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파괴자3
행성 파괴자3
자투스의 혈족은 오래전부터 신관 출신 핏줄이었다.
신관 관리자였던 선조가 이 우주선을 발견했고 어쩌다 우주선을 살짝 기동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이곳은 신이 만든 비밀스러운 곳이라 생각하고 일체 다른 이에게 발설하지 않고 오랜 시간 우주선을 지켜온 모양이다.
난 미카엘이 준비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건 아닌 모양이다.
우주선 덕분에 즉 우주선에서 먹을 것을 공급받는 방법을 안 조상은 그렇게 우주선이 준 음식을 섭취하였고 그 덕분에 다른 메페스인에 비해 오염에 강해질 수 있었다.
즉 오염에 내성이 생긴 것은 우주선이 제공한 음식 덕분에 메페스인의 유전자 정보에 혼란이 왔고 여기서 남다른 돌연변이 즉 오염에 내성이 생긴 메페스인이 나타난 것이다.
오염이 처음부터 메페스인을 악으로 집어삼킨 것은 아니었다. 그들 세계 속에 침투하여 천천히 정신을 오염시켰는데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평화로운 삶을 살았던 메페스인은 점점 거칠고 폭력적으로 변했다.
그것이 천년의 세월을 이어 오면서 많은 다툼과 국가 간 전쟁으로 발전해 행성은 엉망이 되었다.
수많은 메페스인이 죽어 나갔고 다른 생명체도 대부분 멸종해 버렸다.
국가는 붕괴했고 사회적 유대관계, 법,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소수의 인원으로 뭉친 메페스인은 지극히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로 돌아갔다.
먹을 것이 떨어지자 서로가 잡아 먹는 지경에 이르러 이미 멸망의 징조를 드리운 상태였다.
카오스의 악마들이 메페스인을 건드리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은 별다른 내용은 없는 것 같다.
카오스의 악마들은 게헤나의 악마들처럼 영혼을 수집하는 따위는 아닌 것 같다. 오로지 파괴와 고통, 공포로 지배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이미 그런 가치를 잃어버린 자투스 행성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나 싶었다.
내가 수소폭탄을 터트리자 눈치채고 서둘러 군단을 파견했지만, 그것도 먹히지 않자 아예 행성 자체를 없애려고 문어 같은 초거대 생명체를 보낸 모양이다.
언노운에 묻지 않았지만, 우주선에 접촉하고 곧바로 조종하였다는 것은 솔직히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녀석은 이미 다른 차원 다른 시간대에서 이 우주선과 접촉을 했었고 수많은 역사를 반복한 이래 우주선의 정보를 축적해 나갔고 결국 조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던 거다.
'이 우주선을 만든 종족에 대한 정보는 있나?'
【항해일지와 여러 가지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습니다만, 주 메인 AI와 완전 연동은 힘듭니다. 시도는 할 수 있으나 우주선 자체에 영향을 줄 수가 있기 때문에 권하진 않습니다】
'미카엘의 말로는 메페스인도 초월자가 만든 생명체 중 하나인 것 같은데···. 우리와 같이 현지 생명체를 기본 베이스로 유전자 구조를 변화시킨 종류겠지?'
【대부분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선 어디로 가는 거지?'
【정보를 토대로 유추해 보면 생명체 조사용으로 각 은하에 파견된 인공 지능 자율 우주선입니다. 자투스 행성의 조사는 끝이 났으나 작은 오류로 인해 이륙하지 못한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제가 그 부분을 복구하였고 항해 일지상 다음 은하계의 생명이 살 만한 행성이 목적지입니다】
'그냥 우주를 떠돌며 자료 수집용 우주선인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이들 운명은 이 우주선에 맡기야 하는군. 먹을 것은 무한이니 살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고 만약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행성에 도착하면 다시 번성할 수 있으려나?'
【이 우주선은 생명체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연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심각한 질병에 대한 의료 행위는 물론 DNA 염기배열까지 재구성할 정도의 능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완벽한 생활 공간이라 그거군. 이로써 미카엘의 미션도 깨끗이 마무리 짓게 된 셈이네.'
며칠 더 머물며 이 우주선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뽑아냈다. 우리가 가진 기술력과는 차원이 다른 진보된 과학을 가진 문명이 만든 조사용 우주선으로 판명 났지만 결국 우주선 AI와 네트워크 연결은 포기했다. 자체 방어막이 워낙 강했고 그것이 뚫릴 경우 자폭의 위험성도 내재하고 있는 부분이라 탐욕을 더 부리면 자칫 모든 것이 망칠 수 있기에 적당한 시점에서 손을 빼기로 했다.
하지만 긁어모은 정보는 모두 저장해 놓았다.
