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의 미학
속임의 미학
지극히 짧은 시간 안에, 아니 어쩌면 놈에겐 멈춰진 시간과도 같을 것이다.
시간을 멈춰 놓은 상태에서 벡터화한 모든 데이터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방법이다.
공격 타이밍, 거리, 시간, 위치를 수학적 기호로 치환하여 피할 곳을 계산해 낸다.
동시에 공격할 소환물도 소환해 냈다.
놈은 내가 핵폭발 등 광역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이미 내 기술의 단점을 꿰뚫고 있다.
데쓰로그를 소환하고 수많은 바퀴벌레를 이용해 방벽을 쳤다.
그러나 놈은 그것마저 꿰뚫고 틈은 만들어 냈다.
-사각
손을 미리 뺐다. 날카로운 무엇이 왼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미리 대처하지 않았다면 손이 잘렸을지도 모른다.
놈과 대치 간격이 있는데 어떤 공격을 했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사물의 벡터화로 공간을 잘랐습니다】
스페이스 커터와 흡사한 기술이다. 뒤로 물러나며 ITB에서 로블록스의 검을 꺼냈다.
세상 모든 것을 잘라 내는 검. 자를 수 없는 것이 없는 검이다.
죄의 교단 루시퍼조차 탐내 했지만, 워낙 귀한 아이템이라 환상 박물관에 진열만 해 놓았던 고대신이 만든 검이다.
-타캉
벡터화 된 공간이 갈라지는 것을 로블록스의 검으로 막았다.
-번쩍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란빛의 광선이 쏟아져 들어왔다.
허리를 뒤로 90도 이상 젖혀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 상태에서 허리를 틀어 왼쪽으로 뒹굴었다. 서 있던 자리의 공간이 잘려 나갔다.
위치를 파악하고 공격해도 녀석은 무조건 피해 버렸다.
그에 비해 나는 놈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막아 내는 수준이다. 거기에 놈이 소환한 곤충들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데쓰로그가 열심히 헬파이어를 뿜어내고 있으나 수적으로 열쇠였다.
그나마 계속 밀려드는 바퀴벌레들이 인해전술로 막아 내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EEA에 놈의 위치가 계속 떴고 그 자릴 쿼크-글루온 플라즈마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빔이 도달하기 전에 미리 계산하고 피해 버렸다.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을 정도로 벡터화 기술은 난감했다. 녀석도 공격이 통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물러서지 않고 공격에 집중했다.
오히려 다행한 일이다. 놈이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기라도 했다면 또 찾는 데 한 세월이 걸렸을 거다.
보는 이들은 팽팽한 싸움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몰리는 쪽은 나다.
헬하운드를 소환할까 하다가 말았다. 악마 추적은 확실하나 공격력은 아무래도 단순했기 때문이다.
넓다고 하지만 네크로폴리탄 서울역 정도의 공간이다.
그곳에 오만가지 곤충과 쥐, 박쥐 데쓰로그의 화염이 가득 차서 엉망이다.
인섹트로는 그 와중에도 날카로운 공격을 계속 해 댔다.
2m의 덩치를 가지고 신랄하게도 움직였다. 아수라장 속에서 움직이는 데 걸리적거림이 전혀 없었다.
녀석은 모기 한 마리의 이동 방향도 모조리 계산해서 그걸 피해 움직인다.
모기 숫자만 수백억 마리가 넘을 텐데 말이다. 녀석의 저 조그만 뇌에서 그것이 가능할지 싶었다.
나와 같은 백작의 지위를 가졌지만 파훼하기 상당히 난해한 기술을 가졌다.
스페이스 커터 같은 기술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공간까지 벡터화시켜 잘라 버리는 건데 스페이스 커터와 원리가 거의 흡사했다.
나도 스페이스 커터를 사용했지만, 녀석은 간단히 피했다. 정말 오랜만에 반월륜까지 꺼냈다.
수천 개로 쪼개 녀석에게 날렸지만, 거짓말 같게도 싹 다 피했다.
빈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좌측으로 바퀴를 우측으로 데쓰로그를 붙이고 플라즈마 빔을 쏘았다. 그와 동시에 스페이스 커터를 위로 하단으로는 반월륜 수천 개를 날렸다.
동서남북 아래위 완벽히 가둔 상태에서 공격한 것이다.
-팍
놈의 몸이 순간 폭발하듯이 확 흩어졌다. 정확히는 작은 메뚜기로 변한 거였다. 내가 쏘아낸 공격에 메뚜기가 상당히 소멸했지만, 녀석은 순식간에 제 합체해 본체로 돌아왔다.
진절머리 나는 녀석이다.
-깡
녀석의 공격이 쉴드를 건드렸다. 벡터화해서 공간을 자르더라고 차원 에너지로 만든 마그닉필드 역장 에너지는 벡터화로 자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건 녀석이 공간을 자르기는 하지만 차원까지 베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렉토닉 마그닉필드 차원 역장 쉴드는 에너지 덩어리이기 때문에 벡터화로 계산은 되어도 가르지 못하는 것 같다.
