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양혈투(當陽血鬪)-2
“좋지 않군.”
약간 떨어진 곳에서 오행기와 진태백의 싸움을 지켜보던 조무웅이 중얼거렸다. 진태백의 무위가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뛰어남은 물론 손속의 잔인함까지도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던 것이다.
“어떻게 할까요 사형.”
호상직은 진태백의 신형에서 눈을 떼지 않고 조무웅에게 말했고 조무웅은 잠시 침묵했다. 진태백에 대해서는 그도 들은 적이 있었다.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하며 적에 대해서는 추호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 손속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고 그것은 남북쌍두를 비롯해 진태백과 대적한 사람들이 모두 목숨을 잃은 데서 기인했다.
“지금 우리가 나선다고 해서 그가 우리와 대화를 하려하지는 않을 것 같구나. 조금 기다리는 수밖에.”
“하지만 사형, 오행기의 사람들은…….”
“잘 보거라.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죽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소문대로 가차 없는 사람인 듯하구나.”
곡령봉은 조무웅의 말에 쓰러져있는 진태백의 손에 쓰러진 오행기의 사람들을 살폈고 그들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다들 사지 중 한군데가 부러지거나 턱이 박살나있거나 해서 결코 무사하다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
곡령봉은 단호히 외치며 자신의 애병인 봉륜도(鳳輪刀)를 들고 진태백을 향해 뛰쳐나갔다.
“앗! 곡사저!”
그 모습을 본 막내 복대성이 그녀의 뒤를 따라 뛰쳐나갔고 그런 모습을 보던 조무웅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이런, 또 사매가 싫어하는 일을 해버렸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대성과 사저만으로는 그를 상대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 우리도 나서야겠구나.”
퍽!
진태백은 수도로 백의인의 숨골을 내리침과 동시에 연속적으로 발을 뻗어 덤벼드는 적의인들을 걷어찼다.
“커윽!”
명치를 걷어차인 적의인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나가떨어졌고 진태백은 그 틈을 타 자신의 다리를 베어오는 백의인을 향해 무인금강을 휘둘렀다.
“헉!”
백의인은 진태백이 휘두른 무인금강을 간신히 피했으나 곧 자신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오는 것을 느끼고는 신음을 흘렸다. 애초에 진태백이 노린 것은 그를 무인금강으로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검기점혈(劍氣點穴)이었던 것이다. 이 검기점혈은 다른 말로 검기불혈진맥(劍氣拂穴震脈)이라고 불리는 수법으로 검기의 충격으로 혈도를 제압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검기는 날을 타고 날카롭게 발출되기 때문에 검기불혈진맥은 검기로 사람을 베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뿐더러 공력을 섬세하게 조절하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거나 검기의 발출로 인해 사람을 베게 되기 때문에 상승(上乘)의 검도(劍道)와 함께 일 갑자 이상의 공력이 없으면 사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수법이었다.
휘리릭!
진태백의 손에서 무인금강이 춤을 추듯 휘둘러졌다. 이 수법은 어검류의 유려(流麗)라는 수법으로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부드러운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오행기들은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다섯 명이나 되는 이들이 진태백의 검기불혈진맥에 의해 제압되었다.
“아직도 부족하오?”
진태백은 무인금강으로 오행기를 겨눈 채 말했다. 그의 몸은 땀에 젖어있었지만 호흡은 평온했고 기세의 엄정함도 여전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이들은 주춤거리기만 할뿐 더 이상 진태백에게 덤벼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들의 공격에 살기가 담겨있지 않아 나도 일부러 손속에 사정을 두었소. 더 이상 하겠다면 나보고 무정하다 할 것 없소. 하긴, 어차피 이제는 당신들과는 확실한 적이니 날 죽이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소.”
진태백의 확실한 적대선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태백에게 압도당한 오행기는 쉽게 움직이지를 못했다.
“먼저 경고의 의미로 모조리 무공을 폐하도록 하겠소. 저항은 당신들의 자유요.”
진태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매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진태백의 모습은 마치 저승사자 같았고 무인금강이 그들에게 접근하려는 순간 진태백의 뒤로 강맹한 도기(刀氣)가 엄습해왔다. 이대로 무인금강을 휘두르면 확실하게 세 명 이상의 오행기를 무력화 시킬 수 있겠지만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 있었기 때문에 무인금강을 거두며 망량으로 등을 덮쳐오는 칼의 영향권을 벗어났다.
“이런!”
곡령봉은 진태백의 반응이 이렇게 빠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듯 황급히 뻗어가던 도를 거두었다. 간신히 오행기의 사람들을 상하게 하기 전에 초식을 거두는 데는 성공했지만 무리하게 초식을 거두는 바람에 약간 기혈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이제야 나타났군.”
진태백은 허공에 무인금강을 휘두른 다음 어깨에 걸쳤다. 오행기의 행동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낀 것은 그들과 맞부딪친 직후였다. 그들이 자신을 죽이고자 했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진태백이 무사할 리가 없었다. 개개인이 일류를 상회하는 고수들인데다 그들은 합격(合擊)의 고수였다. 그런 상황에선 아무리 진태백이 다수를 상대로 한 싸움에 대한 경험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공력의 소모 외에는 거의 다치지 않았다는 점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또한 그들의 공격에서는 상대를 죽이려는 살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은 점 또한 이상한 일이었다. 결국 진태백은 무언가 배후가 있다는 것을 예측하고는 법왕사제를 끌어내기 위해 그들을 죽이지 않은 것이었다.
“당신들도 오륜교의 사람들인가?”
“…….”
