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1)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단다.
······뭔 당연한 말을 하냐는 표정은 그만둬라.
안다! 내가 생각한 게 아니다! 나도 어디서 들은 거다!
정확히 말하면, 큰 힘을 가지면 어떻게든 그 힘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세상이 그런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인생을 평화롭게 살고 싶다면 힘 따위는 적당히 있으면 된다. 그것이 무력이든, 정치력이든, 경제력이든.
타란토스에는 인간 세상 전체와 비교해도 이질적인 과학 기술이 한 가지 존재한다.
황제의 자녀들은 태어날 때 머리에 칩을 심는다. 측두골의 피부를 살짝 절개하고 미세한 칩을 집어넣는데, 건강상에는 어떠한 문제도 없고 겉으로 보기에도 티가 나지 않는다.
일단 심어진 칩은 외부로 드러날 경우 공기에 녹아 사라지며, 황제의 피를 이은 자 이외에는 칩을 심을 수 없다. 황족의 혈액에만 반응하는 물건인 것이다.
칩은 위치 추적의 용도로 사용된다. 시초의 의식에서 도주하는 자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의식이 끝나면 파기된다. 또한 시초의 의식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의지를 표방한 자에게도 칩은 제거된다. 어디까지나 위치 파악 용도일 뿐이니까.
황궁에는 하나의 거대한 수정구가 있다. 수정구에는 칩이 심어진 자의 위치가 시시각각 표기되며, 이는 대륙 전체를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범위가 넓다.
초대 황제가 가지고 왔다고 전해지는 이 수정구는 아무도 그 원리를 파악하지 못했다. 열정 있게 달려든 역대의 과학자들이 모두 지식 부족에 절망할 뿐이었다.
수정구를 통해 로젤린은 레틴이 점점 타란토스 제국으로 복귀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믿고 싶지는 않았다.
'칩은 머리에 심어져 있으니까. 혹여나 누군가가 머리만 들고 귀환했을 수도 있잖아.'
행복회로를 열심히 돌려 보았지만,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침통한 얼굴의 리그니타가 로젤린에게 전한 정보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입에 가져갔다.
"돌아왔다고?"
"예. 그것도 상처 하나 없이······."
으드득
비싼 돈을 주고 관리해온 아름다운 손톱이 처참하게 물어 뜯겼다. 패닉에 잠긴 로젤린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어떻게······분명 다프텐시아의 기사들이 출동했을 텐데."
"어머니와의 약속은 충실히 지켜진 것 같습니다. 마리아 피셔와 헤이든 슈미트가 출동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었으니까요."
"그런 건 나도 안다! 문제는 왜 그런 자들이 기사단을 이끌고 출격했는데 레틴의 목 하나를 못 따왔냐는 거야!"
이성을 반쯤 잃은 그녀의 모습에선 평소의 우아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리그니타는 황급히 냉수를 떠 왔다.
"진정하세요, 어머니. 레틴이 고용한 그 남자가 생각 이상으로 괴물이었다는 거겠죠."
"그게 말이 되니?! 무려 50명의 초인 기사들이야! 그 부대만으로 소국 정도는 전멸시킬 수 있는 군사력이라고! 그걸 한 사람의 힘만으로 막아냈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돼?"
"말이 되진 않지만······."
그게 사실인 걸 어쩌겠습니까. 리그니타는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레틴이 수작을 부린 거야. 우리가 주기로 한 이권보다 더 큰 것을 다프텐시아에 제시해서, 병력을 그대로 철수시킨 걸 거야."
'그게 말이 돼요?'
리그니타는 모친의 터무니없는 말에 눈을 흘겼다.
물론 로젤린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약속한 것 이상의 것을 지불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 병상에 누워 있는 황제 정도일 것이다.
즉 지금 하고 있는 짓은 생떼 이외의 것이 아니었다.
"만약 치졸하게 숨어 있다가 어떻게든 목숨만 부지해 왔을 수도 있어."
'50명의 초인들의 눈을 피해서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지상의 그 누구도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로젤린도 진실이 그것과는 전혀 다르리란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저 그녀는 믿고 싶지 않은 것뿐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이 미처 화답하기도 이전, 문은 홱 열리며 두 명의 인물들이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왔다.
