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지란(四川之亂)-3
위이잉!
당문평의 손에 들린 독룡은편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보통 채찍은 거둘 때 귀를 찢는 파공음이 들리게 마련인데 독룡은편에서는 그저 공기를 가르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스스로를 숨길 수 있는 병기라. 그야말로 귀물(貴物)이로군.”
염포는 탐욕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독룡은편을 보며 말했다. 자신이 들고 있는 채찍도 서장의 기물이지만 당문의 가주에게 대대로 전해져온 독룡은편은 자신이 사용하던 채찍이 썩은 새끼줄로 보일 정도로 탐나는 것이었다.
“주제를 모르고 넘보는군.”
당문평은 염포의 말에 한푼의 가치도 없는 듯 무심한 말투로 말했고 염포는 그의 말에 자신의 채찍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흐흐, 주제를 모르는지 아는지는 싸워보면 알게 되겠지.”
염포는 검푸른 기운이 흐르는 채찍을 독룡은편의 끄트머리를 노리고 휘둘렀다. 그의 채찍은 광교선(洸蛟線)이라는 것으로 교룡(蛟龍)의 심줄을 특수한 용액에 담가 만든 것인데 질기기는 말로 할 수 없고 공력을 불어넣으면 무형의 강기를 유형화시키기 때문에 검처럼 다른 물건을 베어버릴 수도 있는 기물(奇物)이었다. 이미 염포가 공력을 주입한 듯 광교선에서 일렁거리는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갈택 또한 당문평을 협공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쫘악!
염포의 광교선이 공기를 가르며 당문평을 향해 날아들었다. 강기를 줄기줄기 뻗으며 허공을 가르는 모습은 옆에서 보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광경이었고 그와 동시에 갈택 또한 장력을 뻗어왔다. 그러나 당문평은 제자리에서 한발자국도 떼지 않은 채 독룡은편을 들고 있는 오른손을 휘저었다.
쩌정!
단 한 번의 휘두름이었지만 그 효과는 절대적이었다. 독룡은편은 마치 스스로 의지를 지닌 생물처럼 움직여 광교선의 강기를 찢어발기고 갈택의 장력을 흩어놓았으며 둘의 가슴과 어깨에 날카로운 상처를 남겼다.
“쿠에엑!”
광교선의 강기가 깨어지며 심한 내상을 입은 염포는 피를 토하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뿐만 아니라 독룡은편의 가시에는 극독이 발려 있었는지 독룡은편이 스치고 지나간 가슴에는 점점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분수를 알겠는가?”
당문평은 차가운 웃음을 띤 채 그들을 바라보았고 갈택은 자신들의 판단이 틀렸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존자(尊者)께서 왜 당문에 대한 총공격을 미루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문파들이 부침을 겪는 강호에서 사천당문이라는 가문이 어째서 이리도 굳건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지도 알 수가 있었다.
“확실히 노부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지. 하지만 싸움이라는 것은 끝을 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지.”
“끝을 볼 필요도 없지.”
갈택은 등 뒤에서 들려온 차가운 목소리에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청삼(靑衫)에 녹건(綠巾)을 걸친 노인 한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동작은 느릿했지만 한걸음 한걸음에 기묘한 현기(玄氣)가 서린 보보(步步)였고 갈택과 염포는 마치 사방을 포위당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귀하는 혹시…….”
“노부가 바로 당호다.”
서릿발 같은 기운을 흩뿌리며 말하는 당호의 모습은 매우 냉혹해 보였으나 오히려 그 모습이 잘 어울렸다. 평생에 걸친 강호행 중 모든 싸움에서 이겼으며 이제는 구주구왕이라 불리는 강호의 전설이 된 사람다운 모습이었다. 암기라는 무기의 특성상 패배는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인데 세수가 일흔이 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에는 단 한 번의 패배조차도 없었다. 가뜩이나 당문평이 단 한번 휘두른 독룡은편에도 낭패를 당한 둘로서는 당호의 출현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문광생이라고 들었소만 광생(狂生)이 아니라 광룡(狂龍)이라 불러드려야겠소.”
