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의 비밀 8 - 메타킷
연옥의 비밀 8 – 메타킷
빌딩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아래 풍경은 살갑다. 새벽 공기가 거뭇거뭇 아지랑이를 만들며 도로를 가로지른다.
난 생활 습관을 꾸려나갈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수면욕도 없고 잠을 자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만큼 포른의 육체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
한쪽은 릴리스의 부활을 원하고 한쪽은 그 반대다. 밤새 언노운과 진중한 토론을 벌였다.
과거 다른 회차의 경험들 그동안 오픈된 정보를 모두 살펴봤다.
이 회차에서 당장 결론을 낼 수는 없다. 내 행동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력은 모든 차원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또한 말할 필요도 없고.
지금 나는 4구획 데모니카를 만났지만 다른 차원에서는 다른 사도를 만났고 그로 인해 역사가 다르게 흐르는 식이다.
그럼 데모니카를 만났을 때 흘러갔던 방식을 추려내서 살펴볼까 싶기도 했지만,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전의 나도 바보가 아니었다면 다른 차원의 역사를 참고했을 테니까. 그래로 성공하지 못한 것은 현실의 내 행동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결정하고 행동하는 데로 역사가 흘러가기에 조그만 곁가지 하나만 뻗어 나가도 이곳 차원에서는 큰 줄기까지 흔들려 버린다.
내가 여기서 뛰어내리든 하늘 위로 날아가든 행동하는 그 순간 이미 한쪽으로 정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연옥에 온 다음부터 메타킷이 완전히 의식을 되찾아 버렸고 의식이 감지되는 순간 ITB에 수납할 수 없었다.
머리 크기만큼 공간을 따로 떼 옆에 띄워 놓고 있다. 공간 자체를 왜곡시켜 놓았기에 다른 이들은 절대 눈치챌 수 없다.
다만 공간접촉이 일어나면 무엇엔가 부닥치는 느낌이 있을 수 있고 어디를 통과 할 때는 그 질량만큼 기존의 공간이 붕괴하니까 상당히 귀찮은 짐 덩이 하나를 데리고 다니는 거다.
연옥에 온 이후 메타킷의 사고력이 상당히 개선됐고 인지능력도 월등히 향상됐다. 공간을 분리해 놨기 때문에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언노운이 나노봇으로 중개 역할을 해주어서 이어링을 통해 소통은 가능하다.
메타킷은 정중히 한 가지 부탁해 왔는데, 음 게임으로 치면 NPC에서 미션을 받은 셈이다.
지금 있는 것은 머리통 하나지만 나머지 조각난 자기 몸을 되찾아 달라는 것. 즉 완벽한 상태로 복구해 달라는 것이다.
당연히 머리 외의 신체 나머지 조각은 연옥에 있으며 정확한 위치는 자신도 모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와중에 이런 서브 미션을 수행할 시간이나 있을까 싶었는데 언노운은 그 결정은 오로지 나 자신에 달려 있다고만 했다.
언노운이 이렇게 나오는 건 이 미션 또한 역사의 흐름에 관여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거란걸 의미한다.
메타킷을 원래대로 복구하는 것은 순전히 내 결정에 달려 있는데 그 보상이 천차만별이라 이번에는 어떤 보상이 나올지는 정말 복불복인 셈이다.
문제는 최악의 보상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아예 회차를 말아먹고 실패가 된 차원도 있으니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선택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언노운도 결정은 오로지 내 몫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다고 한다, 않는다. 단 두 가지 선택권에서 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아 참 그리고 환경이 어떻게 되었든 사건이 어떻게 진행이 되든 누구와 만나고 인연이 어떻게 되든 레이는 그림자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물론 내 행동 전부를 미카엘은 보고 있을 것이다. 레이가 우연히 한 말이 있는데 자신은 생텀 의회에 보고된 적이 없는, 즉 미카엘 개인적인 행동의 하나로 나에게 붙어 있는 것이라 했다.
미카엘은 레이를 생텀 의회에 보고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미카엘이 왜 그런지는 레이도 모른다. 단지 그가 루시퍼와 형제지간이었다는 것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생텀 의회에서도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최고의 대천사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내게 관심을 두는 것은 영광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레이가 뭐든 간에 언노운이 레이는 꼭 데려가야 한다고 했으니 그것은 모든 차원 통틀어 가장 효율적인 상황을 연출했다고 하니 나로서는 딱히 거부할 필요가 없었다.
머리에서 비우면 레이가 있는지조차 가끔 잊어버리곤 하니까. 보라고 누가 자신의 그림자를 의식하고 살겠냐고.
일단 급선무는 역시 가면을 찾는 것. 모두가 원하는 것이니만큼 공포의 가면을 찾는 게 우선이다.
루시퍼가 나를 연옥에 들여보내는 것까지 계획했고 과연 내가 세 마리 태고의 악마를 통제할 수 있는지도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다.
