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의 비밀 4
연옥의 비밀 4
난 아직 인간의 정신 상태 그대로를 가진 수컷이라 이곳은 정말 살 떨리는 곳일 수밖에 없다.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이곳이 연옥의 관리부서인가?
무엇보다 얼굴이 정말 환상적이다. 피부가 까만 흑인도 있지만 그 아름다움을 감히 피부색 따위로 폄하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지육림이란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리라.
건물 구조는 매우 단순했다. 그냥저냥 할 일 없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 나름대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를 향한 눈길은 상당히 부담스럽다. 뭔지 모르게 묵직한 느낌이다.
이 느낌은 성적인 느낌과는 달랐다. 마음이 진정되고 편안해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언노운이 그 감정이 모성애라고 말했다.
릴리스의 친딸들인 릴림은 인간을 모두 자신의 자식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진한 모성애를 가진다고 한다.
여성으로서의 성적인 느낌과 모성애가 반반 섞인 묘한 존재들이다.
"여기요. 들어가 봐요.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예요."
이소라와 달리 그녀의 얼굴은 서구적인 미녀 상이다. 살짝 눈웃음 짓는데 그냥 바로 포옹하고 싶어지는 느낌이다.
솔직히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덜컥
손잡이를 돌리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놀란 것은 뿔이다. 수도 없이 봐 왔던 뿔에 놀란 것은 내 뿔과 거의 흡사하다는 거다.
'ㄴ'자 형 뿔은 솔직히 흔하다. 전형적인 악마 스타일의 뿔이라. 하지만 그녀의 길고 날카롭은 그 외형이 내 뿔과 정말 매우 비슷했다.
책상 위 솟은 것은 그녀의 뿔뿐이라 얼굴을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들었다.
"그쪽에 앉죠. 앉아. 당신 때문에 여기 비상이 걸렸어."
목소리가 굵다. 즉 중년 여성이라는 소리다.
옆자리 소파에 앉았다.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순간 헷갈리는 것 같았다.
연옥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일까 갑자기 순한 양이 된 기분이다.
특히 여성은 보호되어야 할 존재라는 인식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릴림에 대한 거부감이 일도 없다.
불끈하는 성욕과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 정도랄까. 그리고 따뜻한 느낌의 모성애가 느껴진다.
이것은 감정이 아니다. 내 눈으로 봐도 감정을 뿜어 내는 릴림은 단 한 명도 없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하여 언노운에 조사하라고 했는데 릴림은 감정을 내지 않는 존재라고 한다.
즉 단지 릴림의 외모만 보고 나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 성욕과 모성애라는 것이다.
한 여성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느낀다는 것이 수치심이 드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잠깐 기다릴래? 하던 것마저 끝내고."
"난 시간이 널널한 사람이 아니야"
"알았다고. 누가 뭐래? 배고파?"
"아니."
그녀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책상 위 칸막이 너머로 불쑥 솟은 뿔만 이리저리 흔들거린다.
"넌 인간이잖아? 먹어야 살지."
"이미 인간을 초월해서 안 먹어도 문제없어요."
"하긴, 정보를 보면 탈 인간이지. 조금 더 하면 신 계보에 신적 올리겠다? 모노스 테리움은 아예 그렇게 할 생각이더구먼."
"그건 또 무슨 소리죠?"
"말 그대로 널 하급신 정도로 신적한다는 거지."
"신적?"
"그래 신 계보에 네 이름을 올리는 걸 신적이라고 해. 지구 토착신으로 말이야. 그러면 자동으로 생텀 의회에 보고 될 테고 그럼 너도 모르는 사이 모노스 테리움의 일행이 되는 거야."
"누구 허락으로!"
"너 때문에 말이 많아 알라스토르가 할수 없이 허락한 모양이더라고."
"알라스토르면 제우스가?"
"그래, 자 정리 끝났으니 본론으로 가 보자고."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눈을 돌렸다.
이건 뭐 고문이 따로 없다. 가슴에 수박이 아니라 풍선이 매달려 있다.
"뭐래? 꼴에 수컷이라고 하하."
"눈 둘 곳을 찾기 힘드네."
"본능을 애써 무시하지 말라고. 난 상관없으니까."
"릴림은 다 외모가 그렇나?"
"축복받은 신체지."
"왜 다 벗고 생활하지?"
"너흰 왜 옷을 입지?"
"허, 의미 없는 질문이란 소린가?"
"자, 여기 온건 낙자의 원혼이 가득 담긴 머리를 통해서고. 루시퍼가 그걸 넘겨준 걸 보니 때가 됐다는 이야기네."
"무슨 소릴. 이건 내가 루시퍼 몰래 구한 거라고. 환상 박물관에 숨어 들어가서 빼내 온 거지."
"으하하. 이 멍청한 족속을 봤나? 루시퍼가 그 귀한 물건을 환상 박물관에서 보란 듯이 전시회 놨겠냐고! 네가 보고 가져가라고 던져둔 건데 뭘 훔쳐 와? 지나가는 악마가 하품하는 소린 내 앞에서는 제발 자제해 달라고."
"그럼 루시퍼가···."
