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의 비밀 11 – 신은 어떻게 모든 인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나?
연옥의 비밀 11 – 신은 어떻게 모든 인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나?
수십조 개의 머리.
모두 지성을 가지고 살아 있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 감정이 있다는 거다.
머리만 내놓은 채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 현실을 인지한다고 쳐도 무슨 정신으로 이 상황을 유지 할 수 있을까?
그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렇게 있어야 하는가?
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지.
그러나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현실.
자살할 방법이 없다.
배는 고픈데, 먹고 싶은 음식이 머리에 가득한데 먹을 수 없고 먹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
혀를 깨물고 자살하는 방법이 유일한데 그러한 용기를 내어도 잘린 혀는 금방 되살아난다.
즉 스스로 자살할 방법이 없다.
타인에 의해 목이 뽑혀야 그때야말로 진정한 안식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니 이 아우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다.
제발 자신을 죽여 달라는 아우성이다.
그 감정의 골이 너무나 깊어 한이 되어 철철 넘친다.
하지만 죽여도 의미 없음을 잘 알기 때문에 이들을 죽이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리고 게 중에는 살고자 하는 근성을 가진 이들도 있으니까.
영원한 지옥의 굴레에 갇힌 이들.
나는 김동운과 이야기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그저 시험 문제겠거니 귀찮게 떠들어 대는 인간들이 짜증 나기만 했었다.
하지만 이들의 고통이 오로지 나 때문에 생긴 것으로 생각하니 내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이 수십조 개의 영혼이 오로지 내 시험지가 되어 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찾아올 때까지 말이다.
이 또한 루시퍼의 명령으로 메기큘라가 만든 시험 장소겠지. 그들에게 이 영혼의 가치는?
아마 일도 없을 거다. 그저 소비되는 소모품에 불과하니까.
가이아는 매번 새로운 영혼을 창조하고 또 영혼은 인간의 몸을 빌려 어미의 자궁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
윤회 되는 영혼도 있고 소멸하는 영혼도 있지만 소비보다는 재생과 생산이 월등히 앞서기 때문에 이 생명의 기운은 지구를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든다.
지구의 가이아는 풍성하다 못해 넘치기 일보 직전이다. 진짜 너무 잘 익어 이제 곧 나무에서 떨어질 과실의 위태위태함까지 온 것이다.
그 와중에 서전 임펙트가 터졌고 생산 설비는 딱 가동 중지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포화 상태로 버티는 것이다.
지옥의 악마들은 그 과실을 탐하고 생텀 의회는 오염된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지구를 재생성하려 한다.
그 둘의 힘겨루기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 가운데 내가 있다. 내가 어느 쪽으로 붙는 것 자체도 이상할뿐더러 나는 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동분서주 하는 걸까?
내 개인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사실 생텀 의회가 지구를 갈아 치울 때 이모탈 시티와 네크로폴리탄의 지인들을 다른 곳으로 대피시킬 능력은 된다.
소수의 인원으로 새로 창조된 땅에 빌붙어 살면 되니까. 새로운 문명을 일구며 말이다.
내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되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텀 의회를 침공해서 천사의 날개를 뽑아야 하는가?
게헤나를 파괴해 악마의 뿔을 뽑아야 하는가?
인간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
이제는 이 미친 듯한 아우성이 귀에 익숙해져 버렸다. 나조차 이럴진대 나머지 사람들은 어떠할까?
그들 또한 수많은 비명과 고함과 별의별 것을 다 들어야 하지 않는가? 나도 견디기 힘든 것을 이 사람들은 평생 아니 유구한 세월 동안 들어왔던 것이 아닌가?
물론 내 등장으로 소란이 크게 변했겠지만···. 이들은 서로 간에···. 아주 미친 곳이다.
순간 나는 공간 안으로 들어갔고 공간 자체를 볼수 없도록 막을 쳤다.
즉 이들이 나를 볼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리를 이동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머리의 밭을 한참이나 지났다. 내 소식을 접한 머리들이 서로서로 고함을 치며 이미 몇조 개나 되는 머리는 내 존재를 모두 인식했을 것이다.
