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의 비밀 26 – 영역
연옥의 비밀 26 – 영역
"어떤 말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는 걸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글쎄? 어중간한 생명체는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전쟁을 일으킨다. 그런 생명체가 멸망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연의 순리? 네 놈들이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았나? 오호? 네 존재도 자연의 순리라고 하는 거냐?"
"때로는 스스로 멸망을 향해 가는 놈들이 있어. 그들에게 조금 도움을 준 것뿐이야. 악에 물든 것들은 되돌릴 수 없더라고. 조금의 희망이라는 것도 없는 곳을 너는 아직 보지 못했을 뿐이니까."
"지금 내 귀에는 너희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걸? 난 의미 따위는 상관치 않아. 너희가 칼데아 은하계를 말살시켰다는 결과만 남았으니까."
"작은 돌만 보려고 기를 쓰지 말고 저 큰 바위를 보라고 넌 아직 햇병아리야. 태고의 악마를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
"해보지 않고는 장담할 수 없지."
"그게 잘못된 거라는 거다. 성공을 위한 확률을 최대치로 올려놓지 않으면 안 돼 그런 어설픈 도전의 결과는 비참함만 남을 뿐이다. 너 스스로 지키려 했던 모든 것을 단 한 순간에 날려 버릴 수 있다는 걸 명심해."
"충고 들을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
난 짐 빔을 한 모금 마셨다. 저 푸르디푸른 하늘은 박살이 난 부두와 대비 되어 낯선 풍경을 억지 잡아 놓고 있다.
자그레드와 칼데아의 멸절자들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 그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관심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자그레드의 심장뿐이다.
자그레드의 말 중 틀린 말은 없다. 이들을 악마라 부르지만 사실 악한 사념을 가진 신적인 능력을 갖춘 존재들이다. 감정과 영혼을 먹고 사는 오리지날 악마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연옥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일 테고.
뭐, 그렇다고 해도 악마들이 다 감정과 영혼을 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별의별 악마들이 우주에 널려 있는 데다 선이 아닌 악. 단지 그 악을 대표하는 것이 악마일 뿐이다.
이들의 존재가 무엇이든 간에. 악을 경멸하고 소멸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이 우주에서 티끌 같은 존재이고 내 행동이 모든 것들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을지라도 나는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알고 있고 당당히 걸어 나갈 것이다.
"담배 맛나네."
"최고니까."
"최고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지."
"뭐,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
"슬슬 본론으로 가지 않을래?"
"시퍼가 말한 것 이상으로 괴상한 놈이군. 너에게서 묘한 무엇이 느껴져. 어쩌면 그가 큰 착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뭔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일단은 같은 목적이 있지. 현 지구를 지키는 것."
"대상은 다르지."
"응, 놈은 지구의 가이아를, 나는 지구의 대지를 밟고 있는 인간들을 위해."
"무엇이든 지킬 것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그래 준비된 시험은 뭐지? 어차피 루시퍼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겠지만."
자그레드는 짐 빔을 한 모금 하더니 시거 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말했다.
"말했잖아. 시간은 넉넉하다고 게네들 은하계 정리하려면 아직 백 년도 더 남았어. 여기서 1분 먼저 서두른다고 해결되는 건 없어."
"알지. 하지만 난 뒤가 찝찝한 것이 싫어서 말이야. 처리해야 할 일은 필요 이상으로 빨리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거든. 글고 그 외에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 있단 말이지."
"하하, 넌 시퍼와 단어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말하고 있는 거 아니?"
"윽. 그 새끼와 비교질은 하지 말아 줄래?"
"자, 일단 네 은하를 날개로부터 지키고 싶다 이거지."
"당근."
"그래서 도움이 될까 해서 태고의 악마를 풀어놓자는 거고?"
"아마 루시퍼의 생각일 거야. 난 태고의 악마가 뭔지도 몰랐으니까."
"그래도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까 움직이고 있는 것 아니야?"
"먼저 말했잖아. 그 새끼랑 어차피 같은 목적이라고."
"생각해봐. 만약에 태고의 악마를 풀어놓는다고 쳐. 단번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걸? 스카기버가 한 호흡만 뿜어내도 태양계는 그냥 증발이야. 네가 스카기버를 제어한다고 치자 천사들은 구경만 할 것 같아? 아마 저번처럼 하루살이 떼 같이 덤벼들 거야. 그네들 죽음이라는 공포심도 없이 오직 생텀을 향한 충성심밖에 없는 애들이라."
"밀키웨이가 초토화되는 것을 막는 데 필요한 것이지 싸움 붙이려고 봉인 해제하는 것은 아니야."
"으하하, 야. 너 참. 그럼 날개들이 스카기버 보고 겁먹고 도망이라도 칠 거로 생각해? 모르모로스는 어떻고? 네 계획이 뭔데? 어떻게 그들을 이용할 생각인 거야? 설마 날개들에 겁주자 뭐 이런 건 아니겠지? 너 설마?"
