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수련(空洞修練)-1
진태백은 참선(參禪) 중이었다. 그가 공동파에 온지는 닷새째. 그는 닷새간 겨우 물과 멀건 죽 한사발로 하루를 보내며 온종일 참선에 빠져있었다. 어찌나 움직이지 않는지 검은 그의 머리칼이 희게 보일정도로 먼지가 앉았고 얼굴은 부쩍 수척해져 있었다. 그러나 진태백은 그저 눈을 감은 채 스스로의 내면을 관조할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알 수 없으리라.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극기(克己)의 싸움을.
진태백은 옥여월과의 싸움이 끝나기가 무섭게 농서를 떠났다. 눈에는 핏발이 서고 온몸이 붉게 달아 오른데다 얼굴은 더 이상 험상궂을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살기가 줄기줄기 뻗치고 하단전에서 치솟는 열기는 몸을 불태울 듯 치달린다.
“으아아아!”
말을 달리던 진태백이 어느 순간 소리를 내질렀다. 그 소리에 산이 울리고 곤히 잠들었던 짐승들이 놀라 움직이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생생히 들린다. 더군다나 그를 태우고 달리던 말은 더 이상 그의 살기와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고 그 바람에 진태백은 말에서 떨어져 땅바닥을 굴렀다. 보통이라면 즉사할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현무갑을 수련한 진태백에게는 생채기 하나 못 낼 사소한 사고에 불과했다.
그 순간 그의 몸이 이리저리 뒤틀리며 나는 우두둑거리는 소리는 소름끼쳤고 피가 몰릴 대로 몰린 얼굴은 보랏빛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살기에 충동질된 부동명왕공의 내공이 멋대로 움직이며 그의 혈맥을 부수고 뒤틀고 뒤흔들었다. 그의 몸을 지켜줄 내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반응조차 없다.
주화입마(走火入魔). 내기(內氣)를 단련함에 있어 가장 위험한 위기가 닥친 것이다. 수련이 깊어질수록 내기는 강해지고 맹렬해진다. 내공을 수련하는 이들이 폐관이나 심산유곡에 들어가 수련을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화(火)는 마음의 움직임을 말하는데 실제 내공이라는 것의 발휘는 심리상태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사람과 함께 있게 되면 자연히 마음이 움직이게 되고 대부분은 좋지 못한 결과를 낳기 때문에 집중적인 수련이 필요할 때는 폐관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공을 익힘에 있어 부동심(不動心)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고.
결국 내공수련에 있어서 주화라는 것은 마음이 흔들려 내기의 폭주(暴走)가 일어나는 것을 말하고 입마(入魔)는 그로 인해 정신과 몸을 다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궁극에 다다라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解脫)이나 도가에서 말하는 등선(登仙)에 이르지 않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위험이었고 진태백 또한 무살(無殺)에 이르지 못한 이상 그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끄륵, 끄으······.”
이제는 숨도 쉬어지지 않는다. 온몸이 뒤틀린 탓에 기도마저 막힌 모양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흐려지는 시야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다가오는 것을 본 것을 마지막으로 진태백은 의식을 잃었다.
“괴이한 일이로고.”
공동오로 중의 맏이이며 조법(爪法)으로는 천하에 겨룰 자가 없다는 명신진인(鳴宸眞人)은 눈앞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청년을 유심히 살폈다. 주화입마의 영향인지 온몸이 뒤틀리고 얼굴은 보라색으로 물든 청년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보통 주화입마에 들게 되면 즉사하거나 길어야 일각에서 이각정도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청년은 이렇게 된지 최소 반시진은 되어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아있었다. 명신진인의 세수가 무려 여든에 달하고 강호에서 명성을 떨친 지 오십년이 넘었지만 주화입마에 들고도 반시진이 넘게 목숨을 부지하는 경우는 생전 처음 보는 기사(奇事)였다.
“어쨌든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명신진인의 양손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돌며 그의 손이 진태백의 목으로 향했다.
우두둑!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뒤틀려있던 진태백의 머리와 목이 제자리를 찾았고 그제야 진태백의 가슴이 꺼지며 숨통이 트였다. 마찬가지로 꼬여버린 사지를 바로잡은 명신진인은 그의 명문혈(命門穴)에 손을 갖다대고 여전히 역류하고 있는 진태백의 내기를 바로잡기 시작했다. 그의 성명절기는 공동파를 대표하는 조공(爪功)인 음풍조(陰風爪)와 천하제일의 음공(陰功)으로 손꼽히는 마라음명신기(魔羅陰冥神氣)였다. 우연이지만 진태백으로서는 폭주하는 부동명왕공의 극양강기(極陽强氣)를 바로잡아줄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명신진인은 마라음명신기의 순음지기(純陰之氣)로 폭주하는 진태백의 내기를 제압해 나갔다. 주화입마에 든 사람의 기혈을 바로잡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자칫 잘못해서 폭주하는 기운이 스스로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을뿐더러 기혈을 바로잡는 중에 더욱 기운이 폭주하여 당사자가 죽어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때문에 명신진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게 진태백의 흐트러진 기혈을 바로잡았고 온몸의 기혈을 바로잡고 나서야 겨우 크게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다. 상단전에 공급되던 음기가 아니었다면 주화입마에 들자마자 죽었을 것인데, 그 음기 덕에 목숨을 부지하다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인체에 있는 상중하 삼단전(三丹田) 중 축기(縮氣)가 이루어지는 곳은 하단전뿐이다. 상단전과 중단전은 단련하고 여는 곳이지 축기를 하는 곳은 아닌 것이다. 한데 진태백의 상단전은 적기는 했지만 끊임없이 음기를 흡수하여 진태백의 뇌를 보호하며 치솟는 양기를 억누르려 하고 있었고 그의 순음지기를 흡수하고부터는 스스로 그 힘이 강해져 폭주하는 기운을 억눌렀다. 청년의 나이 대에 무의식중에 기운이 스스로 움직여 몸을 보호하는 경지에 이르러 있다면 결코 범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일단은 본파로 데리고 가야겠구먼. 끌끌, 이 늙은이가 전생에 어떤 죄를 지었기에 이 고생이란 말인가.”
