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난관(旅程難關)-3
후웅!
남두권 포숙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진태백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진태백이 그의 주먹에서 뻗어나오는 경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옆으로 세 걸음을 물러나는 사이 한결의 검이 유유히 그의 목을 노리고 뻗어왔다. 포숙의 권법은 낙성권법(烙星拳法)으로 마치 불타는 유성이 떨어지듯 강맹한 권법이었으며 북두검 한결의 검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부드러웠으나 그만큼 수많은 변화가 담겨있어 진태백은 그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결의 검법은 은하곤명검법(銀河滾洺劍法)이라는 것으로 그는 이 검법으로 장강 남북에서 적수를 찾지 못했었다.
그러나 남북쌍두의 가장 무서운 부분은 두 사람이 합격(合格)을 할 때였다. 포숙의 강맹함과 한결의 부드러움이 합쳐진 운과하한진(雲過河漢陣)은 강호의 일절(一絶)로 이름 높았고 이 합격진은 두 사람이 일생의 대적(大敵)을 만났을 때만 펼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소호의 작은 섬인 노산도에서 제대로는 아니더라도 진태백 같은 젊은 사람에게 운과하한진의 변화를 이용해 공격을 한다는 것은 아마 직접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진태백은 두 사람이 자신을 둘러싸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에게서 나오는 기세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진태백도 기세를 끌어올려 대항은 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기세를 뚫고 움직이기란 쉽지 않았다. 진태백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둘의 공격을 피했지만 워낙에 강맹한 포숙의 권력은 스치는 것만으로도 그의 몸 곳곳에 시퍼런 멍자국을 남기고 있었고 한결의 검은 진태백의 기세를 뚫고 들어와 그의 몸을 베었다. 몇 초가 지나기도 전에 진태백은 온몸에 멍이 들고 생채기가 생겨 피투성이가 되어버렸고 무언가 반전의 계기가 생기지 않는 이상 진태백은 둘의 주먹과 검에 쓰러지고 말 것이었다.
‘무언가 수를 내지 않으면!’
진태백은 다리를 노리고 찔러오는 한결의 검을 다리를 비틀어 몸을 돌리는 것으로 피해내고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포숙의 주먹을 자세를 낮추는 것으로 피해냈다. 그렇게 자세를 낮추며 진태백은 빙글 몸을 돌림과 동시에 오른 다리로 한결의 발목을 바닥을 쓸 듯이 걷어찼다.
“헛!”
갑자기 진태백이 자신의 발목을 걷어찰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듯 한결은 다리를 들어올렸고 그 순간 어느 샌가 몸의 탄력을 이용해 공중에 떠오른 진태백의 오른발뒤꿈치가 이마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경험이 풍부한 한결은 그의 독문보법(獨門步法)인 능수보(綾守步)를 이용해 옆으로 세 걸음 물러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태백의 발차기를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그의 발뒤꿈치가 그의 이마를 스쳐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한편 포숙은 진태백이 한결의 발목을 걷어차고 바로 몸을 일으켜 발뒤꿈치로 그를 내려찍는 순간을 노려 진태백을 공격했으나 그 순간 진태백이 왼손 수도(手刀)로 그의 목을 베어왔기 때문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진태백이 둘을 한 번에 공격한 이 수법은 금강벽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법인 유성락(流星落)으로 상대의 하체를 걷어차 균형을 무너뜨린 다음 전광석화같은 찍어차기로 상대의 머리를 부수어버리는 무서운 살수였다.
그러나 진태백의 얼굴은 그리 좋지 않았다. 회심의 공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성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수없이 다수와의 싸움을 경험한 진태백이라지만 변변한 무공을 익히지 못하고 그저 떼로 몰려드는 수법을 사용하는 도적떼와 합격진을 통해 공격해오는 절정고수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정말로 아깝구나. 적으로 만나지만 않았던들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었을 것인데.”
