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왔소이다!

자식의 잘못은 부모에게 물어라-1

진태백이 쟁자수 일을 한지도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그동안 진태백은 여러 가지 표물을 운송했는데 특별한 적을 두지 않은 안진표국의 표물 운송은 상당히 안전한 편이어서 가끔 산적을 만나는 것 이외에는 위험한 일도 없었다. 진태백은 여전히 쟁자수였지만 표행을 나가면서 중원에 대한 견문이 깊어져 오히려 자신이 목적한 일은 이루어나가고 있었다.

“이보게 태백이.”

진태백을 부른 이는 그의 첫 표행 때 친분이 생긴 곽철이었다. 그의 성품은 호쾌하고 사내다워서 진태백과는 적지 않은 친분을 쌓고 있었다.

“아, 곽표사님. 무슨 일이십니까?”“지금 하북팽가에서 사람이 왔는데 같이 구경하러 가자고 온 거라네.”

“하북팽가요? 거기서 왜 사람이 옵니까?”

“글쎄, 그것까지는 모르겠네만 하북팽가주의 아들과 딸이라고 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겠나?”

곽철의 말에 진태백도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하북팽가주의 자식들이 있는 정문 쪽으로 향했다. 정문에서는 국주인 신광동과 표두인 사진충을 비롯하여 일급표사들이 마당에 서서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태백과 곽철이 정문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가히 한 쌍의 용봉(龍鳳)이라고 할 만한 남녀 한 쌍을 보게 되었는데 그들이 현 하북팽가주인 철완패도(鐵腕覇刀) 팽철신(彭喆迅)의 아들과 딸인 팽호진(彭昊診)과 팽설(彭雪)이었다. 그러나 그 둘은 생긴 것과는 다르게 온갖 패악질을 저지르고 다녀 망나니로 소문나 있었고 사람들은 그 둘을 일컬어 팽가전관자(彭家錢串子)라고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북에서는 워낙 팽가의 위세가 등등하다 보니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있었다.

“안녕하시오. 하북팽가의 팽호진이오.”

“팽설입니다.”

허리를 숙인 신광동에 비해 간단히 포권만 하는 팽호진과 팽설의 행동을 본 진태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무리 가문의 힘이 강하다고 해도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한 집단의 우두머리에게 하는 인사 치고는 너무 간략했던 것이다. 신광동과 사진충도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하북팽가라는 이름은 그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거대한 이름이었다.

“먼 길을 왔더니 피곤하군요. 숙소로 안내해주시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팽호진의 말에 사진충의 안색이 변했다. 하북팽가가 안진표국과 같은 고안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보통 사람의 걸음으로도 한시진이 걸리지 않는 거리를 먼길이라고 하다니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시비를 걸고 있다고 생각할 법한 말이었다. 그러나 신광동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 말을 받았다.

“하하하, 이거 하루종일 무예를 수련하느라 힘든 사람들을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구려. 정표두, 이분들을 숙소로 안내해드리게나.”

신광동의 말에 정표두라 불린 이가 나서서 그들에게 말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의 말에 팽호진과 팽설은 누가봐도 오만하다 느낄 정도의 표정으로 정표두의 뒤를 따라 숙소로 향했고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가자 사진충은 분통을 터뜨렸다.

“도대체 무엇입니까? 어째서 저 두 망나니가 우리 표국에 온 것 입니까 국주님!”

“후우, 말해 무엇 하겠나. 최근 팽가가 세력을 확장하려 한다더니 그것이 맞는 모양일세.”

신광동은 사진충을 이끌고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왔으나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팽가가 직접 나서서 안진표국을 접수하려 한다면 그것을 막을 힘이 자신들에게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목숨이나 부지하면 다행인 것이다.

“우리같이 조그만 표국을 접수해서 무엇 한단 말입니까?”

다른 표사의 말에 신광동이 말했다.

“우리 표국은 규모에 비해 알토란같은 표행을 많이 나가고 있네. 아마 그것을 노린 것이겠지. 하북팽가가 직접 운영하는 표국이라면 표물이 더 몰릴 테고.”

“그렇다고 저런 패악질을 어찌 보고만 있는 단 말입니까!”

“어찌하겠나. 아무리 저 둘이 팽가의 망나니로 소문이 나있다 하더라도 지닌 무공은 우리 표국에서 당할 자가 전혀 없네. 더럽고 치사해도 나는 우리 표국의 식구들을 건사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신광동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사진충 또한 분함에 이를 갈았으나 그들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진태백은 표국의 후원에서 천천히 주먹을 지르고 발차기를 하며 수련을 하고 있었다. 웃기는 일은 지난 일 년 사이에 활살분에서 살전활의 경지로 자신이 진보해 있었고 좀 더 나아지고자 하는 집착을 버리자 오히려 강해졌다는 것이었다. 진태백의 몸에서는 미세한 살기가 흐르고 있었으나 주먹을 지르고 발차기를 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그의 몸에서는 살기보다는 활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때 그의 수련을 방해라도 하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오, 제법이군.”

