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의 비밀 33 – 제라피나
연옥의 비밀 33 – 제라피나
아마 내가 여행한 연옥에서 가장 끔찍한 곳이 이 10구역일 것이다. 가장 슬픔이 깃든 곳이기도 하고 이곳에 있는 나마저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을 만큼 진득진득한 진액 그 자체다.
이 감정에는 슬픔과 원한과 방황과 두려움과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뇌가 뭉쳐진 말 그대로 지옥의 한쪽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악마마저 치를 떨 것 같은 그런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곳이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런 감정들이 낯선 도시 곳곳에서 소용돌이치며 회전하고 있다.
10구역은 도시긴 도시인데 분위기가 슬럼가다.
폐건물, 오래되어 부식된 철문, 곳곳의 음침한 낙서와 음담패설, 음식물 썩는 냄새가 골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곳은 낮이 없는 오직 밤만 있는 곳이다. 태양이 뜨는 것을 볼수 없는 사람들이 이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자살자들의 밤.
자살자들의 도시.
자살자들의 냄새가 온 도시를 뒤덮고 있다.
영원히 구제받지 못한 이 영혼들은 절대로 가이아에 오를 수 없다. 아마도 모든 구역 중에서 가장 바쁜 구역이 이 10구역이 아닐까 한다.
스스로 목숨을 내던진 사람들을 살뜰히 아끼며 보살피는 곳이다. 물론 자살자라고 해서 다 이곳으로 오는 것은 아니다. 죄의 경중에 따라 지옥으로 떨어지는 인간도 허다하니까.
참고로 죄의 경중은 누가 심판하는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자살자는 지옥에서조차 달가워하지 않는 영혼들이다. 그릇으로도 양념으로도 쓸 수 없는 폐기 처분되는 영혼이 자살자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가공 처리되고 1고리 하급 악마가 되는 행운을 누리는 악질적인 놈들을 제외하곤 소멸하는 것으로 끝난다.
연옥에 온 자살자들은 그만큼 현실 세계에서 심리적으로 마지막까지 몰린 사람들이다. 가난과 두려움에 못 이겨 자신을 스스로 망각한 영혼들이다.
이쪽 애들은 특별 관리해 줘야 한다. 그래서 전 구역 통틀어 릴림이 가장 많이 근무하는 곳이기도 하다.
스스로 윤회할 수 없는 이 가련한 영혼을 위해 순번이 되는 대로 강제로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역할을 하는 산모들이 특히 많다.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죽인 인간은 그렇게 강제로 윤회하여 업보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이아에 올라탈 때까지 쉼 없이 고통받는 윤회를 계속해야 한다.
그것이 연옥이 정한 규칙이며 갈곳 없는 영혼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헌정되는 릴리스의 특혜다.
자살한 영혼 중에 연옥조차 오지 못하고 스스로 소멸해 버리는 영혼도 제법 된다. 이런 영혼은 쓸모가 없기에 악마조차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자살자의 영혼은 그만큼 가치가 없는 영혼이다. 자신을 망각하고 자연으로 되돌아 가든가 그나마 다행인 영혼은 이렇게 연옥으로 빨려 들어온다.
그리곤 다시 환생할 때까지 지독한 고통을 겪는다. 그건 자살 충동을 끊임없이 느끼기 때문이고 또 자살한다. 목을 매단 사람은 계속 목을 매달고 강물에 뛰어든 사람은 계속 뛰어들고 고층 건물에서 뛰어 내리는 사람은 계속 뛰어내리기를 반복한다.
당연히 영혼이라서 제 죽음은 없지만 그런 고통 속에서 매일매일을 살아가야 한다. 도시를 감싸고 있는 이 감정의 회오리를 만드는 것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그 감정에 취해 오늘도 자살을 시도한다.
이 구역은 자살자들이 자살할 수 있는 완벽한 세팅을 해 놨다. 추락용 고층 건물에 목매달기 쉬운 구조물들 도시를 반으로 가로지르는 강물까지.
온갖 종류의 영혼들이 시대별로 있긴 하지만 이 도시에 적응하고 있다. 오래된 영혼부터 윤회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 죗값을 다 치른 영혼은 가이아에게 편승하지만, 죗값을 못 치른 영혼은 다시 연옥으로 빨려 들어온다.
도시를 구경하다 본 전광판에는 재미있는 기록이 적혀 있었던 곳이 있는데 한 영혼이 윤회하면서 자살한 횟수를 정해 놓은 거였는데 최고점이 68회다. 지금까지 1천 8백 회를 윤회했는데 그동안 자살한 횟수가 68번이라는 소리다.