포숙이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이 말했지만 한결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은 듯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방금 그가 진태백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수없이 강호를 행도하며 쌓은 실전경험과 운이 작용한 결과였고 다시 한 번 그런 공격이 가해진다면 피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포숙이 자꾸 진태백에게 말을 거니 그의 심기가 흐트러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게! 싸우고자 나섰으면 싸운 후에 이야기를 나누어도 늦지 않을 것이네!”
한겸의 말에 포숙은 다시 자세를 취했다. 이미 싸움을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했고 그것은 진태백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사용한 유성락도 한결 한명만을 상대로 썼다면 분명히 그를 격살할 수 있었을 것이나 포숙을 견제하기 위해 수도를 날림으로 인해 본래의 속도나 날카로움이 평상시보다는 덜했다. 진태백이 둘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려면 한결이나 포숙, 둘 중 하나를 반드시 격살하거나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게 만들어야했다.
위잉.
벌떼가 몰려드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한결의 검이 다시 진태백의 상체를 가두어 왔다. 방금 사용했던 공격이 어떠한 방어라도 그 빈틈을 뚫고 들어오는 방식이라면 지금의 공격은 진태백이 어떠한 방어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공격이었다. 이것은 은하곤명검법의 절초인 천릉포진(天綾包盡)의 수법으로 상대가 움직일 수 있는 방위를 모두 차단하는 초식이었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포숙이 곤룡지열(袞龍地裂)의 수법으로 진태백의 하체를 공격해왔다. 두 사람의 공격은 마치 한사람이 펼치듯 자연스러웠고 호흡이 딱딱 맞아 떨어져 그들의 공격에는 한 치의 빈틈이 없었다. 때문에 진태백이 그들의 공격에 피를 뿌리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할 것만 같았다. 그때 갑자기 진태백이 숨을 크게 들이키며 어마어마한 기합을 내질렀다.
“갈(喝)!”
마치 천둥소리와 같은 진태백의 기합소리에 한순간 둘의 공격이 멈칫했다. 너무도 큰 소리에 한순간 몸이 경직되어버린 것인데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진태백의 공격이 포숙을 향했다. 진태백의 하체를 공격하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있던 그를 향해 금강벽의 발차기 기술인 작화산(灼火散)이 날아들었다.
빠바박!
콩 볶는 소리와 함께 포숙은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다 울컥 피를 토해냈다. 급히 구명절초인 낙성연수(落星聯垂)로 진태백의 공격을 막았으나 그의 공격에 실린 경력(勁力)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엄중한 내상을 입고 만 것이다.
“포숙!”
한결이 포숙의 위기를 보고 은하곤명검법의 절초들을 연거푸 펼쳐내며 달려들었다. 진태백도 포숙과 맞부딪쳐 가볍지 않은 내상을 입었지만 그래도 그보다는 훨씬 나은 상태였기에 한결이 달려들자 뒤로 훌쩍 물러난 다음 앞으로 한걸음을 내디뎠다. 팽가에서 펼쳐졌던 부동명왕보가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내며 서로의 몸이 닿을 정도로 접근했고 진태백이 주먹을 내질렀다.
파바방!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한결은 피를 뿌리며 날아가 버렸다. 짧은 순간 열 번이 넘게 주먹을 내지른 진태백의 팔에서는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열기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백열에 이르러야만 쓸 수 있는 금강벽의 기술인 충각번(衝角繁)을 펼친 진태백은 한동안 주먹을 뻗은 자세 그대로 있다가 허리를 숙이며 피를 토해냈다.
“우웩!”
피를 토해낸 진태백은 한결 편해진 얼굴로 허리를 폈다. 그의 가슴에는 한결의 품속에 파고든 대가로 남은 기다란 검상이 생겨 있었지만 포숙과 한결을 쓰러뜨린 대가로는 극히 미미한 부상이었다. 한결은 진태백의 주먹에 맞아 절명한 상태였고 포숙은 입과 코에서 피를 쏟아내며 자신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젠가……,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너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진태백은 묵묵히 포숙의 말을 들었다. 적으로 만났을지언정 곧 죽음을 맞이할 노인의 말 한마디는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호의 은원은……, 그 시작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얽히고설켜있다.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는 없지만……, 부디 강호에 도사린 괴물에게 잡아먹히지는 마라…….”