진태백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낮에 보았던 팽호진이라는 자가 서있었다. 낮에 있었던 일을 보았던 진태백은 그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기에 그가 나타나자 수련을 멈추고 몸을 돌려 숙소로 들어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팽호진은 그런 진태백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그가 쟁자수들의 숙소로 가는 것을 보고 묘한 웃음을 지었다. 무슨 짓을 꾸미는 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은 팽호진은 잠시 후원을 둘러보다가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고 다음날 팽호진은 팽설과 함께 표국주인 신광동을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불쑥 말을 꺼냈다.

“어제 후원을 돌아보는데 재밌는 구경을 했습니다.”

“재밌는 구경?”

“네, 쟁자수인 듯 했는데 무공을 수련하는 듯 했습니다. 밤늦게까지 수련을 하는 것을 보니 왠지 기특하더군요.”

진태백이 밤마다 후원에서 주먹을 지르고 발차기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진태백은 표국에 들어온 이후 단 한 번도 수련을 빼먹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모두가 그러려니 하는 형편이었다. 문제는 그의 말이었는데 어떻게 봐도 동년배인 팽호진이 진태백을 보고 기특하다고 하는 것은 노골적으로 그를 무시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신광동은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것은 표사나 쟁자수나 똑같이 중요한 일이지요.”

“그렇군요. 그래서 말인데……, 그에게 약간의 가르침을 주었으면 합니다.”

애써 평정을 가정하고 있던 신광동의 안색이 변했다. 진태백이 신력을 가지고 있고 몸놀림이 제법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하북팽가의 절학을 익히며 자라온 팽호진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거기다 예전부터 망나니로 소문난 그라면 비무를 가장하여 그를 폐인으로 만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팽공자의 말씀은 감사한 일이나…….”

“아아, 괜찮습니다. 무림에 몸을 담고 있는 이로써 하수에게 가르침을 베푸는 것 또한 고수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팽호진의 웃음을 본 신광동은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팽호진은 이미 진태백을 망가뜨리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연무장으로 오십시오.”

신광동은 예의에 어긋남을 알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방을 나왔다. 더 이상 그의 앞에서 평정을 가장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태백이, 어찌하려는가?”

팽호진이 진태백과 비무를 한다는 말은 순식간에 표국 안으로 퍼졌다. 도저히 진태백을 볼 낯이 없었던 신광동은 사람을 시켜 진태백에게 말을 전했고 진태백은 짐을 옮기던 중 소식을 듣고 연무장에서 팽호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죽기야 하겠습니까?”

태연한 진태백의 말에 곽철은 답답하다는 듯이 자신의 가슴을 두들기며 말했다.

“그놈은 소문난 망나니일세. 괜히 자네에게 시비를 거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그렇다 해서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요.”

소식을 듣고 몰려온 표사와 쟁자수들은 불안함에 속을 끓였으나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진태백이 목숨만은 부지하기를 바랄뿐이었다. 잠시 후 팽호진이 팽설을 대동한 채 연무장으로 나왔고 사람들이 몰려온 것을 보고 입가에 냉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올 사람들이 다 왔으니 이제 시작해 보도록 하지.”

팽호진은 걸치고 있던 웃옷을 벗으며 자신의 칼을 빼들었다. 전형적인 직도(直刀)의 형태를 가진 칼 몸에는 여러 가지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손잡이에는 푸른색의 수실을 달아 꽤나 화려해 보이는 칼이었다. 그의 뒤에 서있던 팽설은 억지를 부리는 팽호진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 듯 살짝 눈살을 찌푸렸으나 애초에 자기들이 온 목적이 시비를 거는 일이었으니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진태백은 몸을 풀기위해 가볍게 칼을 휘두르는 팽호진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자신도 웃옷을 벗고 손목을 두어번 털었다.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는데 시비를 걸어오니 차라리 잘됐다는 심정이었으나 그렇다고 마음먹고 살법(殺法)을 사용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팽호진을 혼내주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으나 그것을 핑계로 팽가에서 전격적으로 나서게 되면 안진표국이 사파로 몰릴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진태백이 팽호진을 향해 가려고 하는 순간 일급표사인 조상(趙尙)이 나서며 외쳤다.

“쟁자수를 상대로 하자면 팽공자의 실력을 보여주시기 어려울 것이오. 그러니 내가 가르침을 청하겠소.”

조상의 갑작스런 난입에 팽호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조상은 북경 일대에서 상당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채찍을 쓰는 솜씨가 범상치 않은 사람이었다. 거기다 그의 채찍을 마주한 사람은 항상 다리부터 다친다하여 사람들은 그를 상퇴편(喪腿鞭)이라 불렀다.

