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의 비밀 15 – 미친 능력
연옥의 비밀 15 – 미친 능력
'어라리오?'
소음?
냄새?
시각?
전혀 다른 느낌으로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하늘의 장막까지 보였다.
이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들리기 시작했고 냄새까지 났다.
"잠깐만 위치 찍지마."
머리 위 공간에서 메타킷을 꺼냈다.
메타킷은 눈을 번쩍 뜨고 뭐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손가락으로 입을 막았다.
"입에 재갈 물린다. 난 거의 일 년 동안 소음 지옥에 있었어. 조용히 있고 싶다."
-킁, 킁, 킁
메타킷의 냄새.
꼬릿한 살냄새. 전에는 전혀 느껴지지 않던 아니 무심히 지나갔을 수도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살냄새가 너무 선명하게 뇌리에 박힌다.
"집중해서 하라고 멍청아."
"난 세상 살기 싫어."
"내가 한 게 뭐야? 이건 모두 쓸데없는 일이라고."
도시의 소음이 수도 없이 들린다. 아스팔트 냄새, 시멘트 냄새, 공기증에 섞여 있는 모든 주변 냄새가 일일이 세심하게 구분되어 들어온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그 냄새의 원인 즉 무슨 냄새인지 머릿속에 영상처럼 떠오른다는 거다.
시각은 아무래도 가시거리가 있지만 일단 눈 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무엇인지 또 영상처럼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런데 어지럽지도 복잡하지도 혼돈도 안 된다. 가지런히 정리되는 숫자판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에 딱딱 알아서 들어가고 있었다.
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들어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시냅스의 정보망이 너무나 쉽게 한꺼번에 처리해 버린다. 내 뇌만이라면 이 많은 정보를 일순간에 처리할 수 없을 건데 초거대 압축된 아스트랄계의 신경망이 거짓말 같게도 순식간에 정보를 처리해 버리고 있다.
그냥 신경 쓰지 않아도 제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도 머릿속은 복잡하지 않고 오히려 시원하고 또 맑고 상쾌한 느낌까지 있다.
이 초거대 뇌는 제 할 일을 자동차리라는 것뿐인데 신체 오감뿐만 아니라 육감까지 수백, 수천 배는 증가한 듯한 느낌이다.
메타킷을 다시 공간 안에 집어넣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데 몸놀림이 이상하다 너무 가볍다.
뭐랄까 군더더기가 없다고 해야 하나. 빈틈없는 완벽한 동작을 구사하는 것 같은 느낌? 이게 말하기가 뭣 한데 너무 편하고 몸의 균형이 거의 아니 너무 완벽하다는 것이다.
뇌의 명령체계는 신경을 통해 근육을 제어하는데 이게 아스트랄계의 초거대 신경망이 나노 단위 아래까지 제어할 수 있다 보니 몸을 움직일 때 쓸데없는 근육의 낭비를 아예 제로화 시키는 극단적인 움직임까지 가능하다는 거였다.
그냥 달린다는 것을 떠나 달리는 데 비효율적으로 낭비되는 동작을 싹 다 제거하여 완벽한 동작을 만들어 내는 것. 즉 과거 습관에서 오는 비효율적인 몸짓 등을 아예 없애 버렸다.
그런데도 너무 편안하고 중심도 완벽하고 주변 사물의 구조나 크기, 부피 등의 정보가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는데도 전혀 낯설지 않다.
지금 이거 언노운이 해줬다면 어지러워서 이어링을 껐을 것이다. 시간 정도를 바탕으로 사물의 모든 구조적 분석을 싹 다 해 버리는 말 그대로 초 울트라 슈퍼컴퓨터 연산 처리 장치가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언노운은 측정 범위 내 도시 내에서 나오는 특정 주파수를 읽은 거지만, 나는 오직 메타킷의 냄새로만 추적할 수 있었다.
'크레스트우드 메디컬 플라자'
'병원?···.'
얼마 되지 않는 곳에서 냄새의 근원은 이 건물 안에서 풍겨 오고 있었다.
냄새가 진한 곳이다. 소독제와 청소제의 냄새, 의약품 냄새, 의료기기와 장비의 냄새, 환자의 냄새, 음식 냄새 등 다양한 냄새가 섞여 나오고 있다.
각 냄새를 풍기는 요인까지 정확히 머리에 그려졌다. 수많은 정보가 스쳐 가는 데 전혀 이상하지 않다. 마치 저절로 기억되는 느낌이며 언제든지 생각만 하면 그 정보가 그냥 영상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이 정도면 이어링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의사, 환자, 기타 여러 인간도 많다. 물론 이들은 영혼이고 릴림이 각자 설정해 놓은 대로 움직이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희한한 기분이다. 이 많은 정보가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데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들어오는 족족 깔끔히 정리되는 기분이랄까.
지하로 내려갔다. 냉동창고 쪽이다.
그럼 시신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포르말린 냄새가 지독하게 느껴졌지만, 이것 또한 뭐랄까? 포르말린 냄새더라고만 알고 있지 코를 찌른다거나 눈살을 찌푸릴 정도는 아닌 거다.
