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잘못은 부모에게 물어라-2
사진충은 자신의 절기인 표류검법(漂流劍法)을 사용하기 위해 검을 들어 팽호진을 겨누었다. 팽호진은 그런 사진충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다시 자세를 취했는데 듣기로는 팽가의 망신이니 망종(亡種)이니 하는 소리를 들어도 썩어도 준치라는 말을 증명하듯 그의 자세는 얼핏 봐도 사진충의 자세보다 엄밀했다.
“과연, 팽가의 무공이오.”
사진충은 강호의 선배인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지 않고 선공을 해갔다. 선배이니 후배이니 해도 결국 강호는 실력이 말해주는 것, 자기 자신이 약하다면 호가호위(狐假虎威)를 해서라도 강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강호인 것이다.
사진충의 표류접(漂流蝶) 초식이 팽진호의 오른쪽 어깨와 배를 노리고 날아들었으나 팽진호는 피하지도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그런 팽진호의 대응을 본 사진충은 눈썹을 찌푸렸으나 더욱 힘을 주어 힘차게 검을 찔러갔고 그의 검이 팽진호의 배에 적중하려는 순간 갑자기 팽호진의 어깨가 움직이며 그의 팔을 향해 칼을 날렸다.
“헛!”
사진충은 급히 숨을 들이키며 표류접에서 적엽표류(積葉漂流)의 식으로 검을 거두어 들였다. 표류검법은 상대의 공격을 절묘하게 이용하는 검법으로 방금과 같은 쾌속한 공격에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칼을 휘두르거나 할 때 일어나는 풍압을 이용하기 때문에 그런 풍압을 느낄 새도 없이 들어오는 공격에는 매우 취약했던 것인데 팽호진은 그것을 파악하고 쾌도식을 이용해 사진충의 공격을 와해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팽호진은 그것으로 끝낼 생각이 없는 듯 복호기조(伏虎起爪)의 초식으로 사진충을 베어갔다. 칼날은 정확히 사진충의 가슴을 향하고 있었고 그것을 맞으면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순식간에 사진충을 덮친 팽호진의 공격에 표국의 사람들은 모두 안색이 변했다.
‘이대로 가는가…….’
사진충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이 죽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표국을 날로 집어삼키려는 팽가의 계략에 그대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도 억울했다.
쩌엉!
그때 쇠를 울리는 소리가 나며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웁! 웁!”
사진충이 눈을 떠보니 그곳에는 부러진 칼을 쥔 채 진태백에게 입이 붙잡힌 팽호진이 서있었다.
“태, 태백이!”
“사표두님, 괜찮으십니까?”
진태백의 물음에 사진충은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본 진태백은 팽호진에게 말했다.
“보자보자하니 같잖은 놈이 너무 설치는구나.”
팽호진은 정신이 없었다. 고작 쟁자수가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주워 던져서 자신의 칼을 부러뜨리고 순식간에 자신에게 접근해 입을 틀어막았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진태백이 틀어막은 입은 무시무시한 힘으로 눌리고 있어 참기 힘든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진태백은 애초에 신력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다 금강벽 특유의 악력(握力)단련법인 백호교(白虎咬)로 단련되어 있었다. 원래의 힘에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으니 그의 악력은 차돌멩이를 손으로 쥐어 으깨고 강철을 쥐어 손자국을 남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악력으로 입을 틀어막아버렸으니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다 이미 완맥(腕脈)을 잡혀 공력을 운기할 수도 없었으니 팽호진으로서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진 격이었다.
“어떠냐? 네놈이 제법이라고 한 쟁자수의 손맛이.”
팽호진은 믿을 수가 없다는 눈빛으로 진태백을 노려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갈수록 진태백의 손이 전해오는 압력은 더해지고 턱뼈와 이빨이 으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어긋나고 있었다. 팽호진의 눈이 서서히 뒤집혀가자 진태백은 다리를 들어 그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차며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렸다.
빠각!
“크악!”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팽호진은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진태백에게 차인 다리는 완전히 부러진 듯 이상한 각도로 꺾여있었다. 그것을 본 팽설은 앉아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팽호진에게 달려왔고 잠시 팽호진의 상처를 살펴본 다음 진태백을 향해 말했다.
“감히 하북팽가의 사람을 건드리다니! 고작 이 조그만 표국의 쟁자수인 주제에!”
철썩!
진태백은 손바닥으로 팽설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것을 본 안진표국의 사람들은 팽진호의 다리가 부러졌을 때보다 더욱 놀랐고 사진충은 진태백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 이보게!”
“왜 그러십니까?”
“팽설 소저는 하북팽가의 금지옥엽일세! 함부로 건드리면 안 돼!”
“상관없습니다.”
“뭣?”