통제 할수 없으면 손에 쥐여 줄 필요조차 없다고 보는 것이겠지. 그것들이 날뛰면 생텀 의회는 물론 게헤나까지 뒤집어엎을 수 있으니까.
연옥이라 게헤나의 사역마들은 소환할 수 없고 소환식도 아예 먹히지 않는다. 연옥으로 게헤나의 악마는 절대 오지 못한다.
혹이라도 봉인된 릴리스가 깨어나면 잠잠한 게헤나에 폭풍이 들이칠 테니까.
루시퍼가 메기큘라를 보내 내게 전한 것은 나더러 결정을 내리란 소리다. 릴리스를 부활하지 말라고 말이다.
데모니카가 말한 것은 범상치 않은 일이다. 이미 언노운을 통해 검증된 사실이기도 하고 에덴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진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것은 상당한 유혹이다.
에덴에 모든 비밀이 담겨 있다고 말한 것도 말이다.
그건 부수적인 일이고 일단 공포의 가면을 찾아야 한다. 생텀 의회를 막을 기초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 있으니까.
메기큘라가 왔을 때 언노운은 역탐지했다. 4마리 칼데아의 악마들은 연옥에 숨어 있다.
12사도와는 서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협약을 맺은 상황이라 네 마리 악마는 릴림을 비롯해 연옥의 영혼조차 건드릴 수 없었다.
이곳의 소유물은 모두 릴리스의 것이니까. 하지만 외부인인 나는 그 협약에 저촉이 되지 않는 제 삼의 존재인 것이다.
12사도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릴리스의 부활이다. 그걸 칼데아의 악마들이 막고 있으니 둘 사이에서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연옥은 붕괴한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서로서로 건드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치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루시퍼의 안배다.
데모니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최소한의 피해를 가지고 릴리스를 부활시키는 것인데 인류 최초의 어머니 이브 이전의 어머니 릴리스의 부활이 가져올 파급은 나도 언노운도 예측할 수 없다.
이번 회차의 릴리스가 어떻게 나올지는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험이라는 거다. 거기다 메타킷의 몸체를 찾아 주는 서브 미션도 수행해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천사들이 밀키웨이를 청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많이 잡아도 대략 백 년. 인간에게는 긴 일생이지만 마인에게는 후딱 지나갈 짧은 시간이다.
그전에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미카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감시하는 것일까?
루시퍼는 또 무슨 꿍꿍이속일까? 도대체 이 세상 아니 이 차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내가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 잘못된 길인지 그것조차 알수 없다.
【찾았습니다. 메기큘라의 현재 위치를 이어링에 표기하겠습니다】
메기큘라는 내 능력을 너무 얕잡아 봤다. 릴림으로 빙의해서 접근하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거로 생각했겠지. 물론 나는 모른다. 하지만 언노운은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 변수인 거다.
공중으로 떠올랐다.
"먼저 날개부터 회수해야지."
12사도가 다스리는 12구획은 정확히 차원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것이 완전히 별개의 차원이 아니라 네트워크처럼 연결된 구조로 되어 있다.
즉 이쪽에서 일어나는 일은 자연히 다른 차원에도 전달된다.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망은 사소한 사건까지 모두 공유하게 되어 있다.
4구획의 사도 데모니카의 만남은 나머지 12사도가 모를 리가 없다는 것이다. 연옥의 진정한 주인은 봉인되어 잠을 자고 있는 마당에 연옥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런 철저한 관리가 최우선시되어야 한다.
모든 정보의 공유. 마치 인간 뇌의 뉴런처럼 다중 신경망이 미로처럼 구성 돼 있다.
연옥에 온 이후 언노운이 제일 처음 한 것이 이 신경망 회로에 접속하는 거였다.
데모니카가 릴림에 빙의 되어 온 것도 다 이 신경망을 통해서란걸. 왜 본인이 이 방법을 선택한 것인지 말해 볼지라면
신중히 처리하기 위해서다. 엄밀히 말하면 실제 릴림에 빙의된 것이 아니다. 빙의 됐다면 내게 무슨 일을 당할 수도 있으니 겁을 먹었다고 하기에는 그렇고 나름대로 최대한 신중히 처리했다는 것이다.
즉 다중 신경망을 통해 릴림의 뇌를 제어한 것이다. 보고 듣고 행동하는 것을 자신 마음대로 즉 꼭두각시를 만든 셈이다.
언노운이 이 접속 신경망을 해킹하여 원 발신지를 역추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놈은 내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고 설마 언노운이라는 초과학적 존재가 뒤를 후리고 있을 줄은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고위 악마라도 빈틈은 있게 마련이다. 놈이 신이 아닌 이상 말이다.
비탄의 도시
스스로를 경멸하는 자들.
스스로를 한탄하는 자들.
나는 뭘 해도 안 돼.
스스로를 자학자는 자들.
비탄의 권능이 가득찬 이 도시는 권능 그대로 비탄의 도시가 되었다.
언노운이 추적한 바로 메기큘라는 비탄의 도시에 있다.