“호오, 감히 노부를 앞에 두고 농을 지껄이다니 제법 뱃가죽이 두꺼운가 보군.”
“설마, 아무리 본인이 팔괴 중 한명이라도 구주구왕을 앞에 두고 농을 할 리가 있겠소?”
“팔괴 중 한명이건 다른 무엇이건 본좌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만큼 이야기를 했으면 유언치고는 길게 들어준 셈이로군. 이만 죽어라.”
당호는 말과 함께 허공에 손을 흔들었고 그 모습을 본 갈택은 급히 몸을 피했다. 그러나 엄중한 내상을 입은 염포는 움직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가 자신의 미간에 무엇인가 닿는 것을 느꼈고 그와 동시에 무시무시한 고통에 휩싸였다.
“끄아악!”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의 비명과 함께 염포는 미간에 바늘만한 구멍이 뚫린 채 절명했고 미간에 뚫린 구멍에서는 검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그가 암기를 던졌을 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런 궤적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본시 암기를 던질 때는 아무리 날카로운 암기라도 파공성이 생기게 마련이며 안력이 뛰어나거나 절정에 이른 고수일 경우엔 암기의 궤적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데 당호의 암기는 그 어떤 소리나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갈택과 염포를 향해 날아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갈택은 당호의 손이 움직임과 동시에 산매보를 극성으로 발휘하여 간신히 몸을 피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하고 오른 다리에 암기를 격중 당했다.
“컥!”
갈택은 암기에 맞자마자 극심한 통증에 몸을 떨었으나 달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자신의 속도가 느려져 당호가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순간 자신의 목숨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런 갈택의 모습을 본 당호는 혀를 차며 말했다.
“쯧, 늙은 구렁이답구나. 하지만 흑룡각(黑龍角)에 맞았으니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을 터.”
“숙부님.”
어깨에 난 상처를 감싸 쥔 당문평이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고 당호는 당문평을 향해 말했다.
“오, 가주. 몸은 괜찮으시오?”
“숙부님 덕분에 큰 부상을 입는 것은 모면했습니다.”
당문평의 말에 당호는 그의 어깨에 난 상처를 힐끗 쳐다보고는 못마땅한 듯이 말했다.
“가주의 본신 실력대로라면 부상을 입지 않고도 둘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을 터인데. 아직 수련이 부족하구료.”
“부끄럽습니다. 더욱 정진…….”
당호를 향해 고개를 숙여보이던 당문평은 말을 마치지 못한 채 그대로 쓰러졌고 당호는 크게 당황하여 그의 몸을 끌어안고 어깨에 난 상처부위의 옷을 찢은 다음 상처를 살폈다. 검게 변색된 상처에서는 심한 비린내가 나고 있었고 검은 가운데 붉은 기운을 띤 기운이 상처 주변으로 번지고 있었고 당문평의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증세까지 보이고 있었다. 당호가 아는 한 이런 증상을 나타내는 독은 단 한가지뿐이었다.
“포한추독(抱恨錐毒)!”
포한추독은 서장에서 나는 특수한 광물독(鑛物毒)으로 그 독기가 천하에 존재하는 독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에 속하며 독이 침투한 자리에는 붉은 반점과 함께 검은 기운이 번지는 것으로 유명했다. 또한 수없이 많은 송곳으로 찔리는 듯한 통증을 동반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이 독이 중원에 알려진 계기로 인해 포한(抱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급하다!”
