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성립
거래 성립
메피스토는 거만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제물의 단검이지."
"제물의 단검···. 아벨이 가지고 있던 거지?"
"좋아, 잘 알고 있는걸. 세상 유일 단 하나 존재하는 검이지."
"그런 다음에?"
"제물의 단검으로 낙자의 원혼이 가득 담긴 머리의 입에 물려줘. 그럼 놀라운 일이 벌어질 거야."
"그게 끝?"
"물론 끝은 아니지만, 그 이후는 네가 알아서 하면 돼. 내가 관여하는 것은 거기까지."
"그럼 이것으로 거래는 된 거지?"
"물론, 이제 공적인 일로 되돌아가야지. 네가 행성 파괴자라는 칭호를 얻었으니 그에 걸맞은 보상이 있어야 해. 보는 눈이 많다고 내가 야박한 수장이 아니라는 것도 피력해야 하니까."
"메페스인의 영혼은 쓸모없다면서?"
"그렇긴 하지만 양으로 밀어붙이면 꽤 즐거운 유흥거리가 될 수 있어."
"뭘 해줄 건데?"
"뭘 원해?"
"솔직히 직장 생활하면 바라는 건 하나지. 일 안 해도 기본 월급에 특별수당까지 또박또박 나오고 누릴 수 있는 복지는 복지대로 누리는 거지."
"그러니까 교차로 악마 일은 하기 싫고 다크 로드는 계속 사용하고 싶다 이 말이네?"
"그렇지. 교차로 악마의 법규에 일정 기간 소원 수리를 하지 않으면 자격 박탈이니 이게 은근 신경 쓰여서 말이지."
"좋아. 행성 파괴자의 칭호를 받았으니 그 정도쯤이야."
"앗!"
팔뚝이 따끔하여 내려다보니 새로운 각인이 새겨져 있었다. 당연히 메피스토의 낙인이다.
"미치겠군."
"큭큭큭, 소원이래서 들어 준 거다."
"루시퍼에, 바알에, 몰록에, 메피스토까지. 제길 나중에 새길 자리도 없겠다."
"복에 겨운 녀석. 게헤나의 악마 중에 칠죄종의 낙인을 받은 놈이 얼마나 될 것 같아?"
"뭐, 신경 안 써. 이러면 이제 교차로 악마 임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거지?"
"물론, 이곳은 이제 네 집이나 마찬가지니까. 클클클. 원래 집안일은 하인이 하는 거고 주인은 편안히 쉬는 게 집이지."
"허리온의 양초가 어지간히 걱정되는 모양이군. 이렇게 쉽게 낙인을 주는 것을 보니."
"이놈아. 함부로 그걸 입에 올리지 마라. 듣는 것만으로 불쾌해."
"거래는 거래니까. 약속은 지킬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당연히 지켜야지. 싫어도 어쩔수 없을 거다. 낙인을 받은 이상. 넌 나의 것이야."
"그렇게 신경 쓰이는 물건이라면 진즉에 해결하지 왜 지금까지 방치했어?"
"연옥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그곳에서 문제를 만들면 일이 커져. 모두의 어미는 조심하는 게 좋거든. 일이 커지면 곤란해."
"모두의 어미? 릴리스를 말하는군. 그니까 괜히 벌집을 쑤셔 난리를 피우기 싫었다. 혹시라도 그들 손에 허리온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면···. 그래, 그건 그렇다고 쳐. 근데 아자제스가 왜 그걸로 널 협박하지 못하는 거지? 그 정도 가치 있는 물건이라면 충분히···. 오호라! 그놈 자신이 훔쳐낸 것이 허리온인 줄 모르는군. 그래서···. 하하. 참 이곳도 요지경이군."
메피스토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상해. 네 기억 속에 허리온의 정보가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당연히 낙인을 찍으면 내 정보가 메피스토에게로 넘어간다. 주종관계의 계약이니까.
중간에서 언노운이 알아서 가려냈겠지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비밀이란 남들이 쉽게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잖아."
