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왔소이다!

자식의 잘못은 부모에게 물어라-3

하북팽가(河北彭家). 이 가문을 지칭할 때는 꽤나 주의가 필요하다. 뭐니뭐니해도 하북성 전체를 주름잡는 거대 세력이기도 하고 가풍이 그런 건지 기질 때문인지 남자건 여자건 대부분이 성격이 괄괄하다. 까딱 잘못 말했다가는 바로 칼부림이 나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선 정파가 아니라 사파라고 해도 무방한 가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명의 청년 때문에 고역을 치르고 있었다. 널리 알려진 무인도 아니고 자기가 일한다는 표국에서는 고작 쟁자수라는데 지닌 무위는 일파의 장로(長老)급인 마치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나타난 고수였고 거기다 더 큰 문제는 시비의 원인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휘익!

팽철균의 발차기가 진태백의 앞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팽가의 절기인 철혈백사십팔퇴(鐵血百四十八腿)의 상각파군(上角破軍)이라는 초식이었는데 맞았다가는 그대로 머리가 터져버릴 정도로 강한 발차기였다. 진태백은 슬쩍 뒤로 물러섰다가 앞으로 한발을 내디뎠다. 신기하게도 앞으로 살짝 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진태백의 몸은 팽철균의 몸에 거의 붙을 정도로 접근해 있었고 그와 동시에 진태백은 금강벽의 비전인 그림자차기[影槌踢]로 팽철균의 턱을 올려 찼다.

“헉!”

팽철균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뒤로 물러섰던 진태백의 몸이 단 한발로 자신의 몸에 접근하는 것은 마도(魔道)의 전설적인 보법인 마고일장(魔高一丈)과 비슷했고 더욱 놀란 것은 거의 몸이 붙어있는 상태에서 살을 에는 살기와 함께 진태백의 발바닥이 자신의 턱을 향해 날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팽철균도 백전의 노장이었기에 혼원벽력장(混元霹靂掌)의 구명절초인 원중탈각(圓中脫却)의 수법으로 진태백의 발바닥을 내려치며 뒤로 훌쩍 물러섰다.

“마도의 사람이냐?”

팽철균은 그렇게 말은 했으나 내심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마도의 고수라면 분명 사이한 기운이 느껴져야 했으나 사이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불문(佛門)의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분명 마고일장과 비슷하나 불문의 기운이 느껴지고 오직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살법임에도 살기는 있으나 사이함은 없다.’

진태백은 팽철균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마도건 정파건 이미 적으로 만난 이상 그런 것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어째서 대답이 없느냐! 마도의 사람이냐고 묻지 않는가!”

“마도가 아니라면 믿겠소?”

“…….”

진태백의 반문에 팽철균의 말문이 막혔다. 그것은 이미 팽철균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모든 무공의 기본은 내공이다. 내공심법을 익힘으로 인해 몸에서 발산되는 기운은 숨길 수는 있을지 몰라도 속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진태백의 반문은 자신이 마도의 고수가 아니라는 정확한 대답이 된 것이다.

“더 할 말이 없다면 계속해봅시다.”

진태백은 말이 필요 없다는 듯이 다시 한 번 발을 내딛으며 주먹을 내질렀다. 팽철균은 주먹이 날아오자 혼원보(混元步)로 주먹을 피하며 파갑추의 공력이 실린 주먹을 내뻗었다.

콰앙!

연속으로 날아들던 진태백의 주먹과 팽철균의 주먹이 부딪치자 주먹이 부딪쳤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은 한 걸음씩 물러섰다. 여전히 진태백의 몸에서는 무시무시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로 인해 처음에는 오장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십장의 거리를 두고 물러서 있었다. 진태백과 팽철균은 서로의 몸을 사리지 않고 주먹과 발을 내뻗었고 그 누구도 이긴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흉험한 근접박투(近接搏鬪)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치상태는 길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한걸음으로 팽철균의 품속으로 파고든 진태백이 박치기로 팽철균의 얼굴을 들이받았던 것이다.

빡!

진태백의 박치기는 정확히 팽철균의 코를 뭉갰고 한순간 아찔한 통증을 느낀 팽철균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패배를 확정짓는 실수가 되고 말았다. 그가 물러섬과 동시에 공중으로 도약한 진태백의 발차기가 채찍처럼 그의 목을 후려갈겼던 것이다.

“끄윽!”

무방비 상태에서 목을 걷어차인 팽철균은 숨이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일장 밖으로 날아가 버렸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벙찐 표정으로 그 상황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진짜 팽가의 절기인 도법을 쓰지 않았다고는 하나 세가에서 손꼽히는 고수인 팽철균이 약관이 갓 지난 애송이에게 패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젊은 사람이 살기가 너무 짙군.”