기운없는 눈으로 로젤린은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큰아들과 둘째 아들이었다.
"너희 왔니."
"어머니! 그게 사실입니까!"
인사도 없었다. 예절이고 뭐고 없는 난폭한 동작이었지만, 로젤린은 아들들을 굳이 책망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패닉에 잠겨 있었으니까. 그런 것까지 생각하며 행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직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어."
"······."
로젤린과 그녀의 아들들은 어머니의 이런 모습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우울함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는 기류가 그들 사이에 형성되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해소할 방안을 찾지 못했다.
한편, 레틴 쪽은 축제 분위기였다.
귀환병들을 환호하는 뿔나팔 소리가 제국의 수도에 울려 퍼졌다.
뚜우우
시민들의 환호성이 그 뒤를 따랐다.
와아아아
터질 듯한 함성이었다. 개선 장군의 귀환도 이보다 더 큰 환호를 자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실제로 개선 장군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기는 했지만.
"영웅들이다!"
"살아서 돌아왔어!!"
천지를 진동하는 환영에 멸마군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고, 시선을 황급히 회피하기 바빴다. 평민에 불과하던 이들이 어디서 이런 환호를 받아 보았겠는가.
그러나 이들은 곧 어깨를 폈다. 선두에 있는 안도혁과 레틴이 대부분의 부담을 자신감 있게 받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틴이 멸마군을 뒤돌아보며 소리쳤다.
"가슴을 펴라. 그대들은 영광스러운 전장에서 단 한 명도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귀환자들이다. 아무도 그대들의 무공을 의심하지 못하리라!"
사실은 듣기 좋은 소리에 불과했다. 무공이니 뭐니 해도, 안도혁이 없었더라면 이들 중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사람은 기껏해야 한 자리 수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개선식은 커녕, 시체 운구 행렬이 이어지지 않았으면 다행이었을 터다.
레틴이 안도혁의 손을 번쩍 잡아 들며 소리쳤다.
"우리 타란토스의 영웅, 정천 경이시다! 이 팔뚝으로 북방의 몬스터를 초개처럼 짓밟고, 저 다프텐시아의 기사들을 가뿐히 물리쳤으며, 용족조차 무릎 꿇게 한 분이다!"
검은 두건을 쓴, 우람한 근육의 사내가 힘차게 팔을 뻗어 올렸다. 성인 남성의 머리 크기에 육박하는 거대한 주먹은 하늘을 찌를 듯이 굳세었다.
오오오오
환호는 점점 거창해졌다. 북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개선식은 보통 전장에서 돌아온 직후에 즉시 행해진다는 편견이 강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최전선에서 후방으로 복귀하는 시간 동안 귀환병들은 최대한 천천히 이동한다. 그들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소문이 충분히 퍼지면, 느긋하게 복귀하여 의관을 정제하고 피로를 푼다. 그리고 그 이후에 '지금 막 복귀한 것처럼' 꾸며 행해진다. 즉, 일종의 쇼에 가까웠다.
짜고 치는 것이란 비판을 들을 때도 있지만, 그것을 꼭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결과적으로는 이 과정을 거치기에 시민들의 환호가 더욱 열정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안도혁은 용의 꼬리를 번쩍 들어보였다. 셀리테라가 미처 챙겨가지 못한 신체의 일부였다.
처음에는 그냥 버리고 오려 했지만, 레틴이 이를 거부했다.
"형님, 동생 도와주는 셈 치고 협조 좀 부탁드릴게요."
팔자에도 없는 광대놀음을 하게 된 안도혁은 한탄했지만, 제 무덤을 제가 판 것이나 다름없었다. 의동생으로 맞이한 시점에서 레틴에게 어느 정도는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대한 용족의 꼬리를 한 팔로 들어올리는 장사의 모습은 실로 역전의 용사였다. 시민들은 대부분 저 남자의 정체를 몰랐지만, 소문만은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만인지적이라는 평이 전혀 아깝지 않은 분이라는군."
"홍복일세, 홍복이야. 우리 제국에서 드디어 영웅이 나온 게야."
"저 팔로 우리를 지켜 주시겠지."