"난 네 주인이지 남이 아닏. 꼬마야. 그렇게 웃고 있을때가 가장 행복할 때란걸 잊지 마라. 이용 가치가 없다면 우리는 가차 없이 널 버릴 테니까."
"그거야 내가 바라는 바고. 그럼 이만 작별 인사를···."
"이거 받아."
메피스토가 던져주는 작은 탁구공 크기의 물건을 받아 드는 순간 눈앞이 확 어두워졌는데 다시 빛이 들어오고 나니 다른 곳이었다. 메피스토의 문양이 그려진 집회소 정중앙이었다.
손바닥을 펴 보니 검은 작은 구슬인데 구슬에는 메피스토의 문양이 각인 되어 있었다.
'뭐지?'
【일종의 순간이동 장치 같습니다. 장치의 문양이 발동 스위치이며 일정 범위 내 대상을 특정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것 같은데 특정 지역이 어딘지는 알 수 없습니다】
대충 감이 온다.
"아, 쉽게 안 풀릴 것 같은 난제 몇 개를 한꺼번에 해결했더니 기분이 상쾌하네."
이어링에서 안타리엘과 나스투룩이 위치를 살폈다.
두 녀석은 각각 반대편 쪽으로 떨어져 있었다.
살짝 악마가 없는 곳으로 가 분신을 만들었다. 여기에 언노운이 손 봐주니 완벽한 분신이 만들어졌다.
하나는 나스투룩에 보냈고 나는 직접 안타리엘에 갔다.
"어이, 안타리엘."
녀석의 다섯 머리 중 하나가 휙 뒤돌아보며 말했다.
"뭐야? 아직도 이곳에 있었나?"
"하하, 감사 인사를 하려고 들렸지."
"감사?"
"그래 감사지. 네가 자투스를 잘 요리해 놓은 덕분에 아주 맛있게 먹었거든. 아직 소문이 안 돌았나 본데 임무도 완수했고 행성 파괴자 칭호도 얻었거든."
"행성 파괴자!"
녀석의 권능이 살짝 출렁한다. 하지만 곧 안정을 되찾았다.
"흥, 어쩌다 운이 좋았던 모양이군."
"그래, 네가 환경을 잘 구성해 놓은 덕분이야. 거기 카오스 새끼들이 아주 난리던데? 넌 용케 그런 곳에서 잘 버텼다?"
"헤, 그따위 놈들이 두려워서 일을 못 하는 건 아니지. 내 도움에 그런 칭호까지 받았다니 감사의 말로는 부족하지 않아?"
"오! 그 말 기다렸다고 솔직히 한턱내고 싶긴 한데 여긴 뭐 놀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 어때 같이 4고리 가서 한 잔 빨래?"
"헤헤, 그따위 추잡한 꼬드김으로 날 이곳에서 빼내겠다는 수작질이냐? 넌 좀 더 배워야겠어. 어디서 감히 하찮은 짓거릴···. 참 너도 힘들게 산다."
"뭐, 나스투룩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던데?"
"흥, 그 새낀 저 자신도 못 믿는 녀석이야. 그런 놈의 말을 내가 왜 들어야 하지?"
"그러게. 그런데 녀석이 한 말이 자꾸 걸리긴 하는데···."
"뭐라고 했는데?"
"아, 난 그냥 말하지 말라고 들어서···. 내 입으로 말하기가 좀 그렇긴 해."
"안 믿어. 당연히 안 믿지, 그 새낀 입만 벌리면 거짓뿐인데 뭘. 너도 듣고 넘겨. 열 마디 말을 하면 그중에 열 마디 전부 거짓말뿐인 녀석이야."
