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브 엔 테이크
기브 엔 테이크
위스퍼모어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 미친 인간이 그런 사고를 칠 줄은 진짜 예상 밖이었다. 이곳이 어딘가? 지옥의 한가운데이다. 감히 인간 따위가 설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소리다.
네필림이라고 소문이 돌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루시퍼가 만든 인공 계량 종이라는 소문이다. 평범한 인간이 제멋대로 나돌아 다닐 수 있는 것은 루시퍼나 바알의 낙인 때문일 것이 중론이었다.
위스퍼모어에겐 그냥 호기심 많은 인간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단지 엄청난 말도 안 되는 현상금이 걸려 있다는 사실에는 살짝 의문이 가긴 갔지만···.
이제야 그 이유를 알수 있을 것 같았다. 녀석에게 그런 황당한 금액이 책정된 진정한 이유를···.
"여기입니다요. 여기로."
한참 헤맨 후에 크로포드가 황천문을 찾아냈다.
"어디로 가실깝쇼?"
"환각의 마천루로 가야지."
"미치겠네. 미치겠어. 이걸 어떻게 무마하지?"
위스퍼모어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소문을 제어하고 퍼뜨린 것이 자신인 터에 이제 피의 교단 공적으로 몰릴 판이다.
"가자. 내가 좋은 방법을 제시해 줄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야.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네. 크."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지금 와서 후회한다고 쏟아진 물이 다시 담기진 않지."
"맞는 말씀입니다요. 헤헤."
"가자고, 일단 살고 봐야지."
환각의 마천루에 도착한 우리는 곧장 바알의 성으로 갔다.
"이 둘은 내가 초대한 손님이야.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면···."
"아뇨, 괜찮습니다. 아라곤님의 손님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이건 호텔 회장 아들급 대우다.
내 방으로 올라온 우리는 의자에 푹 퍼져서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둘의 충격은 상당했다.
위스퍼모어는 자신의 앞날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개구리는 나나 위스퍼모어 눈치 보느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래, 아까 했던 말···. 무슨 방법인지 들어나 보자."
"그전에 내 이야기부터 먼저 하자."
"그래, 그래 좋아, 마음대로 해 보라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수 없잖아?"
"에덴의 위치를 아는 놈을 찾고 있어."
"에덴? 에덴이라면 그거 말하는 거지?"
"야훼가 세운 실험실. 지금은 루시퍼가 가지고 있지."
"아이쿠야. 이거 정말 건들면 안 되는 걸 건드렸구나."
"넌 소문만 내주면 돼. 알지?"
"내 모가지 언제 떨어질지도 몰라. 그 짓을 했으니 난 소명감이라고."
"야 인마 이참에 갈아타. 뭐 하러 피의 교단에 충성해? 이왕 이렇게 된 것 운명의 생명줄을 잘 잡아야지."
"무슨 소리야?"
"피의 교단 탈퇴하고 파리 교단으로 갈아타."
"그게 쉬운 줄 알아? 교단 갈아탄다고 해도 내 죄가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네가 이곳 생리를 잘 모르는 모양인데 한 번 배신한 놈에게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단 말이야."
"배신은 아니지. 내가 추천장 써줄게. 파리 교단에 가입하면 함부로 널 대할 놈이 없을 거야. 아니면 한동안 교단에 숨어 있던가?"
"헤헤, 아라곤님의 사역마가 되면 낙인을 얻을 수 있는데 그럼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습죠. 헤헤."
"뭐? 나더러 인간 따위의 사역마가 되라고! 죽기보다 못한 짓을 하라니 네놈은 이놈의 사역마가 될 수 있겠어?"
개구리의 눈이 반짝 빛났다.
"사역마만 될 수 있다면 뭐라도 합니다. 언제까지 이런 구질구질한 삼류인생만 답습할 수 있겠습니까? 인생에서 기회란 자주 오는 것이 아닙죠. 왔을때 확실히 잡는 것이 제 신조입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제 삶을 벗어날 기회조차 없을 겁니다. 그런 김에?"
"아서라. 자신의 안위 하나를 위해 인간 따위의 사역마가 되겠다고? 모든 악마들의 놀림감이 될 바에 차라리 소멸을 택하겠다."
"헤헤 그것도 그런데 생각하기 나름이죠."
그때 창문으로 참새 한 마리가 날아내렸다.
"잠깐만 창문 좀."
위스퍼모어가 창문을 열자, 참새는 위스퍼모어의 손바닥 위로 내려 앉았다. 그리고 지저귀기 시작했다.
"뭐라고? 오세가 살아 있어? 나머지 두 명은 즉사했고···. 교단에서 특별 위원회 소집됐어? 공개 수배 전단···. 뭐? 개구리하고 나도? 이런 미친! 제기랄!"
녀석이 어떻게 소문을 퍼뜨리고 모으는지 알수 있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녀석은 모든 날짐승과 들짐승으로부터 저렇게 정보를 수집하는능력을 갖추고 있다.
