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차원-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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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차원-12
이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문을 열어 놓으면 그냥 나올 줄 알았다.
카인과 렌타로는 전혀 발전이 없다.
"됐다. 열린다."
남은 인원은 기어이 문을 열었다. 먼저 남은 인원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협동이라는 단어를 용케 터득한 모양이다.
너무나 간단한 이치를 왜 지금까지 하지 않았을까? 나란 존재와 같이 모든 걸 좌지우지할 인물이 없었던 건가, 아니면 나처럼 우호적으로 도와줄 마음이 있었던 사람이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 차원의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야박한 것일까?
문을 열 수 있는 인원은 언제든 문을 열 수 있으니까 열 수 없는 사람들을 먼저 통과시키고 다음 차례로 그들이 나가면 되지 않나.
그 간단한 것을 이루는 데 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 모두 5관문으로 들어갔다. 카인과 렌타로는 그들을 보긴 했지만 흔들리지 않는다.
두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래선 답이 없겠네.'
남은 스틸 판더는 모두 없앴다.
"두 사람 집중을 전혀 못 하잖아. 5관문 때문에 그렇지? 너희들 내 말을 들을 테냐? 그러면 5관문으로 데려가지."
"무엇입니까? 무슨 요구라도 들어드리겠습니다. 할수만 있다면요."
렌타로는 설렌다. 카인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복수 하나로 오늘까지 버텨 왔습니다. 더 못 할 것은 없겠지요."
"좋아. 두 사람은 이곳을 벗어나는 그 순간까지 내 말을 들을 것. 어때 간단하지?"
"동의합니다."
"당연한 소리 아닙니까?"
두 사람의 의복은 거지꼴이 되었지만, 상처는 하나도 없었다. 신성력을 살짝 이용했던 것이 효과 만점이었다.
활짝
나는 두 팔로 문을 좌우로 활짝 열었다.
우리 세 사람은 당당히 5관문에 입성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화려한 건물 한 동. 여긴 생각보다 넓다. 축구장 네 개를 합친 크기다.
카인과 렌타로도 5관문은 처음이다. 그들은 온 가슴으로 5관문의 공기를 흡입했다.
감개무량. 이 말보다 더 맞는 단어가 있으랴.
먼저 들어온 자들은 한쪽 구석에 박혀 있었다. 문이 너무나 크게 활짝 열렸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고정됐다.
처음에 올라갔던 통일된 복장을 한 단체도 있고 확실히 능력이 출중한 개개인도 여럿 보였다.
다른 관문과 다른 것이 6관문으로 넘어가는 문이 보이지 않는 대신 전면 모두를 감싸는 투명한 벽 그러니까 물결처럼 출렁거리는 거대한 투명막이 처져 있었다. 하늘은 돔 형식인데 바닥에서 천정까지 커튼을 쳐 놓은 것처럼 거대한 막이 출렁거리며 처져 있었다.
액체는 아니지만 액체처럼 보이는 거대한 막이다. 대부분 사람은 그 앞에 모여 있었다.
누군가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머리카락이 위로 쭈뼛쭈뼛 올라선 청년이다. 다소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네가 아라곤이야?"
다짜고짜 반말이다. 생중계로 내 이름을 들은 모양이다.
"저 문 네가 열었어?"
"그럼 나 말고 누가 열겠나?"
"이···."
청년이 눈알을 부라린다.
"브론 그만둬. 그들도 제 능력으로 관문을 통과한 사람이야."
여성의 목소리는 처음이다. 아르카나 참여는 남녀 구분이 없다. 메러레이드에도 여성이 제법 되던 걸로 기억한다.
그냥 우연인가 우리가 도전했던 곳에선 여성이 없었을 뿐이다.
"라일라 이 녀석은 다른 놈과 달라. 정보가 없어. 뭐 하는 녀석인지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다들 안 그래?"
"저렇게 문을 연 사람은 근래 보기 드물긴 하지."
"염력인가? 아님 마법인 거야?"
"아까 중계 화면을 봤잖아. 염력이지. 염력이 특별나게 강한 사람이겠지."
"야. 너 외에는 게스트 하우스 못 들어간다. 둘은 쓰레기지?"
"브론 그만둬 그들은 모두 게스트 하우스 들어갈 자격이 있어."
짜증 나게 간섭하는 인간은 어디서나 있다.
"네가 여기 대가리인 거냐?"
브론의 눈썹이 획 치켜 올라갔다.
"지금 내게 도전하는 거냐?"
"제발 그만해."