"그래, 네가 그렇다면 나도 크게 상관 하지 않아.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기더라도 날 원망하지 말라고. 솔직히 나투스 행성에 가서 카오스 애들 만났을 때 네 두 녀석에 속았다고 생각해서 때려죽인다고 했는데 이게 어떻게 하다 보니 씨발! 진짜 전부 달콤한 꿀물이더라고 그것도 순도 100%의 오리지날 꿀이었어. 덕분에 오지게 권능 챙기고, 너도 알잖아 그 행성 어차피 터질 거란걸. 내가 살짝 신경 써 주니까 행성 파괴자 칭호도 얻고 덕분에 딸려온 영혼이 셀 수도 없다는 거. 킬킬, 진짜 너희 둘 중에 누구 아이디어인지 모르지만···. 아. 참 나스투룩이 처음부터 끝까지 제 아이디어라고 보상으로 받은 어비스 메테리얼 열 개는 자기한테 몽땅 주면 된다던데···."
"뭐? 그 새끼가 그랬단 말이지?"
"그래, 행성 파괴자 칭호 받으러 메피스토 님을 만나 뵙고 왔는데 멋진 하사품도 많이 받았지. 어비스 메테리얼이야 차고 넘치는 상태고···. 솔직히 너희 둘 중 한 명이 자투스 행성 추천했을 거 아니냐고? 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보는 눈도 있고 나 혼자 날름 먹었다고 하면 좀 그렇잖아. 그때 양보해 줘서 도움을 받은 것은 너 안타리엘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너에게 좀 생색내면 되겠지 했는데 저쪽에서 나스투룩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 친구가 넌 아무것도 한 것이 없고 다 자신이 계획하고 나한테 추천해서 이뤄진 일이라고 하더라고 그러니 네게 어비스를 줄 필요 없고 자신에게 준다면 충분하다고 하길래···."
"줬어?"
"자신이 전부 했다는데야. 내가 뭐라고 하겠어. 줬지."
안타리엘의 다섯 개의 대가리가 모두 기립했다.
"네가 정말 어비스를 줬다고? 날 속이려는 건 아니지."
"참, 나 내가 왜 쓸데없는 거짓말을 할까? 난 볼일 끝났으니 인제 그만 간다."
참고로 순수한 어비스 한 덩이는 인간 영혼 하나의 가치와 같다. 악마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다.
뒤도 안 돌아 본 상태에서 손 한 번 흔들어 주고 가 버렸다.
이기심과 질투심이 강한 녀석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는···.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
둘은 서로를 찾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은 집회소 정 중앙에서 만났다.
"나스투룩 처먹은 어비스 토해내지?"
"내가 할 소리다. 뭐 네가 계획을 했다고?"
그때 나스투룩의 얼굴이 움찔했다.
"지금 너 아라곤 만났지?"
"흥, 네가 먼저 만났고 자신의 공이라며 어비스를 받아먹었잖아?"
"잠깐! 난 어비스 받은 적이 없어 아라곤은 네가 받았다고."
그제야 안타리엘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봐 우리 둘이 서로 만나지 말자고 했잖아!"
나스투룩이 움찔했을 때, 나는 재빨리 달려 나와 이 둘을 잡아끌어 어깨동무를 걸었다.
"보라고. 세상 살다 보면 맑은 날도 있고 굳은 날도 있어. 그게 삶이란 거지."
난 재빨리 메피스토가 준 검은 구슬의 문양을 엄지로 눌렀다.
-팟
바닥에서 빛이 솟구침과 동시에 다시 빛이 가라앉았을 때는 집회소가 아닌 전혀 다른 곳으로 나왔다.
"굳은 날에는 삶이 힘들게 느껴지는 법이지."
두 놈은 재빨리 내게서 떨어졌다.
'여기 어딘지 빨리 파악해.'
안타리엘과 나스투룩의 공간을 잡아 거꾸로 뒤집었다.
"어이쿠 지나친 발광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녀석들은 발광했으나 공간을 깨지는 못했다. 솔직히 차원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악마는 드물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악마도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을 어떻게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저 루시퍼도 끝내 이해하지 못한 탱그리의 힘. 그것은 창조의 힘이자 별이 탄생할 때의 힘을 말하며 일그러진 중력의 블랙홀을 의미한다.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에 위로 붕괴한 공간을 재생성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을 이런 악마 따위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둘이 아예 꼼짝 못 하는 것을 보니 새삼 우리엘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되었다.