“이 두 사람이 애초에 잘못을 했으니 상관이 없다했습니다. 힘이 없다고 해서 무시한다면 우리에게 힘이 있음을 증명하면 그만입니다.”
진태백의 말에 사진충은 할 말을 잃었고 진태백에게 뺨을 맞고 멍해있던 팽설은 어느새 정신을 차린 듯 맨주먹으로 진태백에게 달려들었다.
부웅!
주먹을 휘두른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강맹한 주먹질이었다. 팽설이 날린 주먹질에는 팽가의 무공인 파갑추(破甲錘) 공력이 실려 있어 그대로 맞으면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터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진태백은 정면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주먹을 움켜쥔 다음 그녀의 발목을 걷어찼다.
빡!
진태백에게 발목을 차인 팽설은 그대로 한 바퀴 빙글 돈 다음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진태백에게 차인 발목은 눈에 보일 정도로 퉁퉁 부어있었고 진태백은 어느새 그녀의 완맥을 제압하고 있었다. 팽설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진태백을 바라보았는데 진태백은 그런 그녀에게는 한 푼의 관심도 없는 듯 말했다.
“듣자하니 하북팽가는 명문(名門) 중의 명문이라고 했는데 너희 두 연놈을 보니 그도 아닌 모양이다.”
그 말과 함께 진태백은 팽진호의 뒷덜미를 잡고 팽설의 완맥을 잡은 채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사진충이 급히 물었다.
“어, 어딜 가는가?”
“팽가로 갑니다. 자식의 잘못은 부모에게 물어야지요. 이참에 표국에 눈독들이지 않도록 단단히 이야기를 해놓아야겠습니다.”
“자, 잠깐!”
신광동이었다. 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진태백을 불러 세운 뒤 말했다.
“태백이 그것은 하지 말아주게나.”
“어째서요?”
“하북의 맹주는 하북팽가일세. 거기다 그 둘은 가주의 아들과 딸이야. 아무리 그 둘이 팽가에서 내놓은 자식이라 해도 자기 자식들이 우리 표국같은 조그만 표국에서 망신을 당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우리 표국으로서는 감당해 낼 수가 없네.”
신광동의 말은 사실이었다. 구파일방을 제외하면 견줄 세력이 없는 중원팔대세가 중의 하나인 하북팽가라면 안진표국 같은 조그만 표국은 하루저녁에 없애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니 더욱 가야지요. 그 정도 되는 집안의 주인이라면 거짓 약속은 할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진태백의 태도는 단호했다. 신광동은 한숨을 푹푹 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그 모습을 보던 진태백은 신광동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저는 안진표국의 쟁자수가 아닙니다.”
“응?”
“그만 두겠다는 말입니다. 지금부터 하는 일은 표국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한명의 사람으로 옳지 않은 일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나선 것이니 그렇게 알아주십시오.”
신광동은 진태백의 의중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안진표국의 쟁자수로 있는 한 지금부터 팽가로 쳐들어 가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안진표국이 연루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스스로 그만두겠다 하는 것이었다.
“알겠네. 미안하네, 태백이.”
“그동안 국주님은 충분히 잘 해주셨습니다. 강형.”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진태백을 보고 있던 강재성은 진태백이 부른 소리에 쭈뼛거리며 그에게 다가왔고 진태백은 그에게 자신의 방으로 가서 자신의 짐을 가져다 줄 것을 부탁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강재성은 진태백의 짐을 정리해서 가지고 왔고 봇짐을 싸서 어깨에 걸친 진태백은 팽호진과 팽설을 이끌고 하북팽가로 향했다.
하북팽가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진태백은 범걸음(虎步)으로 달려 이각 만에 하북팽가의 정문에 도착했고 그의 양손에는 여전히 팽설과 팽호진이 붙잡힌 상태였다. 하북팽가의 문지기들은 멀리서 진태백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이미 경계를 갖춘 상태였고 그의 손에 들려있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큰소리로 외쳤다.
“도련님! 아가씨!”
문지기들이 달려와서 진태백에게 칼을 겨누었고 진태백은 멈춰서서 그들에게 말했다.
“이 두 사람의 부모를 불러주시오.”
“뭐?”
문지기중 한 명이 반문했고 진태백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이 두 망나니의 부모를 불러달라고 했소.”
“당신은 누구요?”
“진태백이라고 하오. 이 둘의 부모를 불러줄거요 말거요?”
진태백이 이름을 밝히자 두 문지기는 서로를 보며 자신들이 아는 강호의 고수 중 진태백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있는지 생각해보았으나 그런 이름을 가진 이는 없었고 결국 그들은 실력행사라는 최악의 패를 뽑고 말았다.
“어디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도련님과 아가씨를 함부로 질질 끌고 다니느냐! 어서 두분을 놓아드리고 도망간다면 뒤는 쫓지 않을 테니 어서 썩 물러가거라!”
