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대회(英雄大會)-1
소림사(少林寺)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무림의 태두이다. 고래(古來)로부터 남존무당(南尊武當), 북숭소림(北崇少林)이라 하여 강호를 이끌어가는 구파일방에서도 늘 첫손에 꼽히는 곳이다. 보통은 불공을 드리러 사람들이 몰려오는 곳이지만 지금은 병장기를 지닌 강호인들이 몰려와 평상시와 같은 평온함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진 실 같은 긴장감이 적막해야할 절간을 채우고 있었다.
“아미타불, 복마전도 아니고 참으로 흉흉한 분위기로다.”
소림사에 방문하는 이들을 관리하는 지객승들을 총 관리하는 자리에 있는 지객당주(知客堂主)인 운명(雲鳴)은 미지근하게 식은 찻물을 단숨에 들이키며 중얼거렸다. 어중간한 온도 탓인지 유난히 찻잎의 떫은맛이 두드러졌고 입맛도 썼다. 평상시라면 보자마자 선장(禪杖)을 휘둘러버릴 마두(魔頭)들이 영웅대회를 빌미로 소림사로 몰려오고 있었다. 개중에는 사파에 속해있으나 정인군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엔 인간백정이나 마찬가지인 자들이었고 그런 자들을 영웅대회 때문에 손 놓고 지켜본다는 것은 운명에게는 고역이었다.
그뿐이라면 좋겠지만 문제는 정파의 인물들과 사파의 인물들이 사사건건 시비가 붙는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소림사에서 주최하는 영웅대회는 천하 무림의 쟁쟁한 고수들이 거의 모두 모이는 자리다. 정파의 명숙들 간에도 알력이 존재하는 판에 정사양도는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 뿐만 아니라 서로간의 원한 때문에 이름만 들어도 이를 가는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두었으니 한시도 조용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정사를 불문하고 소림의 권위는 존중하기 때문에 무턱대고 서로를 공격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당한 비무라는 명목하게 칼부림은 꾸준히 일어나고 있어 덕분에 소림의 의약전까지 바빠진 상태였다.
“오늘 더 방문할 사람이 있느냐?”
운명의 말에 방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숙께서 신경을 쓰실 정도의 사람은 없습니다.”
선실 밖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운명은 다시 찻잔에 찻물을 따르며 말했다.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자꾸나.”
조용히 선실의 문이 열리며 파르스름하게 깎인 민머리가 유난히 눈에 띄는 젊은 스님하나가 들어오며 운명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법명(法名)은 홍정(洪淨)으로 운명의 사제이며 나한전(羅漢殿)을 책임지고 있는 운정(雲靜)의 제자로 수십명의 이대제자 중에서도 꽤나 주목받는 이였다.
“최근에 들려오는 소문이 있더냐?”
운명이 홍정에게 이런 것을 묻는 것은 그를 차기 지객당 당주로 낙점했기 때문이었다. 성품이 모나지 않고 남에게 휘둘리지 않으며 분쟁이나 여타 다른 일에서 객관적이면서도 합리적으로 일을 해결해 왔기 때문에 홍정이 운명에게 신임을 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최근에 들려온 소문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분광발도 진태백, 진소협의 일일테지요.”
“아, 그 팽가주와 일도를 겨루어 이겼다는 녀석 말이냐?”
“네, 사숙. 듣기로는 명옥육가인 중 백옥 성소저와 벽옥 장소저를 그저 살기만으로 제압했다고 합니다.”
“허, 그 둘을 말이냐?”
“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온 형산파의 검객들을 단신으로 격파했다고 합니다.”
“일대일로 겨루었다더냐?”
“아닙니다. 형산파가 자랑하는 청천검진을 펼쳐 상대했지만 진소협이 일격에 진을 찢어놓았다고 합니다.”
“거참, 들을수록 대단한 이로구나.”
“하지만 소문이라는 것은 과장되기 마련이 아닙니까?”
홍정의 말에 운명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는 여태껏 그자에 대한 소문을 들으며 그가 한번이라도 부당한 행동을 하여 싸움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어보았느냐?”
운명의 말에 홍정은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진태백에 대한 소문은 부당한 행동을 참지 못해 스스로 나서거나 싸움을 피하는데도 다른 이가 시비를 걸어와 싸우게 되었다는 소문이었고 특히 가장 화제가 된 남북쌍두와의 혈전은 명백히 그들이 먼저 진태백을 습격한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는다. 아마 진짜 실력을 내보인 것은 오직 팽가주와 겨루었을 때뿐일 것이다. 팽가주는 그가 식솔을 때려눕혔는데도 그를 손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뿐만 아니라 황보세가의 소가주는 스스로가 그의 벗이라고 서슴없이 공언했지 않느냐. 그것만 보아도 그의 성품은 공명정대할 것이며 지닌바 실력 또한 보통이 아닐 것이다. 아무리 소문이 과장된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팽가주와 동수(同手)를 이뤘기 때문에 이겼다는 소문이 났을 것이다.”
“만약 소문이 진실이라면…….”
“꽉 막힌 구석은 있지만 심성이 바르니 사귀어볼만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실로 그러합니다.”
진태백이 숭산에 도착한 것은 오시(午時)무렵이었다. 시장기를 느낀 진태백은 가까운 객잔에 들어가 2층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한 다음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웅대회 때문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객잔들은 근래에 보기드문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팽가와 황보가 사람들은 이미 도착했겠군. 남궁가 사람들도 와있을테고.’
