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파괴자2
행성 파괴자2
내핵 근처에 도달했다.
행성의 내부로 갈수록 압력과 지열로 인해 외부 온도는 약 6천 도였다.
내핵 구성요소는 대부분 철과 니켈이다.
금속의 액체 덩어리인 내핵은 방사능 붕괴와 충돌 에너지에 의해 유지되지만 중력 이상으로 내핵은 행성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 와 있었다.
즉 여기서 더 쪼그라들면 내핵은 중심점이 무너져 폭발하게 되고 보유한 에너지는 밖으로 방출될 것이다.
별의 죽음과 같은 현상이 이 행성에서 발생할 것이다.
'정확한 포인트 존을 표시해.'
【알겠습니다】
내핵 한 곳에만 에너지를 집중해서는 안 된다. 원형의 내핵 여러 곳에서 한꺼번에 폭발시켜야 마지막 한계를 넘기게 된다. 원폭의 원리를 생각해 보면 비슷한 이치다.
언노운이 표기한 곳에 임계점에 거의 다다른 공간을 부착시켰다.
'타이머는 10분에 맞춰. 충돌 예상 시간은?'
【18분 39초 후입니다】
내핵에 설치 완료 시까지 3분이 소비되었다. 남은 시간은 15분.
미친 듯이 지표면을 뚫고 날아올랐다.
바로 유루우바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이어링에 표기된 붉은 디지털 초 단위 숫자가 바뀔 때마다 가슴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심층 다이브 준비해.'
유루우바의 이마에 손을 댔다.
"걱정하지 마! 곧 내 소원은 이뤄질 거다."
심층 다이브를 통해 유루우바의 기억을 뒤졌다.
이들 메페스인은 오랫동안 오염에 노출되었고 서서히 변질하였다. 하루아침에 메페스인이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문지기의 정보로는 최소 수천 년 이상으로 이 행성의 모든 생명체가 멸종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찾았다. 언노운 신전 지역만 따로 추출해 이어링에 표기해 줘.'
미친 듯하다는 표현이 정말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마도 내 인생에서 이렇게 떨리고 집중했던 적이 또 있을까 싶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의 트라우마는 황당하게도 정크 보이 시절 고블린에 찔렸을 때다.
그 이후 많은 경험을 겪었지만, 그때의 공포만 한 절망은 더는 맛보질 못했다.
짜릿함에 긴장감이 대폭발한 경우는 이번에 최고치다. 온몸에서 아드레날린이 폭발적으로 치솟아 오르는 것 같았다. 물론 포른의 몸에서는 아드레날린이라는 효소가 나올 리는 없겠지만 내 정신은 그것을 초월해 가는 것 같았다.
고도의 집중력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고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머리가 더 잘 돌아가는 것 같다.
'스캔해'
【특별한 것은 잡히지 않습니다】
나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신전.
즉 어떤 대상을 향한 믿음을 증명하는 장소.
신전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미카엘 때문이다.
미카엘이 여기서 믿음이 담긴 기도를 들었기 때문에 나더러 그를 구해 달라고 한 것이다.
메페스인도 지성체이니 당연히 종교 같은 것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인간 중에서도 돌연변이가 나온다.
돌연변이를 생물체의 유전자 내에서 발생하는 변화로 정의된다고 가정하자. 메페스인은 오랫동안 오염에 노출되었다. 균열의 오염에 내성을 가진 돌연변이가 탄생활 확률은 분명히 있다.
생명체는 자연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으며 어떻게 하든 환경에 적응하고 순환하려는 자연 의식을 계승한다.
아무리 균열의 오염이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생명체는 삶을 이어가려 발버둥 친다.
미카엘이 말한 것을 생명 공학적 테두리 안에서 생각해 보면 이것밖에 생각할 수 없다.
오염에 대응하는 돌연변이를 가진 지극히 정상적인 메페스인의 기도가 울려 질서 있는 곳.
모두가 깡그리 미친 곳에서 신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곳. 오직 신전뿐이다.
그 기도의 소리를 미카엘이 들었을 거고.
【특별한 반응이 없습니다】
다음 표시등으로 날았다. 물론 엄청난 도박일 수밖에 없다.
미친 메페스인을 피해 있더라도 문제는 식량일 것이다. 그들이 만약 동족 포식했다면 미카엘은 그를 구원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성한 음식 제대로 된 음식을 구할 수 있는 곳은 타락하지 않는 곳. 즉 신성력이 남아 있는 곳이다. 오직 그곳만이 그들이 죄짓지 않고 살아 있을 유일한 곳이다.
가능성이 있다면 과거에 남은 유산인 신전뿐이라고 생각했다.
8분 남았다.
【여기도 특별히 검출되는 현상은 없습니다】
이어링에 표시된 점 등은 수십 개 다 이 행성 군데군데 흩어져 있어 시간 내 전부 방문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오직 운에 맡겨야 하나.
【이곳에도 검출된 것은 없습니다】
나는 반쯤 무너진 신전 안으로 날아내렸다. 이미 많은 메페스인은 죽었고 이 도시는 텅 비어 있었다.