임페리얼 테크노트리아 과학자들이 봤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난리를 칠 정도의 데이터라 왠지 나도 모르게 가슴이 뿌듯했다.
자. 이제 이별의 시간이다. 나는 자투스에 우주선의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얼마나 긴 여행이 될지 모른다. 그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부분을 가르쳤다.
음식을 제공 받는 방법을 더 다양화 시켰다. 이전에는 그냥 주는 대로 먹었다면 지금은 입맛에 맞는 맞춤 음식, 즉 단 것, 짠 것, 시큼한 것 등 미각에 대응하는 음식을 받을 방법.
아이들 신체가 자라는 과정에 필요한 영양소는 우주선이 알아서 할 것이고 각종 질병이나 신체의 문제점도 우주선의 AI가 알아서 돌볼 것이다.
정확히 이들의 과학력이 우리와 너무 차원이 달라서 언노운도 우주선 AI의 존재는 알지만, 그와 대화 같은 지적인 교류는 하지 못했다.
그리고 먹은 것이 있으면 배설해야 하고 우주선에는 배설을 위한 장소가 없었다.
이들을 위해 특별히 화장실을 마련해 주었고 우주선에서 밖으로 쓰레기 버리는 방법도 가르쳤다.
이곳의 시간은 현실의 시간이기에 하루 이틀 보냈다고 해도 게헤나에서는 몇 시간 정도니까
이들에게 우주선 사용법을 대부분 가르쳤고 나도 덕분에 알짜배기 정보도 모을 수 있었다.
욕심이 끝이 없는 건지 이 우주선을 지구로 가지고 가 연구 하면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남은 메페스인이 살길을 찾아가는 여정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이 미카엘의 퀘스트이기도 했고
"이제 해어져야 할 때가 되었구나."
"안 가면 안 돼?"
"자비스 난 해야 할 일이 있단다. 너는 무엇을 해야 하지?"
"우리 메페스 종족이 멸종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거야."
"옳지. 바로 그거야. 너희 종족이 멸족하지 않고 다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은 너와 동생 단 둘뿐이야. 내 말 알지?"
"응, 그렇게 할 거야."
"자투스 당신은 메페스인의 역사를 기억하는 마지막 메페스인입니다. 후일 당신의 자손들을 위해 메페스인이 어떤 과정을 밟고 왔는지 알수 있도록 남은 시간 동안 후손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 보세요."
"그럴 생각입니다. 한데 자꾸 어디로 가는 것처럼 말합니다. 밖은 우주라고 하셨지요? 숨 쉴 공기도 없는 곳입니다. 암흑뿐입니다."
"하하,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가야 할 길을 알고 있습니다. 더 정이 들기 전에 저는 이만 떠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발밑으로 다크 로드를 열었다.
"자투스, 자비스, 자이라 모두 안녕."
"정말 가시는 겁니까?"
"아라곤 안녕."
"안녕히 가세요."
후일 이들이 나에 대해 어떤 기록을 남길지 궁금해진다. 그들의 자손들이 역사를 배울 때 내 존재가 등장할까?
눈을 뜨니 집회소다. 이곳은 또 다른 현실이다.
"어이, 아라곤 용케도 임무를 완수했나 보네."
"축하해 아라곤."
"이 새끼들이!"
다크 로드를 타고 왔으니 내가 온다는 것을 알고 마중까지 나온 녀석들.
"아, 기분은 알고 있어. 소란은 금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잖아."
"안타리엘, 나스투룩 너 둘은 반드시 대가를 받을 거다. 날 속인 것을 후회하게 해 줄 테니."
"뭐, 그러시던지. 난 계속 여기 머물 테다. 시간도 많이 벌어놔서 당분간 교차로 악마 임무는 하지 않을 테니. 너도 시간이 많지? 나와 함께 여기서 기다려 보든지. 하하."
당장 이 징그러운 해마 새끼와 나가 새끼를 분리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왔다.
하지만 여기서 행패를 부리면 자격 박탈로 이어지니. 눈앞에 밟아 버릴 것들을 두고 참아야 하니 복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저 해마 모가지를 잡고 비틀어 뽑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쉼 없이 끓어 올랐다.
"아라곤 님, 아라곤 님, 호출이십니다. 호출입니다."
집회소 안내인이 급히 달려왔다.
"지금 수많은 어비스 메티리얼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모두 아라곤 님이 하신 일이라 아라곤 님이 직접 수습하셔야 합니다."
"아니? 씨발 내가 왜 그런 잡일까지 해야 해?"
