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왔소이다!

살인지령(殺人指令)-3

팔부중(八部衆).

흔히 천룡팔부(天龍八部)라 불리는 이것은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신성(神聖)을 말하는 것으로 천(天), 용(龍), 야차(夜叉), 건달파(乾達婆), 아수라(阿修羅),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마후라가(摩睺羅伽)로 나뉜다. 본래 불가에서 쓰는 말이니 불도(佛道)를 조금만 접하면 아는 말이지만 현 강호에서는 호결원의 팔부왕(八部王)을 지칭하는 말로 오히려 더욱 유명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말할 때 천왕, 용왕 등으로 불렀으나 그들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할 뿐 그 누구도 팔부왕의 진실한 정체를 알지 못했고 들리는 소문에는 호결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만 그들이 나서며 그들을 대면한자는 모두 죽음을 당한다는 말이 떠돌았다.

부드러운 바람이 기분 좋은 밤. 하남성(河南省) 개봉(開封)의 한 장원에서는 흉흉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하여, 분광발도를 제거해 주시길 바란다 전하셨습니다.”

“고작 그런 애송이를 죽이는데 내가 나서달라?”

부복하고 있는 흑의인의 목덜미 위로 녹색 장삼을 입은 남자의 싸늘한 말이 떨어져 내렸다. 칼보다도 예리한 기운에 흑의인의 몸이 부르르 떨렸지만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백열지경(白熱之境)에 이른 자라 합니다.”

“백열지경?”

녹의인의 눈이 호기심으로 커졌다. 은거기인들을 제외하면 현 강호상에서 권각으로 백열지경에 이른 이들은 열이 넘지 않는다. 그런데 고작 약관을 지난 애송이가 백열지경이라니 강호인이라면 흥미가 동하지 않을 리가 없는 말이었다. 또한 그는 보기 드문 무광(武狂)이기 까지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예, 전수라는 자를 보냈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전수를 제압할 때 내지른 발차기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흥, 황보세가에도 간자를 심어놓았나 보군. 그 따위 놈들이 진짜 백열(白熱)이라는 것을 알기나 하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아수라왕(阿修羅王)께 온 것입니다. 정말로 본원에 해가 될 자라면 제거하는 것이 좋고 또 그가 진짜 백열지경의 고수라면 본원에서 상대할 수 있는 자는 몇 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마후라가께서 아수라왕께 도움을 청하라 하셨습니다.”

흑의인의 말에 아수라왕이라 불린 남자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대흉복행(大凶腹行) 그 자가 뭘 꾸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확인은 해보도록 하마. 물러가라.”

대흉복행이라 함은 마후라가를 지칭하는 또 다른 말이었다. 원래는 가슴 흉(胸)자를 쓰지만 아수라왕은 앉아서 계교를 부리는 마후라가를 싫어했기에 비꼬는 의미에서 흉할 흉(凶)자를 써서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흑의인은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고 고개를 깊숙이 숙여 보인 다음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아수라왕은 잠시 생각에 잠겼고 곧이어 얼굴 가득 흉흉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백열, 백열이라. 좋군. 오랜만에 칼에 끼어있는 녹을 벗겨낼 수 있겠어.”

“보주께서 늦으시는군요.”

사흑련에서 당문과 시랑보의 싸움을 중재하기 위해 파견된 사흑련의 집법(執法) 도대금(陶大昑)은 시비가 가져온 차를 마시며 그의 앞에 시립해있는 광시(狂豺) 초정태(楚定台)를 향해 말했다. 약간 비꼬는 투가 담긴 그의 말이 초정태는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발작할 수는 없었다. 광시라는 별호에 걸맞게 초정태는 성질이 급하고 싸울 때면 말 그대로 미친 듯 날뛰는 자였지만 사파의 연맹인 사흑련의 권위를 무시할 수가 없었고 또 도대금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사파의 고수답지 않게 초연검(超然劍)이라는 얌전한 별호를 가지고 있는 도대금은 사파에 몇 되지 않는 검도(劍道)의 고수로 그의 실력은 이미 강호를 떨쳐 울리고 있었다.

가장 유명한 일화로는 무당파(武當派)의 대표적인 고수인 무당구검(武當九劍)의 셋째인 청량도장(淸亮道長)과 검을 겨루어 동수(同手)를 이룬 것이었다. 무당구검은 현 무당파의 장교(掌敎)인 청진도장(淸盡道長)의 사제들이었는데 검도의 깊이가 화경(化境)에 이르러 있다는 고수들이었다. 청량진인은 무당파의 검법 중에서도 특히 태청검법(太淸劍法)과 귀운검법(歸雲劍法)에 능통했는데 그 두 가지 검법을 합쳐 태청귀운검법(太淸歸雲劍法)을 창안하여 그를 존경하는 이들은 따로 태운진인(太雲眞人)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애당초 사파엔 검도의 고수가 드물다. 그런 상황에서 사파를 대표하는 검객이라고 명성이 퍼졌다면 그 실력은 정말로 엄청난 것이기에 초정태는 함부로 그를 대할 수가 없었다.