시냅스가 내 오감을 완벽히 제어하는 것 같다. 태양만 한 뇌를 달 크기로 축소해 놨으니 나 정도를 제어하는 것은 모래알 하나 집어 올리는 그것보다 쉬울 것이다.
경비가 무슨 일로 왔냐고 묻는다.
이건 또 무슨 역할극 놀이라도 해 줘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환장하게도 눈빛을 통해 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이 저절로 읽히는 것이다. 아주 자그마한 영혼 덩어리가 눈앞에 있는 것뿐 사람의 외형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과거의 짐일 뿐이다.
이 조그만 영혼의 스냅스를 제어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라고 생각됐다.
"찾아야 할 것이 있어."
"들어가시죠."
그래 이 정도 능력이면 인간 정도의 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어하거나 심지어 기억을 지우고 쓸 수도 있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사람 하나 우습게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게 됐다. 혹시 악마나 천사에게도 통할까? 라는 생각도 했다.
생각이 미치자. 이 작은 영혼의 시냅스 구성 구조가 설계 도면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특히 기억 뉴런에 저장된 모든 데이터를 다운로드하여 영상화 시킬 수 있으며 업로드도 할 수 있는데 이때 원래 기억에 수정을 끼치거나 재구성하여 업로드하면 이 사람의 기억을 영원히 바꿀 수 있다는 소리다.
영안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데 나 자신이 무섭게 느껴졌다. 점점 인간으로부터는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신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어떻게 보면 토착신 정도의 능력을 갖춘 것도 사실이고 아니 어쩌면 이제 토착신의 능력까지 초월하지 않았나 싶다.
토착 신들이 나를 토착신으로 승격해서 아예 모노스 테리움으로 가입 권고했을 정도니까.
토착신도 나름대로 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크지 않다. 악마와 천사 사이에서 끼어버린 탓이다. 천사에 밀려 게헤나로 쫓겨났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지옥의 악마를 동료로 삼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냄새가 확실하다 49번 보관함을 끌어당겼다.
그곳에는 머리 팔다리 없는 몸뚱이만 달랑 냉동된 채로 들어 있었다. 허연 김이 무럭무럭 새어 나와 바닥에 깔렸다.
첫눈에 왼쪽 어깨에 찍힌 낙인 같은 표식이 들어왔다. 그건 숫자 1이었다.
최초의 실험 대상자. 지구 원시 인류 표본 실험 1호가 바로 메타킷이었다.
살펴볼 필요도 없이 냄새와 조직 구성이 같다.
누가 숨겨 놓은 건지 어디 뒹굴다 이곳에 있는지는 알수 없다.
직접 세포 조직 사이로 열감을 밀어 넣어 냉동을 해제했다. 말캉한 살점이 느껴지고 세포 간 온도도 37도 정도로 맞췄다.
그리고 공간에서 메타킷의 머리통을 꺼내 목에 붙였더니 신기하게 잘린 위치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누가 이렇게 자른 거지?'
【폐기 처분 대상이었으므로 폐기 될 때 자른 듯합니다】
'이상하네. 소각 처리하지 왜 이런 식으로 폐기를 했지?'
【에덴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정확한 내용은 저도 알지 못합니다】
목은 저절로 붙지 않는다. 메타킷의 치유력은 형편없다. 그렇다고 신성력을 사용하면 문제가 생길 것 같고 언노운의 나노봇을 투여해 몸체에 머리통을 붙였다.
그때 메타킷의 기억 구조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심층 다이브를 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억의 단편들이고 지금은 메타킷의 인생 스토리 모두를 볼 수 있었다.
시각적인 부분 그러니까 어미 자궁을 빠져나와 첫눈을 떴을 때 봤던 그 모든 것이 영상화 되어 상영 중이었다.
'에덴이다.'
난 본능적으로 메타킷을 데리고 온 날개들이 들어서는 정원 같은 곳이 에덴임을 단번에 알아봤다.
눈이 부시다. 그의 기억 속에 남은 것은 그것이 전부다.
야훼를 바라보는 그의 기억은 그냥 빚더미로 보여졌다. 그리고 기억이 끊겼는데 아마도 실험체로서 실험이 이뤄진 듯했다. 그 과정은 그의 뇌도 멈춰져 있었으므로 그 기억은 살려낼 수 없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몸은 움직이지 않고 유리관 같은 곳에 들어 있었고 주변은 이상한 액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물은 아닌 것 같다. 호흡하는 데 이상은 없고 간혹 주변으로 날개를 단 천사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몇 명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 빛 덩이로 허공을 떠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얼마 동안 지내다가 한 사내가 다가왔다. 정확히는 천사였다. 음 그런데 날개가 보이지 않는다. 새하얀 흰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옷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망토 같은 것을 앞뒤로 걸치고 있는 듯한 느낌인데 얼굴은 확실히 인간이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특히 얼굴 가득 수염이 한가득한 인물이다. 이 인물은 메타킷이 들어 있는 시험관은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뭐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 입 모양으로 단어를 유추해 보면.
