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차원-1
1,897차원-1
바퀴벌레. 이놈의 바퀴벌레는 신물이 난다. 그러나 어쩌겠냐···. 내 사역마인걸.
사람으로 변하라면 수많은 바퀴벌레가 한데 뭉쳐서 변하는 거라. 그냥 한 마리 왕바퀴만으로 만족하련다.
이쪽에서 5일이니 현실에서는 4달이 더 지났을 거다. 이곳 하루 24시간이면 현실에서는 576시간이 흘러 버리는 셈이다.
"분위기는 어때?"
"직접 보셔야 이해되실 겁니다."
"그 정도야?"
"티아라 정보는 없고?"
"아직입니다. 뿌려 놓은 씨가 많으니 곧 귀에 들려올 겁니다."
"그곳에 대해 간단히 브리핑 해 봐."
락케는 1,897차원의 지구에 관해 설명했다.
인류는 번창했고 과학력은 우주 식민지 건설 수준까지 이른 모양이다.
"마법?"
"네, 그곳은 마법이 사회 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웃기네. 어째서?"
"제가 알고 있기론 한 천사의 개입으로 인한 것 같습니다. 그는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인간의 아스트랄계를 자극하여 개화시켰습니다."
"그래? 그러면 아스트랄계로부터 전지전능한 힘을 뽑아 쓰겠군. 어래? 문제가 상당할 건데?"
"생각하시는 바 대롭니다. 솔직히 말해 개판이죠."
자 아스트랄계로 연결되었다고 치자. 그곳은 태고신의 사념이 결집한 장소다.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창조의 힘이다. 대충 아스트랄계로 연결되면 이 창조의 힘에 연결될 확률이 가장 높다.
문제는 창조의 힘뿐만 아니라 별의별 사념이 다 들어 있다는 것이다. 재수 없게 악의 사념에 연결되기라도 한다면 최악의 빌런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참 과학과 마법이 공존하는 세계라, 재미있겠는데?"
교차로 악마인 문지기 로우슬로에서 얻은 정보로 1897은 천사의 힘이 강하게 미치는 차원 중 하나이다. 악마는 감히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는 곳이 1,897차원이다.
원혼이나 악령 등은 인간에게 퇴마 되기 일쑤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은 악마를 효과적으로 물리칠 방법을 알고 있고 무엇보다 악마는 인간의 나약한 정신을 파고드는 것이 기본 공략법인데 아스트랄계와 연결된 인류는 악마가 파고들 틈조차 보이지 않는다.
"주신 아이템 효과 덕분에 들키지 않고 있었지, 그렇지 않으면 즉시 제거당했을 겁니다. 그곳은 악마가 거주하기엔 최악의 조건을 가졌습니다."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이틀 전에 교차로 악마 집회소에서 1897번 패찰은 받아놨다. 이제 공작이 아닌 백작의 신분이라 조금 더 말발이 먹히는 곳이 됐다.
교차로 악마 중에서 그나마 높은 계급을 가진 악마의 등급은 후작이다. 그다음으로 백작이니 어는 정도는 말발이 먹힌다.
시간만 신경쓰지 않는다면 지옥에 살아도 무방하지 싶다. 물론 그만큼 능력이 뒷받침이 되어 줘야겠지만.
락케가 준비한 차원 터널을 통해 1,897번의 차원으로 건너왔다.
낡은 골목길이 나를 맞이했다.
흔한 뉴욕의 뒷골목 느낌이 나는 곳이다.
아쉽게도 이 세계는 국가라는 개념이 없는 단일 통합 정치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니 중국이니 미국이니 영국이니 이따위 국가는 애초에 없다.
민족 구분 없이 지구 통합 연방 '자드'가 입법, 사법, 행정 모두를 담당한다.
아, 구분이 있다면 양 파벌 정도가 있는데 정신적인 계열 즉 마법사 계열인 워로드 학파 자하크와 과학력을 중심으로 한 신디케이트 바이오닉 소사이어티(Syndicate Biotech Society) 일명 SBS 있다.
연합 정부 자드로 인해 마법과 과학으로 양분된 세상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악재는 계속 터진다. 대부분의 악재는 워로드 학파인 자하크에서 일어난다.
즉 내가 우려했던 잘못된 접촉으로 악의 사념이 넘어온 경우다.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놈이 되어 버린다.
이 세계에서 그런 놈들을 빌런 취급하며 퇴치한다. 우리가 초자연적인 현상이라 일컫는 슈퍼 내츄럴은 이곳에서는 일상생활과 같다.
일단 이곳에 왔으니, 권능은 아예 사용할 수 없고 인간인 모습 그대로 다니는 편이 낫다. 시냅스가 있는 이상 주변 환경에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으니까.