포숙의 마지막 말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나직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진태백은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고 포숙의 머리가 축 늘어지자 한숨을 푹 내쉰 다음 굳은 얼굴로 서있는 사진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겠소? 당신도 나와 맞서겠소?”
진태백의 말에 사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나 지금 이곳을 둘러싼 이들은 너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포노사의 유언도 있었으니 우리는 이만 물러나겠다. 설마 그의 유언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물론 나는 포노인의 유언을 기억하고 있소. 저기 한노인의 고향은 어디요?”
“그의 고향은 감숙성(甘肅省)의 농서(隴西)다.”
“알려주어 고맙소.”
진태백의 말이 끝나자 사진은 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남과 동시에 사당을 둘러싸고 있던 살기도 모두 사라져버렸고 진태백은 상처에서 느껴지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포숙과 한겸의 시신을 챙겨 어깨에 들쳐 메고 걸음을 옮겼다.
남북쌍두가 죽었다는 소문은 대강남북을 뒤흔들었다. 수십 년 동안 명성을 떨친 두 고수가 분광발도라는 약관이 갓 넘은 애송이에게 패사(敗死)한 것은 근 십년 내에 있었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였고 사건이 일어난 안휘성은 온통 진태백에 대한 이야기에 휩싸였다. 그 명성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진태백의 특성상 온갖 소문이 떠돌았고 심지어는 천하오절의 공동전인(公同傳人)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소문을 듣고 노산도에 온 무림인들은 사당에 남은 격전의 흔적을 보고 경악했고 남북쌍두의 시신이 보이지 않자 진태백에 대한 소문은 더욱 확대되었다.
“남북쌍두와 싸워 이길 정도로 그 녀석이 강하단 말이냐?”
아수라왕은 자신의 칼을 손질하던 중 흑의인의 말에 반문했다.
“뿐만 아니라 서광은 자신이 자랑하던 대부에 이마가 쪼개져 죽었고 강석 또한 중상을 입고 혼자서 그 자리를 도망쳤다고 합니다.”
“사진이라는 자는?”
“쌍두 어르신들과 그 녀석이 서로 죽더라도 시신을 수습해주기로 약조한 탓에 더 이상 손을 쓰지 않고 물러났다고 합니다.”
“흠, 제법 사내다운 녀석이로군.”
아수라왕의 칭찬에 흑의인의 얼굴이 들렸다가 다시 내려갔다. 그는 강한 자존심만큼 남을 칭찬하는데 인색하여 방금과 같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약조를 했다면 우리 쪽에서는 당분간 그 분광발도라는 녀석을 손댈 필요가 없다.”
“네?”
“사내 대 사내로 약조를 한 것은 지키게 해주어야지. 우리가 무슨 술수를 부려 자기를 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쌍두 노인의 시신을 수습한 것은 칭찬받을만한 일이다. 그 녀석이 사내답게 나선다면 쓸데없는 술수를 부리기보다는 우리도 정정당당하게 나서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이다. 대흉복행에게 전하거라. 본왕은 그 녀석이 남북쌍두의 유해를 호북성 당양과 감숙성 농서에 가져갈 때까지 손대지 않겠노라고.”
“알겠습니다.”
“물러가라.”
아수라왕의 말에 흑의인은 고개를 숙여 보인 다음 물러났다. 아수라왕은 그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대흉복행 그 늙은이가 무슨 수를 쓸지 기대가 되는군. 과연 그녀석이 얼마나 그자의 흉계를 헤치고 나오는지도 꽤나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것이다.”
- 작가의말
이번 편은 좀 짧습니다.
전편이 길었으므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원래 어제 올렸어야 했는데 피곤했는지 떡실신해서 늦어졌군요.
재미있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ps. 댓글과 추천은 필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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