"교차로 악마의 업무 중 하나죠. 아라곤 님이 이번 임무로 수집해 온 영혼은 어마어마합니다. 교차로 악마 역사 이래 손꼽히는 정도라고요. 메피스토 님께도 직접 보고가 올라 갔습니다."
"그래? 상여금 같은 거 있을까? 가령 일 잘했으니 소원 하나 들어준다 그런 거 말이야?"
"그럼 메피스토 님에게 건의해 볼까요?"
"어, 그래 줄래? 나야 그럼 좋지."
"어서 따라오십시오. 어비스 메티리얼이 차서 넘치면 곤란합니다."
"흥, 반병신 인간 새끼가 어쩌다 행운을 문 셈이군. 어이 잘해보라고."
"킬킬킬, 우린 항상 여기 있으니 얼굴 보고 싶으면 찾아오고."
저 두 새끼를 찢어 버리고 싶은데 손을 대지 못하니···.
안내인을 따라 어비스 메티리얼 충전소로 갔다.
형성하나를 폭파했으니 행성의 폭발로 죽은 모든 메페스인의 영혼은 내가 독식하는 것이다.
"헤헤, 행성 파괴자 칭호를 받으실 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행성 파괴자?"
"행성을 통째로 파괴해 모든 영혼을 싹쓸이하는 경우죠. 그거 칠죄종도 하기 힘든 일이라고요. 악마 역사 통틀어 행성 파괴자 칭호를 받은 분은 몇 분 없을 정도입니다."
어비스 메티리얼 충전소에서 영혼 정리하느라 하루 꼬박 새웠다.
현실 세계에서는 24일 지났을 거다.
그나마 언노운이 도와줘서 이렇게 빨리 마감했지, 나 혼자 했다며 어림없었을 거다.
"제길, 형성하나 날리니까 엄청나네. 그나마 자기들끼리 죽이고 죽여서 인원이 줄어서 이 정도면 생짜 하나 날리면 난리 나겠는데?"
"아라곤 님. 일 끝나셨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뿔 달린 악마 가슴에 메피스토의 문양이 있는 거로 봐서 집행관이다.
"어, 다했다고. 이제 뭘 해야 하지?"
"메피스토 님께서 기다리십니다."
"뭐? 메피스토가?"
"저를 따라오십시오. 아마 행성 파괴자의 명예를 내리시려고 그런 걸 겁니다."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농담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행성을 파괴하는 행위는 특별한 몇몇 악마를 제외하고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뭐, 운이 좋았을 뿐이지. 순전히 내 힘으로 부순 것도 아닌데 뭘?"
"그래도 이번 수확한 영혼은 엄청납니다. 제가 이곳에 근무한 이래 한가지 임무에서 이만큼 영혼을 수확한 분은 아라곤 님이 처음이십니다.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피스토를 바로 만난다고? 대법관도 거치지 않고?"
"저도 보고를 받고 잘못 들었나 다시 한번 되물을 정도였죠."
"흥, 내 존재가 꽤 탐이 나나 보네."
대법관이 머무는 거대한 집행실을 지나쳐 갔다.
저번에 한 번 잡혀 들어가서 제우스 아니 알라스토르의 벼락을 맞은 적이 있었던 곳이다.
대법관의 심판대를 지나니 독특한 외관의 건물이 나왔다.
나도 이곳은 처음이다. 나 뿐 아니라 평범한 교차로 악마는 이곳에 발조차 디디지 못한다.
바로 메피스토펠레스 거짓의 군주가 머무는 곳이기 때문이다.
'허, 건물이 마치 아랍형 궁전 같은데?'
이모탈 시티에 있을 때 읽었던 신드바드 천일야화에 나오는 이슬람 문화의 건축양식에서 많이 보이는 특징을 가졌다.
마스제드 또는 마스직이라고 하는 이슬람교의 신전이자 목회의 장소인 모스크의 구조양식이다.
집행관을 따라 건물 아니지, 건물이라고 부르기에는 그렇고 왕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이곳이 왕위실입니다. 메피스토 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곳 경비는 나가다. 신장 상체만 3m이고 꼬리 길이까지 다 친다면 8m 정도의 뱀들이다. 이들은 궁정 곳곳에 있다.
나가가 왕위실을 문을 열자 내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라곤 입장합니다."
집행관은 크게 소리쳤고 나를 보고 들어가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이런 번거로운 허례허식은 딱 질색이다. 내가 왜 이딴 짜증 나는 행동을 해야 하는지···.
길게 드리워진 붉은 카페를 밟았을 때 살짝 놀랐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레드 카펫의 감촉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한 발 디뎠을 때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감촉이 뭐랄까···.
이런 비유는 너무 흔해서 솔직히 그렇지만 이 말만은 정말 하고 싶었다.
'와. 정말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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