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아레나
세 번째 아레나
내부에서 중력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블랙홀처럼 모타울로의 신체를 삼키기 시작했다.
【더 지체하면 중력 중화도 하지 못합니다. 이 차원 전체가 붕괴할 우려가 있습니다】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내 판단을 믿어 봐.'
밖의 상황도 그랬다.
"저것 봐. 아예 차원이 통째로 무너지겠는데?"
"피의 교단 녀석들 이번에도 스스로 무너지네."
"사악한 놈을 섰어야 했어. 저런 순둥이 가지고 장난친 죄지."
"뭔 인간 하나 못 잡아서 개 쇼를 하고 자빠졌나?"
"한심한 새끼들이 바쁜 악마 모아놓고 지랄 질이네."
"피 교단 새끼들 아레나 개최한다고 꼴값 떨 때 알아봤다."
"내가 나가도 저 새끼들보다 더 잘하겠다. 인간 하나에 발광을 떠내."
"개 삽질을 하네. 삽질을 해."
"칼로 살짝만 그어도 내장이 터 기어 나올 텐데 저게 뭔 짓이냐?"
"와. 내 눈깔로 보고 있는 저 장면이 진짜 실화인가? 꾸민 것 아니고?"
난리도 아니다. 피의 교단측 악마는 인상을 오만상 구기고 있다.
프레스투스는 그런 그들을 힐긋거리더니 말했다.
"피의 교단 측은 패배를 인정하십니까?" "···."
영상 속에서는 모타울로가 스스로 자멸해 몸이 산산이 빨려 들어가는 장면이 내 모습과 겹쳐 보여지고 있었다.
모타울로의 신체는 완벽히 소멸했다. 붕괴한 중력은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중력 중화 한계점을 돌파했습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탈출을 서둘러 주십시오】
"시끄러 지금 나가면 트집잡힌다. 녀석들은 아직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어."
나는 천천히 게이트 쪽으로 움직였다. 주변의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고 중력이 일그러지면 이 차원은 끝이다. 스스로 소멸하는 것이다.
"뭐 하는 거야?"
"야, 인정할 건 인정해라."
"지겹다. 뭘 더 원하는가?"
"짜증이 나게 하지 마라."
"그래도 투투아레나 명성이 있지 이만큼 봐준 것 만해도 어디냐?"
"피의 교단 인정해라."
"다 끝난 판인데 왜 저러고 있어?"
군중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피의 교단 명성과 참여한 악마의 계급이 있어 욕지거리는 면상에 대고 할 순 없지만 그들도 판돈은 날린 판국이라 화살은 올곧이 피의 교단을 향했다.
"인정한다."
정확히 3초후 베르들레의 패배 인정을 들었다. 공간이 깨져 나가고 곧 게이트마저 삼키기 직전이었다.
"아라곤 탈출 했습니다. 그리고 피의 교단이 패배를 승인했습니다. 승자는 아라곤!"
환호성은 없다. 웅성거리는 소음뿐.
이기적인 놈들은 자기들이 잃은 칩 값에 분노할 뿐이다.
"잠시 휴정을 갖지."
베르들레가 휴정을 요구해 왔다.
토트는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너도 좀 쉬거라. 저들은 최후의 수단을 준비할 시간을 요구하는 거다."
개구리는 무슨 말은 하고 싶은데 차마 높으신 악마 앞이라 어쩌지 못하고 끙끙댄다.
아마 왜 자꾸 저쪽 말을 들어 주나? 우리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 정당한 대결이 아닌가?
피의 교단이 시간 벌 시간을 굳이 왜 만들어 주는가? 정도이겠지.
그건 개구리뿐만 아니라 위스퍼모어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유리한 쪽을 요구해도 시원찮을 판에 파리 교단은 왜 피의 교단 요구를 곧이곧대로 받아주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난 상관하지 않는다. 이것이 시험이라면 당당히 치러내면 그만이다.
언노운도 늘 말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고.
나도 같은 생각이다.
천사라고 해서 무조건 빌붙을 필요 없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악마라고 죄다 배척해서도 안 된다.
내 위치가 아주 묘한 경계점에 있기 때문이다.
지구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양쪽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 루시퍼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고 낙인을 준 이유도 네가 네 위치를 알고 뭐든 하라는 의미겠지.
감히 루시퍼조차 어찌하지 못한 나를 피의 교단 따위가···.
가소로운 마음에 콧방귀가 나왔으나 지금은 숙여야 할 때다. 아직은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된다.
최소한 태고의 악마 세 마리를 부활시키기 전까지는 말이다.
언노운의 충고는 과거 다른 차원과 비교했을 때 아직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부족하다고 판단한 상태에서 태고의 악마를 소환해 제어하지 못하면 낭패도 또 그런 낭패가 없다.
이런 아레나에 참여하며 내 힘을 가늠해 보는 것도 다 그런 이유가 깔려 있다.
