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랑대전(唐狼大戰)-6
당호의 장력은 과연 막강했다. 부독시원공을 운기하여 그 독기가 사방으로 퍼지려는 찰나, 그의 장력은 고구의 심맥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고 오히려 그 독기가 역행하여 그의 몸에 중독증상을 일으킨 것이다.
“천하를 행도하며 온갖 악독한 잡것들을 보아왔지만 실제 부독시원공을 익힌 자는 처음 보는군.”
부독시원공은 천하에 존재하는 독공(毒功) 중에서도 그 위력이 뛰어난 축에 속한다. 더군다나 부독시원공을 연성하는데 필요한 시독은 천하에서 가장 강한 독인 사람의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시독이다. 그런 독이 역류했으니 고구가 멀쩡할 리 없었고 그의 가슴은 어느 샌가 움푹 패여 있었다. 부독시원공의 독기가 역류하며 그의 심맥과 심장부터 녹아내리고 폐와 가슴뼈까지 먼저 녹아내린 것이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그의 몸에서는 지독한 악취와 함께 독기가 흘러나오고 있어 주변 일장 안으로는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팔황혈갈단(八荒血竭丹)을 갈아 물에 풀어 뿌려라. 일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고구의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시독에 대한 대처를 명령한 당호는 남아있는 시랑보의 고수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미 그의 등장만으로 사기가 땅에 떨어진 그들의 모습은 사나운 이리가 아닌 비루먹은 개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호는 그들을 살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당문을 공격한 자들에게는 열배, 백배, 천배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그들의 규칙이었고 이들을 처리한 다음에는 시랑보 자체를 없애버릴 생각이었다.
“어디에서 오신 고인인지는 모르나 아직도 숨어있을 생각이시오?”
당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오히려 시랑보 측이 소란스러워졌다. 고구를 죽일 때는 아무런 경고도 없이 날아와 장력을 날렸으면서 지금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좋소. 나서지 않겠다면 나서게 만들어드리리다.”
당호의 말과 함께 그의 소맷자락이 펄럭였고 그와 동시에 비명이 터져나왔다. 무서운 일이었다. 던지는 암기가 무엇인지 보이지도 않았고 더욱 두려운 것은 암기가 날아드는데도 그것이 날아드는 소리가 들리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으아악!”
일수일살(一手一殺).
그의 소맷자락이 한번 펄럭일 때마다 하나의 목숨이 세상을 달리했고 시랑보의 고수들은 공황상태에 빠져있었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당호의 암기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지금 그 어떤 악귀나찰보다도 무서운 것이었다. 그때 찌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처음으로 당호가 던진 암기가 튕겨났고 당호는 자신의 암기를 튕겨낸 자를 보며 웃음지었다.
“이제야 나오셨구려. 본인의 대접이 부족하여 나서지 않는지 걱정했다오.”
“충분하다 못해 넘칠 지경이라오.”
당호의 암기를 튕겨낸 사람은 서문에 나타난 인노와 마찬가지로 그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늙은 노인이었다. 그는 오른손에는 장검을, 왼손에는 방울을 들고 있었고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왼손에 들고 있는 방울에서 찌릉 찌릉하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방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말로하기 힘든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강호상에 저런 사람이 있었던가?’
당호는 머릿 속을 떠도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나 눈앞의 노인처럼 방울을 들고 다니는 검객은 짧지 않은 그의 인생에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이 늙은이는 천노(天老)라고 하오. 암왕에 비하면 떨어지는 솜씨지만 그렇다고 저 젊은 사람들이 몰살당하는 것은 볼 수 없어 나섰다오.”
“허허, 본인이 날린 암기를 이렇게 쉽게 쳐낸다는 것은 중협(中俠)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오. 너무 겸양하지 마시오.”
거만할 정도의 자신감. 그러나 그것을 암기천하제일(暗器天下第一)인 당호가 한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둘의 대화는 차분했으나 그 기세는 결코 차분하지 않았다. 천노는 당호에게 검을 휘두르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당호는 미묘하게 흔들리는 천노의 신형을 보며 암기를 날릴 완벽한 기회를 잡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쿨룩, 쿨룩.”