"미친다. 미쳐. 내가 생각 없이 행동한 대가를 치르는구나. 미친놈을 잘못 건드렸어. 야, 개구리 너도 인마 사람 잘못 엉겨 붙었어. 너도 현상금 붙었다고! 여기도 안전하지 못해. 이 방을 나가는 순간 모두의 표적이 될 거야.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은 본 놈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개구리는 손가락으로 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 상관없지 않습니까? 제가 뭘 잘못했다고?"
"저 인간과 함께 있었던 게 죄지 뭐가 죄야! 제길 방법이 없구먼. 방법이 없어. 어이 기브 엔 테이크 발동하자고."
"좋지. 말해봐."
"네가 원하는 것은 4고리 전 지역에 소문을 퍼뜨리는 거지? 에덴의 위치를 알고 있는 녀석을 찾는다는 거?"
"그렇지."
"좋아, 충분히 이행할 수 있는 계약 내용이다. 내가 내 걸 조건은 피의 교단에서 내건 내 현상금을 철회해 줄 것. 어때 간단하지?"
"알지 악마의 계약 조건은 신성한 거잖아?"
"서로의 모든 것을 걸고 하는 계약이라고! 공증까지 세우면 더 좋고."
"공증은 이 호텔 부지배인 아보림이면 괜찮아?"
"그 정도면 충분하지. 또 서비스로 일단 그 말한 추천서 좀 써 주면 안 될까?"
"파리 교단에 가입하려고?"
"그래야지. 현상금 취소되어도 그 난리를 쳤는데 피의 교단으로 이젠 못 가니까."
"알았어! 그 정도는 해 주지."
"···, 저기, 전 어떻게 합니까?"
"개구리, 네 살길은 네가 알아서 해야지 인마."
수화기를 들었다.
"아보림 좀 올라오라고 전해줘."
잠시 후 족제비 아보림이 올라왔다. 나는 그에게 지금까지 상황을 죽 설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전화가 불이 났습니다. 크림슨 베일에서 큰불이 났다고 합니다."
"불? 불이라니 스텔라 녹티스 타베르나가 증발했다고 총통 두 마리가 소멸했고 인페르노 호니와인은 이제 다 마셨어. 크."
"설마 그 사건 아라곤님과 관계가 있습니까?"
위스퍼모어가 버럭했다.
"관계가 있다 뿐인가? 저지른 놈이 저놈이라고! 불을 질렀다면 차라리 낫지. 별의 힘을 사용해 주변 피의 교단 소속 악마들을 깡그리 소멸시켰어. 미친 짓을 저질렀다는 말이야. 피의 교단 공공 기물 파손에 소속 악마 수천 명은 증발했을걸? 하필 진퉁 목격자가 살아남아서 주둥일 털었다고. 이건 당장 교단끼리 전쟁이 나도 이상한 상황이 아니야. 족제비."
"그럼, 잠시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교단에 보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위스퍼모어는 방안을 왔다 갔다 했고 개구리는 풀이 푹 죽어 있다. 자신이 어떻게 할수 없는 신세가 한스러운 모양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보림이 올라왔다.
"보고는 끝이 났습니다. 교단에서 잠시 기다리는 말이 있었습니다."
"야. 위스퍼모어 넌 어떻게 할래? 추천서 써줘 말아?"
위스퍼모어는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잠시만 생각할 틈을 줘. 나도 지금 혼란스럽단 말이야."
"혼란스러울 거 뭐 있어 지금 갈아타."
아보림이 말했다.
"저희 교단은 문제성 다분한 악마는 함부로 받지 않습니다."
"어이 개구리 넌 소속 교단은 없나?"
"저 같은 삼류를 받아 줄 교단은 없습죠."
그래서 내 사역마나 되자고 한 모양이다. 뭐가 어떻게 됐든 난 악마는 절대 믿지 않는다.
"딴 건 아니고 기브 엔 테이크 하려는 데 공증 좀 서 줘야겠어."
"두 사람 사이 계약입니까?"
"그래, 악마 계약서 공증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계약서 상단에 각자 해야 할 일을 적고 직인을 날인했다.
"이로써 정확히 기브 엔 테이크 계약의 효력이 발생 되었다는 것을 공증선 제 이름 아보림을 걸고 확인하는 바입니다."
나는 겸사겸사 추천서까지 써 주었다.
아보림이 돌아가고 난 뒤 위스퍼모어가 말했다.
"내 능력은 이미 검증되었어. 기브 엔 테이크니 약속을 어길 이유도 없고. 그러니 내가 원활히 움직이려면 먼저 내 현상금부터 없애줘야 한다고. 즉 네가 뭔가 기브하면 내가 테이크 하겠다는 소리야. 불만 없지?"
"뭐, 누가 먼저 하든 난 상관없지만 네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야 그렇게 해 주지."
"좋아. 그럼 두 번째 에덴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레벨이 높은 최고급 정보지 그에 대한 대가는 무엇으로 할래?"