지옥에서 더는 문제의 크기를 키우지 않기 위해서는 숙일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주인님 저희 때문에 고생이 많습니다. 그런 끔찍한 놈을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처리하시다니요."
"흥, 주인님 잘못되면 저도 갈려 나갈 것 뻔한데 입에 발린 소리 하지 마라. 개구리 역겹다."
"너도 마찬가지일 텐데? 주인님이 잘못되면 너도 끝이야. 난 세 번째 하기로 했으니 네 죽음을 먼저 보고 가는 것이 행운일지도 모르지."
"뭐라고? 누가 너더러 3번 하래? 미친 새끼가."
"흥, 토트님이 이미 정하신 바다. 벌써 선수 목록은 저쪽에 제출했다고."
위스퍼모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믿을 건 너밖에 없다."
"약속 지켜라. 원하는 건 다크에덴의 개구멍 그거 하나면 족해."
"만약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내 모든 권능을 불태우더라도 찾아 주마. 다크에덴의 개구멍을."
"풋, 내 앞에서 각 잡을 필요 없어. 난 악마를 믿지 않아. 원하는 것은 결과물이다. 알지?"
"당연한 이야길!"
"근데 이제 어떤 놈을 보내올까요? 모타울로만 해도 끔찍한 혼종의 괴물인데 그것보다 더 한 놈이 나온다면 주인님이 버틸 수 있을지···. 함께 입장할 수 있다면 제가 방패막이가 되어 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미친놈이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방금 전투 상황을 보고도 하는 말이냐? 아라곤 짐밖에 더 돼? 방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제발 그 주둥이 처닫고 가만히 있는게 도와주는 거야. 넌."
"피의 교단에서 개정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아시다시피 한 번 정해진 선수는 교체할 수 없습니다. 혹시나 다른 우려한 상황이 발생했다거나 술수를 쓴다고 생각하신 분들은 이번 베팅에 집중해 주십시오. 피의 교단은 어떠한 부정행위도 저지르지 않습니다. 휴정을 요청한 것은 베틀 그라운드 선택에 대한 논의 때문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베틀 그라운드는 요청에 따라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라곤 진형의 파리 교단에서 요청이 들어와도 마찬가지입니다."
개구리가 말했다.
"정해진 선수라면 우리에게는 왜 알리지 않는 겁니까? 저희 쪽 선수는 이미 다 오픈한 상태인데?"
"꼭 밝히라는 규정은 없어."
"모타울로까지는 흘려 주더니 세 번째는 과연 어떤 놈이 나올까요?"
"모타울로로 실패를 봤으니, 뭔가 다른 놈이 나오겠지. 아. 한 번 남았다. 이번 한 번만 이기면 끝인데···."
위스퍼모어도 긴장이 되는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음 참가자는 2승을 한 아라곤 대 인섹트로 백작이 되겠습니다."
"인섹트로?"
"인섹트로라면?"
"자, 참가 장소를 정하죠. 이번 세 번째 경기는 진행 측의 공정한 논의 결과 블러디리퍼의 다크크러셔가 되겠습니다."
"음, 이번 건 좀 볼만 할 것 같네."
"좁은 곳이라 별의 힘을 쓸 수 없을 것 같긴 한데?"
"먹고 먹히는 룰. 이게 진짜 싸움이지."
악마 인명사전에도 있는 놈이다. 상당히 까다로운 녀석인데 주특기가 사물의 벡터화이며 곤충형 악마로 되어 있다.
'벡터'는 수학적으로 크기와 방향을 가진 양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공간에서 위치나 운동의 방향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녀석의 기술 '벡터와'는 데이터를 특정한 형태로 변환하거나 표현하는 작업을 통칭한다. 이를테면 이미지나 텍스트, 입체 공간의 사물까지 숫자 형태로 표현하는 그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건 다른 의미에서 내 기술과 비슷하면서도 상충 되는 기술이다. 잘하면 치열한 공방전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아레나 투기장이 어떤 곳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곤충형 악마라 잘 만하면 원폭 한 방에 증발 시킬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먼저 할 것이다. 상대도 그걸 알면서 인섹트로를 출전시킨다는 것은 충분히 방어할 비책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블러디리퍼의 다크크러셔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이상 입장하고 난 다음 걱정해도 될 일이다.
"파리 교단은 한 선수가 계속 아레나에 임하는 관계로 휴식을 요청하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가겠습니다."
토트는 한 손을 휘저었다.
"그럼, 바로 운명의 3차전을 치르겠습니다. 이 한 번으로 승패가 결정 날 것이며 영원한 승자와 패자가 나뉘게 됩니다. 선수 각자 게이트 앞으로."
상대가 보이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보이지 않았다. 게이트 앞에 하루살이 몇 마리 날아다니는 것을 빼고는 말이다.