"쓰레기잖아. 왜 이런 녀석이 아르카나에 오는 거지 누군가의 연줄이야? 난 그저 불쾌하게만 느껴져 너 같은 재능이 없는 쓰레기를 보면 말이지. 그냥 나가! 여기 안 어울리잖아. 너희들에게 어울리는 건 빨리 나가는 것뿐이야. 애당초 자리에 안 맞아! 여기에 와선 안 될 인간들이야."
브론은 콧방귀를 뀌며 돌아섰다.
"저희 때문에 괜히 신경 쓰이게 해서 죄송해요."
렌타로가 말했다.
"아냐 괜찮아 문제 일으키기 싫은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이미 왓처가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도를 넘는 행동을 하면 일이 풀어지기 전에 귀찮아진다. 단지 그뿐이다.
왜 언노운이 카인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언노운은 그 이유를 말해 주지 않는다. 나 또한 늘 그래왔듯이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
언노운은 단지 내가 가야 할 길만 가르쳐 주는 것이고 길에서는 누구를 만나 친구가 되든 원수가 되든 그 인연은 오롯이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 골치 아프네. 이들을 어떻게 해야 능력을 개안시키지.'
구석에 몰린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너흰 목적이 5관문이잖아? 목적을 달성했으면 나가 봐."
"그게···. 저들이 전이 문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고 있어서요."
전의 문이란 여기서 1관문 밖에까지 단번에 이동시키는 장치를 말한다.
올라올 때는 관문을 다 거치지만 5관문에서 단번에 출입구까지 전송할 수 있다. 그 전이 문을 사용해 나와야 완벽히 5관문을 통과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밖 출구에는 협회에서 나온 사람이 대기 하고 있다. 그들은 출구로 나오는 사람의 신상 명세를 확인하고 다양한 혜택을 준다.
이곳에 단 한 채 있는 건물은 상당히 세련되었고 디자인도 훌륭한 편이다. 4관문의 힐링 팩토리 기능도 있는 것 같고 숙식은 물론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5관문에서 먹고 자는 사람이 많기에 식자재도 풍부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여기도 웨이브가 오긴 하지만 저 투명막을 통과하지는 못한다.
6관문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쪽에서 먼저 투명막을 통과해야 하는 데 그럼 자동으로 웨이브가 걸리는 시스템이다.
즉 아래 관문처럼 시간 단위로 웨이브가 오는 것이 아니라 5관문은 저 막을 넘을 때만 웨이브가 걸리는 구조이다.
만약 웨이브를 견디지 못하고 투명막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면 몬스터는 더는 따라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 웨이브 상관 없이 이곳은 늘 평온한 곳이라는 이야기다. 중간 기착점 정도라고 할까.
브론인가 뭔가 하는 인간이 이들을 소위 말하는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으니까, 전의 장소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브론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이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스트 하우스는 외부와 연결되어 있어 미디어를 통해 외부 사정도 잘 알수 있다.
있기 남아 있는 부류는 당연히 6관문을 도전하는 자들이고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은 5관문만 통과하면 끝인 상황인 거다.
게스트 하우스도 신성력이 묻어 나온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힐링 팩터가 가동되는 것도 신성력 때문인데 이 차원에서는 신성력 즉 디바인 파워에 대해 아예 모른다.
과학적으로도 아직 밝혀내지 못했고 그냥 알수 없는 신비한 힘으로 취급한다.
과연 이 건물은 누가 세웠을까. 어떻게 신성력이 건물에 머물고 있는지 알수가 없다.
내가 알기론 천사가 인간의 역사에 관여하는 일은 절대 없다. 고로 이건 천사의 작품은 아니라는 건데 하지만 신성력을 사용하는 자들은 곧 천사이니 나조차 이해할 수 없다.
"좀 비켜 주지."
"허락된 사람은 자네만이야."
"문제 일으키고 싶지 않아."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그래비티 포스로 입구를 막고 있는 둘을 번쩍 들어다 투명막 쪽으로 집어 던졌다.
녀석들은 비명을 지르며 한참을 날아가 투명막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거의 축구장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날아간 셈이다.
"자, 들어와. 뭘 구경만 하고 있어."
게스트 하우스 입구 쪽을 개방하자 그제야 사람들이 뛰어들었다.
"전의 문은 어디지?"
"텔레포트 룸은 복도 따라가서 왼쪽이에요."
라일라라는 여성이 가르쳐 주었다.
아, 던진 두 사람은 투명막에 걸려 미끄러져 내려왔다. 막은 점성이 상당히 높아서 그 안에 들어가면 추락하지 않을 정도이다. 막의 두께는 딱 1m다.
어차피 시민권만 얻으면 끝인 애들을 굳이 욕받이로 이곳에 남겨 놓고 싶은 이유는 없다.
우르르 몰려 간 사람들은 텔레포트 룸이라 쓰인 팻말을 보고 모두 뛰어들었다.