이 수십조나 되는 머리가 나를 인식하는 데는 정말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옆 사람 옆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서로서로 통해 옮겼기 때문이다.
이 수십조의 머리통은 모두 나를 안다. 하지만 나는 김동운이라는 사람과 머리를 뽑아 죽인 몇 명, 그리고 동운이 옆에 있던 독일 노파뿐이다.
이 수십 조명의 사람 모두 나를 향해 바람을 외치고 나를 믿고 나를 원하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데 나는 채 열 사람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신은 어떻게 인간 한명 한명의 기도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무슨 수로 그 많은 인간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창조주가 대단하다 해도 인간 모두의 바람은 듣지 못하겠지? 아닌가?
소원을 빌며 그 바람을 듣고 어떻게 축복을 내려 주는 것인가?
선함과 악함을 어떻게 구분하고 무슨 기준으로 축복을 내려 주는 것일까?
왜 신은 모든 인간의 잘잘못과 그들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일까?
내 머리 하나로, 축구공만 한 뇌 한 덩이로 어떻게 그 일을 할수 있을까?
여기 머리들은 이제 내 존재를 다 안다. 그런데 나는 이들을 몇 명이나 알고 있지?
뭔가 출제자의 의도가 손에 잡힐 듯 말 듯 그런다.
언노운의 도움은 오히려 방해될 것 같아 순전히 내 머리로만 생각하고 행동했다.
다시 공간 밖으로 나오자 나를 인식한 사람들의 아우성이 메아리 수천 배는 더 증폭된 것처럼 들린다.
그들 모두가 나를 향한 외침이다.
무엇을 바라는가? 모두가 다르다. 죽여 달라는 사람, 꺼내 달라는 사람, 말 좀 걸어 달라는 사람, 물 좀 달라는 사람.
이제야 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들으려 하지 않았을 때는 단순한 소음이었지만 듣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순간 이들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그것은 김동운과의 대화가 큰 요인이었다.
신은 어디에 있던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소원을 다 들어줄 수는 없다.
딱 나와 같은 상황이다.
단지 신은 둘 중 하나는 할 수 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
목소리.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조 단위가 넘어가는 머리의 목소리 전부를? 반대로 이들 모두는 내 존재는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듣자. 들어 보자.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처음에는 귀로 들었다.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지만
하지만 이 한 계는 금방 드러난다. 저 멀리 닿지도 않는 소리는 들을 수 없으니까.
신경망을 최대한 부풀려 초집중 상태로 모든 이들의 소음을 목소리로 바꾸기 시작했다.
어렵다. 한계점이 명확히 보인다. 몇백 명의 목소리는 구분해서 들을 수가 있었다.
천 단위가 넘어가자 어지럽고 만 단위는 도전해 볼 엄두조차 들지 못했다.
신은 어떤 방법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전부 들을 수 있지?
조그만 내 뇌는 한계가 분명하다. 더없이 넓고 광활한 우주 같은 곳이 필요하다.
이 많은 인간의 목소리를 수용하려면 말이다.
내가 할수 있는 집중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걸 깨부숴야 한다.
마음에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고 명상에 들어갔다. 그렇게 아우성처럼 들리던 소음이 하나하나 의미가 되어 들어왔다.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모든 소리를 새겨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금방 왔다. 수십조의 목소리를 모든 듣는다는 것은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바로 느꼈다.
아니면 방법이라도···.
방법?
인간 뇌의 뉴런 세포의 수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860억에서 1,000억 정도로 알려져 있다. 뉴런은 뇌의 기본적인 정보처리 단위이며, 스냅스라 불리는 연결로 서로 통신한다.
즉 인간 뇌는 뉴런들의 복잡한 연결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매우 고도로 복잡하고 효율적인 정보처리를 수행할 수 있다.
인간은 뇌를 백 퍼센트 활용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나는 다르다. 더욱이 포른의 세포로 된 만큼 내 의지로 뉴런 세포의 개수를 더 많이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분명히 왔다. 백만 명 정도의 목소리를 구분해 냈는데 그 사람 다음은 또 막혔다.