인맥이라고 해봐야 습자지(習字紙)만큼이나 얇은 진태백으로서는 소림사에 가서 그들부터 찾아봐야 할 일이었다. 물론 하북팽가의 가주와 황보세가, 남궁세가라는 인맥은 다른 이들이 볼 땐 엄청난 것이지만 진태백에게 그런 것은 하등의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천명조차 찾지 못한 상태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그때 갑자기 아래층이 소란스러워지며 몇 명의 사람들이 진태백이 있는 2층으로 올라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검집에 문양을 새기고 있었고 진태백은 그 문양이 얼마 전 허창 외곽에서 시비가 붙었던 형산파의 사람들이 새기는 것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가장 앞에 서있는 장년인의 검집에는 다섯 개의 문양이 새겨져 있어 그 이름만으로도 강호를 떨쳐 울린다는 형산파 오문검객(五紋劍客)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고 그의 뒤에는 허창 외곽에서 자신과 마주쳤던 이들이 몇 명 섞여있었다.
“네가 진태백이냐?”
거침없이 진태백을 향해 걸어온 남자가 거친 말투로 진태백에게 물어왔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입을 열었다.
“내가 진태백인데 그리 묻는 당신은 뉘시오?”
진태백의 말에 장년인의 뒤에 서있던 형산파 제자들의 안색이 변했다. 아무리 좋은 일로 만난 것은 아니라지만 진태백과 장년인의 배분의 차이를 생각하면 참기 힘든 무례였다. 장년인은 손을 들어 발작 직전인 제자들을 제지한 다음 말을 이었다.
“나는 형산파의 정청백(鄭淸柏)이라 한다. 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장년인, 정청백이 이름을 밝히자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청백은 형산파 장문인 고성신검(孤聖神劍) 소봉(蘇峰)의 사제로 형산파 팔대신검결(八大神劍訣) 중의 서화검법(瑞華劍法)의 달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성격이 급한데다 형산파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손속이 매서워 형산파에서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는 사람이었다.
“모르오.”
진태백은 보고 있는 사람이 복장이 터질 정도로 침착한 모습이었다. 정청백은 검술 실력 외에 하나의 괴벽(怪癖)으로 유명했는데 그것은 자신이 죽인 이들의 왼손 무명지를 자른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에게는 포화검객이라는 별호 외에도 무명단지객(無名斷指客)이라는 기괴한 별호가 있었지만 다들 쉬쉬할 뿐 그의 앞에서 그를 무명단지객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진태백은 차를 다 마신 잔을 내려놓으며 형산파 사람들의 기세에 눌려 음식을 든 채 꼼짝도 못하고 있는 점소이를 불러 탁자에 음식을 내려놓게 한 다음 음식 값을 미리 치렀다. 그 다음 천천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너무도 태연한 그의 모습에 정청백은 기가 막혔다.
“미안하오만, 볼일이 없다면 돌아가 주시겠소? 보는 눈이 많아 좀 불편하군.”
“이놈!”
결국 진태백의 태도에 폭발한 형산파 제자 하나가 검을 뽑아들고 진태백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진태백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쏘기의 기법으로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튕겨냈다.
쩌엉!
형산파 제자의 검과 진태백에 쏘아 보낸 찻잔이 공중에서 부딪쳤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형산파 제자는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입가에 피를 흘리는 것을 보니 내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고 진태백이 쏘아 보낸 찻잔은 검과 부딪친 반발력 때문에 어느 샌가 탁자로 되돌아와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찻잔에는 한 점의 흠집도 없었고 오히려 찻잔과 부딪친 검 끝이 약간 무뎌져 있었다.
‘저 어린 녀석의 공력이 어찌 이리 심후하단 말인가?’
정청백의 눈매가 살짝 찌푸려졌다. 찻잔을 튕겨 검을 막아내는 것은 자신에게도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가 더욱 놀란 것은 검과 부딪친 찻잔이 탁자로 스스로 돌아갈 정도의 공력만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공력의 조절은 극히 섬세한 공력의 수발이 필요한 것으로 공력이 조금만 강해도 찻잔이 검을 부수며 날아갔을 것이고 약했다면 검을 막지 못하고 찻잔이 부서지고 말았을 것이다.
“한수는 있는 놈이었군.”
정청백의 말에 진태백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고는 하지만 초면부터 반말에 이놈저놈 하는 사람에게 감정이 좋게 들 리가 없다.
“허창에서 마주친 귀파의 제자들이 어째 예의가 없다 했더니 귀파에서는 예의를 가르치지 않는 모양이오?”
진태백의 말에 정청백을 비롯한 형산파 제자들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진태백의 말은 문파 전체를 욕하는 것이었고 누구보다 형산파에 대한 자긍심이 강한 정청백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슈욱!
바람을 가르는 한줄기의 소리와 함께 방금까지만 해도 진태백이 앉아있던 의자가 잘려나갔고 어느 샌가 탁자위로 올라선 진태백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정말이지 밥 한 끼를 조용히 먹기가 힘들군.”
진태백은 그 말과 함께 객잔 밖으로 신형을 날렸고 정청백 또한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즉시 신형을 날렸다.
- 작가의말
쏘기는 엄지와 중지, 무명지를 모아 튕겨내는 수법입니다.
최근 개인 사정으로 인해 업로드가 늦었습니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진행할테니 봐주세요들.......
영웅대회 2편은 오늘 밤쯤해서 업로드 할수있도록 노력할테지만 될지는 미지수 입니다........ㅠㅠ;;;
재밌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ps 댓글과 추천은 필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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