이 영혼이 정말 궁금했다. 물론 자살한 영혼은 절대 좋은 환경에서 윤회할 수 없다. 가혹한 환경에서 윤회하기 때문에 그 난관을 뚫고 자기 몸에 감긴 자살의 사슬을 끊어 내고 자수성가한다든가 아니면 현실에 만족하고 버텨내야 한다.
그걸 못 이기고 자살하면 죗값만 더 추가되는 셈이다. 68회 자살한 영혼은 여성의 영혼이다.
자살도 중독일까나···.
생각보다 엄청나게 넓은 구역이고 그만큼 자살한 영혼이 많다는 소리다. 연옥에 선택당한 영혼은 그나마 윤회라도 할 수 있지 저쪽 천국에서도 혐오하는 영혼이라서 영혼 수호자조차 자살한 자는 외면한다.
-삐, 삐, 삐
나는 중앙시청 건물의 벨을 눌렀다. 이 구역을 관장하는 곳으로 릴림의 본거지다.
-달칵
얼굴 하나 내밀 수 있는 쪽문이 열리고 역시 아름다운 릴림의 얼굴이 신기한 듯 나를 바라본다.
"어머? 인간? 인간 맞죠?"
"그럼 인간이지 뭐겠어?"
"그게 아니라 산 사람···인 거죠?"
"그럼 내가 살아있지, 죽었겠어?"
"무···무슨 일이죠?"
"제라피나 만나러 왔는데?"
"시장님요? 예약은 하셨나요?"
"아니, 그냥 지나기는 길에 들렀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찾아왔다고 하면 바로 알 건데?"
"자, 잠시만요."
-탁
그녀는 황급히 쪽문을 닫았다.
말 그대로 그녀다. 이곳 릴림은 정장 차림에 말쑥한 인간 모습을 하고 있다. 분위기가 공무원 냄새가 풀풀 난다.
구역마다 릴림의 외형은 다 다르다. 그녀들은 비슷한 성향끼리 모여 산다. 이 모든 릴림이 십이사도의 딸들이라니 참 많이도 낳았다.
-달칵
"들어 오세요."
릴림을 따라 들어가니 안에는 분주한 릴림이 한가득하다.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모르겠지만 각종 서류 더미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고 나를 쳐다보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쟤들 뭘 하는 거여?'
【주로 통계를 내는 것 같습니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자살했는지 그 동기는 무엇인지 파악하고 분류하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다음 생에 환경을 정하는 모양입니다】'
'아니 영혼은 자유롭게 환생해야지 왜 지네들이 제어하고 지랄인 거야?'
【자살한 영혼은 가이아에 오를 수 없어 자유로운 환생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전생의 기억도 소멸하지 않습니다. 그녀들이 없으면 영원히 구제받지 못할 영혼들인 겁니다】
'네가 동정하는 발언한다니 신기하네.'
【제게는 일제 감정이 없으므로 틀린 발언입니다】
"이쪽입니다."
나를 안내하는 그녀는 승강기 앞에 멈췄다. 아주 고풍스러운 승강기로 층수 올라가는 판이 아날로그로 시계처럼 되어 있고 승강기 문도 우드였다.
그리 높지 않은 건물이라 12층이 전부였다. 하지만 넓이는 대단히 큰 건물이다.
미 펜타콘과 비슷한 외형인데 면적은 10배가 넘는다.
-땡
경쾌한 울림과 함께 약간 진동이 오면서 승강기가 멈췄다.
문이 열리자 복도는 없고 바로 문이 1m 전방에 있었다.
제라피나 10구역의 십이사도. 그녀에 대한 정보는 알고 있지만 이쪽 차원에서는 어떨지 직접 봐야 한다.
"손님 오셨습니다."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고 손으로 안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들어가세요."
놀랐다.
그녀의 몸매 때문에.
인간의 몸매가 아녔다.
키는 180인데 몸매가 인형 그 자체였다. 그녀의 황금빛 머릿결은 엉덩이를 넘어 무릎까지 하늘하늘했다.
그녀는 지금 뒤돌아 창문 밖을 내려다보고 있어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몸에 거의 밀착된 실크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허리선에서 둔부까지 이어지는 각도가 거의 예술이라고 할수 있었다.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이상해 보이는 거다. 비정상적으로 가는 허리에 둔부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것이 완벽하다는 거다. 거기에 소위 말해 젓가락이라고 말하는 가늘디가는 팔다리는 바비 인형을 보는 느낌이었다.
"무슨 용건인가?"
목소리가 확 깬다. 이건 이 외모에서 나올 목소리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인공적인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쇠 갈리는 목소리였다.