포른의 세포. 왜 뇌만 고집할까? 내 세포는 몸 전체로 이어져 있다. 이걸 고려하면 아예 내 몸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통신망 연결망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미치자 즉시 집중했다. 세포 하나하나에 한 사람씩 담는다면 인간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의 수는 30조에서 40조 정도다. 이곳 사람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망을 충분히 구성할 수 있는 서버다.
하지만 그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연결은 할 수 있으나 머리통은 계속 말을 했고 그것이 실시간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에 앞서 했던 말이 뒤로 밀려 버리고 새로운 말이 들어와 버린다.
즉 저장 공간이 지극히 적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나는 세포 하나의 하나에 네트워크망을 연결해야 하므로 상념은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숨 쉬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고 결국 무방비 상태가 되어 버린다.
만약 적이 공격하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가는 길은 맞는 데 방법이 틀린 것 같다. 좀 더 거대한! 막대한! 우주만큼 광활한 가상 공간이 필요하다.
네트워크망을 건설한 초거대 서버실이 필요한 것이다. 차원이 다른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차원에다 네트워크망 자체를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경망 같은 회로도가 필요한데 텅 빈 공간에 회로도를 짤 능력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뭔가 다른 큰 공간이···
순간 머리에 벼락을 맞은 것처럼 번쩍했다.
'아스트랄계!'
그래 이것만큼 좋은 것은 또 어딨는가? 최고의 공간이 아니던가 이미 초거대 신경망 센터가 완성된 곳이다. 여기에 내 신호를 연결하기만 하면 거대한 나만의 네트워크망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곳에는 슈퍼컴퓨터보다 더한 괴물 같은 존재가 이미 들어앉아 있으니 잘못 연결되어 그놈과 연결되는 순간 내 정신은 단번에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나를 완벽히 지배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모험은 언제나 짜릿하다.
저번에 한 번 접속 되어 그와 직접 대화한 적도 있지 않았나?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내 정신 하나 소멸시키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도 자신이 온전히 부활하려면 반드시 내가 필요하니까 나를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힘으로 아스트랄계로 접속하는 방법도 알고 할수도 있지만 언노운의 반대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두려움으로 인해 내쪽에서 먼저 접속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저때는 강제성이 가미되어 어쩔수 없이 열렸지만.
이 방법뿐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본능이 그렇게 하라고 확실성을 부여해 준다.
접속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의식의 흐름을 그쪽으로 넘기면 되니까 언노운에 의해 연습은 많이 해 뒀었다. 직접 연결은 처음이지만.
의식이 들어왔다. 시커먼 어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지어 내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이다. 인간의 몸에서는 어느 정도 인광이 나기 마련이지만 그 자체도 단 한 톨도 보지 않고 어둠에 묻혀 버린다.
하지만 이곳이 빈 공간이 아님을 안다. 너무나 막강한 세력이 있는 곳이라 내 힘이 그것을 깨지 못해 어둠속처럼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나는 지금 태고신의 어떤 사념 중 하나에 접속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사념인지는 복불복 알수가 없다.
직접 접속하는 방법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이러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들키기라도 하면···.
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내 뇌 뉴런의 전기적 신호를 끌어당겨 오자 새하얀 번개같은 노이즈가 하나 생겼다. 그것은 순식간에 곁가지를 치며 신경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무한의 힘.
수천, 수만, 수억, 수조의 사념이 신경망을 타고 들어온다.
무한의 공간은 그들 모두를 집어삼키고도 남음이 있다.
수십조의 머리가 쏟아내는 모든 말들이 고스란히 들어온다.
이 미친 네트워크망을 나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심지어 그들이 가진 기억의 단편들까지 모조리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도 내 뇌에는 부하가 일도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훨씬 편해졌음을 느꼈다.
그 많은 목소리가 점점 늘어갔다. 나 자신도 놀람에 몸서리쳤다.
수십조 개의 목소리가 전부 연결된 거대한 네트워크망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하나의 목소리 단 한 명의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답이다.'
수십조 명 중에서 단 한명의 목소리를, 가장 진정성을 지닌 구원자의 바람을 나는 들을 수 있었다.
"씨발!"
너무 놀라서 감탄사가 아니라 욕이 터져 나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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