“하하, 그렇지 않아도 한낱 쟁자수를 상대로 칼을 쓰려니 마음이 불편한 참이었소. 조표사가 상대를 해준다면 나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오.”

마치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팽호진의 말에 안진표국의 사람들은 속에서 열불이 치솟았으나 힘이 모든 것을 말하는 무림인지라 내색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상도 나름대로 강호경험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그의 말에도 냉정을 잃지 않고 허리에 두르고 있던 채찍을 풀어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그가 채찍을 쓰는 방법은 특이하게도 자신의 머리 위로 팔을 들어 올려 채찍이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돌게 하는 것이었다. 팽호진도 이와 같이 채찍을 쓰는 것은 처음 보는지라 잠시 조상의 위아래를 훑어본 다음 번개같이 일도를 내질렀다.

쉬잉.

맑은 바람소리와 함께 팽호진의 칼이 날아들자 조상은 몸을 빙글 돌려 칼을 피해내고 자세를 낮춰 반마삭(絆馬索)의 수법으로 팽호진의 하체를 공격했다. 그러나 팽호진은 미허신보(彌虛神步)로 채찍을 피해내며 맹호출동(猛虎出洞)의 초식으로 조상을 공격했다. 이 맹호출동의 초식은 강호상에 가장 잘 알려진 하북팽가의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의 제 일초로 맹호가 동굴에서 뛰쳐나오듯 빠르고 맹렬하게 펼치는 것이 핵심이었는데 팽호진의 맹호출동은 맹렬함이 부족하기는 했으나 그 빠르기는 조상이 기겁할 정도로 빨랐다.

“어헉!”

순식간에 뻗어온 도초에 조상은 펼치던 초식을 거두며 자신의 절기인 와룡신(臥龍身)을 펼쳐 팽호진의 칼을 피하려 했으나 결국 넓적다리를 베이고 말았다. 칼에 베인 넓적다리에서 피가 솟구침과 동시에 팽호진은 옷에 피가 묻는 것이 싫었는지 훌쩍 뛰어 뒤로 물러났고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이거 창졸간에 초식을 펼치다보니 힘이 좀 과했던 것 같소. 미안하게 됐소이다. 조표사.”

뻔뻔한 그의 말에 주변에서 비무를 보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충분히 상처 없이 제압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넓적다리에 깊은 상처를 입힌 팽호진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진태백도 그런 팽호진의 작태에 화가 나는 것은 매한가지였으나 우선 급한 것은 조상의 상처를 살피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가져온 깨끗한 천으로 상처를 닦아낸 진태백은 가지고 있던 침으로 근처의 혈도를 찔러 지혈을 했고 끓인 물에 담갔던 명주실을 가져다가 재빠르게 상처를 꿰맸다.

“뼈가 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조심만 한다면 다시 예전처럼 움직일 수 있으실 겁니다. 안정하실 수 있도록 조심해서 옮겨주십시오.”

진태백의 말에 부랴부랴 들것을 가지고 온 사람들은 조상을 옮겼고 피가 묻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던 진태백은 우드득 소리가 나도록 주먹을 쥐었다.

‘저 망할 놈이!’

조상의 상처는 깊었다. 뼈와 중요한 신경이 상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일부러 피가 많이 나는 곳을 가르고 갔다는 것을 진태백은 알 수가 있었다. 만약 자신이 여기에 없었다면 과도한 출혈로 인해 조상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비무에서 피를 보게 되어 유감이오.”

진태백이 저 건방진 팽가의 아들이라는 놈을 작살을 낼지 적당히 훈계만 할지 고민하는 사이에 비무를 지켜보던 사진충이 검을 빼들고 팽호진 앞에 섰다.

“이번엔 내가 팽공자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오.”

팽호진은 그런 사진충을 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고 진태백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저놈, 설마 사람을 죽일 생각인가?’

다른 이들은 느낄 수가 없었지만 진태백은 팽호진에게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던 신광동은 조상이 크게 다치고 사진충이 나서자 불안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사진충은 표국의 중추인 표두이기 때문에 그가 크게 다치면 그 여파가 표국 전체에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녀의솥]

잘 읽었습니다.
흐음, 팽가의 막나니 아들은 아주 사지를 부러뜨려서 3년은 드러눕게 만들어야 하는데...
태백아 살기분을 떨쳐서 그놈을 아주 아작을 내버려라.

[musado01..]

잘 보고 갑니다.

건 필하세요^^*

[pr*****]

건필하십시오^^

[진짜나메]

감사합니다.

[김집사]

잘 보고 갑니다^^

[학교]

362++

[용천마]

인덕있는 표국주라더니

쟁자수가 폐인될 제안을 받아들여요?

설정구멍이 너무 심합니다.

[마녀의솥]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