'가엾은, 한심한, 노력, 실패, 다음번, 폐기'
그가 고개를 돌려대면서 누군가와 대화했기 때문에 이쪽을 볼 때만 그 입 모양을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잠이 들었나?
다음 장면에서 소란스러운 것 같은 느낌이 났다.
다시 그와 다른 천사가 메타킷의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있다.
'차원이 뒤틀린다. 아스트랄계와 연결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문제가 발생했다. 다른 공간으로 전이시키는 수밖에 없다. 폭주한다. 이쪽 세계로 사념이 넘어온다. 막아야 한다.'
부산함.
'멈춰!'
눈이 부시게 밝은 빛이 등장했다. 너무나 밝아서 대상 확인이 안 된다. 이 분이 야훼인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새하얀 손 하나가 메타킷을 어루만졌다.
영상에는 목소리가 없다. 그건 메타킷이 들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오직 사람 모양을 한 천사의 입 모양으로 유추할 수 있고 환하게 빛나는 야훼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폐기 처분 직전 메타킷에 연결된 아스트랄계가 폭주했고 다량의 사념이 이쪽 현실계로 넘어왔다. 야훼는 그 부분은 모아 다른 차원으로 만들었다. 아스트랄계와 연결이 끊어진 메타킷의 사념은 야훼가 따로 만든 부분으로 연결되어 또 하나의 차원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바로 연옥 탄생의 순간이었다.
왜 연옥이 이렇게 구성된 것인지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아스트랄계로 넘어온 사념이 바로 창조의 사념이었고 그래서 이곳을 관리하는 십이사도는 이 창조의 사념을 이용해 이 차원에 인간의 역사에 맞는 현실 도시를 건설하고 각각의 역할로 인간 영혼을 배치해 놓은 것이다.
【접합 완료했습니다】
"어때?"
"뭐가?"
"몸을 찾았잖아."
"아직 찾을 것이 남았으니 그리 기쁘지 않아."
"네 몸은 누가 잘라서 숨겨 놨지?"
"몰라."
"그 수염 덥수룩하게 난 날개 없는 천사 같은데?"
"너, 너도 알고 있구나. 그놈은···, 그놈은···."
트라우마겠지. 그 덥수룩 수염 천사가 메타킷을 실험한 장본이고 연구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누구인지 전혀 기록이 없다. 언노운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왜냐는 물음에 다른 차원 모든 전생을 경험하는 동안 그 천사를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즉 다른 차원의 난 그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죽었거나 포기했다는 뜻이다.
"실패했다고 하긴 했는데···. 신체는 완벽한 데? 유전자 구성도 정상이고 이 정도면 정상 수치를 뛰어난 신인류라고 해도 되겠다. 세포 노화 속도를 보면 거의 5천 년 정도 살아도 넉넉하고 상당히 많은 실험이 이뤄졌구나. 너."
"나야 알 수 없지. 그들이 네게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어."
"기억을 할 수가 없겠지. 그땐 과학 지식이 없었을 테니까. 가만있자. 네 머리통을 가져간 것은 그 털보 천사 같은데 어떻게 루시퍼의 손에 들어갔지?"
시험 실패 후 기억이 끊어졌다. 그건 모든 생리 활동이 정지됐다는 것이다. 어떻게 온몸이 산산이 토막이 나도 살아 있을 수 있는가 하면 뇌에 공급하는 산소는 귓구멍과 콧구멍을 통해서 가능하게 되어 있다.
이건 아마도 머리통을 떼어낸 이후 시술한 것 같았다. 생명만 유지한 체 유리 상자 속에 들어있다가 만난 것이 바로 난데 그동안 루시퍼 외에 누군가의 손을 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정작 본인은 동면 상태라 주변의 환경변화는 인지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몸 다 모아서 무엇을 하게?"
"나도 몰라. 그냥 다른 사람처럼 몸을 가지고 싶은 생각뿐이야."
"이제 심장을 통해 피를 돌릴 거야. 잠깐 호흡이 바뀔 거니까 준비해. 시작한다."
메타킷의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경동맥을 통해 피가 돌기 시작하자 메타킷은 입을 크게 벌리고 산소를 빨아 당겼다.
"얼마 만에 숨을 쉬는 건지 모르겠군. 그런데 내 몸 조각이 다 모이면 안 된다고 하던데···."
"알아. 마지막에 그 털보 천사가 한 말이야. 아마도 그게 네가 들었던 마지막 말이어서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네."
"참, 사실 난 메타킷이 아니라 넘버1인데···."
"넘버1이라고 부르기에는 그렇잖아 메타킷이 좋아. 차른 차원에서 대부분 그렇게 불렀고 네 정보가 잠겨 있는 것을 보니 너도 핵심 항목이라는 소린데. 일단 네 몸 전부를 찾게 되면 왜 안 된다고 했는지 알게 될 거야.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 왜 깨끗이 소각하지 않고 신체를 절단해서 연옥에다 감춰 놓았지?"
"글쎄 그건 나도 몰라."
"아, 그래, 당연히 너도 모를 거야. 내가 괜한 질문을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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