우리엘은 공간을 아예 무시하는 듯했다. 심지어 그 안에서 핵분열이 일어나 별의 힘을 정통으로 맞아도 아무렇지도 않았으니.
역시 대천사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내 능력으로는 천사와 싸우는 것은 악마와 대결하는 것 보다 훨씬 까다롭다. 그들이 계속 밀키웨이로 모여드는 것은 생텀 의회에서 확실한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게헤나의 악마도 그것을 뻔히 보고만 있지 않을 거고 천사와 악마가 충돌하면 밀키웨이 은하 정도는 원자 단위로 분해 되어 버리겠지.
그걸 막을 수 있는 것은 대천사나 칠죄종뿐이다.
내가 그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어떻게 역사를 이끌어 가야 할지는 아직은 두고 볼 일이다.
"그렇게 발버둥 지치마. 곱게 죽자. 잠시 심호흡 한 번이면 족해. 어차피 너희도 소멸이라는 순환 과정을 거스를 수 없잖아?"
녀석은 공간의 벽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발악해 댔다.
안타리엘 같이 이간질로 먹고사는 놈. 나스투룩같이 교만과 속임수로 먹고사는 악마들에게 공간의 벽은 자신의 권능 따위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통곡의 벽과 같을 것이다.
두 녀석이 입을 벙긋벙긋하는 모양새를 보니 열심히 살려 달라고 비는 중이다.
자신이 살길은 자신이 가진 권능을 힘을 쓰는 것인데 한 놈은 모두 상대 탓이며 자신은 전혀 죄가 없다고 기만하고 있고 한 놈은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과 권능을 주겠다고 거짓말만 씨부렁거린다.
녀석들도 죽음이라는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히다 보니 앞뒤 안 가리고 하던 버릇 그대로 쏟아낼 뿐이다.
난 입술에 검지를 대고 조용하란 제스처를 취했다.
"조용히, 조용히. 순간적으로 소멸할 거니까 고통은 그리 크지 않을 거야. 야 너희들 내게 시비를 걸 때는 이만한 각오 정도는 했을 거 아니야?"
"뭐? 타락의 교단에서 가만 있지 않다고?"
"나야 좋지. 난 시비 거는 놈은 절대 사양하지 않아. 조금 있다가 아예 타락 교단을 뿌리째 뽑아 버릴 생각이거든."
"내 종이 되고 싶다고? 미안, 거짓말을 진실보다 좋아하는 놈은 필요 없어."
이어링에 뭔가 잡힌다. 악마들이다.
【이곳은 7고리 바이올런트입니다】
"헤, 메피 녀석 폭력과 분노의 세계로 보냈구먼."
7고리 바이올런트는 폭력에 미친 악마들, 늘 분노로 가득 차 통제 불능이 된 악마들이 머무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끝도 없이 싸움이 일어나는 곳이고 서로 소멸할 때까지 싸움질이 멈추지 않는 폭력이 지배하는 고리이다.
과거 선악의 싸움이 발발했을 때 루시퍼는 7고리의 통로를 가장 먼저 개방했다. 7고리에서 쏟아져 나온 싸움에 미친 악마들은 두려움과 공포심이라고는 일도 찾아볼 수 없는 오직 본능에 이끌려 전장을 휩쓸었다.
7고리의 악마들에 의해 천사 대군은 지리멸렬하였고 찢긴 날개가 셀 수 없이 우주 공간을 떠돌았다는 이야기는 그냥저냥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7고리에 들어온 순간 폭력에 굶주리고 살인에 미친 악마들의 표적이 되어 버린다.
"메피 이 새끼도 장난 되게 좋아하네."
- 작가의말
저번 리플 보고 나서야 확인해 보니
천회가 다 되어 가네요.
아니... 내가 몇 년 동안 뭘 하고 있었지?
회의감이 마구 드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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