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毛)자라지 않은 녀석(2)
"흐으윽."
사슴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이슬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서석진은 자타가 공인하는 미남이다. 물론 스스로 미남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멍청이는 아니었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가 잘생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와 비교해도 크지 않은 두상, 짙은 눈썹과 새하얀 치열이 돋보이는 미남형 얼굴, 적당하게 넓고 탄탄한 어깨, 길고 예쁘게 뻗은 다리, 얇고 긴 손가락뿐만 아니라 찰랑거리는 머릿결까지. 적어도 외모 면에서 그의 단점은 하나도 없었다.
즉, 외적인 면만 보면 그는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무방한 사람이었다.
겉으로만 본다면 말이다.
"흐어어엉."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이미 준비했던 손수건 따위는 흥건해져 원래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서석진은 서럽게 울었다. 만약 서럽게 울기 대회라는 것이 있다면 입상 정도는 가볍게 할 정도의 모습이다. 누군가가 옆을 지나간다면 그에게서 뿜어지는 서러움의 기운에 괜시리 마음이 울적해져 같이 울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특히나 그가 지금 왜 울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제 장가도 못 가······.'
정확히는 장가를 가긴 갔다. 이혼할 처지라 그렇지만.
앞으로 장가를 또 가긴 어려울 것이다. 누가 이런 남자에게 시집을 오겠는가.
남자로서의 치명적인 문제다. 못생긴 것보다 더욱 큰 문제라고 봐도 무방하다. 성 불구자인 남자의 앞길에 지옥 외의 다른 목적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석진은 울적한 얼굴로 옆에 있는 술 동이를 바라보다, 바가지로 한 움큼을 퍼서 입에 부었다.
"술 처먹고 뒈져버릴 테다!"
서석진은 우물에서 물을 뜨는 것처럼 술을 부어댔다. 맹물도 저만큼 마시면 배가 터져 죽을 기세였다.
그때, 누군가 그의 뒤통수를 가볍게 쳤다.
딱.
서석진은 눈물과 술을 흩뿌리며 검을 뽑아들었다. 평소라면 이런 황당한 짓을 할 리는 없었지만, 눈물로 흐려진 그의 눈에 뵈는 것 따위는 없었다.
"어떤 새끼야!!"
휘두른 검은 무언가에 가볍게 막혔고, 딱밤이 한 번 더 날아왔다.
이번 것은 조금 세다.
빡.
서석진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흉수의 정체는 익히 알고 있는 인간이다.
"야, 이 자식아! 무슨 짓이야!"
검을 내던지고 상대의 멱살을 잡으려던 찰나, 서석진은 그의 외견에 멈칫했다.
어마어마한 근육으로 뒤덮힌 몸 위에, 솜털 없는 얼굴이 그보다 더 처량하긴 어려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서석진은 순간 누구세요라고 외칠 뻔했지만, 이런 사람이 마을에 둘 있을 리는 없다. 아니, 마을 밖 세상을 전부 통틀어도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도, 도혁이?"
안도혁은 한숨과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꼴이 우습지?"
농담 삼아 마을 전체의 흡연량보다 혼자 피우는 담배가 더 많다고 불리는 안도혁이었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심했다. 한 달 피울 담배를 한 시간에 다 피워버린 듯한 강한 향취가 느껴졌다.
그러나 서석진은 얼굴을 찌푸릴 수가 없었다. 그는 떨리는 손길로 친구의 머리와 눈썹을 쓰다듬었다.
"아니, 저번에 얘기는 들었던 것 같지만······설마 이 정도라니."
"완전히 다 빠져 버리더라. 콧털 한 가닥도 남지 않았어. 온몸에 있는 털이란 털은 죄다 빠져버렸다구."
"······."
안 그래도 덩치가 저래서 인상이 험악한 친구다. 털까지 한 올 남지 않았다면 보통 사람은 눈도 못 마주치리라.
인상을 팍팍 쓰고 담배 연기를 뿜어대는 친구에게 서석진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아래쪽도?"
"······."
꿀밤 한 대로 끝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서석진은 순간 자신의 머리가 박살 난 게 아닌가 의심했지만, 다행히도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다.
"원래부터 여자 복은 없었다만, 이 얼굴로는 장가들기 틀렸다. 아니, 정상적으로 생활하기도 좀 그래."
서석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응, 맞아.’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여기서 긍정을 해버렸다간 진짜 머리가 박살날지도 모른다.
"어딘가엔 그게 미남으로 보이는 동네가 있지 않겠냐. 미적 취향이란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이미 알렉스 아저씨를 통해 물어봤다. 대머리 정도라면 그나마 받아 들여줄 수 있는 취향의 여자도 분명 어딘가엔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전신 무모증은 답이 없다고. 그런 사람을 본 적도 없대. 본 기록도 없고."
"세상에."