명목상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은 레틴이었지만, 사실은 안도혁을 띄워주기 위한 것에 가까웠다. 레틴이 그렇게 의도했기 때문이다.
옆에서 말을 타고 가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 레틴에게 안도혁이 나직하게 뇌까렸다.
"너, 설마 나한테 이상한 의무를 지게 하는 건 아니겠지."
팟
레틴은 뜨끔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도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를 뿌득 갈았다.
"혹여나 이 이상 귀찮은 일이 생겼다간 각오해라."
물론 이는 반쯤은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어디까지나 반 정도는.
레틴은 기겁하며 소리쳤다.
"아, 형님 성격을 제가 아는데, 대단한 일을 부탁드리겠어요?"
하지만 레틴은 입을 살짝 삐쭉댔다. 의도가 들통난 이상, 괜시리 쓸데없는 일을 획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머리는 좋아서.'
개선문을 통과하고, 모든 병력이 황궁으로 돌아갈 때까지 환호성은 계속되었다.
"레틴 황자님 만세!"
"멸마군에게 영광을!"
"정천 경! 정천 경!"
어째 일이 꼬이는 기분이 들었다. 안도혁은 들키지 않게 한숨을 푹 내쉴 뿐이었다.
오늘따라 담배 한 모금이 더 그리웠다.
"개선 장군이다아."
깔깔 웃는 루나를 보며 안도혁은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뻑뻑 피웠다. 에스턴은 향수를 사러 갔다는 듯 자리에 없었다.
"이런 일은 전혀 취향이 아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군."
"오빠한테 거울이 있어야 했는데. 귀까지 빨개졌었다구. 사람들은 흥분해서 그런 것처럼 생각했겠지만, 나는 사실을 알고 있지."
환호성에는 익숙했다. 고려족 마을에 살 때, 그의 공을 환영하지 않는 주민은 한 명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제국의 수도에서 벌어지는, 영걸을 축복하는 소리엔 전혀 면역이 없었다. 스케일이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다.
"이미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노래까지 만들어져 있었어. 음유시인들이 부르고 다니던데?"
잠시 목을 가다듬은 루나는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이 강산은 그가 지키노라 위대한 정천 경
푸른 하늘 힘껏 꿰뚫었던 평화의 주먹
아아 다시 선 제국에 믿음직한 영웅 안도혁
당신을 따라 제국을 위해 끝까지 싸우리라
"······."
안도혁은 할 말을 잃었다. 저 무식하기 짝이 없는 노래는 대체 뭔가.
"2절도 있던데 들어 볼래? 그러니까 분명······."
"그만 둬라. 갑자기 힘이 빠지는군."
차라리 전장에서 싸우는 게 낫지, 낯간지러워서 들어줄 수가 없었다.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은 안도혁. 루나는 배시시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고했어. 힘들었지?"
"뭐, 조금은."
별 것 아니라고 대답할 줄 알았던 루나는 살짝 놀랐다. 안도혁이 직접적으로 노곤함을 어필하는 것은 처음 들었다.
전장에 직접 있지 않아 몰랐지만, 사실 보통 사람이면 살아 돌아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수천의 몬스터를 격퇴하고, 50명의 초인과 싸우고, 용왕과 대결을 펼쳤다. 그 와중에 수백 발의 총탄을 맞았으며, 용암까지 뒤집어썼던 것이다.
아무리 그라도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타격이 컸다. 상처는 대부분 치료되어 흔적조차 거의 없었지만, 몸에 쌓인 둔중한 피로는 아직 남아 있었다.
'조금 더 쉬어야겠어. 이렇게 무리한 건 정말 오랜만이군.'
확실히 그의 눈가에는 피곤함이 깃들어 있었다. 잠시 안도혁을 내려다보던 루나는, 곧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항상 무리한다니까."
"······."
안도혁은 파이프를 내려놓았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이내 자신을 껴안은 루나의 등을 살짝 쓰다듬었다.
"항상 걱정해줘서 고맙다. 어쩌면 네가 있기에 무리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히히히."
오늘따라 새하얀 은발이 더 눈부셔보였다. 자신에겐 없는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안도혁은 그 부드러움에 한동안 손을 떼지 못했다.
루나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생각해 봤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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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가장 좋아했던 군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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