진태백이 숨을 몰아쉬며 서있을 때 사람들이 갈라지며 누군가가 앞으로 나섰다. 푸른색의 도포를 입은 중년인이었는데 몸에서 자연스레 사람을 압도하는 기도를 내뿜고 있었고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은 은은한 서기(瑞氣)가 서려있어 범상치 않은 물건임을 알리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요?”

진태백은 호흡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중년인에게 물었고 중년인은 쓰러져있는 사람들을 힐끗 본 다음 차분하게 말했다.

“자네가 방금 쓰러뜨린 이의 형이고 자네가 혼내준 두 망종의 아비이며, 이 가문의 주인 되는 사람일세.”

“이제야 용건을 말할 수 있겠군.”

진태백은 무덤덤하게 말했으나 실제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해 있었다. 중년인의 명성을 듣기도 했지만 그의 몸에서 풍기는 분위기로 최소 자신과 호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팽철신이라고 하네. 자네는 누구인가?”

하북성 뿐만 아니라 무림을 통틀어 하북팽가의 가주인 팽철신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철완패도라는 이름에 걸 맞는 무위와 타협을 모르는 성격은 수많은 사파의 인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고 정파의 인물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또한 구주구왕의 대부분이 전대(前代)의 고수인데 반해 현역(現役)인 상태에서 구주구왕에 도왕(刀王)으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었다.

“진태백, 호는 현단이오.”

진태백의 말에 팽철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태백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진태백은 자신의 모든 것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기분을 느꼈으나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팽철균과의 싸움으로 지친 탓도 있었지만 팽철신의 기도가 자신의 살기를 제압하기 위해 틈을 노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잘 닦인 몸이군. 자네 정도의 나이에 그만한 무위(武威)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팽철신의 말에 모여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팽철신은 강호에 떨치는 명성만큼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박한 편이었는데 그런 그의 입에서 상대를 칭찬하는 말이 나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후원에 있느라 어찌된 일인지 알지 못하네. 자네가 나에게 설명을 해보겠나?”

팽철신의 말은 다짜고짜 팽가를 쳐들어온 이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정중했다. 그러나 진태백은 그의 입에서 한마디씩 흘러나올 때마다 자신을 에워싼 기세가 점점 막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진태백은 그에 대항하여 더욱 살기를 돋웠고 자신을 압박해오는 기세에 충분히 대항할 수 있게 된 것을 느끼자 지금껏 있었던 일을 팽철신에게 설명했다.

“저 청년의 말이 정말이냐?”

팽철신은 어느 정도 정신을 수습한 팽호진과 팽설에게 냉기가 뚝뚝 흐르는 목소리로 물었고 둘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말이 없었다. 실제 진태백의 말에는 조금의 가감도 없었고 먼저 시비를 걸어 사람을 상하게 한 것은 자신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모자란 것들!”

팽철신의 말과 함께 지금껏 진태백을 향해있던 기세가 두 남매를 향했다. 진태백도 최선을 다하고 나서야 간신히 견딘 그의 기세를 두 남매가 감당할리 없었고 팽호진과 팽설의 안색은 기세가 그들을 향하기가 무섭게 새파랗게 변했다. 그 중 팽설은 호흡마저 곤란한지 히익거리는 신음을 흘리고 있었고 팽호진은 부러진 다리의 통증마저 잊은 채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너희가 아무리 나를 실망시켰어도 나는 너희를 나무라지 않았다. 언젠가는 정신을 차리리라 생각했건만 그 알량한 실력으로 사람을 상하게 하다니! 너희가 짊어진 팽씨라는 성이 그리도 하찮아보였더냐!”

“으으으…….”

팽호진은 기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없이 땅을 기고 있었다. 그러나 공포에 물든 몸이 말을 들어줄리 없었고 팽철신은 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성한 다리를 짓밟아버렸다.

와지직!

뼈가 부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팽호진의 다리는 모두 부러져버렸고 팽철신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치료를 한 뒤 제 놈 방에 던져두어라! 앞으로 이년간은 바깥구경을 못하게 할 것이다.”

친자식임에도 불구하고 팽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판단되자 거침없이 멀쩡한 다리마저도 부러뜨리고 감금시켜버린 팽철신은 냉혹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응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고 제 오빠와 어울려 패악질을 저지른 팽설에게 분노를 돌렸다.

“설이 너는 할 말이 있느냐?”

“저, 저는…….”

다친 곳이 없어 멀쩡히 서있던 팽설은 아비의 분노가 자신을 향하자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아버렸고 가녀린 몸을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제 오라비와 어울려 약자를 괴롭히고 무공마저도 팽호진에 비해 약한 그녀는 큰 눈에 눈물을 매단 채 팽철신이 한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공포에 젖어 움직이지 않는 팔로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만 하시지요 상공(相公).”

