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의 비밀 3
연옥의 비밀 3
나는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항상 그래왔듯이 이런 기분이 들었던 날은 재수가 더럽게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면을 찾기 위해서 릴리스를 원래대로 되돌려야 한다고?"
"그렇죠. 그분만이 가면을 찾을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요."
''릴리스라면 연옥 최고의 수장인데 누가 감히 그녀를 봉인할 수 있느냐는 의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스스로죠. 협약이 있기 전 생텀 의회에서 가장 원하던 것이 릴리스였으니까요. 물론 그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릴리스 본체가 아니라 그녀가 가진 자궁이었지만요. 때에 따라서 수많은 악마를 낳을 수 있었으니까요."
"음, 그래서 협약의 조건으로 자신의 봉인을?"
"이그젝클리."
"야, 영어 발음을 한글로 하지 마 우습게 들려."'
"그분께서 후일 자신을 봉인에서 풀어줄 아들이 찾아올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들? 아, 미안하지만 나 그분의 아들은 아닌 것 같은데? 난 에덴의 시험관에서 만들어진 가공의···. 아!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릴리스의 아들인 거냐?"
"지금까지 낳았던 자식 중 최고의 자식이죠."
"난감하군. 그래서 릴림이 나를 돌봐준 거였군."
"루시퍼가 오랫동안 당신을 빼돌렸죠. 우리가 당신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상상도 못 할 거예요." "릴리스가 부활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지금 우리은하로 능천사가 모이고 있죠?"
"그래 그 정도 정보는 당연히 알고 있는 거고."
"어머니가 부활하면 그 전쟁을 막을 수도 있어요."
"어떻게? 라고 물으면 답해 줄 수 있어?"
이소라는 고개를 흔든다.
"제가 바라는 것은 어머니의 성정이죠."
"모성 말인가?"
"맞아요. 자신의 자식들이 소멸당하는 걸 절대 지켜보기만 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지. 이건 뭔가 느낌이 꺼림직해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거든."
"그건 미지에 대한 두려움일 뿐이죠. 그분은 당신의 어머니예요. 자식으로서 어머니를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그리고 가면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네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어떻게 확증하지?"
"당장 제 모가지를 꺾어 버리세요."
"그것부터가 거짓이지. 빙의된 인간 영혼 하나 소멸시켜봤자···."
"그러니 절 따라오라 했잖아요. 제가 있는 곳으로요."
"가, 앞장서."
이소라는 옷깃을 바로 세우고 거울을 한 번 바라보고는 앞머리를 정리했다.
"뭔 짓을 하는 거야?"
"전 여성이라고요. 여성의 특권을 무시하는 발언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적어도 연옥에서는···."
"지랄 그만 떨고 앞장서."
"이 몸 이현희와 비슷하지 않아요? 심사숙고해서 고른 건데?"
"세상 살기 싫거든 계속 지껄여 보던가?"
"쳇 무슨 남자가 유머 센스는 형편없네."
그녀는 투덜거리며 걷는 데 풍만한 둔부가 좌우로 흔들거렸다.
"아니 왜 하필 이런 도시를 세웠어? 이거 진짜야?"
"영혼의 쉼터라고 해 두죠. 물질을 구현화 시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전부 실제 존재하는 곳이죠."
"그러니까 왜 도시냐는 거야? 푸른 초원이 훨씬 낫지 않아?"
"영혼 전생에 따라 이전 사회에서 가장 익숙한 환경으로 구현시키는 것이 영혼이 훨씬 적응력이 높고 안정화돼요. 보세요. 전생에 각박한 도시 생활을 주로 했던 영혼을 아무것도 없는 푸른 초원에 던져 놓으면 불안만 가증될 뿐이죠. 자신이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어디죠?"
"그야 자기 집이겠지."
''그래서 가족처럼 한 아파트에 넣어둔 거죠."
"그 영혼은 해결할 방법이 진짜 없어?"
"저한테 물어보지 마시고 만든 분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까칠하기는."
"여자하고 자본적 오래됐죠? 마지막이 박정아였나? 아. 그러고 보니 그 여자 수수께끼가 참 많아서요.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질 때도 있어서 추적이 안 되더라고요. 여차하면 네크로폴리탄으로 애들 파견하려고 대기 중이긴 한데···."
절대 흔들림을 보여서는 안 된다.
"걔 건들면 여긴 작살나는 거지."
이소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타임 슬레이어를 가동했다.
"캭!"
"네가 이 여자 몸에 빙의했어도 시간을 되감으면 같이 감기는 거지. 주둥이 함부로 놀리면 어떤 대가가 주어지는지 직접 경험해 보라고."