신전은 단순했다. 신전 가운데는 그대로 세월의 흔적을 덜 탄 것 같은 지름 1m짜리 기둥이 서 있는데 높이는 정확히 38.98m였다.
우리 종교와 달리 대상을 우상화하여 믿는 것은 아니다 이 기둥 수많은 손자국의 흔적이 있다.
우리와 달리 정신 계열이 발달한 메페스인은 네트워크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신전의 이 기둥은 정신 네크워크를 연결하는 안테나 역할을 했던 거란걸 바로 알 수 있었다.
5분 남았다.
나는 기둥에 손바닥을 대고 온 정신을 집중했다.
'누구 없습니까?'
반응이 없다.
'언노운 싸이킥 파워 출력을 최대치로 올려'
【알겠습니다】
'누구 없습니까?'
기둥이 윙윙거리며 울기 시작한다. 긴 떨림에 기둥이 부르르 떨며 휘청이기까지 했다.
'누구 없습니까?'
답이 없다. 부질없고 쓸데없는 생각인 건가?
마지막으로 기가스 시더를 가동해 신성력을 기둥에 쏟아냈다.
그러자 대리석 같은 기둥에서 새하얀 빛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라갔다.
찬란하고 은은한 빛이 기둥에서 일직선으로 하늘 위로 올라갔다.
"나도 멍청하기는 기둥을 울리는 요건이 신성력이라니. 미카엘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이거였어. 메페스인은 절대 멸종하지 않아."
'누, 누구십니까?'
답이 온다. 미치겠다. 마음속에서 상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소름이 솟아올랐다.
'언노운 위치 파악해.'
【신호 역추적. 위치 표기하겠습니다】
남은 시간 4 분 10초.
'몸에 무리가 가도 좋으니 최대 속도를 내'
"으아아아아."
아마 내 인생 통틀어 가장 빨리 난 것 같다.
지구보다 훨씬 커서 거리가 월등히 멀게 느껴진다. 평범한 사람은 지평선을 보지 못할 정도니까.
저기다.
신전 안으로 뛰어들었다.
2분 32초 남았다.
신전 기둥에 모인 사람은 3명.
중년 남자 하나, 열서너 살 남자아이 한 명, 그보다 좀 더 어린 여자아이 한 명.
무엇보다 그들 몸에서 뿜어지는 오로라는 정상이다.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메페스인이다.
【검색 중 이상한 주파수 대역이 포착되었습니다. 무선 주파수와 비슷한 파동입니다. 이것은 상당한 과학적 결과물입니다】
'쉽게 말해.'
【저조차 이해하기 힘든 고차원적 기계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신경 쓰지 않고 저들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생각해 보라고. 아니 잠깐만 고차원적이라고? 신호는 어디서 나오지?'
【이 신전 지하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두려움이 가득한 사내는 아이를 양품에 앉고 떨고 있다.
이곳에서 다른 메페스인을 보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핑 풀어.'
나는 인간 정동혁으로 돌아왔다.
"당신 기도 소리를 듣고 왔어. 너희 셋 뿐인 거냐?"
완전히 변한 모습에 사내는 매우 놀라 했다.
"한 명이 더 있습니다. 제 아내입니다. 폭력적이라 가둬 놓았습니다. 부디 제 아내를 보살펴 주십시오."
시간이 너무 없다.
나는 곧장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갔다.
【조심하십시오. 외벽에 닿습니다】
'외벽? 어? 이건 뭐지?'
【검색 중. 우주선의 일종이라고 판단됩니다】
'우주선? 입구는?'
【신전의 지하 입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주선 안으로 들어오니 세 사람도 신전 지하로 내려오고 있었다.
1분 59초 남았다.
'이거 움직일 수 있어?'
【시도해 보겠습니다】
나는 지하 입구 계단 위로 뛰어올랐고 뛰어 내로 오는 세 사람을 공간 안에 잡아서 우주선 안으로 끌어당겼다.
【동력 이상 없습니다. 기동합니다】
순간 바닥이 출렁거렸다. 공간을 해제하자 세 명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내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제발 제 아내를···. 아내 없이는··· 저희는 여길 떠나지 않겠습니다."
'언노운 저 세 명 심장을 멈춰.'
【알겠습니다】
나는 기가스 시더를 일으켜 세 사람을 휘감았다. 그리고 곧 그들은 힘없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세 명 다 심장이 멈춰 즉사해 버렸다.
【이륙합니다. 출입구 폐쇄합니다】
59초 남았다.
나는 문이 닫히기 전에 빠져나왔다.
공간을 최대한 뾰족하게 만들었다. 공기 저항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다.
거기에 언노운이 공기 역학적 구조로 날개를 달아 마무리 지어 주었다.
내 뒤로 엄청난 속도로 하늘 위로 솟구치는 우주선 모양이 보였다. 납작한 둥근 원형의 우주선이다.
"유루우바"
녀석은 창가에 서 있었다. 나는 공간 안에 유루우바를 태우고 날아올랐다.
우주선을 쫓아 미친 듯이 날았다.
대기권을 돌파. 39초
저 멀리 다가오는 놈의 모습이 보였다.
문어?