"세상에 왓처가 몇 명이야? 네 명이나 되네."
나는 혀를 내 둘렀다. 보통 지구 하나에 왓처 한 천사다. 그런데 이 세계는 정확히 네 명의 왓처가 있다.
이제 왓처의 눈길을 피하기는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나의 위계가 왓처의 능력을 가뿐히 뛰어넘기 때문이다. 왓처는 대상을 볼 때 틈이 있는데 딱 0.5초다. 나는 0.5초 안에 왓처를 속일 수 있는 수학적 한계는 끝장나게 많다.
솔직히 마음먹고 덤비면 왓처를 소멸 시킬수도 있다. 이곳에서는 신성력을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는 이점도 있으니까.
기본적인 상황은 락케에 들었고 티아라를 찾기 위해서 이 세계를 좀 더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삼한 날씨다. 포근한 초가을 날씨고 하늘은 무색투명이 아니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색이다.
골목길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오는데 세상이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자동차라고 보는 것이 두 종류. 하나는 나는 부상 종류이고 또 한 부류는 마법으로 나는 요상한 탈것도 즐비했다.
택시도 보이고 자가용에 여러 가지 희한한 것들이 하늘을 날고 있다. 심지어 폭신폭신한 곰 인형을 타고 날아다니는 사람도 보였다.
시냅스로 구성 인자를 확인해 보니 하늘을 나는 것은 대부분 중력 조작계로 능력자들이고 그외 반은 순수 기계의 부양력으로 나는 자동차이다. 자동차라고 부르기에도 뭣한 것들이다.
걷는 사람도 별로 없고 대부분 무언가를 이용해 30cm 이상 공중을 떠다니고 있다. 심지어 아무 동력 없이 집진 된 마력으로 중력을 거슬러 날아가는 사람도 있다.
야, 이곳은 정말 별천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가봐야 할 곳이 대도서관이다.
택시를 잡았다. 이곳에도 당연히 경제생활을 영위하기에 화폐가 존재한다. 락케가 넉넉히 화폐를 준비해 둔 모양이다.
제이노에 가기 전에 도서관에 들러 여기 역사를 살펴보려 했다. 시민권도 없고 아무것도 없지만 락케가 미리 준비해 둔 가짜 신분을 이용해 도서관 출입은 어렵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역사 관련 책자를 모두 찾아와서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랜만에 독서삼매경에 빠질 듯했지만, 그럴 필요 없는 것이 책의 구조까지 다 분석해 버리는 시냅스 덕분에 책 한 권 카피 떠서 지식 흡수하는 데 채 1분도 안 걸렸다.
'태초의 차원에서 연결되는 차원이지?'
【그렇습니다】
'흐름은 큰 변화가 없네.'
【태초로 인류가 탄생한 에덴은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태초의 차원에서 아니 에덴에서 탄생한 인류가 가장 기본이 되는 건가? 그 이전 원시 인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객원 분류가 이루어집니다. 에덴에서 탄생한 인류를 시조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복잡하네.'
여기는 우리와 다르다. 에덴인지 아담인지 인류가 탄생한 것은 종교적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과거 이곳도 구석기, 신석기, 철기 문명을 거쳤지만, 과학의 발달과 함께 마법이 함께 했다는 것이 독특하다.
그것은 한 천사의 개입인데 그 천사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당연히 역사책에는 천사의 언급은 없다.
인류가 신석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대혁명을 이루는 시점에서 마법적 역량도 함께 폭발한 것 같다.
그렇게 마법과 과학은 함께 발전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과거에는 여러 국가가 있었고 국가별로 치열한 싸움도 있었고 그런 부분은 우리네 역사와 비슷했다.
몇 번의 세계 대전도 겪었고 그 이후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마법 학파와 과학을 신봉하는 부류로 나뉘어 지게 되고 마법 학파에 의해 국가 개념이 무너지게 되었고 그 순간 양측은 대전쟁을 시작했다. 마법과 과학의 싸움이었다.
그 전쟁은 인류를 말살 위기까지 몰고 갔는데 그때 탄생한 것이 연방 정부 속칭 자드다. 마법사 워로드 학파와 과학 파가 결국 평화적으로 손을 잡으면서 연방 정부 자드가 탄생한 것이다.
오직 인류애를 위해, 인종, 국가, 피부색을 떠나 지구에 생존하는 인간은 그 어떤 구분 없이 모든 혜택을 고루 받는다. 그것은 마법이나 비 마법적인 것을 떠나 공통적인 상황이 됐다.
인류는 양측이 서로 경쟁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대전쟁 이후 약 삼백 년 정도 되는 시점이다.