"아, 알겠어요. 그, 그만 멈춰요."
타임 슬레이어가 심층 다이브와 비슷한 것이 시간을 역순으로 감으니까 과거의 행적들이 고스란히 플레이되는 것이다. 심층 다이브로 기억 뉴런 세포에 접근해 기억을 읽을 필요 없이 타임 슬레이어는 시간 자체를 거꾸로 되돌려 버리니 과거의 행적이 고스란히 역순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더욱이 아예 잃어버린, 즉 지워진 기억의 장면들도 빠짐없이 재생되니 심층 다이브보다 훨씬 큰 잇점이 있다.
대신 본체에 가해지는 시간 역시 거꾸로 돌아 버리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역순으로 시간의 폭풍에 휘말려 버리게 된다.
이소라에 빙의 된 릴림의 과거 행적을 빠짐없이 저장했다.
-탁
그녀는 어깨 위 내 손을 쳐냈다.
"말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정보를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감정에 우쭐해 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시죠."
"야 원래대로 시간을 감아놔야 해. 너 몇백 년 과거로 갔어. 기억된 정보가 사라졌지?"
"어? 와! 미친. 원래대로 해 놔요."
"신기하네. 과거 몇백 년 전 위에 바로 지금의 기억이 이어졌어. 마치 필름 영화 편집 작업하는 것처럼 말이야. 하하."
이소라의 타임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는데 빙의된 릴림의 기억뿐만 아니라 덩달아 이소라라는 이 여자의 기억까지 딸려 왔다.
이소라는 게으름이 아니다. 그녀가 중독된 감정은 사치다. 자신을 꾸미는 것에 모든 삶을 할애할 정도로 말이다.
게으름의 도시와는 전혀 맞지 않는 영혼이기에 릴림이 다른 곳에서 골라온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1970년대의 한국 사회의 모습을 얼핏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안내한 곳은 한 거대한 빌딩 앞이었다. 확실히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은 입구부터 감정을 차단한 것으로 보아 이곳 영혼과 다른 존재들이 머물고 있다는 것과 지금까지 인간 영혼 이외의 존재가 탐지되지 않았던 이유도 이 특별한 보호막 때문으로 파악되었다.
물론 언노운은 즉시 이 보호막의 구조를 파악했고 그러자 건물 내부에 있는 릴림의 모습이 이어링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98명이나 있네."
"어머? 벌써 숫자 파악까지 하셨어요. 역시 소문이 전부가 아니었군요."
"여차하면 여기 날려 버릴 수도 있어."
"연옥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했죠?"
"어. 알아. 도시에 피해를 주지 않고 요 건물만 싹 날려 버릴까 생각해 봤거든."
"한심한 소리 마시고 따라오시죠."
그 순간 이소라의 몸이 경직되더니 멍한 표정이 되었다.
"인간은 여길 통과할 수 없으니 놔 준 거예요. 처리반이 알아서 되돌려 놓을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란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소라의 몸에서 빠져나올 때 슬쩍 보기는 했지만.
"뭐 걸치지, 그래?"
"저흰 인간이 아닙니다. 의복 따위는 입지 않아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명언을 떠올리고 이해하시죠. 저희는 수치심이 없어요. 영향을 주는 것은 당신의 부끄러움과 성적 취향일 뿐이겠지만."
"안내해."
"당신은 생각보다 순진한 편이군요. 싸울 때는 가차 없더니만."
"이소라는 버렸고 네 이름은 뭐야?"
"조금 뒤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존재예요. 그냥 스쳐 가는 한 내일뿐인데 기억에 담을 필요까진 없어 보이네요."
뒤따라가는데 그녀의 몸매는 완벽함의 뭐랄까 걸작 중 걸작이라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었다. 여자의 알몸이야 정아나 현희 정도가 전부이지만 그 두 사람도 감히 이 릴림에게는 비할 바가 아니다.
완벽이라는 단어는 함부로 쓰는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감히 이 여성에게만은 완벽이라는 단어를 붙여도 된다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허리선에서 둔부로 이어지는 곡선이 우와. 예술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살짝 벌어진 두 다리 사이로 슬쩍슬쩍 보이는 비림은 남자를 돌아 버리게 할 정도였다.
이건 순전히 내 감정이다. 그녀가 따로 유혹의 감정이라든지 다른 술수를 사용한 것이 아님에도 이 정도 충격을 받는다면 평범한 남자가 봤다면?
"몸매 하는 끝장나는군."
솔직히 이 말을 할까 말까 졸라 망설였지만 나도 모르게 저절로 튀어나와 버렸다.