두 친구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느끼는 감정은 각자 달랐지만, 그 속이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서석진은 몇 번 입을 달싹이다 입을 다물었다. 마음이 울분으로 가득했지만, 표출하기에는 너무나도 아픈 상처기에.
안도혁은 눈치가 아주 없는 종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미남 친구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할 말 있으면 해라. 뭘 똥 마려운 개처럼 그러고 있냐."
"그, 그게."
서석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비밀을 공유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하물며 비밀을 털어놓을 사람이 입이 무겁다면야.
그리고 이제 이것이 비밀로 남을지 안 남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이혼장이 제출되었기 때문에······.
안도혁은 참을성이 강한 종류의 인간도 아니다. 슬며시 주먹을 들어올리려던 찰나, 아까 전의 상황이 오버랩되었다.
'생각해보니 이 놈, 왜 울고 있었지?'
가장 친한 친구에게 한탄하러 찾아오긴 했다만, 자신의 울분 때문에 상황이 보이지 않았었다. 안도혁이 막 입을 열려던 찰나, 서석진이 먼저 운을 떼었다.
"사실은 말이다."
이어서 눈물 없이 듣기는 어려운 장황한 비극 공연이 펼쳐졌다.
"좋다는 건 다 먹어봤어. 굴, 산수유, 오크 고환부터 시작해서 용연향이나 베히모스의 눈알에 이르기까지 전부. 아마 식품으로 유통되고 있는 정력제 중에 내가 안 먹어본 종류의 정력제는 하나도 없을 거야. 돈도 엄청나게 썼지."
"······."
"전부 다 안 통하더라고. 그래서 운동 부족인가 했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너나 나나, 운동 부족일 리가 없잖아."
"그, 그렇지."
"식품이 안 통하니, 약을 구해봤어. 알렉스 아저씨한테 약이란 약은 모조리 구해달라고 했고, 아저씨는 종류만 50가지가 넘는 약을 구해줬어. 물론, 결과가 다를 게 없으니 내가 지금 여기서 이 지랄을 하고 있겠지만."
안도혁은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이렇게 당황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고자라니. 다른 병도 아니고 고자라니.
차라리 친구가 어디 가서 팔이 하나 잘리고 왔다면 안타까운 정도로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안타깝다는 감정을 한참 전에 넘어섰다.
한탄을 하러 왔다가 한탄을 듣게 된 신세지만, 인간의 도리로서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아내는 잘 참아 줬어. 하지만 반년 전부터 밤을 눈물로 지새우더라. 나한테 욕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한 마디 원망도 않고 말이야. 울고 싶은 건 내 쪽이라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던 거지."
"······."
"더 이상은 가슴이 아파서 못 보겠더라. 어제 석우 형한테 또 서류를 제출했어. 그리고 별 일 없으면 수리될거야. 나도 거부할 생각이 일절 없어. 양심이 있으면 그러면 안 되지."
낄낄거리는 서석진의 눈가엔 조금의 웃음도 담겨 있지 않았다.
자조적으로라도 웃을 수 있겠는가? 쥐어 짜내도 웃음이 나올 리가 없었다.
안도혁은 친구와 자신을 비교해보다 생각을 그만두었다.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말주변이 별로 없는 그가 위로의 말을 찾는 것도 지난한 일이다. 사실 누가 위로를 받아야 할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말없이 담배를 내밀었고, 서석진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담배는 됐고, 한 잔 어때."
술보단 담배를 더 좋아하는 안도혁이지만,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지금은 술을 거절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안도혁은 바가지를 받아들고 시원하게 목을 축였다. 오늘따라 달고 시원한 것이, 공허한 가슴 속을 찰랑이게 채워 주는 것 같았다.
두 친구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 한 동이를 금세 비웠고, 한 동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동이가 되었다. 인간의 위장 따위는 한참 전에 넘어갔다. 그러고도 세 동이째를 먹어대는 서석진을 보며 안도혁은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해는 이미 졌다. 안도혁은 성냥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서석진의 바가지가 멈추었다. 고개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모르겠어. 전혀 모르겠어. 솔직히 말하면,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어."
성 불구자라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말을 할까 했지만,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게 차라리 인도적일 듯한 말이었다.
같은 상황이 되어 보지 않는다면 절대 꺼낼 수도 없고 꺼내서도 안 되는 말이다.
안도혁은 담배 연기 섞인 한숨을 내쉬었고, 서석진도 울음 섞인 한숨을 토해냈다.
어느샌가 시나브로 어둠이 세상을 뒤덮었다. 아련한 등불과 달빛만이 세상을 비춘다.
하늘의 저편에서 풍선처럼 둥실거리는 달은 휘황찬란하게, 마치 안도혁의 머리처럼 빛났다.
차라리 구름이 끼고, 비가 왔더라면 나았을 텐데.
대머리와 고자는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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