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난관(旅程難關)-2
남궁영과의 이별을 뒤로하고 하루를 더 태호에서 머문 진태백은 숭산을 향해 길을 떠났다. 남궁영의 말대로 남경에서 장강을 타고 올라가는 배를 탔는데 진태백이 놀란 것은 강도 바다만큼 넓을 수 있으며 물살이 거칠다는 것이었다. 장강은 그 이름만큼이나 길고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고 주변으로 펼쳐진 풍광은 조선과는 다르게 웅장한 멋이 있었다.
이틀간 배를 타고 장강을 거슬러 올라간 진태백은 화현(和縣)이라는 곳에서 내렸는데 이곳에서 서쪽으로 곧장 말을 달려 여남(汝南)으로 간 뒤 허창(許昌)으로 북상하면 숭산까지는 금방이었다. 진태백이 배에서 내릴 무렵은 아직 해가 밝은 대낮이었기에 그는 화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소호(巢湖)까지 가기로 마음먹었다.
‘소호의 경치도 절경이라지. 자세히 둘러볼 짬은 없지만 주위만 둘러보는 것은 그리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소호의 경치를 구경할 생각에 진태백의 마음은 들떴고 그는 화현에서 간단한 식사만을 마치고 즉시 말을 탄 채 길을 재촉했다. 진태백이 소호에 도착할 무렵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때였는데 땅거미가 지고 노을에 물든 소호의 경치는 태호와는 또 다른 풍취가 있었다. 거기다 소호의 한 가운데에 있는 섬인 노산도(栳山島)는 호수에 떠있는 섬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으나 그 큰 섬이 오히려 소호의 분위기를 잡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진태백은 경치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혹시 노산도에 가지 않으시려오?”
말을 이끌고 길을 걷던 진태백에게 어떤 사공이 밧줄을 사려놓으며 말을 걸어왔고 진태백은 그의 말에 흥미가 생겼는지 사공에게 물었다.
“저 섬에 사람이 묵을 곳이 있소?”
“얼마나 넓은 섬인데 사람 묵을 곳이 없겠소. 온천도 있어 여독(旅毒)을 풀기에도 그만이라오.”
진태백은 사공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이내 사공의 말을 승낙하고 발을 옮겼다. 배가 작아 말을 데리고 갈수가 없으니 근처의 마방에 말을 맡기려는 것이었다. 진태백이 사공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은 노산도는 소호의 가운데에 있어 그리 멀지 않아 여정에 큰 지장이 없으니 한번 방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가 말을 맡기고 오자 사공은 진태백을 배에 태운 뒤 노를 저어 노산도로 향했고 섬에 있는 나루터 치고는 꽤 커보이는 곳에 그를 내려준 뒤 말했다.
“내가 아니더라도 수시로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니 섬을 나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요. 그럼 구경 잘하시오.”
사공은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노를 저어 돌아가 버렸고 진태백은 섬의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섬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노산도는 컸고 세 개의 산봉우리가 삐죽 솟아올라 있었다. 진태백은 섬 안쪽으로 발을 옮기던 중 조그만 사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지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사당은 바닥에 깔린 석판 사이로 잡초가 불쑥 솟아있었고 건물들도 황폐화 되어있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흘렀다. 사당의 앞마당 가운데로 걸어간 진태백은 그곳에 우뚝 멈춰 섰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오시오.”
진태백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공력이 실려 있었는지 사당을 넘어 그곳을 감싸고 있는 숲속까지 퍼져나갔다. 그때 갑자기 숲속에서 기묘한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곧 진태백의 주위를 송두리째 채워버렸다. 그러나 진태백의 안색은 변함이 없었고 오히려 빙글 어깨를 한 바퀴 돌린 다음 주먹과 주먹을 맞부딪쳤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섬까지 나를 쫓아왔다면 분명 용건이 있을 터. 이만 모습을 드러내시오.”
“어린놈이 제법 배짱이 있구나.”
마치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몇몇 인영들이 사당의 대문을 통해 진태백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은 용모를 가지고 있었고 하나같이 눈에 신광(神光)이 서려있었다. 또한 들고 있는 병기 또한 특이한 것들이었는데 건곤권(乾坤拳)을 비롯하여 쌍극(雙戟)과 도끼를 들고있는 인물도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인데 나를 찾아온 것이오?”
진태백의 물음에 선두에 서있는 두 명의 노인들이 입을 열었다.
“네가 수정선자에게 받은 물건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이다.”
“받다니? 무얼 말이오?”
진태백의 반문에 노인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진태백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들의 옆에 서있던 도끼를 든 남자가 외쳤다.