당호는 급히 당문평의 몸을 껴안은채 신형을 날렸다. 포한추독의 무서운 점은 강하거나 천하에 몇 안 되는 극독이라는 것이 아니라 독이 퍼진 부분의 신경계를 녹여버린다는 것이다. 이 독이 처음 중원에 알려진 것은 수십 년 전의 일로 어떤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목숨을 잃을 뻔한 여고수가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천하를 돌아다니던 중 얻은 것이라 알려져 있었다. 그녀를 배신한 남자는 감숙성에 위치한 문파인 진성문(辰星門)의 고수로 이 진성문은 용아창(龍牙槍)이라는 창술과 용린공(龍鱗功)이라 불리는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호신강기를 자랑하던 문파였다. 허나 그녀가 포한추독을 가지고 진성문을 찾아온 순간 진성문은 그 찬란한 명성의 종말을 고했다. 알려진 바로는 그 여고수가 자신을 배반한 남자를 살려서 데리고 갔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그 진위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당문평이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는 소문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중원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또한 그 소문의 내용이 굉장히 자세했기 때문에 당문에서는 최선을 다해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 했으나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진 소문은 막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서장의 침공을 막기 위해 사천성으로 향하던 고수들의 사기는 떨어졌고 무림맹 또한 사람을 파견하여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하지만 무림맹 사절의 방문은 단호하게 거절당했고 당문과 시랑보와의 싸움도 무기한 연기되었다.
“이것이 사천성에서 있었던 일이오.”
“이번일로 당문의 체면이 크게 손상되었겠군.”
“애석한 일이지만 그렇소. 무엇보다 독의 종가(宗家)라고 까지 불리던 곳의 가주가 그리되었으니 말이오.”
“한데 황보형이 당문과 연루되었다는 것은 무슨 말이오?”
진태백의 물음에 제갈정은 목이 마른 듯 차를 한 모금 마신 다음 말을 이었다.
“그게 어떻게 된거냐 하면…….”
제갈정은 차를 한 모금 들이키며 말을 이었다.
이번 서장과의 싸움에 나선 황보세가의 고수들은 황보진을 포함한 여섯 명이었다. 태산지단(太山支團)에 속한 그들은 호북성을 거쳐 집결지인 남충(南充)에 도착했고 곧이어 성도(成都) 인근의 도시인 쌍류(雙流)로 이동했다. 이동하던 도중 몇 차례 습격을 받기도 했지만 큰 피해는 없었고 무사히 쌍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합니까? 숙부님.”
“아미산 인근인 강정(康定)으로 가야한다는구나. 팔개지단이 각기 여덟 개의 길을 봉쇄한다는 계획이니 아마도 다른 이들도 이미 강정으로 향하고 있을게다.”
황보진과 함께 사천으로 온 이들은 황보세가의 실질적인 무력을 담당하는 산군당(山君堂)의 사람들로 당주인 황보철(皇甫鐵)은 과삼철권(過三鐵拳)이라는 명호로 널리 알려진 고수로 과삼은 어떤 상대이건 그의 주먹질 세 번을 견디지 못해 붙은 별호였다. 가문의 핵심고수인 황보철이 직접 나선 것은 서장의 침공으로 인해 뒤숭숭해진 세가 내의 분위기를 세우기 위해 황보광이 직접 나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상경로로 그들이 오겠습니까? 모르긴 해도 경천지수라고까지 불리는 파진극이 그리 허술한 계획을 짤 리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의 무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수로 따지면 절대적인 열세입니다. 기병(奇兵)의 묘(妙)를 살리거나 처음부터 아극랍을 비롯한 고수들이 압도적인 무력으로 밀고 들어오지 않는 이상은 무리가 아닐까요?”
황보철은 황보진의 말에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번 행도가 제법 도움이 된 모양이구나. 제법 정확한 예측을 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과찬이십니다.”
“확실히 이런 방식은 비효율적일뿐더러 잘못하면 각개격파를 당할 수 있는 위험한 방법이다. 하지만 무림맹과 사흑련의 두 책사들이 그리 만만한 사람들은 아니지.”
“그게 무슨……?”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광무전(狂武殿)에서 나섰다고 한다.”
“광무전이라면!”
황보진은 깜짝 놀라 말했다. 놀란 토끼눈이 된 그를 보며 황보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설령 길이 열린다 해도 사천성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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