"후후, 수컷의 당연한 본능에 기인한 거니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수컷은 그리하게 되어 있으니 당연한 거니까요. 아, 참고로 저희는 성적 수치심이라든지 순결이라든지 여성이 가지는 그런 감정 따위는 없으니까 원하시면 언제든 품에 안을 수 있어요. 처음 보는 그 누구든지요."
"너희 쪽에서 거부할 수도 있잖아?"
"수만 년을 굶어서 거부할 년은 한 명도 없을걸요. 오히려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 나는 년들이 더 많으면 많지."
"서큐버스와는 다르지?"
"음, 저희 쪽에서 악마로 아예 전향하면 대부분 많이 얻는 직책이긴 하죠. 서큐버스 대부분이 릴림 출신인 건 부정할 수 없겠네요. 하지만 마녀 쪽에서 라인 타고 온 애들이랑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그네들은 몽마수준이지만 저희는 진짜 악마니까."
건물은 100층짜리다. 언제나 말하듯이 악마나 천사가 인간이나 가장 높은 곳을 좋아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발아래 지배층을 두는 것은 일종의 자기만족과 더불어 권리 행사인 모양이다.
내 위에 뭐가 있다는 그것보다 내 발아래 뭐가 있다는 것이 훨씬 느낌이 좋으니까.
릴림도 인간의 과학적 산물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엘리베이터 안에 둘이 타고 있으니 살냄새가 진동한다.
"그거 진짜 인간과 같은 살이야? 세포 구성도 인간과 같아?"
"당연히 다르죠. 저희를 낳은 것은 어머니지만 씨를 준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릴림의 종류도 다양하게 파생되어 있어요. 전 악마쪽 피를 진하게 받았으니 준 악마라고 해 두죠. 제 몸에서 성적 매력을 느꼈다면 언제든 봉사할 테니 확실한 표현만 해 주세요. 호호."
"난 연옥에 떡 치러 오는데 아니란 말이야."
"어머? 떡 치는 데 온종일 걸리는 것도 아니고 잠깐 기분 내면 그만인데 본능을 애써 자제하는 것도 나쁜 버릇이에요. 누가 뭐라고 하는 존재도 없는데···. 어때요? 지금 당장이라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후딱 한 판 어때요?"
살냄새가 진동하는 데다 이런 말까지 들으니 후끈하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내 정신 상태는 된장과 똥 정도는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정도다.
-팅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나타난 풍경은 그야말로 아방궁 저리가라다.
벌거벗은 수많은 여성이 풍만한 신체를 흔들고 다니는데 얄짤 없는 상황이다.
이 상태에서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욕먹을 것 같은 기분이다. 다 수컷 한 마리인 나를 바라다보고 있으니까.
희한하게도 이럴 때 드는 첫 번째 생각이 뭔질 아는가?
와! 미치게도 지금, 이 순간 떠오른 생각이···.
내가 좀 더 키가 크고 우락부락한 근육에 한 덩치 하고 진짜 연예인 뺨치는 미남이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는 거다.
젠장할 나도 발정한 수캐에 불과한 놈이란 말인가? 이 정도 풍경에 흔들릴 정도인가?
아니 왜 릴림은 하나같이 이토록 완벽한 단어가 저절로 들어갈 정도로 몸매가 뛰어난 거지?
인간으로 치면 뚱뚱한 놈도 있고 삐쩍 마른 놈도 있고 못생긴 놈도 있고 잘생긴 놈도 있는데 릴림은 하나같이 그냥 기똥차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정아에게 미안한 마음이지만 몸매는 아예 비교 자체가 불가한 수준이다. 미안해 정아야.
성적 수치심이 아예 없는 관계로 거시기가 뻔히 눈에 비치는데도 가길 생각도 없고 그나마 털이라도 있는 릴림은 다행이지만 아예 없는 애들은···.
애써 고개를 위로 들면 수박 두 개가 흔들흔들···. 또 고개를 들면 와, 미인도 이런 미인이 없다. 다른 건 다 거른다 해도 얼굴 하나만큼은 진짜 감탄사가 절로 나올만한 미인들이다.
이런 애들이 알몸으로 바글바글한다.
다만 태생이 다 다른지라 머리카락 색깔도 천차만별이었고 뿔 달린 애들도 있고 뿔의 모양도 아버지의 피를 받아 대부분 다르고 서큐버스처럼 날개 달린 애들도 있는데 심지어 천사와 같이 흰 독수리 날개를 단 애들도 있었다.
진짜 진짜 남자들에게는 천국이 아닐까 싶은 정도다. 이 애들이 전부 릴림이라니.
"후, 그 입 좀 다물고 이쪽으로 따라와요."
아! 시발 이 장면을 보고 감흥이 없다면 고추 떼고 뒈져야 정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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