“거짓말을 할 생각이라면 집어치워라! 우리가 그런 얕은 수에 넘어갈 듯싶으냐?”
진태백이야 말로 황당했다. 이런 섬까지 쫓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어떤 물건에 대해서라니, 자신이 가진 것은 여비로 쓸 은자와 홍삼이 들어있는 상자, 그리고 스승이 준 신발 두 켤레와 옷가지 몇 벌이 고작인데 느닷없이 이런 소리를 들으니 딱히 대꾸해줄 말이 없었다.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요?”
“우리가 누구인지 네놈이 알바가 아니다! 어차피 네놈은 여기서 죽을 테니까!”
어지간히 성격이 급한 듯 다시 도끼를 들고 있던 남자가 외쳤고 그런 모습에 두 노인 중 한명이 말했다.
“자네는 아직도 그 성격을 고치지 못했군. 그래서는 큰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나?”
노인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도끼를 든 남자의 얼굴이 붉어졌으나 노인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고수였기에 붉어진 얼굴로 아무런 말도 못하고 거친 숨만 씩씩거렸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노인은 다시 시선을 진태백에게 향하며 말했다.
“노부는 북두검(北斗劍) 한결(韓結)이라 하고 내 옆에 있는 이 친구는 남두권(南斗拳) 포숙(包肅)이라 하네.”
노인은 자신의 옆에 서있는 다른 노인을 힐끗 본 뒤 말을 이었다.
“강호에서는 우리를 남북쌍두(南北雙斗)라 부르지.”
남북쌍두라면 그 명성이 대강남북(大江南北)을 떨쳐 울리는 고수였다. 남두권 포숙은 전대 황보세가의 가주인 권왕 벽력신권 황보태와 그 이름을 같이하는 권법의 고수였고 북두검 한결은 검왕(劍王)이라 불리는 종남파(終南派)의 전대(前代) 장문인(掌門人)인 태을천강검(太乙天罡劍) 일강천(日康川)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 고수였다. 두 사람은 특별히 무리를 짓거나 적을 두지 않고 행동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런 두 사람이 소호의 조그만 섬에 여러 사람과 나타난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광도부(狂屠斧) 서광(徐曠)이라 한다. 들어보았느냐?”
진태백은 고개를 저었다. 비록 견문이 깊어졌다 한들 고작 일 년 만에 얼마나 중원무림의 고수들의 이름을 알 수 있겠는가? 광도부 서광은 한 자루의 대부(大斧)로 군마(群魔)가 난립하는 청해성(靑海省) 일대를 제압한 패자였는데, 그 손속이 매섭고 자신에게 대항한 자를 결코 살려두지 않아 악명을 떨치는 자였다. 그의 옆에 서있는 쌍극을 든 자 또한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쌍극혈염(雙戟血染) 강석(姜惜)으로 귀주성(貴州省) 검령산(黔靈山) 일대를 손에 쥐고 흔드는 자였다.
“사진(史辰)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건곤권을 든 자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는데 그도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 중원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복건성(福建省)의 패자(覇者)인 성마문(星摩門)과 동수(同手)로 쳐주는 고수였다. 특별히 속해있는 문파가 없는 그가 복건성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문파와 동급으로 일컬어진다는 것은 그가 본신에 지닌 무공이 극히 고강함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적어도 복건성에서는 그와 비견될만한 고수가 없다는 것이 강호의 평가였다.
“자, 이제 우리의 명호를 알았으니 일을 처리하세나.”
“그 일이 무엇이오?”
“우리는 받을 물건이 있고 자네는 우리에게 넘겨줄 물건을 가지고 있네. 그러니 자네가 그 물건만 우리에게 넘겨주면 끝날 일일세.”
“그 물건이 무엇이오?”
진태백이 묻자 한결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아무리 뻔뻔하거나 심계가 깊은 사람이라 해도 강호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고수들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도무지 모르겠다는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진태백의 태도를 보아하니 정말로 물건에 대해서는 모르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이 필요하오? 저놈이 끝까지 발뺌한다면 저놈을 죽이고 그 품을 뒤져보면 되는 것 아니오!”
서광의 말에 그의 옆에 서있던 강석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는 말이오. 저 애송이의 말이 진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는 곧 밝혀지겠지.”