난 그들 얼굴 가득 담긴 미소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한 없이 기쁜. 세상 다 가진 기쁨을 그들은 표출하고 있었다.
"쓰레기들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냄새 나는 새끼들."
안에 있던 사람 몇 명이 소란을 듣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래비티 포스로 안으로 다시 밀어 넣었다. 그들은 나오려고 발버둥 쳤지만 저항하면 할수록 높아지는 중력의 힘 앞에 저희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소리만 질러댔다.
카인과 렌타로를 제외하고 모두 전이했다. 그들은 떠나면서 나에게 처음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난 그들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는데 모두가 진심으로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보내고 있었다.
"렌타로 넌 5관문이 목표였잖아. 너도 가면 돼."
"아뇨, 전 아라곤과 함께 더 있고 싶은데요. 뭔가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하하, 좋을 대로."
소란을 듣고 밖에 있는 사람들까지 몰려온다.
"네가 지금 내 말이 말 같지 않게 들리나 보지?"
브론이 달려들자, 라일라가 막아 세웠다.
"그만해. 그들은 이미 떠났어."
"여기 들어올 수 있는 자들은 남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자들이다. 자격이 안 되는 너희 둘은 들어올 수 없어."
사람들이 점점 모인다.
"카인, 렌타로 나가자."
난 그 둘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간이 의자가 죽 놓여 있었는데 마치 공연을 관람하는 듯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4~6인까지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의자였는데 신기하게도 여기 물건은 죄다 신성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카인과 렌타로와 함께 의자에 앉았다. 브론은 그런 우리를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투명막 앞으로 걸어갔다.
"렌타로 여기는 어떤 애들이 나와?"
"네, 인간형인데 거인이에요. 기간테스이죠. 작은놈이 3m 정도고 보고된 바로 가장 큰 녀석이 10m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가끔 무기도 들고나올 때도 있고 전투 방식은 인간과 흡사해요. 마법사는 마법을 쓰고 전사는 무기를 휘두르고요."
"여기서도 사망자가 발생하니?"
"그럼요. 하지만 워낙 베테랑만 남아서 사고는 그리 흔치 않아요."'
카인은 5관문에 왔지만 조금은 답답한 표정이다.
"아라곤 제게 정말 힘이 있습니까?"
"당연히 있고말고. 하지만 네 마음의 벽이 그 힘이 나오는 것을 막고 있어 렌타로로 마찬가지고 그 힘을 꺼내기 위해선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고 봐."
브론이 슬슬 접근한다. 감성을 읽어 보면 악인은 아니지만 약자에 대한 반감이 상당한 녀석이다. 녀석도 뭔가 그쪽에 트라우마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볼일 끝났으면 갈 생각이나 하지 너희들은 뭔 생각으로 여기 있는 거냐?"
"초면에 반말은 아니라는 생각은 하지 않나? 처음 본 사이인데?"
"흥, 그딴 허례 따위 알 바 아니지. 이곳에선 능력이 우선이야. 존대를 받고 싶으면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걸 검증 해야겠지."
"알아서 할 테니 우릴 내버려 두겠어?"
"흥,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가 본데 여하튼 저 둘이 우리 방해 하면 가만두지 않을 테다. 분명한 경고야."
"맘대로 해. 그럼, 너 또한 우리를 방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뭐라고? 여기가 너희 놀이터인 줄 아냐? 우린 목숨 걸고 버티고 있어. 만약 방해한다면 내가 과격한 행동을 할수밖에 없다는 걸 말해 두지."
브론은 생중계를 통해 카인과 렌타로가 4관문 스틸 판더 하나 잡지 못하고 쩔쩔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계속 공격적으로 나오는 것은 두 사람이 정말 싫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약한 자는 결코 이 땅에 발을 디딜 이유가 없다고 믿는 맹신자였다.
"미안해요. 그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습니다. 그에게 어떤 트라우마가 있겠죠. 소중한 사람을 잃은···."
라일라의 커다란 눈동자가 더 크게 떠졌다.
"어떻게 그걸?"
"그의 슬픔을 읽었거든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을 방해할 생각은 우리도 없습니다."
라일라는 크고 투명한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다. 이곳에는 여성도 제법 많다. 마법은 남녀 가리지 않는다. 재능이 있는 자는 언제는 이곳에 오를 수 있다.
"6관문을 넘지 않고 여기서 무얼 하는 겁니까?"
"네? 그걸 몰라서 하시는 질문이에요? 6관문부터는 진짜 넘기 쉽지 않아요. 여기서 우린 훈련하는 거죠. 능력을 더 배양시키기 위해서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관문을 넘어 도전하려는 겁니까?"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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