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스 행성
자투스 행성
깜박했다.
교차로 악마가 대단하다 해도 전 우주의 모든 생명체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하물며 그들의 세계관이나 역사를 아는 것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자신이 가야 할 곳의 정보는 필수다. 그것 때문에 필요한 것이 지식의 탐식자라 일컬어지는 문지기 벵가드다.
악마의 소멸을 불쌍하다는 표현을 써서 그렇지만 벵가드는 나 때문에 루시퍼에게 소멸당했다.
지옥에는 언제나 그렇듯 대체자는 차고 넘친다. 벵가드 대신 들어온 녀석은 로우슬로라는 굼벵이를 닮은 녀석인데 자칭 지식의 악마, 지식의 탐욕자라고 떠벌여대는 녀석이다.
"이봐 저번처럼 이상한 것 봐달라는 소리 하지는 않을 테지? 나, 이 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 너에 대한 소문 들어서 잘 알고 있다고! 너와 엮이는 놈은 죄다 소멸한다지?"
"시끄러워, 업무차 온 거야. 자투스 행성에 대해 알려줘."
"업무상 하긴 하는데 제발 이상한 생각 하지 말라고. 루시퍼에 소멸당하고 싶진 않아."
"그야 네가 내 속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되는 거지. 넌 주기만 하고 난 받기만 하면 간단한 이치잖아. 위험한 것은 내가 아니라 너의 탐욕이야. 내가 가진 지식은 금단의 지식이다. 그걸 들여다보는 순간 너는 끝이라는 거지. 금단의 지식을 들여다보고 잠시 희열을 느끼고 소멸 당하든지 아니면 네 할 일 계속하든지 선택은 네 몫이지."
"그렇지, 탐욕은 부릴 만한 곳에 부려야지 넌 금단의 열매라고."
"할 거야 말 거야"
슥
벵가드와 달리 이 굼벵이는 몸이 꽤 유연하다 갑자기 툭 튀어나와 통째로 삼킨다. 내부는 생물체의 기도나 위장이 아니다. 아예 다른 차원이다.
검은 무중력 공간에 떠 있는 기분이고 주변으로 작은 반딧불 같은 것이 무수히 떠돌아다니는 데 불빛 하나하나가 모두 지식 즉 정보의 덩어리다.
작은 불빛 하나가 이마를 통해 밀려 들어왔고 곧 자투스 행성에 관한 정보가 영화 관람하듯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의외로 우리 인간과 상당히 닮은 모습에 깜짝 놀랐다.
우주는 넓고 변수가 많다고 하지만 인간과 흡사한 외계인이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머리카락, 눈, 코, 입, 팔, 다리 이거 완전히 인간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다른 점이 있다면 평균 신장이 2m 이상이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여섯 개인 것 눈동자의 색깔이 푸른색이라는 것 정도. 내부 장기의 구조 또한 인간과 많이 달랐다.
아무래도 섭취하는 음식의 종류가 다르므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실제 외모는 인간과 너무 흡사해서 살짝 당황할 정도였다.
미카엘이 한 가족을 구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들 태생 또한 초월자의 실험실에서 태어난 종족이라는 것이다.
자투스 행성에서도 자연 진화를 걷던 생명체에 초월자가 간섭하여 지성을 가진 생명체로 진화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행성의 진화 흐름을 크게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렇게 지성을 가진 생명체를 만드는 것은 초월자의 본능에 기인한다. 이들은 끝없이 우주를 떠돌며 생명의 씨앗에 다시 지성을 심는 역할을 한다.
인간 또한 그러한 행위의 산물이다.
밖으로 나오니 로우슬로가 입맛을 다신다.
"하하, 살고 싶은 마음이 탐욕을 앞섰나 보네."
"너 정말 싫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지식의 유혹을 이겨낸 것을 축하해."
"꺼져 버려."
집회소에 악마 구경하다가 날이 바뀌자마자 매표소에 순번을 등록했다.
자투스 행성은 우주에서 가장 큰 은하인 IC 1101의 외곽 섹터의 행성이다. 원래 자투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주체자인 우리식으로 해석한 것이며 원래 발음. 아티타투티타루스까다. 축복받은 대지란 의미다.
로우슬로로부터 이 행성의 역사와 언어에 관한 정보를 모두 받았다. 참고로 교차로 악마 정도의 능력을 보유한 악마는 그런 정보를 쉽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곧바로 활용한다.
로우슬로가 준 것은 단지 그곳의 역사와 언어지 실제 사용하는 것은 악마 본인의 능력에 달린 것이다.