강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광은 자신의 대부를 휘두르며 진태백에게 달려들었고 강석 또한 쌍극을 휘두르며 행동을 같이했다. 강호의 소문은 종종 와전되기도 하는지라 진태백이 팽철신과 도법을 겨루어 이겼다는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으나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는 둘이 협공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진태백은 느닷없이 서광이 달려들자 무인금강을 뽑아들고 그에게 맞섰다. 도끼는 중병(重兵) 중에서도 손꼽히는 무기인지라 그의 도끼에 칼이 부딪치자마자 손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타고난 신력과 백호교의 훈련으로 어지간한 타격에는 꿈쩍도 않는 자신이 이런 충격을 받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진태백의 표정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서광의 도끼는 강한 만큼 속도가 느려 대처하기가 어렵지는 않았고 오히려 어검류의 수법을 몇 가지 사용하며 거리를 좁혀가자 서광은 당황하여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진태백이 도끼를 피하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어 왼 주먹을 서공의 턱을 향해 휘두르려는 순간 그의 등을 노리고 쌍극이 날아들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치명적인 상태에 빠질 것이 자명했기에 진태백은 무인금강으로 서광의 도끼를 잡아채 쌍극이 날아오는 곳으로 밀어내며 뒤로 물러났다.
채앵!
쇠가 서로 맞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서광은 붉어진 얼굴로 콧김을 내뿜었다. 스스로의 병기를 간수하지 못하고 상대의 힘에 조종당했다는 것은 청해성의 패자인 자신의 체면을 크게 상한 것이었고 강석 또한 진태백이 밀어낸 서광의 도끼에 자신의 쌍극이 막힐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 크게 자존심이 상한 모습이었다.
“내, 중원이 땅이 크고 인재가 많다하여 크게 기대를 했소.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약자를 보호하고 인과 의를 지키려는 자는 적고 스스로의 욕심과 아집에 사로잡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을 죽이려 드는 것을 보니 대국이라 하여 모든 사람이 훌륭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겠소. 아니, 오히려 당신들이 소국(小國)이라 말하는 조선만도 못하오!”
진태백은 진심으로 그들을 비웃었다. 그들의 무예는 훌륭하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 크게 잘못되었다. 본디 무(武)라는 글자는 싸움(戈)을 멈춘다(止)는 뜻이다. 힘은 빼앗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데 써야하며 설령 싸우게 될지언정 최소한의 인(仁)과 의(義)를 지켜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백정이 휘두르는 도끼질만도 못한 것이 힘이며 무예인 것이다. 아니, 백정이 휘두르는 도끼질은 인과 의를 떠나 오직 먹기 위한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이므로 그것에는 선도 악도 없으니 오히려 백정의 도끼질은 일말의 자비(慈悲)마저 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놈!”
서광은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다시 진태백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도끼가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본 진태백은 전광석화처럼 무인금강을 칼집에 꽂으며 서광에게 달려들었고 그것을 본 강석은 진태백의 옆구리를 향해 쌍극을 휘둘러왔다. 도끼는 단병(短兵)에 속하는 무기였고 쌍극은 장병(長兵)에 속하는 무기인지라 둘이 한꺼번에 달려들자 상호보완적인 공격이 되었다.
그러나 진태백은 본격적으로 살법(殺法)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듯 진득한 살기를 내뿜으며 그들과 맞섰다. 막강한 경력(勁力)이 진태백의 손과 발에서 내뿜어졌고 그로인해 서광과 강석은 둘이서 협공을 함에도 불구하고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진태백이 내뿜는 경력이 막강한 탓도 있지만 진태백이 내뿜는 살기는 여지껏 그들이 겪어보지 못한 막대한 것이어서 그로인해 그들의 몸놀림은 평상시보다 어딘지 모르게 경직되고 딱딱해 보였다.
“허, 대단한 살기로다.”
한결은 아무 말 없이 그의 곁에 서있는 포숙을 보며 말했고 포숙 또한 진태백이 이 정도의 권법을 익히고 있었는지는 몰랐던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을 도산검림(刀山劍林)의 강호에서 보낸 그들로서도 진태백과 같은 살기를 뿜어내는 사람은 본적이 없었다. 그 누구보다도 경험이 풍부한 그들도 진태백의 살기를 접하고 나니 몸이 굳어오는데 직접 맞서고 있는 서광과 강석은 어떠할지 짐작이 되었다.
파바방!
“컥!”
그때 강렬한 파공성과 함께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한결과 포숙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자신이 자랑하던 대부를 이마에 박은 서광의 몸이 서서히 뒤로 넘어가고 있었고 강석은 쌍극을 떨어뜨린 채 창백해진 얼굴로 옆구리를 감싸 쥐고 입에서 검은 피를 흘리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네는 보았나?”