"당연하지. 그런 귀한 아이템은 전시해 두지 않아. 루시퍼만 아는 비밀스러운 곳에 숨겨 두거나 했겠지."
"그럼, 설마 탱그리의 마법서도···."
"당연한 소릴. 너 루시퍼를 너무 얕잡아 본다. 그가 살아온 생이 얼마나 되는데 천국과 게헤나를 다 뒤흔든 역대 최고의 존재라고! 네가 기든지 날든지 루시퍼 손바닥 안이지."
"탱그리를 내 손에 넘겨줄 이유가 없을 텐데?"
"넌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봉인하고 있어 널 노리는 적이 많아. 자신을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곤란하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힘을 조금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면야. 탱그리의 힘이라면 아스트랄계에 봉인된 마키나의 힘을 끌어 쓸 수 있을 테니까. 뭐, 일종의 모험이긴 했지만, 결과는 내 앞에 앉아 있는 너지."
"루시퍼는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는 거지?"
"미안하지만 내 위치로는 절대 알수 없는 정보야."
"그럼 어떻게 지금까지 일을 모두 알고 있는 거지? 날 따라다니며 감시한 것은 아닐 텐데?"
"연옥과 게헤나, 생텀은 평범한 곳이 아니야. 서로 삼자 간에 긴밀한 관계랄까 서로 견제하려면 여러 가지 뒷거래가 이뤄지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거야."
"당신은 이곳의 관리자인가?"
"이곳이 아닌 연옥을 관리하는 릴림 중 한 명이야."
"그 뿔 말인데···."
"뿔? 뿔이 왜?"
"내 뿔과 많이 닮아서···."
"그야 너나 나나 릴리스의 자식이니까 그렇지. 이 뿔은 릴리스의 표식이야. 데우스 엑스 마키나도 같은 뿔이고 네가 그의 힘을 빌려 쓸 수 있는 것도 그 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힘 일부를 뿔에 봉인해 놓았거든. 루시퍼는 철저한 놈이야."
"난 우리 속의 원숭이였던 거네···."
"아니지, 그건 절대 아니야. 넌 루시퍼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솔직히 네 정보를 죽 살펴봤는데 도대체가 말이 안 되더라고. 너도 알지? 넌 이제 인간이 아니야. 신의 영역에 들어선 존재지. 그것도 고대신의 힘을 가진 존재야."
"이렇게 만든 것이 루시퍼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
"그렇긴 해. 그는 수많은 너를 만들었고 성이 차지 않으면 갈아 치웠지. 그러다 이번 회차의 너는 그가 상상한 것 이상을 이뤄내고 있으니 애지중지하다 못해 이 난리를 피우는 거라고."
"날 이용해서 뭘 꾸미는 거지?"
"말했잖아. 나 정도는 이게 한계라고. 나중에 루시퍼를 만나게 되면 직접 물어보던지."
"좋아. 본격적으로 진행해야 할 일을 말해 봐."
눈앞에 풍선도 그렇고 그녀의 시커먼 그곳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정신 차리자.
말할 때마다 덜렁덜렁하고 다리를 옮길 때마다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널 이곳에 보낸 목적을 달성해야지. 우린 정말 오래 기다렸거든."
"너희 목적은 릴리스를 부활하는 거지?"
"루시퍼가 약속을 지킨 거로 생각해. 그래서 네가 이곳에 들어왔고. 낙자의 머리를 준 것은 네가 그의 시험에 통과했다는 걸 의미해."
"싫다면?"
"뭐, 어쩔수 없지. 가면도 찾지 못할 거고. 밀키웨이는 우주에서 존재가 지워지겠지. 모노스 테리움이 널 신적 시키려는 것도 그 이유야. 네 존재 때문에 밀키웨이가 소멸 당할 거라고 보고 네 존재를 지우려 했는데 실패했으니 이젠 선택 사항은 한가지 뿐이야. 마키나의 힘을 이용해 밀키웨이의 소멸을 막으려 하는 거고. 그 많은 능천사를 막으려면 반드시 가면 세 개를 다 모아야 해. 그 선택은 네가 결정하는 거고. 어때 진행해? 말아?"
"나더러 천사와 싸우라는 말이야?"
"야 찬 한 얘든 악한 얘든 싸움을 먼저 건 쪽은 저쪽이란 말이지. 그냥 처가 맞고만 있을래? 맞서지 않으면 네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내 눈앞에서 사라져. 모노스 테리움은 그걸 막기 위해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네가 나서주기만 하면 모두가 편해져. 우주의 평화가 온다는 말이야."
"눈앞에 알짱대는 것으로 날 유혹하지 마라. 루시퍼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너희 목적은 릴리스의 부활이지. 마치 그녀가 아니면 가면을 찾지 못할 거라고 윽박지르면서 말이지."
"윽박이라니 서운한걸. 우린 진실을 말했을 뿐이야. 네가 이 자리에서 날 죽이는 건 쉬운 일이란 걸 알아. 하지만 뭘 얻을까? 여기 있는 릴림 모두를 죽여도 네가 얻을 수 있는 건 없어. 연옥을 파괴하면 불쌍한 영혼은 어디로 갈까? 연옥의 시스템이 무너지면 게헤나도 생텀도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어. 설마 우주 대전쟁을 일으키고 싶은 생각은 아니겠지? 내 행동 하나에 모든 것이 달렸다고 볼 수 있어. 어떻게 할래?"
