갔는데 말이야······.”
이질적으로 생겼지만, 서석진은 누가 봐도 미남이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을 무렵,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를 골목에서 포위했다.
무뢰배들은 서석진을 앞에 두고 멋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이거 노예 아니야?”
“인장은 안 보여. 탈주 노예가 아닐까?”
“뭐 어때. 잡아서 다른 도시에서 팔아 버리자.”
검을 뽑을 것도 없었다. 고작 불량배 따위가 초인을 상대할 수는 없다.
팔다리를 자를까 하다가 부러뜨리기만 했다는 서석진의 말에 안도혁은 씁쓸하게 웃었다.
“너도 비슷한 상황이였군.”
“응? 너는 무슨 일인데?”
안도혁이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그것을 들은 서석진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워졌다.
“도혁아.”
“응.”
“바깥 세상······좀 그렇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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