"손돌이 천 개면 어떨까?"
"미쳤어? 순수한 인간 영혼 천 개면 교단 급 정도나 되어야 지급할 수 있는 수치라고 그걸 일개 인간인 네가 무슨 수로?"
"내 몸값이 얼만지 알면서 그래?"
"무슨 소리야? 그럼, 타락 교단에 너를 넘기고 몸값을···. 지급? 음, 말이 되는 소리긴 하네."
"그 정도 대가는 되어야 그 정도 정보를 받지 않을까 해서."
"확실히 순수한 영혼 천 개의 가치면 지옥에서 다시 없을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긴 해."
위스퍼모어는 잠시 탁자에 앉아 손가락을 탁탁 두드리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 참고로 태초 차원의 에덴이어야만 해."
"태초 차원? 걱정하지마. 전 차원 거쳐 에덴이 존재하는 곳은 태초의 차원도 아닌 오롯이 한 개밖에 없어. 다차원으로 연결된 곳이 에덴이야. 차원 분기 따위 일어나지 않는 차원 속에 들어 있어. 고로 에덴은 단 하나만 존재해."
"그렇구나."
"자꾸 생각나서 하는 소린데. 그 아까 말한 추천서 말이야. 확실한 거야?"
"왜 떨려?"
"제길 하지 않을 수가 있나? 현상금 없어져도 피의 교단 공적이 된 건데 내 몸 사릴 곳은 마련해 둬야지."
"추천서는 확실한 곳으로 보냈어. 어렵지 않게 가입될 거야."
"헤헤, 아라곤님 저, 저는 어떻게 좀 안됩니까? 이런 비루한 놈이 현상금까지 걸리면 살아갈 꿈도 희망도 없는뎁쇼."
"넌 잠시 기다려."
"아, 네, 넵! 기다리죠. 기다리고 말굽쇼."
바알의 폭식 권능이 휘감아 도는 곳이라 금세 배가 고파왔다.
"야, 이런 고급 호텔에 왔으니, 뭐라도 좀 먹자."
"넌 이 와중에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먹어야 살지."
"넌 진짜 인간 맞아? 도대체 어디서 그런 스킬을 사용할수 있는 건데? 별의 힘을 사용한다는 네필림은 들어본 적이 없어. 우린 어떻게 살렸지? 그건 무슨 기술이야?"
그때 또 참새 한 마리가 창문 앞에 날아내렸다.
"그래? 뭐 백작? 그렇지, 그래야 하겠지. 오세가 총통이니까. 아무래도 그러는 편이···. 그래, 그렇군. 하긴 놈들은 나보다 네필림에 관심을 두는 게 맞지. 뭐? 공개 청문회? 아니 공개는 아니구나. 그렇지. 그렇게 해서? 아직 무엇인지는 모르고? 그렇군. 수고 했어."
위스퍼모어는 참새를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뭔 소릴 한 거야?"
"파리 교단에서 너를 백작으로 승격한대."
"백작?"
악마의 계급 서열을 보자. 1계급은 유일무이 단 한 명. 제왕,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 바로 루시퍼 한 명이다. 그 자릴 위해 칠죄종은 오늘도 암투를 벌이고 있다.
2계급 대공 그레이트 듀크, 3계급 각료, 4계급 장군, 5계급 킹, 6계급 후작, 7계급 백작, 8계급 총통, 9계급 귀공자, 10계급 공작, 11계급 상급 악마, 12계급 중급 악마 이하 저리 취급.
이렇게 구분되어 있다. 난 공작이니 10계급에 속하고 아까 싸운 오세가 8계급 총통이다.
그런데 위스퍼모어 말로 내가 백작으로 승격되었다고 하니 이제 7계급이 된다.
사실 이런 계급 구분은 능력에 따라 한 것은 아니고 교단에 기여도나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에 의해 정해진다.
"인간으로 백작이 되는 것은 네가 처음이다. 정확히 인간은 아니고 네필림이지만···."
"아까 한 말은? 오세 때문에?"
"그렇다 공작과 총통과의 싸움에서 총통이 2명이나 순직했는데 공작 따위에게 소멸당했다고 하면 피의 교단 측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지. 그래서 파리 교단에서 널 백작으로 승격 시켜준 거다. 파리 교단이 피의 교단 체면치레를 해 준 거야."
"헤헤. 그럼, 이제 아라곤님도 개인 사병을 만들 수 있게 되었군요. 귀공자부터 개인 사병을 꾸릴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게 아니야. 피의 교단 측에서 공개 청문회를 요청했어. 관계자는 모두 출석해야 해. 즉 저 인간과 나, 개구리 너도 다. 모두 청문회에 참석해야 해. 이건 또 다른 변수야. 피의 교단에서 피해 손해 배상 청구를 할 것이 분명해."
"헤헤, 파리 교단에서도 가만있지만은 않겠죠? 헤헤."
"이 새끼야. 이 와중에도 헤헤거려? 당장 소멸하고 싶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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