잠시간의 대치. 그러나 갑자기 천노가 기침을 하며 당호에게 고정하고 있던 시선이 흐트러졌고 그 기회를 놓칠 당호가 아니었다. 마치 기침을 하는 천노를 위해 먼지를 털 듯 가벼운 손놀림이었지만 당호의 옷자락이 한번 펄럭이자 세 가닥의 붉은 빛줄기가 천노를 향해 날아들었다.
따다당!
그러나 천노 또한 만만치 않았다. 어느 샌가 검을 들어 올려 당호가 발출한 세 개의 주작파(朱雀播)를 모조리 쳐내고 검을 휘둘러왔다. 해소병(解消病) 걸린 늙은이가 제법이라는 생각을 하며 당호는 다시 한 번 비황석(飛蝗石)을 천노를 향해 날렸다. 그때 갑자기 천노의 왼손에 들린 방울이 크게 울리며 소리를 냈고 그와 함께 천노의 신형이 미묘하게 흔들리며 비황석의 궤도를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이 움직이자 강한 진동을 품은 검이 날아들었고 그것을 본 당호의 눈이 커지며 그의 입에서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련검마(祁連劍魔)!”
당문의 동문은 이미 정리가 되어있었다. 지암당(地暗堂)은 그 이름에 걸맞게 암기에 능통한 이들로 구성이 되어있었는데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기관진식(機關陳式)에도 능통한 곳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동문을 기관진식으로 도배를 해놓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동문에 발을 들여놓은 시랑보의 고수들은 몰살을 면치 못했다.
“암기들은 회수가 되었는가?”
지암당의 부당주인 당소재(唐召渽)의 말에 옆에 서있던 당성(唐成)이 입을 열었다.
“기관의 특성상 오할(五割)은 회수가 불가능하지만 나머지는 거의 회수가 끝났습니다.”
당성의 말에 당소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당주님을 살해한 고구라는 놈을 직접 죽이지 못하는 것이 한이로다.”
당문에서 시랑보에 대한 적개심이 가장 강한 곳을 꼽으라면 그것은 분명 지암당일 것이다. 당주인 당문신이 고구의 손에 의해 비명에 간 후 즉시 시랑보에 대한 공격을 주장했으나 경거망동을 우려한 당문평의 만류로 인해 복수를 미뤄야 했던 그들은 피눈물을 쏟으며 절치부심해야만 했다. 지금도 정문으로 달려가고 싶어 자신도 모르게 발이 정문을 향하는 그였지만 다행히도 그는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심 때문에 당문의 방어를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고 있었다.
“한을 품으면 뭐 하겠느냐. 어차피 오늘이 가기 전에 죽을 것인데.”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당소재를 비롯한 사람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어디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는지는 알 수 없었고 순간 당소재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방금 들려온 목소리는 바로 강호에 전설로 알려진 육합전성(六合轉聲)이었던 것이다.
“어디서 오신 고인이시오? 모습을 드러내시오!”
곧바로 신색을 회복한 당소재가 외치자 훤히 열려있던 동문을 통해 양손에 묵직해 보이는 몽둥이를 든 노인이 느릿한 걸음으로 들어섰다.
“과연 당문이로다. 좋은 인재들이 많구나.”
느릿한 몸짓으로 지암당의 고수들을 둘러본 노인의 소감이었다. 당소재는 마치 산책을 나온듯한 노인의 행동에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귀하는 누구시오?”
“나말인가? 지노(地老)라고 불리는 별 볼일 없는 늙은이 일세.”
당소재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육합전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고수가 그저 평범한 사람일리도 없었거니와 아까부터 계속 자신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는 미묘한 느낌이 저 지노라는 노인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제법이로구나. 내 기세를 느낄 수 있다니 말이야.”
지노는 양손에 쥔 몽둥이를 서로 부딪쳤다. 단순히 나무로 된 것이 아닌 듯 쇠도 아니고 돌도 아닌 묘한 소리가 울렸고 주변을 둘러본 지노는 몽둥이를 겨누며 말했다.