바퀴와 모기기 파리 떼뒤엉켜서 난리이다. 다시 한번 녀석을 구석으로 몰아서 움직임을 예측하고 공격을 퍼부었는데 이번에도 벡터화한 틈을 타 피했다.
예측 공격이 아예 통하지 않았다. 녀석도 나에게 데미지를 줄 만한 다양한 공격은 없었다.
이럴 때 기가스 시더 한 방이면 놈을 잡을 수 있을 텐데···.
알면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라 안타까웠다.
【곤충은 온도에 민감하니 온도를 낮추면 됩니다】
'같은 생각이다.'
언노운이 조언했지만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조금 전처럼 탱그리의 원소 치환이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거기다 언노운이 살충제 강도를 아주 높게 합성한 공식을 내놨다. 곤충은 한 호흡만 흡입해도 당장 호흡이 끊어질 정도였다.
놈의 움직임을 잡기 위해 주변을 급랭시켰다. 곤충은 모름지기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공기를 얼어붙게 했다.
절대 영도
지구 대기에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절대 영도는 물질의 입자들이 움직이지 않는 절대적인 온도인데, 이는 이론적으로 물질의 열적 운동을 완전히 중지시켰을 때 해당한다.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기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온도 치환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원소를 다루는 탱그리의 힘이라면 원자간 결합력을 유지하는 열기를 순간 절대 온도로 치환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이런 좁은 공간에서는 바로 효율이 나온다.
거기다 살충제까지 확실히 뿌렸다. 놈의 행동이 확실히 굳어졌다. 출구는 여러 곳이다.
놈과 대결하면서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놈이 도망갈 곳을 봉쇄하기 위해 언노운이 소멸성 나노봇을 내보내 출입구에 차원 역장 쉴드를 쳐 놨다.
녀석의 벡터화도 차원 에너지를 잘라 내지 못했으니 도망갈 길은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 서서히 숨통을 옥좨 가면 된다.
살충제와 온도 감소의 효과는 곧바로 드러났다. 등에, 모기, 등에, 벼룩을 비롯한 모든 곤충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 즉시 얼어붙었다.
내가 데리고 온 바퀴벌레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인섹트로의 움직임이 급격히 느려졌다. 기회를 맞춰 쿼크-글루온 플라즈마 빔을 쐈다.
맞는 순간 다시 몸체가 작은 메뚜기로 분해 되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상당수가 플라즈마에 의해 소멸했지만, 권능이 있는 한 금세 분열하여 몸체를 제형성했다.
냉각 속도가 퍼져 나가는 시간이 있다보니 녀석은 온도가 덜 낮은 쪽으로 이동했다.
그런 틈을 줄 내가 아니다. 이곳도 헬오어 금속으로 된 곳이다 보니 열 치환을 빠르게 할 수 있었다.
다만 대기 중에 습기는 얼어붙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모든 사물이 성에가 낀 것처럼 새하얗게 뒤덮여 가기 시작했다.
불행히도 내가 데려온 바퀴벌레도 꽝꽝 얼어붙었다. 이제 공기 중에 날아다니는 생물은 없었다.
인섹트로는 백작이다. 확실히 권능이 강하다 보니 냉기에 대응하고 있다. 고위 악마는 고위 악마라는 소리다.
열을 냉기로 치환했는데 금세 몸을 데우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만만치는 않았다. 거기다 내가 쿼크-글루온 플라즈마를 쏴대서 주변 온도가 확 올라 버렸기 때문에 놈은 그곳으로 피해 달아났다.
"포기해."
"키키키, 궁지로 몰았다고 생각하나? 난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어."
"허, 그러면 왜 도망가지 않은 거지?"
"당연히 널 죽일 기회를 잡기 위해서지!"
녀석이 갑자기 내게 가까이 붙었다. 순간 놀라 로블룩스의 검을 휘두르려 했다.
-뻐뻥
폭발을 일으켰다. 내 머리통은 MG50 캘리버에 정통으로 맞은 수박처럼 터져 올랐다.
뇌수와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크하하. 우키키킼! 바로 이 맛이지. 이 맛이야. 승리는 내 것이었어."
녀석이 고막에 숨겨 놓았던 폭탄 벌레를 폭발시킨 것이다.
가까이 붙어야 내게 들키지 않고 권능을 주입할 수 있었고 동시에 터트릴 수 있었던 거였다.
녀석은 벡터화로 그 기회를 잡았고 접근하는 동시에 권능을 주입하고 폭탄 벌레를 터뜨린 것이다.
"크하하. 감이 인간 따위가 내 상대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나?
"잡았다. 이렇게 붙어야 벡터화를 무료화할 수 있었어."
녀석의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내 손은 녀석의 등에 닿았다. 그 순간 바로 열을 치환했다.
"케엑!"
녀석은 내가 열기를 냉기로 치환할 줄 알고 모든 권능을 동원해 몸 속 온도를 올렸다. 내가 치환한 것은 냉기가 아니라 반대로 열이었다.