곡령봉은 진태백을 향해 도를 겨눈 채 말이 없었다. 막상 오행기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무언가 진태백의 계략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저!”
뒤이어 달려온 복대성이 곡령봉이 어딘가 다치지 않았는지 살핀 다음 진태백을 향해 자세를 잡았다. 진태백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아직 다 온 것이 아니라면 기다려 줄 테니 모두 나오라고 하시오.”
“당신을 상대하기엔 나와 사저만으로 충분하다!”
아직 어린 만큼 자제력이 부족한 탓인지 복대성이 힘차게 주먹을 휘두르며 진태백을 향해 달려들었고 그가 진태백을 당해내지 못할 것을 우려한 곡령봉 또한 도를 치켜들고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휘익!
복대성의 주먹이 날아들자 진태백은 옆으로 비켜서는 것으로 그의 주먹을 피한 다음 복대성의 복부를 무릎으로 가격했다. 이 무릎치기는 일견 평범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전사경을 실어 날리는 벼락오름[登雷]이라는 수법이었다. 이 벼락오름의 무서운 점은 몸을 통과하는 경(勁)이 내장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척추를 조각조각 분쇄해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즉사가 아니라면 죽는 것만도 못하게 만드는 수법이었다.
“헉!”
진태백의 무릎이 복대성의 복부에 닿기 직전 곡령봉이 복대성의 뒷덜미를 잡아채며 도배(刀背)로 진태백의 무릎을 받아냈다. 덕분에 복대성은 목숨을 건졌지만 곡령봉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비틀비틀 물러나다가 봉륜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호오!”
진태백은 의외라는 듯이 감탄을 흘렸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진태백의 공격을 간파하고 사제를 구함과 동시에 자신까지 방어해낸 곡령봉에 대한 순수한 감탄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벼락오름을 막아내다니 대단하군.”
“사저!”
복대성은 봉륜도를 떨어뜨린 곡령봉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외쳤고 곡령봉은 봉륜도를 잡고 있던 오른손에서 심한 통증이 올라옴에도 불구하고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띠며 말했다.
“몸은 괜찮니?”
복대성은 그런 곡령봉의 모습을 보며 성급한 자신을 원망했다. 자신이 조금만 차분하게 행동했다면 곡령봉이 부상을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곡령봉은 사저이기 이전에 누나일 뿐 아니라 어머니의 따스함을 느끼게 해준 소중한 사람이었다.
“네, 네!”
곡령봉은 울먹거리는 복대성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 행동일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이 어린 사제가 못 견디게 귀여웠다. 한편 진태백은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괜시리 머쓱해져서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더 할 것이오?”
“물론이오.”
그때 양손에 황금빛을 띤 쌍륜을 든 남자와 잘 벼린 칼을 보는 듯한 남자가 나타났고 진태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야 당신들의 정체를 알겠군.”
“무슨 말이오?”
“당신들은 법왕사제가 아니오?”
진태백의 말을 듣고 쌍륜을 들고 있는 남자, 조무웅은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분광발도가 강호의 견식이 부족하다는 소문은 거짓이었나 보군.”
“내 견식은 그리 깊지 않소. 다만 오륜교의 신진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들이 당신들이라는 것을 알뿐이지. 솔직히 자신은 없었소.”
“좋은 일로 만났으면 좋았을 뻔 했군.”
“이 상황을 만든 것은 당신들이지 내가 아니오.”
“맞는 말이오. 잠시 시간을 주겠소? 사제들에게 할 말이 있어서.”
“그러시오.”
진태백은 순순히 조무웅의 청을 들어주었다. 언뜻 보기에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이 네 명을 상대하려면 소모한 체력과 공력을 조금이라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비록 곡령봉에게 병기를 떨어뜨리게 만들긴 했지만 그것은 기습에 가까운 공격 덕분이었고 이 넷이 한번에 덤벼든다면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진태백의 판단이었다.
“미안하구나 사매. 내가 잘못 생각했다.”
“사형…….”
“사매 네가 옳다. 아무리 임무가 중요하고 저들이 우리의 명령을 듣는다고 하지만 저들은 결코 소모품이 아닌 본교의 형제들이다. 내가 눈이 어두워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구나.”
조무웅의 말에 곡령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사형. 사형이 제 마음을 알아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고맙구나. 잠시 쉬고 있거라. 그를 시험하는 것은 나와 상직이 맡도록 하마.”
“아니요. 저와 대성도 같이 하겠어요. 통증은 많이 가라앉았어요.”
곡령봉의 말에 조무웅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손이 아직도 떨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
“그래, 사매 너를 믿는다. 대성, 사매를 보조해주거라.”
“알겠습니다 사형!”
다정한 조무웅의 모습에 복대성은 감정을 추스른 듯 힘차게 대답했고 조무웅은 진태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다려주어서 고맙소.”
“이제 시작해 봅시다.”
진태백은 무인금강을 허공에 한번 털어낸 다음 왼손으로 바꿔 쥐었고 법왕사제 또한 진태백을 공격하기 위해 각자의 병기를 꺼내 기수식을 취했다.
“한 가지 경고하지.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당신은 여기서 죽게 될 거요.”
쌍륜을 겨눈 조무웅의 말이었고 진태백은 그의 말을 듣고는 피식 웃으며 받아쳤다.
“당신들이야 말로 죽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난 적들에게 있어서만큼은,”
그때 진태백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조무웅의 앞에 나타났다.
“용서라는 것을 모르니까.”
- 작가의말
2주만이로군요 아하핫;;;;
재밌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ps. 추천과 댓글은 필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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