거대한 하늘을 가득 메운 문어를 본 적이 있는가? 달만 한 크기의 문어다.
거대한 발을 보라. 어마어마한 크기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놈의 모양을 자세히 볼 틈도 없었다.
【제시간 안에 폭발 위력 밖으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행성의 폭발을 제대로 맞으면 공간도 와해 될 겁니다】
'저 새끼 뒤로 돌아. 문어 대가리 뒤쪽으로!'
【현명한 판단입니다】
-뻐뻐뻐뻐어어어어어어쩍!
천지창조가 되는 순간과 같은 느낌이다. 거대한 자투스 행성이 대폭발을 일으켰다. 문어 대가리가 행성에 충돌하기 12초 전에 먼저 행성이 폭발했다.
"으와와와와~~~~"
누가 뒤에서 무지막지한 힘으로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미친 듯이 떠밀려 가는 느낌.
몸이 공중분해 되는 정도의 느낌을 받았다. 공간 안에 들어 있음에도 그 공간을 펄스 쉴드로 감싸고 있음에도 황당하리만큼의 고출력 에너지가 나를 통째로 밀어대는 것 같았다.
저 거대 문어를 방패로 삼지 않았다면 아마 공간째로 증발하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모든 것이 끝이 났다.
나는 대폭발을 일으킨 자투스 행성을 바라보며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행성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그 잔해 속에는 문어의 파편도 섞여 있었다.
"유루우바. 보라. 네 행성은 깨끗이 사멸했다. 네 소원대로 네가 메페스인의 마지막 생존자다."
"킬킬 그렇습니까? 만족합니다. 제 소원은 완성되었습니다. 킬킬킬킬킬"
공간 안에 들어 있어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유루우바는 그렇게 말하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너와의 계약은 완료되었다. 네가 살아남은 유일한 메페스인이다."
나는 놈의 공간을 해제했다.
"우엑"
유루우바는 그 짧은 비명을 끝으로 우주의 티끌보다 작은 먼지가 되었다.
그 곁으로 파괴된 행성의 잔해가 거대한 파도처럼 덮쳐왔다.
나는 저 멀리 날아가는 우주선을 쫓았다.
'문 열어.'
우주선 안으로 들어온 즉시 말했다.
'세 사람 심장을 다시 뛰게 해.'
세 사람은 의학적으로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그래서 유루우바의 소원이 정확히 이뤄진 셈이었던 거다.
【심장 박동이 재기 되었습니다. 다시 뛰기 시작합니다】
신성력으로 이들의 정신과 영혼을 붙잡아 두고 있었다.
신성력을 풀고 잠깐의 전기 충격을 주자 '헉'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렸다.
"아내는?"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네 유전자만 구원받을 수 있어. 넌 오염에 저항할 수 있는 돌연변이고 네 자식은 네 유전자를 물려받았지만 네 아내는 그러질 못해. 구원받을 수 없다. 그리고 네가 살던 행성은 이미 우주의 먼지로 사라졌어."
"흐흐흑"
그는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건 뭐야? 메페스인이 만든 건 아닐 테고? 난데없이 웬 우주선이야?'
【추측건대 행성 조사용으로 파견된 다른 행성의 우주선인 것 같습니다. 자투스 행성에 불시착한 것은 아닌 것 같고 항해 일지를 보니 정확히 자세 착륙을 시도했고 우주선은 은폐한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 메페스인이 우주선 위에 신전을 세운 거군. 와! 그런데 온몸의 힘이 다 빠지는 기분이 들어.'
【긴장이 갑자기 풀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신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당연한 소리를···. 쳇 우주선이라고? 미카엘은 이미 이들을 탈출시킬 계획을 시도하고 있었군. 대천사라도 우주선을 띄울 능력은 안 되는 거냐고?'
사내는 엎드려 울고 있는데 아이들은 그런 사내 양쪽에 붙어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외계인이라도 아이는 다 귀엽네.
사내아이를 안아 들고 창가로 가 시커먼 우주를 보여 주었다.
'야, 우주선 돌려서 좀 멋진 장면이 보이는 곳으로 맞춰봐.'
언노운이 우주선을 돌리자 창문 밖으로 아름다운 별 무리가 보였다. 그것은 폭발한 자투스 행성의 잔해가 퍼지는 모습이었다.
"너 이름이 뭐니?"
"자비스, 아버지는 자투스, 동생은 자일라."
"자비스 너와 저 두 명이 살아남은 마지막 메페스인 세 명이다. 저기 저 아름다움 별 보이지? 저곳이 네가 살던 고향 행성이란다."
자비스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끔뻑끔뻑했다.
격정의 감정이 가라앉은 자투스에 지금까지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곧 이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생존해 있을 수 있는지 알게 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다.
이 우주선의 한 부분에 손을 가져다 대면 메인 컴퓨터가 생명체를 스캔하여 분석하고 그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영양소가 담긴 음식을 유전자 조합 및 분자 결합으로 즉석에서 생성해 내놓았던 것이다.
이들이 동족을 포식하지 않고 신전에 숨어 버틸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투스의 입을 통해 메페스인 파멸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