도시 입구에 들어서니 거대한 비석 하나가 눈을 사로잡는다.
'비탄의 도시로 가는 자 나를 거쳐 가라
영원한 가책을 만나려는 자 나를 거쳐 가라
버림받은 자들에게 가려는 자 나를 거쳐 가라
나보다 앞서는 피조물이란
영원한 것뿐이며 나 또한 영생하리라.
여기에 들어오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이제 내가 왔노라 빌어먹을 비탄의 왕이 왔도다.'
다소 오만함과 광기가 느껴지는 어투의 비석 탑이다. 도시 입구에 덩그러니 세워 놓은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어떤 자가 이 비석을 세웠을까.
아마도 이 도시가 탄생할 때 세워진 것이리라.
'비탄의 도시는 누구 관할이지?'
【제 7구획으로 7번째 사도 그레고리아(Gregoria)입니다】
이어링으로 그레고리아에 대한 정보를 띄웠다.
비탄의 어머니. 일명 회색의 마녀라고 되어 있었다.
비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영혼을 쓰다듬는 것을 취미로 여기며 그녀는 천천히 다가오는 그림자와 함께 나타나는데, 그 순간 공사 기간마저 얼어붙어 버린다.
회색의 콘크리트 동상과 같은 외모를 지닌 그녀는 아름다움과 냉정함의 조화를 지니고 있다. 특히 그녀의 눈은 은빛으로 빛나며, 그 깊은 눈동자는 마치 비탄에 빠진 이들의 영혼을 읽어내는 듯한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다.
그 냉철한 눈빛 뒤에는 영혼을 강탈하고 소비하는 악마의 본성이 숨어 있으며, 그녀는 비탄에 빠진 인간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를 사랑한다.
그녀의 길고 풍부한 머리카락은 마치 암흑의 망토처럼 휘날리는 데 힘의 원천이 그 머리카락에 있다고 전해진다. 그녀가 회색의 마녀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 비탄에서 얻은 희생자들의 영혼을 자신의 영원한 힘의 연료로 삼아, 끝없이 강력한 악마로 변화해간다. 회색의 동상처럼 보이는 그녀는 사실은 살아 숨 쉬는 악마의 형상이며, 어둠의 여왕 릴리스의 충성스러운 사도로서 무한한 비탄에 빠진 영혼들을 거둬들이는 암흑의 존재이다.
'데모니카와는 정반대로군. 이거 여기서 문제 일으키면 꽤 곤란하겠는데···.'
데모니카는 약간 서큐버스와 비슷한 느낌의 사도고 그녀가 게으름을 관장한다고 하지만 별개의 취미로 욕망을 좋아하는 부류이다. 그래서 그녀가 부리는 릴림은 옷을 입지 않고 최대한 관능미를 뽐낸다.
그리고 남자에 대해 관대한 편이기도 하다. 연옥 이곳은 악질적인 영혼은 없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도 타인을 시기 질투하는 사람도 사기를 친 사람도 없다. 지옥으로 떨어질 인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인간 그렇다고 선한 영혼을 가져 천계의 부름을 받지도 못한 아주 평범한 영혼이다.
연옥을 건드리지 않는 것은 약조된 것으로 생텀 의회나 게헤나나 일종의 보험과 같은 곳이다. 이곳의 주인인 릴리즈는 연옥의 전부이다.
데모니카를 통해 나의 정보가 이미 12사도 전체에 퍼졌을 거다. 그리고 그레고리아는 내가 자신의 구역에 들어섰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방해나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나를 통해 릴리즈를 부활하고 싶어 하니까. 그런데 메기큘라가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찾아와 루시퍼의 말을 전해 준 것은 그만큼 중요도가 높다는 것이겠지. 연옥에서는 당연히 주인의 부활을 원하는 것이 맞겠고 루시퍼는 그녀가 깨어나면 세상이 혼돈에 빠진다고 했는데 그 말이 자꾸 귀에 걸리긴 하네. 하. 이놈은 내게 결정을 내리라고 하고 힌트도 없고. 뭐든 내 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일단 가면부터 찾는 게 먼저니까.'
비탄의 도시로 들어섰다.
눈치 볼 것 없이 메기큘라가 있는 곳으로 직행했다. 이미 서로 알 것 다 알고 있는 상태니까. 누구의 힘이 더 큰지 겨뤄 보는 것만 남았다.
새벽의 안개는 완전히 걷히고 아름다운 태양이 뜨고 있다. 저 태양은 가짜지만 게으름의 어두운 도시 보다는 훨씬 밝은 분위기의 도시다.
칼데아의 절멸자들.
이들은 오랜 악마들이며 칼데아라는 것은 다른 성간 우주 즉 다른 은하를 말한다.
칼데아 은하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깨긋이 말살했던 전력이 있어 이들을 칼데아의 절멸자라 부른다.
이제 한 은하계를 멸족시킨 악마들을 상대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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