"도움을 좀 주십사 하고요."
"도움?"
그녀가 뒤돌아섰을 때 하마터면 놀란 비음을 내지를 뻔했다.
얼굴이 은빛을 띤 금속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각상같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얼굴은 실버로 조각된 이름다운 조각상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녀가 왜 그런 목소리를 내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몸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나오지 않고 있다.
십이사도도 생명체다. 릴리스가 직접 낳은 딸들이다.
그녀들도 당연히 감정이 있으며 인간처럼 사고한다.
그러나 눈앞에 이 여인은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다. 심지어 내부 조직도 은이다.
완전히 다른 종류의 금속 생명체란 것을 알았다.
머리카락만큼은 황금색이었는데 그것조차 인간의 머리카락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바로 금실이었다.
"내 모습에 당황했나?"
"당황까지야. 전 지금까지 많은 것을 봐 왔습니다."
"그래? 도움이라 구체적으로?"
"루치페르를 찾고 있습니다."
"그는 마법사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적도 목격된 적도 없는 존재다. 그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
"그런 것 같더군요. 연옥을 조사하고 있는데 그림자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벌써 세 명의 존재와 만났더구나."
"그렇습니다. 루치페르가 마지막이니까···."
그녀가 손을 들어 중지로 입술에 올렸다 '쉿'이라는 제스처다.
"그들의 정보를 제공한 것은 우리 십이사도다. 우리가 너에게 부탁한 것이 있을 텐데?"
"마지막 열쇠의 대한 정보는 저도 알아내려고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검지를 좌우로 흔든다.
"절대로. 넌 우리에게 그 어떤 작은 정보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세 명이나 상대하면서 말이다. 그럼 묻겠다. 너는 그 세 명에게 마지막 열쇠에 대해 어떤 노력을 했나?"
"···."
"그러고도 내게 도움을 기대하는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세명은 답을 모릅니다. 알고 있는 자는 루치페르뿐이거든요."
"근거는?"
"루시퍼는 릴리스 부활을 원하지 않습니다. 루치페르에 마지막 가면의 봉인 해제를 맡겼죠. 그는 저와 거래할 겁니다. 릴리스 부활하지 않는 대신 가면 봉인 해제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루치페르가 마지막 열쇠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그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는 루치페르를 먼저 만나야겠죠?"
"웃기는 녀석이군. 넌 번지수를 잘못 찾아왔어. 나와는 가장 거리가 먼일이지. 보았다시피 우리는 늘 바빠. 다른 친구들처럼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곳이지."
"그래서 여기 온 겁니다. 가장 숨기 쉬운 장소라서요."
"그래, 그럼 내게서 무엇을 원하지?"
"이 구역의 모든 영혼을 관리하시죠?"
"물론이다. 그래서 다른 곳에 한눈팔 수 없는 상황이지."
"돌봐야 하는 영혼이 얼마나 되죠?"
"해변 모래알만큼."
"그 모래알을 제가 검토해 볼 수 있습니까?"
"검토? 무엇을?"
"통계 자료를 확인해 보는 겁니다. 아무리 꼭꼭 숨어도 빈틈이 있기 마련이죠."
"우리 일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야. 가능하지. 단! 내게 확신을 줘야 해."
"마지막 단서 말입니까? 그건 루치페르를 만나봐야 하므로 지금 이 자리에서 확신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단지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것뿐입니다."
"넌 반드시 네 입으로 말한 것을 지켜야 할 것이다. 우리 십이사도는 항상 널 주시하고 있는 것을 잊지 말도록."
안내되어 내려온 곳은 1층. 정말 정신없는 곳이다.
"이걸 정말 다 검색하실 생각이세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물론. 금방 처리 할 테니까. 끝나면 다시 부를 테니 방해하지 마요."
"네? 이거 저희가 열 명이 붙어도 백 년은 걸릴 분량인데요?"
"30분이면 충분하니까. 걱정 붙들어 매요."
그녀의 동공은 더 확장된다.
"설마 확인하면서 분류하시는 건 아니죠?"
"왜? 분류까지 해?"
"그럼 대환영이죠."
"여기 퍼스널 컴퓨터 있어?" "물론이죠. 지하 1층에 대형 서버실도 있는데 하지만 용량 초과라고 봐야죠. 우리도 신문명을 접하고 있다고요."
"용량 초과라고 그럼 그쪽을 먼저 손봐야 하겠네. 안내 좀 부탁해."
"네? 뭘 손본다는 거죠?"
"당연히 서버 확장이지. 그래야 일이 편해져."
"그건 사도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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