“본보가 작은 규모가 아니니 처리할 일이 많으셔서 그렇습니다. 도대협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양해라니요? 연통도 없이 불쑥 찾아온 본인을 이리 후대해 주시니 제가 오히려 양해를 구해야지요.”

유들유들하게 자신의 말을 받아넘기는 도대금을 보며 초정태는 속이 부글거렸으나 도대금은 그의 심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차를 마시며 느긋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도대금이 있던 객청의 문이 열리며 시랑보의 보주인 강추수가 느긋한 발걸음으로 객청에 들어서며 그를 향해 포권했다.

“반갑소, 도대협. 초연검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만 사천 땅에만 있다 보니 만날 기회가 없었구려.”

“과찬의 말씀이시오. 내가 있는 호남성(湖南省)까지 시랑보의 명성이 자자하다오.”

“그런데 어째서 본보에 방문하셨는지 알 수 있겠소? 사흑련에 무언가 일이라도 있는 것이오?”

단도직입적인 강추수의 말에 도대금은 웃으며 말했다.

“이런, 강보주는 성격이 너무 급하구려. 일단 앉아서 이야기 합시다. 그런데 시랑보의 재정은 참으로 풍부한가 보오. 이 귀한 서호용정(西湖龍井)을 사천에서 맛보게 될 줄은 몰랐소.”

‘뜬금없이 웬 차이야기란 말인가?’

강추수는 도대금의 말에 의구심이 들었다. 강호에 알려진 도대금의 성품은 유순하나 치밀하고 빈틈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고작 차 때문에 호들갑을 떨고 있어 강호에 알려진 그의 평상시 행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비록 서호용정이 천하에 유명하며 귀한 차라 할지라도 시랑보는 사천에서 첫손에 꼽는 사파다. 구하기가 어려운 것은 아닌 것이다.

“한데 어째서 이런 자금과 힘을 가지고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오?”

느닷없이 도대금의 입에서 강추수를 지탄하는 말이 흘러나왔고 그가 주절거리던 차에 대한 이야기를 흘려듣고 있던 강추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것이었군.’

강추수는 도대금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 상대의 정신을 흐려놓고 불쑥 본론을 꺼내 상대를 당황시키는 것은 도대금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었고 그의 명성과 지닌 무공으로 인해 그를 상대하는 자들은 백이면 백 당황했던 것이다. 그러나 강추수는 사천에서 첫손에 꼽히는 문파의 주인이다. 지닌바 무위도 도대금에게 꿀리지 않기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분란이라니? 본보가 무슨 분란을 일으켰단 말이오?”

“현재 강호의 분위기는 결코 좋지가 않소. 서장의 고수들이 중원을 침략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지금 어째서 당문과 싸움을 벌이는 것이오?”

“바로 그렇기 때문이오.”

강추수는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태연히 말했고 도대금은 한순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강호의 분위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당문과 싸우려는 것이오.”

도대금은 할 말을 잃었다. 정사(正邪)를 떠나 협력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당문과 싸우려는 것이라는 강추수의 말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천은 예로부터 정파의 세력이 너무 강했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강추수의 물음에 도대금은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당연히 아미(峨嵋)와 청성(靑城), 당문이 있기 때문에…….”

“바로 그거요.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소.”

“!”

“지금까지 무림을 이끌어 온 것은 소위 구파일방과 팔대세가라 불리는 정파의 세력이오. 허나 나는 그것이 싫소. 정파가 무엇이고 사파가 무엇이오. 세상에 절대적인 정(正)과 사(邪)가 있단 말이오? 내 비록 사파라 불리나 하늘을 우러러 떳떳치 못한 일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소.”

“허나 강보주가 시랑보를 세우며 한 일은…….”

“그것은 시랑보가 사느냐 사합문이 사느냐하는 사생결전(死生決戰)이었소. 원래 세상은 승자의 것이오. 무슨 수를 써서든 승자가 되어야 변명을 하던 용서를 구하든 할 수 있는 것이오. 내가 만약 졌다면 이렇게 시랑보를 일구어내지도 못했을 것이오.”

도대금은 말문이 막혔다. 강추수의 말에 틀린 곳은 없었다. 실제 정파라 불리는 곳도 자파(自派)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질 않는가. 다만 그것이 드러나면 대단한 망신이기 때문에 최대한 조용히 일을 처리할 뿐 따지고 보면 정파나 사파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도대금 또한 그런 정파의 작태에 분노하는 사람이기도 했으니 점점 그의 생각은 강추수가 바라는 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허나 지금은 서장의 동태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때요. 당문에서 본격적으로 독을 쓰기 시작한다면 시랑보가 버티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오.”

도대금의 말에 강추수는 대소하며 말했다.

“하하하, 도대협께서 우리를 걱정해주시니 백골난망이오. 걱정 마시오. 당문과의 드잡이질은 한 달 이내에 끝날 것이오. 만약 한 달이 지나도 당문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면 내 목을 바쳐서라도 싸움을 끝내도록 하겠소.”