"루시퍼도 짐작하고 있는 일이야. 싸움 붙으면 밀키웨이는 끝장이지."
"그럼 루시퍼가 뭔갈 하길 바라는 거야? 아니 기대하는 거야?"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너희들을 이용해 태고의 악마를 부활시키려는 이유는 루시퍼만 알고 있겠지."
"그럼 넌 네 의지는 쥐뿔도 없고 루시퍼의 계획대로 가는 거야? 그런 거야?"
"당연하지. 아직은 개길 짬밥이 아니거든. 힘을 키우고 난 다음 덤벼들 만할 때 들이 될 거야."
"시퍼가 이 소릴 들으면 코웃음을 치겠다. 너를 만든 것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만든 것도 모두 루시퍼라고 놈의 속은 시커메. 네가 소멸할 때까지 들여다봐도 그놈의 진정한 목적을 이해하지 못해."
"뭐, 야훼의 왕좌에 지가 앉고 싶은 거겠지."
"창조주가 된다고? 어림 반품 없는 소리. 그는 절대 창조주를 뛰어넘을 수 없어. 창조주가 창조한 존재라는 각인은 절대 뒤집힐 수 없는 거거든.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 되는 것이 있기 마련이야. 지금의 너처럼."
"뭔 소리야?"
"루시퍼의 계획도 모르면서 그냥 따라가겠다고 그놈이 만약 태고의 악마가 날뛰도록 내버려 두면? 시퍼의 목적이 지구의 가이아라는 걸 확실히 확정 지을 수 있어? 그놈은 한가지 수가 아니라 수천, 수만 가지의 생각을 동시에 하는 놈이야. 세상에서 가장 믿지 못할 독종이지. 그런 시퍼를 믿고 가겠다? 차라리 여기서 소멸해라. 그게 젤로 좋은 방법이야."
"넌 그냥 루시퍼와 계약 맺은 대로 행동하면 돼.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어리석은 놈. 평생 그놈 밑에서 절대 헤어나지 못할 거야. 계획은 틀어져야 제맛이지. 그리고 깨져야 세상이 달리 돌아간다고. 그게 빅 재미지."
"내게 왜 그렇게 집착하지? 넌 루시퍼와 계약을 맺었고 그걸 이행만 하면 되잖아?"
"너 설마 내가 계획대로 하지 않을 거란 거에 의구심을 품고 있는 거야? 걱정하지 마라. 시퍼와의 계약은 절대적이니 나조차 외면할 수 없는 거니까."
"그럼 다 된거네. 시험인지 뭔지 시작해 보자."
"그 전에 메기큘라와 아드라멜렉의 시험을 통과하고 수확이 있었을 테지?"
"물론. 그것 때문에 너와 이러고 있지 아니라면 솔직히 말해 너를 찾지도 못했을 거야."
"그렇군. 득은 있었더라 이 말이지. 태고의 악마를 다루려면 쥐똥만 한 네 정신력으로는 턱도 없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 정도에 해당하는 정신력을 가지려면 아스트랄계와 연결될 수밖에 없을 테고, 그러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접촉할 수밖에 없을 테고, 허허, 다 루시퍼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서.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거든."
"어때 깨볼래?"
"뭘?"
"루시퍼의 계획."
"그러다 똥물 뒤집어쓰면?"
"확률상 훨씬 이득이니까 권하는 거야."
"난 루시퍼를 절대 믿지 않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지."
"뭐, 결정은 네가 하는 거니까. 루시퍼가 시키는 대로 할래. 아니면 내가 준비한 다른 것을 맛볼래? 둘 중 하나 아주 쉬운 선택이지."
"준비한 것이 뭔데?"
"선택부터 해."
"재미있겠는데? 후자를 선택하지, 자그레드 당신을 선택해 보겠어."
"분명히 말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고?"
"어차피 둘 다 안 믿어. 그래서 손해 볼 일은 없어."
"멋지군. 내 별명이 뭔지 알지?"
"파괴의 신."
"신이란 것은 애칭 정도로 봐주자고. 난 파괴를 좋아해. 하지만 걸리적거리는 것이 너무 많아. 깨부수는 게 내 주특기인데 여기서는 주특기를 살릴 수가 없더라고."
"칼데아 신나게 부쉈잖아."
"그랬지. 그래서 이 모 양 이 꼴이고."
"그래서 하고픈 말이 뭐니?"
"만약 루시퍼가 너를 이용해 태고의 악마를 이용하려 한다면? 네가 루시퍼 이상으로 태고의 악마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해. 네가 아무리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힘을 가지고 있어도 넌 그의 파편에 불과할 뿐이니까. 그것으로 태고의 악마를 상대하기란 아주 부족하지 아주 많이 부족해."
"그래서?"
"만약 그들이 날뛴다면 어떻게 할래?"
"할수 있는 한 능력껏 제압해야지."
"모든 일에는 리허설이 필요하지. 어때 리허설 한번 해볼래?"
