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랑대전(唐狼大戰)-1
진태백이 몸을 완전히 회복하는데는 사흘이 걸렸다. 하지만 이것도 당문이나 황보세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는데 실제 그들이 진단한 진태백의 완쾌에 걸리는 시간이 한 달이었기 때문이었다.
“허허, 정말로 알 수 없는 일이로군. 한 달은 족히 걸릴 부상이 고작 닷새 만에 낫다니.”
당세평의 밉지 않은 투정에 진태백은 그저 씨익 하고 한번 웃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 앞에는 당문평이 엎드려있었고 그의 등과 오른팔에는 몇 개의 애주가 올려져 있었다. 진태백이 자리보전을 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침과 뜸을 맞은 당문평의 상처는 고작 며칠 만에 크게 호전되었고 진태백은 이제 뜸이 완전한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뜸이 살을 태우는 직접구법(直接灸法)을 쓰는 것이다. 침은 찔러 구멍을 내어 몸 안에 차있는 어혈이나 기운을 사(瀉)하는 방법이고 구(灸)는 열을 쏘여 기운을 보(補)하는 방법이다.
“이제 조금 남았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이보다 더한 고통도 겪어보았는데 고작 이런 통증에 내가 울고불고 할 것 같은가? 내 비록 미염공(美髥公)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걱정 말고 치료에 임하게나.”
당문평의 태연한 말에 진태백은 애주가 타들어가는 모양에 집중했다. 애주가 완전히 타들어가고 불꽃이 사라지기 직전이 진태백이 기다리고 있는 때였다. 그렇게 조금 기다리자 진태백이 말했다.
“지금입니다. 가주께서 익히신 심법을 운용하십시오.”
진태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당문평은 당문의 가주에게만 전수되는 금룡삼양신공(金龍三陽神功)을 운기했고 그 기운이 오른 어깨에 이르자 진태백이 뜸을 떴던 자리에서 검은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이것은!”
“가주의 체내에 남아있던 독기운 입니다. 내공이 강한 분들이 이 피를 치우게 하십시오. 어르신께서 제게 알려주셨던 포한추독의 기운이라면 이 피만으로도 사람에게 중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진태백의 말에 당세평은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다. 실제로 당문평의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냄새가 나고 있었고 그 양이 적은 것이 아니었다. 당문평이 운기하는 진기가 혈도를 타고 흐름에 따라 어깨에서부터 팔까지 뜸을 뜬 자리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당문평은 피가 흘러나오는 곳이 점점 시원하게 풀리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제 되었습니다. 공력을 거두셔도 좋습니다.”
진태백의 말에 당문평은 공력을 거두었다. 고개를 돌려 바닥에 흐른 피를 보니 역한 비린내가 풀풀 풍겨왔다. 진태백은 미리 가져다 놓은 지혈산을 뜸자리에 뿌린 다음 당문 비전의 고약인 청명고(淸明膏)를 붙였다.
“다 되었습니다. 이제 예전의 상태로 돌아오도록 연습을 하시면 되겠지요. 다행히 팔을 쓰지 못하신 것이 오래되지 않았으니 그만큼 고생은 덜 하실 것입니다.”
진태백의 말에 당문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깨를 움직여보았다. 확실히 뻣뻣한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연습만 한다면 충분히 예전의 상태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꼼짝도 않던 오른손이 움직이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고맙네! 고마워!”
당문평은 어찌나 기쁜지 가주로서의 체통도 잊고 진태백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여러 사람이 들어왔고 당문평의 어깨가 움직이는 것을 본 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왔다. 진태백은 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그저 한번 씨익 웃어 보인 다음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제 당문에서 자신이 신경 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루라왕이 중상을 입은 채 도망쳤다지? 개에게 쫓기는 병아리처럼 말이야.”
강추수의 말에 마수광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하지만 분광발도 또한 중상을 입었다 합니다. 본보의 입장에서는 싸움에 끼어들 수 있는 절정고수 한명이 줄었으니 아쉬울 것이 없지요.”
“자네가 준비한 패는?”
“그분들이라면 기다림에 지쳐있으십니다. 보주께서 공격을 개시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만 기다리고 있지요.”
강추수는 보고 있던 두루마리를 내려놓았다. 두루마리에는 당문 인근의 지도가 매우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심지어 당문 내부의 건물들까지도 기록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자네가 제시한 방법은 너무 많은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강추수의 말에 마수광은 지도의 한 지점을 짚으며 말했다.
“보주께서 말씀하신대로입니다. 허나 당문은 명색이 중원팔대세가에 속하는 최고의 명문이며 강호 최대의 거대세력 중 하나입니다. 그런 곳과 자웅을 겨루는데 이만한 피가 흐르지 않을 수는 없지요. 그나마도 당문 가주와 진태백이라는 자가 빠졌을 때 이 정도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멀쩡히 싸움에 끼어든다면······.”