이것만 봐도 교차로 악마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노운이 언어 보정을 해 줬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정말 놀랐다. 자연경관이라고 해야 하나 모든 것이 아주 특별했다.
먼저 식물이 전혀 없는 행성이다. 초록색의 대지가 아닌 모든 것이 은은한 은색과 흰색으로 조합된 포자 같은 것이 널린 행성이다.
내부는 당연히 금속과 흙의 대지를 지녔지만, 그 위로 포자 같은 것이 쭉 깔려 있고 버섯 같지 않은 괴상한 것들이 식물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도 보았는데 우린 푸른 바다라고 표현한다면 이곳은 에메랄드 초록빛의 바다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금 성분이 아예 없는 순수한 민물의 바다였다.
바로 떠서 식음이 가능할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여기 정말 시공의 균열에 오염된 곳 맞아?'
【균열에 오염된 곳은 메페스의 정신입니다】
메페스는 우리 인류를 휴먼이라고 부르듯이 자투스 행성의 지성체는 메페스로 불린다.
즉 메페스 휴면 계열 종족이며 인간을 닮은 외계 종족이다.
인간의 역사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살아온 종족이지만 과학적 지식은 한 참 아래다. 우리로 치면 중세 시대 정도. 신체 능력은 현 우리 마인 보다는 조금 아래. 수명은 평균 4백 살 정도로 장수하는 종족이다.
【모핑합니다】
행성의 크기는 지구의 1.5배 정도, 기압은 1.2, 중력은 1.8배 정도다. 공기 1제곱미터당 산소 농도는 지구의 2.8배나 된다.
산소 농도가 상당히 높은데 이 정도면 인간은 활동에 제약이 크다.
이들의 과학 수준은 지낸 시간에 비해 발달 속도가 매우 느리다. 대신 정신적인 인지 능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메페스인은 뇌파를 물리적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데 능숙하며 이는 염력, 텔레파시 등 다양한 능력을 구사한다.
신체가 인간과 같다 하더라도 전체 외형은 기형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팔다리가 매우 길다. 팔은 기본적으로 무릎까지 내려오고 상체에 비해 하체가 월등히 길다.
육체적 능력도 인간보다 월등해서 완력은 마인보다 약간 떨어지는 수준이며 각종 질병에도 상당히 강한 유전자를 가진 종족이다.
언노운이 모핑한 신체는 어색했다. 특히 팔이 길어서 이건 뭐 중심 잡는 것도 헷갈릴 정도였다.
그동안 외계인을 서너 번 경험했지만, 이 우주는 이처럼 여러 다양한 생명체로 꽉 차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에 인간만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으나 이렇게 외계인을 직접 만나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악마도 천사도 버젓이 존재하는 세상인데 이걸 이해하지 못할 이유는 없겠지.
별의별 놈들을 다 보았으니 메페스 종족이라고 특별한 것이 있을까 싶다.
시공의 균열에서 흘러나온 물질에 오염이 되었다고 하지만 느낌은 굉장히 평온한 곳이다.
천사는 접근할 수 없다는 곳이며 심지어 왓처조차 없다.
'일단 나를 소환한 자를 만나봐야지.'
교차로 악마는 소환자에게 바로 갈 수 있으나 난 약간의 여유를 부렸다. 이 별에 대해 직접 눈으로 경험해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미카엘이 준 퀘스트도 함께 풀어야 했다.
지구의 한 배 반 정도 되는 크기지만 마음먹고 출력을 높이면 대략 30분 정도면 한 바퀴 돌 수 있을 것 같았다.
타락 교단 악마 새끼들이 분명 따라붙을 것이니 최대한 빨리 이곳을 알아봐야 한다.
'와. 산소 농도가 장난이 아니네.'
【대지를 덮은 포자에서 산소를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그렇군. 포자라면 곰팡이? 종균의 일종인가?''
【포자라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지 유전적 구조는 곰팡이나 버섯류와 상관없었습니다】
'하긴 외계 물질이니까. 악마 잡히는 것 없지?'
【포착된 악마는 없습니다】
속도를 더 높여 날았다.
가끔 몇몇 도시 같은 것은 스쳐 갔다. 이 행성도 지구와 같은 대지를 가진 행성이다. 포자 같은 것이 덮고 있으나 걷어 내면 지구와 비슷한 흙과 바위 그리고 금속이 나온다.
이들 과학은 이제 제철하는 수준인 것 같았다.
도시랄까 모여 사는 곳은 그 크기가 들쑥날쑥한 것으로 보아 번성한 곳은 큰 도시겠고 나머지는 소규모도시 같은 곳이 점점이 눈에 띄었다.