그때 어디선가 단아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곱게 궁장(宮粧)을 차려입은 중년의 여인이 서있었다.

“부인.”

팽철신은 여인을 보자 기세를 거두었다. 그녀는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는 그가 가장 어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팽호진과 팽설의 친어미였다. 그녀의 이름은 장미려(張微麗)였고 강호에는 규중은도(閨中銀刀)라 불리며 명성을 떨치는 여협(女俠) 중 한명이었다. 그녀가 펼치는 은하도(銀河刀)는 말 그대로 은하수가 흐르는 듯이 부드러운 도법이었으나 그 위력은 결코 부드럽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하고 있었다.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하셔도 당신의 자식입니다. 그만하면 알아들었을 터이니 그만하십시오. 거기다 저 소협께서 이미 훈계를 하신 상황이니 상공께서 더 훈계를 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입니다.”

조근조근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펴는 장미려의 말에 팽철신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휴우……, 내 어찌 부인의 말을 거역할 수 있겠소. 물러가거라!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내 부인에게 혼나는 한이 있어도 너희들에게서 팽씨라는 성을 빼앗을 것이다. 데리고 가라!”

팽철신의 말에 시비 몇 명이 달려와 일어서지도 못하는 팽설을 일으켜 그녀의 방으로 데리고 갔고 장미려는 그것을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인 다음 진태백을 향해 말했다.

“소협께서 저희 아이들에게 훈계를 하신 점,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저희도 부모이기 때문인지 아이들이 비뚤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혼낼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아녀자라하나 도리를 알기에 소협께 감사드립니다.”

장미려는 팽가의 안주인이 일개 청년에게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정중하게 진태백에게 감사를 표했고 진태백도 그런 그녀의 모습에 살기를 거두고는 포권을 하며 정중히 말했다.

“아직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과하게 손을 썼습니다. 부인께서 책하지 않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진태백의 정중한 인사를 본 사람들은 지금까지 무서운 살기를 뿌리며 싸우던 이가 정말 진태백이 맞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팽철신도 그런 진태백의 모습이 의외였던 듯 말했다.

“그래도 예의는 아는 사람이군.”

약간은 가시가 돋친 팽철신의 말에 진태백은 포권을 거두며 그를 향해 말했다.

“인(仁)을 모르면 편협해지고 의(義)가 없는 힘은 폭력에 불과하며 예(禮)를 모르면 짐승과도 같고 지(智)가 없으면 비웃음만 당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신(信)이 없으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니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없는 힘은 야만에 불과하며 백정이 휘두르는 도끼질만도 못한 것입니다. 가주께서는 과연 이 다섯 가지 중 무엇을 갖추고 계십니까.”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비록 글공부를 하기는 했으나 팽철신의 학식은 유불선(儒佛仙)의 경전을 깊이 공부한 진태백에 비해 얕을 수밖에 없었고 그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커흠! 자네가 예의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네. 그러나, 수백 년간 그 누구도 우리 하북팽가의 정문을 부수고 난입한 적은 없었네. 자네는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야.”

“그것이 과했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해서, 가주께서는 제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진태백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팽철신은 자식을 두들겨패고 가문의 핵심 고수인 팽철균을 작살냈으며 하는 말은 건방지기까지한 이 청년이 맘에 들기 시작했고 그것은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게 했다. 그러던 중 그의 눈이 진태백이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을 향했고 그것이 범상치 않은 명품이라는 것을 안 팽철신은 진태백의 눈을 보며 말했다.

“나는 일초의 쾌도(快刀)로 자네에게 책임을 묻겠네.”

[돌쟁이]

Cool~ !

[마녀의솥]

좋은 작품 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의지사나이]

현실에도 한 회사의 회장이 하는일에 사모님이 나서서 뭐라하는 광경은 보기힘들거늘
저당시 가주의 일을 안사람이 혼내듯이 가주를 나무라는 장면은 어패가 있어보입니다.
정말 그렇다면 말그대로 콩까루 집안 인듯 싶군요..

[musado01..]

잘 보고 갑니다.

건 필하세요^^*

[cr******]

좋은 작품 보고 갑니다 추천!

[pr*****]

건필하십시오^^

[진짜나메]

감사합니다.

[Milo]

간만에 보석을 건진 느낌! 건필 하삼!

[뿔따귀]

잘보고 있어요..

[질풍객]

부인에게 혼난다라는것도 좀 어색하네요 아무리 부인을 아껴도 가주인데 자신입으로 혼난다고 말하는건 ㅋㅋ 글고 밟아버리면 뼈가 으스러질듯한디 그거 지대로 붙일수있을까요 평생다리 못쓸듯

[김집사]

잘 보고 갑니다^^

[학교]

442+++

[마녀의솥]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