"그렇게 부활시키고 싶음 직접 하지 왜 날 기다린 거야? 얼마나 많은 세월을 낭비한 거지?"
"하, 그렇게 몰아세우니까 할 말이 없네. 우리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으니까 그렇지. 그렇다고 천사를 초빙하리? 악마를 초빙하리? 너 같은 존재는 우주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존재야. 천국이든 게헤나든 연옥이든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천사의 능력도 악마의 능력도 어머니의 능력도 가진 존재는 아마 너뿐일 거다.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란 걸 알아줬으면 해."
"너희 능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것이 뭔데?"
"자그레드가 이끄는 칼데아의 절멸자들이야."
"그놈들 악마야?"
"그래. 당시 파멸의 사건 때 에덴이 닫히고 게헤나와 생텀 의회가 정면충돌했을 때지. 차원의 균열이 생기고 균열의 틈에서 차원 워프가 새어 나왔어. 그 워프를 통해 루시퍼는 연옥으로 네 마리의 악마를 들여보냈어."
"나더러 그 네 마리를 처리 해 달라?"
"맞아. 하지만 아주 큰 제약이 있어."
"대도록 연옥에 피해를 주지 말고 처리하란 말 아니야?"
"그렇지."
"그럼 그 네 마리와 릴리스는 무슨 관계야? 네 마리 소멸시키면 릴리스가 걍 부활하나?"
"아니. 재료가 필요해."
"말해봐."
"맏이 자그레드의 심장. 둘째 루치페르의 뇌, 셋째 메기큘라의 날개 한 쌍, 넷째 아드라멜렉의 간이 필요해."
"요구하는 것도 참 많네. 그걸 나더러 전부 다 구해 오라고? 너희들이 지금까지 손대 대 보지 못한 것을 나 혼자 하라고?"
"운명이라고 생각해. 네 능력이면 놈들을 제압할 수 있을 지도 몰라."
"7고리에서 고룡과 싸웠던 것 너도 알지? 내 능력은 일단 주변 신경 안 써. 만약 그놈들이 1품급 악마라면 이 정도 도시는 원자 분해 당할걸."
"그건 우리 쪽에서 최대한 서포트 할 테니 도움이 될 거야. 싸울 만한 장소로 유도 할수도 있고 아니면 지혜를 이용하여 놈들의 옭아맬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놈들을 압도할 수 있는 권능이야."
"권능? 글쎄 내 권능으로 1품 악마를 제압하기에는 조금 구린데? 요전에 헬하운드 소환한다고 낭비한 권능도 많고. 여기서 신성력 쓰면 좀 그렇지?"
"오. 연옥에서 신성력을 쓰면 난리 나. 활활 타는 판잣집 불 끈다고 기름 끼얹은 일 있어?"
"좀 그렇네. 1품 악마면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고 잡긴 힘든데?"
"아, 그래서 좀 도움이 될까 하고 준비해 놓은 것이 있긴 해."
-짝
그녀가 손뼉을 치자 문이 열리며 두 명의 릴림이 들어왔다.
"우리 소중한 손님 안내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시장님."
"시장? 인간도 아니고 왜 그런 명칭을 쓰지?"
"재미있잖아. 어차피 이 도시는 인간의 도시를 본떠 만든 건데. 조직도 인간의 조직과 같이 구성해야지."
"여긴 릴림 뿐이야? 다른 악마나 보디가드나 그런 것은 전혀 없고?"
"호호, 우리 릴림을 너무 무시하시네요. 우리 쪽 전사 라인은 1품 악마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지."
"그럼 그네들이 직접 나서지 그래?"
"아, 칼데아의 사형제를 만나보시면 왜 안 되는지 이해하게 될 거야."
"그 새끼들은 협약에 저촉이 안 되나?"
"약삭빠른 루시퍼라고 했잖아. 협약이 이루어지기 전에 투입한 녀석들이라서."
"그 외 다른 악마는 없고?"
"허, 왜 없겠어? 이곳을 뚫고 들어온 녀석들은 셀 수 조차 없어. 물론 우리 릴림이 다 처리 했지만서도."
"그럼 칠죄종 정도의 녀석들이라면?"
"아, 보세요. 그들은 협약에 묶여 있다고요. 연옥의 침입 따위의 촌스러운 행동은 스스로 체면 때문에 하지 않는 거야. 여길 들어오는 애들은 별 볼일이 없는 잔챙이가 전부야. 뭐 소멸당해도 누구 하나 책임 소지가 없는 것들 말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네. 그럼 난?"
"협약에 의거 해 정식 루트로 여기 온 첫 번째 존재라는 거지 즉 정당한 방법으로 입성한 첫 번째 존재."
"···. 루시퍼가 의도적으로 낙자의 원혼이 담긴 머리를 내게 넘겨준 거로군···."
"그렇다니까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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