자신감에 넘치는 강추수의 말에 도대금은 의문을 표했다. 분명 강추수는 강호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절정고수다. 그러나 그것은 강추수 본인에게만 국한될 뿐 팔대세가로 이름 높은 당문의 저력은 결코 쉽게 생각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좋소. 강보주가 그리 말씀하시니 사흑련에는 한 달 이내에 분쟁이 끝날 것이라고 전하겠소. 단, 그렇지 않을 경우 내가 직접 강보주의 목숨을 거두겠소.”

비록 강추수가 교묘한 언변으로 그의 마음을 돌려놓기는 했지만 도대금은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한 달의 유예기간을 준 대신 강추수의 목줄을 움켜쥔 것이다.

‘역시 만만치 않군. 겉멋으로 사흑련의 집법(執法)이 된 것은 아니라 이건가.’

그러나 이미 당문과의 싸움은 기호지세였다. 당문신을 죽였을 때부터 이미 시랑보와 당문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가 되어버렸고 이제 남은 것은 이겨서 모든 것을 가지거나 봉문(封門) 아니면 멸문(滅門)뿐이었다.

“한 달 이내에 당문과의 싸움을 끝낸다?”

혁진풍은 사흑련에서 보내온 전서를 읽으며 의문을 표했다. 밀영대의 보고로 시랑보에 사흑련의 집법인 도대금이 방문했다는 소식을 받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한 달의 기간이 잡힐 줄은 몰랐던 것이다.

“군사, 어떻게 생각하시오?”

혁진풍은 그의 옆에 시립해있던 박상중을 향해 물었고 박상중은 잠시 생각을 다듬은 다음 입을 열었다.

“두 가지의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두가지라?”

“네, 첫 번째는 시랑보가 당문과의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을 경우입니다.”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연히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당문의 가장 큰 무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독과 암기겠지.”

“민심(民心)입니다.”

“민심이라?”

혁진풍이 말한 독과 암기는 누구나가 생각할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박상중은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놓았고 혁진풍은 좀 더 자세하게 말할 것을 요구했다.

“사천은 예로부터 아미, 청성, 당문이 삼분(三分)하던 곳입니다. 거기다 세 문파 모두 정파로 큰 말썽 없이 자신의 세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때문에 민간인들이나 특별한 세력이 없는 강호인들의 경우 급격한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당문과 시랑보의 싸움에서 당문을 응원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시랑보가 그런 자신감을 보였다면 분명 싸움 이후 흐트러진 민심을 장악할 어떤 방법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시랑보주와 그를 보좌하는 교호리 마수광은 바보가 아닙니다. 당연히 독에 대한 대비는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당문의 저력은 무시할만한 것이 아닐 텐데.”

“무언가 감춰진 것이 있을 테지요. 당문의 저력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무언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무엇인가?”

“바로 현재의 상황입니다. 현재 강호의 상황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서장의 침공이 가시화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서장이 본격적으로 공격을 한다면 당문이건 시랑보건 서로 싸우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이전에 강호의 민심이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겠지요. 거기다 다음 달 중순엔 숭산(嵩山)에서 영웅대회가 열립니다. 그렇게 되면 싸움을 멈추게 될 수밖에 없지요. 아무리 복수가 중요하다해도 서장과 싸울 계획을 세우는 곳에 오려면 좋건 싫건 싸움을 멈출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박상중의 말에 혁진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달 중순에 있을 영웅대회는 정사를 넘어 서장과 싸우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무림맹과 사흑련이 동시에 주최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철천지원수와 싸우더라도 참석해야하는 일이었기에 당문과 시랑보는 싸움을 멈춰야 하리라.

“보통이 아니군. 시랑보주도 교호리도.”

“그러니 사천에서 시랑보를 그렇게 키울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무언가 불안하군. 일단 당수벽에게 전하게 당문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말이야.”

“그렇게 하셔도 되겠습니까?”

“가문의 싸움일세. 괜히 원망을 듣고 싶지는 않군. 어차피 다음 달 중순이면 다시보지 않겠나. 그리고 밀영대에게 시랑보를 좀 더 자세히 살피라고 전하게. 무언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어.”

혁진풍의 말에 박상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면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당공자에게 그리 전하지요.”

고개를 끄덕이는 혁진풍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불길함의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작가의말

과연 아수라왕의 정체는?

요즘 일이 조금 한가해져서인지 연재에 조금 탄력이 붙는군요.
좋은 일입니다. 좋은 일이에요.

[마녀의솥]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musado01..]

잘 보고 갑니다.

건 필하세요^^*

[감출수없는]

고맙습니다

[cr******]

추천하고 갑니다!

[별또는달]

잘보고갑니다

[진짜나메]

감사합니다.

[뿔따귀]

잘보고 있어요..

[김집사]

잘 보고 갑니다^^

[학교]

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