어떤 사회 구조를 하고 있느냐 하면 과거는 그나마 봉건제 비슷하게 유지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즉 국가라는 개념도 사회라는 개념도 아무것도 없다. 왜 이렇게 된 건지 뻔하다. 정신이 민감한 이 종족은 시공의 오염에 반응하여 행성 전부가 감염된 것이다.
"저긴 가?"
지금까지 봤던 도시 중에 가장 거대한 도시다.
확실히 건축물이 다른 곳과 달랐다.
"석재를 쓰네. 건축물이 상당히 아름다워 곡선미도 우아하고."
건축물을 보니 이 종족의 손재주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했다.
사람이 없는 골목길 한 곳에 날아내렸다.
이 종족은 신발 자체가 없다. 의복은 꽤 복잡하고 기이한 편이지만 무릎까지 내려오는 칠부바지에 상의는 풍성한 옷고름이 특징이며 역시 반소매보다 약간 더 긴 소매를 가진 독특한 의상이다.
골목에서 나와 보니 눈에 띄는 메페스인은 모두 비슷비슷한 모습이었다.
계급도 없고 사회 구조도 붕괴하였고 진짜 규율이 없는 사회다.
당연히 원래는 그런 사회가 아니었다. 오염이 되고부터 미쳐 버렸기 때문이다.
누군가 리더쉽으로 권력을 잡으면 그 꼴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것이다. 동조하는 자는 배신을 일삼기 일쑤였고 모두 자기 개인 이득을 위해 타인을 해치는 것이 기본적인 삶이었다.
아주 오래전 태고신이 지적인 의식을 깨닫고 느끼면서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부분을 뭉쳐 버린 것인데 재수가 없게도 그 의식이 악의 성향이라면···. 그것에 물든 자의 성향 또한 악으로 바뀌는 것이다.
'행성의 내핵은 어떻게 된 거지?'
【오염은 중력 이상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별은 지속해서 수축 작용을 일으켜 내핵이 원래보다 삼 분의 일 정도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더 진행하면 내부로부터 에너지가 밖으로 터져 나올 겁니다】
'오염이 그 정도로 행성에 영향을 미치는 거야?'
【태고신의 의지입니다. 작은 행성 하나는 그것에 비하면 아무런 존재 가치조차 가지지 못합니다】
'얼마나 남았지?'
【우리 시간으로 계산하여 대략 2천 5백 년 정도입니다】
'여긴 공전 주기나 자전 주기가 다르겠지? 여기 시간으로 치면?'
【대략 1천 8백 년 정도입니다】
'여유 시간은 많이 남았군.'
"이봐. 자네."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하는 사내. 수컷이라고 부르기에는 이상하고 여기도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정확하고 번식 또한 인간과 비슷하다.
그래서 난 내게 처음 말을 걸어온 이 외계인을 메페스인의 사내라고 부르기로 했다.
"무슨 일입니까?"
"이 도시에는 무슨 일인가? 너 다른 도시에서 왔지?"
"그렇다면요?"
"여기서 무얼 할 셈이지? 그 구역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나?"
"후, 삼류 소설 같은 대사로 귀찮게 하지 말라고."
"이놈이 아직 진정한 고통을 느껴 보지 못했구나."
"조금 신기하긴 하다. 이 언어로 어떻게 이런 의미가 전달되는 건지 신기해."
내가 혼자 키득키득 웃자 녀석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잘 만든 쇠붙이인데 우리로 표현하면 단검 정도랄까? 뾰족한 부분이 있으니 분명히 이 신체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충분한 무기로 보였다.
"고통을 느껴야 정신을 차릴 놈이군."
"삼류 소설 같은 소리 하지 말랬잖아! 안 그래도 구독자 없는 소설인데 너까지 지랄이냐?"
-쫙
번개같이 따귀 한 대를 쳐 주니 허우적거리며 팔다리를 휘젓더니 결국 엉덩방아를 찧는다.
"뭐야?"
"어이, 거기."
"싸움인 거냐?"
"누구 허락이 있었지?"
"이 구역에서 누가 감히 주먹을 휘둘러?"
"저놈 매포리까지 뽑아 들었잖아?"
주변에 있던 메페스인이 모여든다.
대충 뻔한 스토리가 진행 될 거 같다.
경찰 같은 신분이나 군인, 용병, 친구 이런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철저한 개인주의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움직인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도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는 세상이다.
나는 너무 뻔하게 그런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녀석들이 뿜어내는 감정의 색깔이 모두 붉은색의 악의라는 것을.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오롯이 붉은 적색의 감정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이들의 눈동자 색깔과 전혀 다른 완전한 악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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