용암에 떨어진 알루미늄처럼 온몸이 순식간에 줄줄 녹았다. 너무나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놈은 벡터화로 대처하지 못했다.
온몸이 죽이 되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몸에 가해진 열은 태양 표면 온도와 같았으니까.
잡는 데 애를 먹었다. 이 수를 쓰지 않았다면 놈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녀석은 싸울 때부터 내 고막에 넣어 놓은 폭탄 벌레에 너무 과한 집착을 보였다. 그래서 이곳에 나오기 전에 내가 분신을 써서 떼어낸 것도, 본체인 나는 몇 겹이나 되는 공간 안에 숨어서 싸이킥 파워로 분신을 움직인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시냅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곳은 터널보다 넓은 곳이라 확보할 공간이 충분했고 공간을 수 겹으로 접고 숨는 동안 다행히 녀석은 눈치채지 못했다.
녀석이 쿼크-글루온 플라즈마를 피해 분산되었을 때 나는 재빨리 분신을 만들고 만들어 놓은 공간 안으로 숨었다.
녀석이 쓰러트린 것은 잘 만든 내 분신일 뿐이다. 그것은 곧 공기 중으로 흡수되듯이 사라졌다.
분신이라고 해도 머리통이 박살이 난 내 모습을 보는 것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삐웅
뒤쪽에서 게이트가 열렸다. 그 말인즉슨 인섹트로가 소멸했다는 뜻이다.
절대 간단히 잡은 것은 아니다. 백작 하나 잡는데 이런 고생을 했다. 알다시피 이 정도 악마는 게헤나에서 발에 채고 채일 정도다.
피의 교단은 단지 자존감과 체면 때문에 백작 이상의 고위 악마를 상대로 내세울 수 없었던 것이 나에게는 작은 행운과 같은 것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파장 분위기다. 인상이 완전히 굳어진 베르들레와 일행은 주섬주섬 일어나 곧바로 퇴장해 버렸다.
"교단에서 필요한 것은 모조리 지원할 것이고 이 순간 부로 세 명에게 걸린 피의 교단 현상금은 무효화 되었네."
"어휴, 진짜 살 떨리는 한 판이었어."
위스퍼모어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헤헤, 저는 주인님이 당연히 이기실 거로 생각했습니다. 헤헤."
토트가 말했다.
"피의 교단은 어쩔수 없이 물러갔다 할지라도 타락 교단에서 건 현상금은 그대로야. 해결하기 전까지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네. 현실로 도망가는 것도 좋은 수 중 하나지."
"그렇지 않아도 갈 곳이 있어서요."
이로써 블러드 투투아레나의 상황은 완전히 끝이 났다.
우리 세 명은 바알의 성으로 돌아왔다. 족제비 아보림이 환영 만찬을 준비해 놓았다.
다행히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따로 마련해 놓는 배려를 보였다.
나도 솔직히 아레나를 치르면서 긴장 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서 오늘 하루는 편히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위스퍼모어도 파리 교단 소속이 됐고 토드스웰은 여전히 내 비위를 맞춘다고 야단이다. 녀석의 권능이 비굴함이기에 비굴거리는 것이 천직처럼 몸에 밴 녀석이라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할 녀석이 아니다. 애초에 비굴한 개구리 그 자체니까.
여기서 하루는 현실에서는 한 달이다. 투투아레나 전을 포함해서 총 4일을 묵은 셈이니 넉 달이 훌쩍 지났다.
위스퍼모어는 약속대로 다크 에덴의 개구멍을 아는 놈을 수소문하기 위해 바알의 성을 나섰다.
개구리 토드스웰은 환각의 마천루를 마음대로 활보할 수 있으니 칩 50개를 쥐여 주고 쓸만한 정보나 모으라고 내보냈다.
파리 교단의 교원이고 루시퍼의 낙인까지 물려받았으니 웬만한 악마는 개구리를 건드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방에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밤새워 마시고 떠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침에 룸서비스가 왔었지만, 청소를 거부했다.
혼자 생각할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꼭 해결해야 하나? 그깟 현상금이 뭐 대단하다고···.'
피의 교단 측은 해결됐지만 타락 교단에서 건 순수한 인간 영혼 천 개는 그 어떤 악마를 막론하고 탐낼만한 값어치가 차고 넘치는 보상액이다.
이걸 해결하지 않는 이상 게헤나에서는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물론 꼭 게헤나에 있을 필요는 없는 이상 그냥 무시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언노운은 현상금보다는 거짓된 여왕의 티아라 이벤트를 강조했다.
언노운이 강조한다며 이 또한 메인 스토리 위에 있는 이벤트라고 생각해야겠지.
그리고 아직도 태고의 악마 세 마리 소환하는 것은 능력 부족이라고 한다.
그건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아레나 전투를 통해 권능이 상당히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간 영혼을 포식하는 것은 정말 내키지 않았다. 언노운도 반대하는 견해고···.
나는 락케를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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