“그렇게 되면?”
“피해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자네가 모셔온 그 세분이 있음에도 말인가?”
“그 세분이 계시기 때문에 당문광생을 걱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벌써 삼십년이 넘게 강호의 최고수로 군림하고 있지요. 이것은 가볍게 볼 것이 아닙니다. 본보에서 신경써야 할 것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비록 본보가 사천성 동부를 당문과 양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당문에는 본보에 없는 전통과 역사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본보와 당문 간에 싸움이 일어나면 열에 아홉은 당문을 응원할 것입니다.”
“그것이 전통과 역사라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당문과 자웅을 겨룬 후에도 본보에서는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일시적인 전력의 약화로 인해······.”
마수광의 말에 강추수가 그의 말을 끊었다.
“다른 떨거지들이 콩고물을 노리고 기어들어올 수도 있다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걱정할 것 없지 않겠나. 어차피 그런 떨거지들 쯤은 본보의 정예들만 남아있는다면 얼마든지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고.”
마수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당문이 득세하는 사천성 동부에는 시랑보만큼 거대한 세력이 없었다. 당문과 맞붙을 정도로 세력을 키워낸 시랑보가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시랑보는 아직도 그들의 세력권 내에서도 백안시 당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당문을 이기고 사천성 동부의 패자가 된다면 반발하는 자들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었다.
“문제는 아미와 청성입니다.”
“그래, 그들을 잊었군.”
마수광의 말에 강추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파일방(九派一幫). 말이 좋아 강호를 대표하는 열 개 방파이지 실제 따지고 보면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수천개가 넘는 강호의 방파들 중에서도 삼대(三代)를 넘기는 방파는 드물다. 그만큼 부침이 심하고 경쟁이 맹렬한 것이 강호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수백 년이 넘도록 한 개의 문파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그만큼 어마어마한 일이다.
아미파는 역사가 다른 방파에 비해 짧지만 여승들이 주축이 되어 구파일방에 속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속세의 일에 크게 관여는 하지 않지만 갈래를 따지면 불가(佛家)에 속하기 때문에 소림과의 관계가 다른 방파보다 견실하다. 무엇보다도 가뭄이나 홍수 등의 재해가 일어나면 관(官)보다도 먼저 문파제자들을 파견하여 백성들의 구휼에 힘쓰기 때문에 관에서도 아미파의 뒷배가 되어주고 있었다.
청성파는 세속과는 거의 교류가 없지만 아미파와 같이 백성들에 대한 구휼에 힘쓰는 문파였다. 구파일방 중에서는 특이하게도 문파제자의 대부분이 좌도(左道)의 수련에 힘쓰고 있지만 우도(右道) 또한 크게 뒤지지 않아 만만찮은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광마혈세(狂魔血世) 당시에도 광마를 비롯한 여러 마두들이 백성들을 괴롭힌다는 소문에 여러 도사들을 파견하여 그들을 상대로 혈전을 벌이기도 할 만큼 청성파는 백성의 구제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만큼 백성들의 지지가 두터웠고 사람이니 이슬만 먹고 살지는 못하지만 아무런 사업을 벌이지 않아도 먹고살 정도의 시주가 들어오는 문파이기도 했다.
한데 문제는 이런 쟁쟁한 문파와 사천성을 삼분하는 세력 중 하나가 바로 당문이라는 것이었다. 비록 아미와 청성만큼의 존경은 받지 못한다 해도 당문의 행사는 올바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오히려 시랑보의 세력권에서는 온갖 파락호들이 날뛰는 등 좋게 말해서 약육강식이고 나쁘게 말하면 난장판인 상황인지라 시랑보는 백성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본보가 당문을 제압한다면 해결될 일이지.”
“맞는 말씀이십니다. 아미와 청성도 본보가 당문을 제압하면 본보의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들의 입장에서는 힘의 공백 때문에 사천성이 혼란해 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공격의 시기는 언제로 보고 있는가?”
“이틀이면 모든 준비가 끝납니다. 당문은 제 앞마당에서 본보의 공격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기대하겠네.”
강추수의 말에 마수광은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한편, 당문에서도 결전의 때가 머지않았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당호는 당문평의 회복소식에 부리나케 달려왔고 시랑보와의 싸움에 결착을 지을 때가 왔음을 알렸다.
“가주가 회복하여 참으로 다행일세. 이 늙은이도 이제야 안심이 되는구먼.”
당호의 엄살에 당문평도 웃으며 말했다.
“제가 없었더라도 숙부께서 충분히 잘해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본가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당문평의 물음에 당호는 차분하게 말했다.
“가주가 쓰러지고 나서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본가의 주변으로만 경계망을 펼쳤네. 아마도 시랑보 놈들은 기회를 노리고 본가의 주변에 포위망을 쳤겠지.”