“덤벼보아라.”
지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주변에 암기가 날아들었다. 수십, 수백 개나 되는 암기들과 작동시키지 않았던 기관까지 작동시키자 지노의 몸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나 당소재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하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지암당은 암기의 수발을 철저하게 수련한다. 암기라는 무기의 특성상 잘못하면 같은 편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인데 특히나 자신들이 합공을 하는 상황이라면 지금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신호가 없이 공격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노의 말에 마치 홀린 듯이 그를 공격했고 기관까지 이용해 지노에게 암기를 날린 것이다.
타다닥. 타다다닥.
생각에 잠겨있던 당소재에게 소리가 들려온 것은 날려보낸 암기의 제1파가 지노의 몸에 닿을 무렵이었다. 마치 콩 볶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지노가 있음직한 곳에 부서진 암기들의 파편이 쌓이기 시작했고 그를 향해 날아든 암기가 사라질 무렵 당소재는 경악할 만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어, 어떻게······.”
지노의 몸에는 한줄기의 상처도 없었다. 손에 들고 있는 거무튀튀한 몽둥이를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자신을 향해 날아든 암기들을 모조리 막아낸 것 같았다.
“어떻게기는 자네들이 암기를 날려 모조리 이 쌍곤(雙棍)으로 쳐냈을 뿐이지.”
“이, 있을 수 없는 일이오.”
당소재의 말에 지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급하게 공격하느라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은 암기가 몇 백 개 날아든다고 해서 위험에 처한다면 어찌 고수라 하겠나?”
말은 쉽게하지만 지노가 한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발밑에서는 기관장치에 의한 암기가 날아가지 않았는가. 뿐만 아니라 아무리 경황 중에 날린 암기라 해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맹한 힘이 실리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한데 저 노인은 일순간에 모든 것을 파악하여 몽둥이로 쳐낸 것이다.
“더 보여줄 것이 없다면 이만 끝내기로 하세나. 이 늙은이도 그리 한가한 사람은 아니거든.”
그렇게 말하며 지노가 뚜벅뚜벅 걸어오자 당소재를 비롯한 지암당의 고수들은 주춤주춤 물러섰다. 인간같지도 않은 무위에 기가 질린 것이다. 지노와 그들간의 거리는 어느새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가 되었고 지노는 왼손에 든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이제 그것이 내려옴과 동시에 처참한 살육이 벌어질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잘들 가시게.”
휘익!
지노의 몽둥이가 사람의 머리를 노리고 떨어지는 순간. 허공을 은빛 섬광 한줄기가 갈랐다.
탁!
사람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던 몽둥이가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더니 은빛 섬광의 끄트머리를 때렸고 섬광은 잠시 기세를 잃는가 싶더니 부르르 떨며 날아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사람들이 은빛 섬광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은빛 찬란한 채찍을 오른팔에 감아쥔 위풍당당한 모습의 중년인이 서있었고 그가 입을 열었다.
“감히 본가의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려 들다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오.”
“그대는 누구인가.”
지노의 물음에 중년인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남의 집에 찾아와놓고 집주인의 얼굴도 모른단 말이오?”
중년인은 바로 당문가주 당문평이었다. 당문평의 말에 지노도 그의 정체를 어느 정도 짐작한 듯 말했다.
“정보가 잘못되었나보군. 독에 중독되어 팔을 쓰지 못한다고 들었네만.”
“보다시피 내 팔은 멀쩡하오.”
“그런 것 같군. 그냥 보내주지는 않겠지?”
“당신이라면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망치려두는 상대를 가만 두겠소?”
당문평의 말에 지노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지.”
“그럼 시작해 봅시다.”
당문평의 말과 함께 독룡은편이 허공을 갈랐다.
- 작가의말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액션씬서술이 꽤나 힘들군요.
아마도 1, 2편 정도는 더 나오지 싶습니다.(더 길어질 수도 있고요.)
재밌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ps. 추천과 댓글은 필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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