대체로 문제는 마법 학파 쪽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인류를 말살 위기까지 몰고 갔던 대전쟁을 일으킨 것도 마법 학파의 한 인물 때문이다.
마르구스 다크펠.
그를 지칭하는 단어가 너무 많다. 근대사를 읽으면 그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은 것이 없다.
표면적으로는 대척점을 향한 모험가라고 하지만 사악한 본성을 감춘 대악마라고 말한다.
아마 그가 접촉한 아스트랄계의 사념이 사악했던 모양이다.
태고신의 사념이다. 인간의 정신은 접촉과 동시에 오염이 된다. 그 사악함을 절대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르구스 다크펠 또는 만인의 죽음이라 불리는 사나이. 마법 학파에서는 이름조차 거론하기 거북해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의 존재가 삭제된 이후 양측은 약 삼백 년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고 연방 정부는 더없는 번영을 누리고 있다.
SBS, 신디게이트 바이오닉 소사이어티는 지속해 과학을 발달시켰고 우주로 뻗쳐나가 식민지 콜로니를 건설하기 시작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화성에도 인류의 기지 건설이 되어 있고 달과 지구의 중력이 상쇄되는 일명 라그랑지안 점에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콜로니를 건설했다.
지구와 달 사이 중력에 의해 서로의 중간에 있는 5개의 라그랑지안 점이 있는 데 가장 잘 알려진 L1, L2, L3, L4, L5가 있으면 각 해당 지역에 콜로니가 건설되어 있고 지금 L5에 신생 콜로니 건설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마법사들은 내적 정신을 통해 자기 수행에 중점을 이루고 생활하고 있다면 SBS는 더욱 진보된 과학적 이기를 누리려 한다.
덕분에 지구에서는 크고 작은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들은 과학 학파를 받아 들이고는 있지만 과학으로 인해 지구의 자연이 훼손되는 것만큼은 결사반대한다. 지구는 포화 상태고, 더는 개발할 곳이 없었다.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마법 학파는 지구의 반 정도는 자연의 흐름에 맡기려 한다.
그래서 SBS는 지구를 떠나 우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 현 1,897번 차원의 모습이다.
종족 구분 없이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복지 혜택부터 자드 정부가 제공하는 기본 교유 이수, 노동법에 따른 노동 제공을 기본 골자로 한다.
흑인, 백인, 황인의 구분이 없고 당연히 인종 차별 또한 없다. 공동체 의식을 매우 강조하고 자드에서는 마법사 과학자 구분 없이 공평한 혜택을 받는다.
과학자라도 기초적인 생활 마법은 기초 이수 교육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지구의 석탄이나 석유 등 기본 자원을 아끼고 보호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화석 연료를 태우지 않고 불을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 또한 원소 조합으로 바로 만들어 내어 식음 할 수 있으니 물 걱정 또한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대충 역사를 훑었고···. ! 뭐야 저놈은?"
깜짝 놀랐다. 기지개 켤 겸 고개를 들었는데 눈앞으로 어떤 인간 한 명이 지나갔다. 정확히는 인간이 아닌 천사였다.
아니 그렇다고 또 완벽한 천사는 아니다. 인간과 천사 반반이 섞인 묘한 느낌의 인간이었다.
'뭐지? 저놈은 천사인가 인간인가? 네필림은 아닌 것 같지?'
【인간의 몸에 빙의한 천사 같습니다】
'악마도 아니고 천사가 인간의 몸에 왜 빙의해? 블레싱 글로리도 있는데?'
혹시나 들킬까 봐 못 본 척이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괜히 트러블 일으킬 필요가 없었다. 이 차원에는 보는 눈이 많아서 아차 실수하면 왓처에 바로 들킬 테니까 말이다.
그때 주머니 속에서 락케가 말했다.
"저런 반푼이 놈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이곳은 날개가 인간계로 깊게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인간들 틈에 천사가 끼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 원래 천사는 인간의 역사에 관여하지 않잖아? 불문율 아니야?"
"이곳 1,897번에서는 다릅니다. 이 차원 인간은 아스트랄계가 완전히 열려 버렸기에 특별 보호 대상군에 포함됩니다. 천사가 직접 개입하여 인간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세상이네. 인간은 천사가 개입한 걸 알고는 있는 거야?"
"음, 모르는 인간이 대다수이지만 그 비밀을 알고 있는 단체가 있습니다."
"허참, 희한한 일이네. 이러면 악마 따위는 고개를 내밀고 싶어도 내밀 수 없겠는데···. 이래서 티아라 행방을 알면서도 훔치지 못하는 건가? 라이너는 어딨어?"
"안전한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가 보시겠습니까?"
"일단 그러자. 이곳에 더 있을 필요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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