“저의 회복소식은 알려져 있습니까?”
당문평의 물음에 당호는 고개를 저었다. 시랑보 측에 가주의 회복을 알려 시랑보가 대비할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당문평도 그런 당호의 생각을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당호는 말을 이었다.
“현재 본가의 전력은 가주의 지휘가 없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짜여 있네. 다만 문제점은 이 배치가 방어에 중점이 잡혀있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배치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가주 자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당호의 말에 당문평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추수는 몰라도 마수광은 교호리라는 별호에 걸맞게 십할의 승률이 아니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였다. 시랑보 측의 최고 고수는 외부에 알려진 바로는 보주인 강추수인데 아무리 그가 당문과 사천성 동부를 두고 자웅을 겨룰만한 세력인 시랑보의 보주라 해도 구주구왕의 한명인 당호와는 격이 맞지 않고 또 그의 무위가 당호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그런데도 시랑보가 공격해 온다는 것은 당호를 상대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고 그런 상황이라면 가주인 당문평을 전력으로 계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는 당문평이 최고의 숨김 패가 되는 것이고 그가 건재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시랑보 측에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었다.
“시랑보에서는 최고의 전력을 파견할 것이네. 그러면 우리는 최대한 빠르게 놈들을 격멸하고 즉시 반격에 나서야 할 것이네. 가주가 시랑보를 직접 치는 것이 가장 좋겠는데······. 회복이 가능하겠는가?”
당호의 물음에 당문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회복하려면 시일이 더 걸리겠지만 독룡은편을 사용한다면 숙부인 당호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기물(奇物)에 의지하는 것이 좋지는 않지만 은편을 사용한다면 지금이라도 시랑보를 칠 자신이 있습니다. 숙부께서는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가주가 그렇다면 이 늙은이도 안심할 수 있지. 한데, 황보세가와 진소협은 어찌할 생각인가?”
당호의 물음에 당문평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황보세가는 본가를 돕기로 이미 약조를 받으셨으니 되었습니다. 그리고 진소협은 그냥 내버려둘 셈입니다.”
“허나 가루라왕을 물리칠 정도로 뛰어난 고수를 그냥 놀린다는 것은······.”
당호의 말에 당문평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미 저를 치료해준 것만으로도 본가는 그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그에게 은혜를 갚지는 못할망정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당문평의 단호한 말에 당호는 당문의 가규(家規)를 떠올렸다. 은혜도 원한도 반드시 갚는 것. 그것이 사천당문에서 첫 번째로 내세우는 규칙이었고 그것이 당문을 사천제일가(四川第一家)로 만든 원천이었다.
“이 늙은이가 눈앞의 위기에 본가의 큰 은인을 위험으로 내몰 뻔했구먼. 이 늙은이의 망언을 용서하시게 가주.”
“숙부께서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섣부르게 이용하려 들기보다는 친구가 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그것은 왜인가?”
“숙부께서는 명옥궁이나 마교와 척을 지실 수 있겠습니까?”
“위험한 일이지.”
“가주의 자식이 잘못했다 하여 그 자식들을 붙잡고 하북팽가의 대문을 걷어차 부수고 들어가실 수 있겠습니까?”
“본가의 지위를 생각하면 팽가의 체면을 세워줘야 하니 어렵겠지.”
당호의 대답에 당문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을 하는 이가 진소협입니다. 가문이나 단체를 보지 않고 사람을 보며 옳은 것은 옳다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이입니다. 그런 이와 친구가 되지 않는다면 후회하는 것은 본가가 되겠지요.”
“허허허, 가주의 말을 들으니 확실히 내가 늙었다는 게 느껴지는구먼. 확실히 남 주기는 아까운 사람이긴 했네. 그런 사람이라면 확실히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좋겠지.”
“황보가의 여식이 그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오호, 가주는 어찌할 생각인가?”
당호가 웃는 낯으로 묻자 당문평 또한 웃으며 말했다.
“영웅에게는 삼처사첩이 허물이 되지 않는 법이지요. 이미 령아에게 운을 띄워두었습니다.”
“허허허.”
당문평의 대답에 당호는 웃기만 했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하기에 두 사람의 신경은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지만 당호의 웃음에는 여유가 묻어있었고 곧 들려올 청춘남녀의 분홍빛 염문(艶聞)은 싸움 이후에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을 다독여 줄 것이었다.
- 작가의말
가루라왕 편을 끝내고 어떤 이야기부터 쓸까 하다보니 조금 늦었습니다.
아무래도 사천당문과 시랑보간의 싸움을 끝내놓고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본편의 소제목을 당랑대전이라고 썼습니다.(써놓고 보니 사마귀간의 대전으로 읽힐 수도 있다는 건 비밀.)
여하튼 게으른 필자는 새벽에 글만 써놓고 사라집니다. 뿅!
ps. 추천과 댓글은 필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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