"그럼, 출발 카운터를 세겠습니다. 열, 아홉, 여덟···."
카운터가 완료되는 즉시 게이트 안으로 뛰어들었다.
시큼한 냄새···. 식초 냄새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고약한 냄새는 시체 썩는 내였다.
게이트 곧바로 닫혔다.
벽면 천장 바닥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이건 둥그런 파이프? 라인 같은 곳인 듯 보였다.
벽면 재질을 확인해 보니 헬오어다.
얼마나 두꺼운지 측정이 되지 않을 정도다. 두드려 소리가 퍼져 나가는 것을 보고 대충 두께를 가늠해 보려 했는데 끝이 없을 정도다.
"하, 여기서 핵을 터트리면 그냥 다 죽는 거네."
이 좁은 공간에서 핵 사용은 나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공기의 질도 무척 낮다. 산소 농도도 인간이 호흡할 수 없을 정도고 질소의 농도가 높다.
다행인 것은 유독한 대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바닥에 질척이는 것이 있는데 썩는 냄새는 그곳에서 났다.
이 원통형 구조를 보면 LA 도시 내 거대한 하수도관이 생각난다. 진짜 하수도관처럼 밑에는 썩은 물이 고여 있다.
【많은 세균과 바이러스가 발견되었습니다. 결핵균, 인플루엔자, 에볼라, 페스트, HIV 바이러스, 말라리아 기생충, 콜레라균, 장티푸스 박테리아, 플라스모디움 기생충 등 인간에게 해로운 모든 종류의 세균과 바이러스가 대기 중에 가득합니다】
'이곳은 미로처럼 되어 있을 거야. 지도 그려봐.'
【이미 지도를 그리는 중입니다】
'냄새 하나는 끝내 주는군. 구역질이 날 정도야.'
모든 병원균, 바이러스에 완전 면역인 나로서는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단지 콧구멍을 막아 버리고 싶을 정도의 냄새를 제외하면···.
후각은 적의 동태를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하므로 죽여 놓을 수 없는 감각이다.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생각했던 것처럼 미로처럼 복잡한 곳이다.
쉰 냄새까지 있으니 끔찍했다. 랜턴을 꺼내 불을 비추니 맙소사.
벽면에 울퉁불퉁 달라붙은 것은 썩은 생명체의 살점이었다. 바닥에 고인 물은 썩은 핏물이었고 거기다 반쯤 핏물에 잠진 인골도 보였고 온몸에서 찌릿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한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뭐라도 나오면 이해가 될 만한 곳이기도 했다.
너무 역겨워 데쓰로그를 소환해 앞으로 보냈다. 공간이 협소해 데쓰로그는 거의 꽉 채워졌다.
녀석들은 좁은 공간을 선호하지 않은 모양인지 파이어 소드로 벽면을 후려쳐 댔다.
헬파이어를 뿜어내 벽면과 천장 바닥에 고인 썩은 핏물까지 죄다 증발하면서 전진했다.
냄새가 사람 미치게 할 정도다. 뭐 딱히 신체에 해가 되는 것은 없지만···.
공간이 이따위니 광역 기술은 쓰지도 못하게 생겼다. 기술이 너무 화려하고 강해도 또 이런 곳에 봉착하니 당황스럽긴 하다.
공간을 떼어내려고 해도 이 좁은 공간에서 뭘 하기도 그렇다. 이젠 오만가지 것들이 난리다.
데쓰로그가 뿜어낸 헬파이어에 불이 붙은 쥐 떼가 발악하며 뛰어다닌다. 모두 페스트균을 보유한 쥐벼룩이 한가득 붙어 있다.
헛구역질이 절로 나는 장소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픈 맘이 앞서는 곳이다. 저번 중력이 20배였던 가가혼타스는 차라리 안방처럼 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락케가 봤으면 환장할 만한 바퀴벌레는 그 크기가 무슨 생쥐만 한 것이 눈앞에서 날아다닌다.
데쓰로그 조차 괴로워한다. 안 그래도 좁은 곳에서 불을 뿜으며 전진하니 속도로 나지 않고 오만가지 벌레며 쥐며 바퀴며 모기, 날파리 진짜 환장하는 곳이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차원 에너지를 고압축 해 플라즈마 상태로 만든 뒤 플라즈마에서 발생하는 이온 원자를 방출시킨다.
디멘션 아크 입자포를 냅다 갈겼다.
끝도 없이 이어진 지하도가 순간 빨갛게 달아올랐다. 헬오어의 두께가 얼마나 두꺼운지 디멘션 아크 입자포에도 달아오르기만 할 뿐 끄떡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벌레며 오만가지 잡것들은 한꺼번에 증발했다.
입자포는 어둠을 뚫고 계속 앞으로 나가더니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이 하수도 도대체 얼마나 긴 거지?"
- 작가의말
재미 없는 글 질기게도 쓰네 욕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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