이야기를 하던 중이라 싸움 장면을 놓친 한결이 굳은 얼굴로 현장을 보고 있던 사진에게 물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강석이 분광발도의 뒤를 잡고 쌍극을 찔러가는 사이 정면에서 서광이 대부를 휘둘렀소. 그런데 분광발도가 대부를 피하기는커녕 서광의 품에 뛰어들면서 그의 대부자루를 부러뜨렸고 부러진 대부를 쥐고 휘둘러 서광의 머리에 박아 넣음과 동시에 비어있는 손으로 강석의 쌍극을 쳐내고 발차기로 그의 왼쪽 옆구리를 세 번이나 걷어찼소.”
사진의 말에 한결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자신보다 떨어지는 고수이기는 하지만 서광과 강석은 저렇게 쉽사리 물리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장병과 단병의 조화로 인해 엄밀하게 짜여있던 공격에 정면으로 달려들어 그것을 깨부순다는 것은 스스로의 실력에 확실한 자신이 있고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 용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쿨럭!”
고수 둘을 처치한 진태백은 피를 한차례 토해내고 나서야 편해진 얼굴로 싸움에 뛰어들지 않았던 남북쌍두와 사진을 바라보았다. 짧은 시간에 격전을 치른 진태백은 그다지 지쳐보이지는 않았지만 오른쪽 어깨와 옆구리에 상당히 깊은 상처가 생겨있었다. 특히 오른쪽 어깨에 있는 상처는 어깨를 움직일 때마다 상당한 통증이 전해지고 있어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어쨌든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을 것 같소. 어떻게 하시겠소? 두 분 선배께서 먼저 손을 쓰시겠소?”
사진의 말에 남북쌍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이미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왔기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오히려 본신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사진에게 나서라고 하기엔 그의 실력은 서광과 강석에 비해 크게 차이가 나질 않았다. 그와 비슷한 수준의 고수 둘을 그것도 궁합이 맞는 상태에서의 협공을 물리친 진태백과 싸우라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었기에 그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너를 애송이라고 한 것은 사과하마. 너는 몇 년 만에 이 친구와 내가 동시에 손을 쓰게 만들었으니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이다.”
한결의 말에 진태백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서로간의 목적과 이해(利害)로 서로 싸우고 죽이는 것은 인간뿐이고 이따위 짓은 짐승도 안하는 짓이오. 그리고 나는 노인장들을 모르니 이 따위 싸움으로 자부심을 느낄 이유도 없소.”
진태백의 말에 한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무리 좋지 못한 일로 만났다 해도 그는 진태백 보다 수십 성상을 더 살아온 사람이었다. 손자뻘 되는 새파란 후배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것이 기분 좋을 리가 없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포숙의 말에 한결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포숙은 자신이 인정한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말을 걸지 않으며 그가 말을 거는 것은 상대를 죽이고자 살심을 크게 일으켰다는 소리였던 것이다. 실제로도 최근 몇 년간 포숙은 자신과 싸운 고수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한결 또한 그가 싸울 상대에게 말을 거는 것은 몇 번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 친구가 저 애송이를 인정했단 말인가?’
한결이 포숙의 돌발적인 행동에 고심할 무렵 진태백은 자신의 출신지를 물어온 포숙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알아서 무엇하시려고 그러시오?”
“적어도 내가 죽인 녀석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아야 그쪽에 뼈를 뿌려줄 것 아니겠느냐?”
포숙의 말에 진태백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비록 적으로 만났으나 포숙의 태도는 진중해보였고 자신의 말은 꼭 지킬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물론 남북쌍두로 불리는 그가 자신의 말을 어길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조선, 조선에서 왔소이다.”
“해동의 조선말이냐?”
진태백은 고개를 끄덕였고 포숙은 말을 이었다.
“알았다. 여기서 누가 죽을지는 모르나 네가 죽는다면 꼭 동쪽의 바다에 네 뼈를 뿌려주겠다. 나는 호북성(湖北省) 당양(當陽) 출신이다.”
진태백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여기서 죽으면 그곳에 자신의 뼈를 뿌려달라는 말이었다. 한결은 진태백 같은 애송이에게 저런 말을 하는 포숙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오랫동안 친우로 사귀었던 그의 이야기를 끊을 수가 없었던지라 둘의 이야기가 끝나자 허리춤에서 검을 빼들며 말했다.
“이야기가 끝났으면 이제 시작해보지.”
- 작가의말
분량조절 실패.......
액션씬이 많이 들어간지라 어쩔 수가 없군요.
거기다 맘에 들지 않아서 계속 갈아엎었습니다.
독자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ㅠㅠ;;;
무(武)라는 글자는 파자를 하면 창 과(戈)자와 그칠 지(止)자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과라는 글자에는 싸움, 전쟁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싸움을 멈추다라는 표현을 했으므로 감안해 주시길 바랍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ps. 추천과 댓글은 필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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