"연옥이 남아나지 않을 거야. 십이사도 모두가 달려 올 텐데?"
"그래서 계획이란 것이 있는 거야. 넌 내 계획대로 따로 오면 되는 거고."
"난 이미 준비됐어. 시작해 보라고."
"참 마음에 드는 놈이군. 잠깐 마지막 시거 한 대만 더 피고 가자."
"가자고? 어디로?"
"가보면 알아. 둘이 마음 놓고 싸워도 주변 깡그리 다 파괴해도 아무 걱정 없는 곳으로."
"흥, 외우주 어느 한 곳을 정한 모양인데 그렇다고 해도 날개의 눈을 피할 수는 없을걸."
자그레드를 시거 연기를 멀리 내뿜으며 히죽거린다.
"그러니까 그곳에는 날개조차 없어."
"이 우주에 아직 그런 곳이 존재하나? 날개가 없는 곳이?"
"글쎄, 가 보면 안 돼도. 다 피워 가니까 잠깐만 기다려."
마침내 자그레드는 시거를 비벼 끄고 크게 기지개를 켰다.
"오랜만이야. 정말 오랜만에 마음 놓고 때려 부수고 싶어지는 이 기분. 기대해도 좋아. 자 심호흡하라고 출발!"
갑자기 세상이 확 줄어들었다.
끝도 없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썬베드가 그냥 썬베드가 아니었나 보군."
"눈치 빠르네. 양자역학 장치야."
"양자? 원자보다 더 작은 입자?"
"그렇지. 원자보다 수천 배는 더 작은 입자 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작은 미시 세계 그곳은 기존의 물리 법칙이 적용되지 않아 시간과 공간이 왜곡되어 있지. 바로 양자 영역의 세계다."
-팟
주변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건···."
"맞아. 우주지. 아주 작은 우주지만 마음 놓고 때려 부숴도 아무 상관 없는 그런 세계지. 시간과 공간이 현실계와는 달리 작용하니 시간 걱정은 하지 말고. 물리 법칙도 달라 중력이 느껴지지 않지? 하지만 물질의 파동은 존재해. 이곳에는 에너지가 풍부하다 못해 넘치는 곳이야. 이 에너지를 활용하면 권능이나 신성력 따위는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
-획
자그레드가 뭔갈 던졌다. 받아 놓고 보니 심장 모양의 펜던트다.
"무슨 뜻이지?''
"네가 원한 것이잖아. 내 심장이지."
"그러니까 시험도 안 한 상태에서 왜 주는 거냐고."
"넌 내가 아니면 이곳을 벗어날 수 없어.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임하는 것보다 부담 없이 행동하라고 미리 주는 거야."
"뭘 원해? 둘이 싸우는 거? 승패를 볼 때까지?"
"비슷해. 하지만 우리 둘이 싸우지는 않을 거야."
"그럼?"
"아따 그놈 참 말 많네. 세상 모든 것이 다 궁금해? 그냥 주둥이 좀 처닫고 따라와 봐. 보면 어차피 다 알게 될 건데 뭔 말이 그렇게 많아?"
"···."
설마···.
상상도 못 했다. 양자 영역이라니.
확실히 이곳까지 날개가 올 리는 없을 테고.
이곳은 마치 우주 그 자체다. 우리는 우주를 날고 있는 생명체인가?
뭐지? 이것들은?
난생처음 보는 풍경에 내 시냅스조차 어질어질한 기분이 느껴진다.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전부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전부 새로운 정보이기 때문에 시냅스는 무척 빠르게 연산 작용하고 있다.
자그레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속도를 높이자. 따라올 수 있겠어? 여기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부터 몸에 익혀. 내가 말했지, 시간은 넉넉하다고. 그 말의 뜻을 이제 이해하겠지?"
양자의 세계.
이곳의 시간 흐름은 현실과는 아예 다르다. 우리가 언제 어느 시점에 나가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즉 이 모든 것이 자그레드에 달려 있다. 우리가 누웠던 썬베드 그것이 일종의 기계 장치였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은···.
나도 한계가 있구나. 자만심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언노운은 알고 있었을까?
'넌 썬베드가 양자 뭐시기 기계 장치였던 걸 알고 있었니?'
【전 다른 차원을 수도 없이 여행했습니다. 모를 수가 없습니다】
'후, 왜 미리 말해 주지 않았지?'
【당신의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랬군. 내 선택에 이곳에 오게 됐으니까.'
자그레드가 점점 멀어져 간다.
피치를 높였다. 하지만 그래비티 포스는 먹히지 않는다. 여긴 중력 자체가 없는 곳이다.
대량의 싸이킥 에너지를 이용해 자그레드를 쫓았다.
하지만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진다.
에너지. 양자 세계 속의 에너지는 풍부하다. 이것을 이용해야 한다.
지금 자그레드는 나를 시험하는 것이리라.
"재미있는 세상이군. 살다 보니 별 희한한 곳에 다 와 보는군."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