명신진인은 가볍게 투덜거리며 축 늘어진 진태백의 몸을 들쳐 메고는 신형을 날렸다. 팔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가벼운 움직임과 뛰어난 신법이었다.
진태백은 눈꺼풀을 자극하는 햇볕을 느끼며 의식을 되찾았다. 어찌된 일인지 자신은 허름한 수레에 누워 거적을 덮은 채 짐짝마냥 실려 있었고 노새 한 마리가 이끄는 수레는 천천히 길을 가고 있었다.
“이제야 정신을 차렸구먼.”
옆에서 들려오는 늙수그레한 목소리에 진태백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고 그곳에는 천천히 노새를 몰고 있는 노도사 한사람이 보였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진태백의 물음에 도사는 길 한켠에 수레를 세우고는 진태백의 옆으로 다가와 앉아 그의 맥을 짚으며 말했다.
“빈도가 소협을 본 것은 사흘 전이었고 주화입마에 빠진 자네를 구해 수레에 실은 것이 이틀 전일세.”
“도사께서 저를 구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진태백은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일으키려했지만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닌지 마음처럼 쉽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고 노도사는 그런 진태백을 다독이며 말했다.
“그 마음이면 되었네. 과례(過禮)는 비례(非禮)만 못하다 하지 않는가. 주화입마로 인해 기혈이 굳어 경맥에 손상을 입었지만 잘 정양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 걸세.”
그의 말에 진태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체내의 진기를 움직이려 했고 그 순간 기혈이 들끓는 것을 느낀 진태백은 급히 진기를 가라앉혔다. 그의 반응을 본 명신진인은 혀를 차며 말했다.
“적어도 삼칠일 동안은 공력을 운기하지 않도록 하게. 빈도가 자네를 구한 것도 천운(天運)이거늘 그리 급해서는 빈도의 공덕(功德)도 소용없을 걸세.”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진 진태백은 그저 가만히 노도사의 말을 들을 뿐이었다.
“한데 소협의 이름은 무엇인가? 모르긴 몰라도 그만한 공부를 쌓았다면 보통 사람은 아닌 듯 한데.”
“조선에서 온 진태백이라고 합니다. 도사님의 존함은 어찌 되시는지요?”
“오호라! 자네가 그 분광발도인 게로군. 빈도는 명신이라 하네. 미흡하지만 공동파의 장로로 있지.”
“공동파의 장로시라면······,”
“허명이나마 공동오로라 불리는 말코들의 맏이일세.”
“허면 대용을 아십니까?”
“대용? 그런 이름은 잘 모르겠네만.”
“아, 공동파에서는 금단자(金丹子)라는 도호를 가진 녀석입니다.”
“오! 광천(廣川)의 제자 녀석 말이로군. 성품도 그만하면 괜찮고 지닌바 자질도 뛰어난지라 눈여겨본 적이 있었지. 한데 소협이 그 녀석과 친분이 있는가?”
명신진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조선인인 진태백이 공동파의 제자와 친분이 있기는 힘든 일이었다. 공동파는 서쪽의 끝자락에 있고 조선은 동쪽의 끝자락에 있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실은 그도 조선인입니다. 어릴 때 한동네에 살았던 죽마고우(竹馬故友)였지요. 사정이 있어 그 녀석은 어릴 때 중원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진태백의 말에 명신진인은 길게 자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구먼. 혹시 본파로 갈 생각이었는가?”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았으니 당연히 벗을 만나러 가야지요. 한데 도사께서는 어디로 가시는지······.”
“빈도도 본파로 돌아가는 중이었다네. 함께 동행하면 심심하지 않아 좋겠구먼. 소협의 생각은 어떠한가?”
“불감청(不感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지만 제 몸이 이런지라 폐가되지는 않겠는지요?”
진태백의 말에 명신진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허허허! 어차피 길이야 이 노새가 가는 것이니 소협과 나는 말벗이나 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럼 염치불구하고 신세를 지겠습니다.”
진태백의 말에 명신진인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연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Comment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