문지기들이 칼을 겨누자 진태백은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진태백의 몸에서 자욱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 살기에 노출된 두 문지기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둘의 가랑이는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대변을 지렸는지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그것은 팽호진과 팽설도 다르지 않았는데 공력을 운기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그의 살기에 노출된 것은 둘의 정신을 놓게 만들었다. 진태백은 살기를 거두지 않은 채 성큼성큼 걸어가 하북팽가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정문을 힘껏 걷어찼다.
와지끈!
두꺼운 나무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문짝이 통째로 박살나며 날아갔고 그 소리와 진태백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살기에 놀란 이들이 뛰쳐나왔다. 진태백은 그제야 둘을 넓게 펼쳐진 마당에 물건을 내려놓듯이 던져놓았고 사람들이 충분히 모였다고 생각했는지 살기를 거두고 큰소리로 외쳤다.
“이 두 망나니의 부모 얼굴이 보고 싶어서 왔소! 안내를 해주던지, 아니면 불러주시오.”
진태백의 말에 사람들은 그의 발치에 쓰러져 있는 둘을 보았고 곧 그들이 팽호진과 팽설이라는 것을 알자 큰 소란이 일어났다. 아무리 망나니라도 가주의 아들과 딸이 저렇게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것은 하북팽가에 대한 중대한 도발인 것이다.
“자네가 이 아이들을 이리 만들었는가?”
푸른색 금의(錦衣)를 걸친 중년인이 진태백에게 물었고 진태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어째서 그랬는가?”
“어른을 공경할줄 모르고 같잖은 재주 몇 개로 사람을 상하게 만들었소. 그리고…….”
“그리고?”
“그 잘난 힘으로 사람을 못 알아보고 함부로 손을 썼소.”
중년인은 입을 다물었다. 최근 가세를 확장한다고 주변에 있는 사업장들을 흡수했는데 그 둘이 괜히 나서서 자기들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을 건드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저 둘은 가주의 자식일세. 이것이 본가에 대한 중대한 도발이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았나?”
“당신은 누구요?”
“팽철균(彭喆均)이라 하네.”
하북에 사는 사람이라면 팽철균이라는 이름을 모를 수가 없었다. 팽가에서 손에 꼽히는 고수이며 악을 원수처럼 미워하고 그 기질이 호탕하여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으나 그 손속이 잔인해 탕마도(蕩魔刀)라 불리는 이였다.
“당신이 저 두 망종의 부모요?”
“부모는 아니지만 집안 어른이니 입장은 비슷하네.”
망종이라는 말에도 팽철균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가주도 포기한 아이들이니 둘을 욕한다 해서 바뀔 것이 없었던 것이다.
“부모가 아니라면 나서지 마시오. 내가 볼일이 있는 것은 저 둘의 부모뿐이니.”
그 말에 팽철균의 얼굴이 굳어졌다. 겨우 약관이 지난 청년이 무림에서 혁혁한 명성을 날리는 자신에게 하는 말치고는 너무 무례했던 것이다.
“젊은이가 무례하군.”
“무례라면 저 둘이 먼저였소. 그리고 자식의 잘못은 원래 부모에게 묻는 법이오. 그러니 더 이상 참견하지 마시오.”
“이놈!”
진태백의 말에 팽철균의 옆에 서있던 청년이 나서며 진태백을 향해 소리쳤다. 진태백은 심드렁한 얼굴로 그를 향해 말했다.
“네놈은 뭐냐?”
“뭣?”
“네놈은 뭐길래 네놈 집안 어른과 이야기 중에 끼어드느냐? 그것이 팽가의 법도라면 저런 망나니들이 나온 것도 이해가 되는군.”
진태백의 말에 청년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자신이 끼어드는 바람에 진태백에게 팽가를 욕할 빌미를 준 것을 안 것이다. 청년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허리에 찬 칼을 뽑아들고 진태백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진태백은 그가 휘둘러 오는 칼을 피하지 않고 그의 품속으로 뛰어들어 그의 손목을 잡고 가차 없이 비틀었다.
우두둑!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팔꿈치의 관절이 빠져버렸고 뒤이어 날아온 진태백의 발이 청년의 턱을 올려 찼다.
뻑!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이빨 몇 개가 청년의 입에서 튀어나왔고 곧 정신을 잃은 듯 땅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그를 물끄러미 보던 진태백은 팽철균을 향해 말했다.
“마지막으로 말하겠소. 이 둘의 부모를 불러주시오.”
“더 이상은 못 참겠군. 먼저 공격하게. 내 선배로서 세수는 접어주지.”
곧 죽어도 자존심은 있는지 팽철균은 뒷짐을 진채 말했고 진태백은 등에 지고있던 봇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후회하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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