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의 생명체
옛것의 생명체
렉토스카르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자 주변에 몰려 있던 카르니지 크롤러스들이 박살이 나며 바스러졌다.
그런데도 이 폭력에 미친 악마들은 그 장면에 희열을 느끼는 듯 더욱더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잠든 거인의 언덕 아래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두려움의 공포가 사라진 것이다. 고대신의 파편이 아주 소멸했기 때문에 그동안 접근하지 못했던 악마들이 이젠 거리낌 없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폭력.
나와 렉토스카르의 전투 폭력은 주변 일대를 완벽히 감염시켰다. 무수한 악마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아비스 애쉬즈와 카르니지 크롤러스가 한데 뭉쳐 난리가 난 상황이 벌어졌다. 서로서로 죽이는 살육의 잔치가 벌어졌다.
렉토스카르와의 전투로 인한 폭력의 희열이 싸움 구경하던 카르니지 크롤러스에게 퍼져나갔고 그 희열의 전염은 이들을 광기에 빠트렸다.
그 광기의 냄새를 맡은 아비스 애쉬즈들 마저 끌어들였고 고대신의 파편이 없어진 지금 잠든 거인의 언덕은 그야말로 수라장이 되었다.
서로 뒤엉켜 싸우는데 지축이 쿵쿵 소리를 지르며 흔들릴 정도였다.
유성이 행성에 충돌하는 파워와 맞먹는 힘으로 렉토스카르의 몸체가 운석공 안으로 떨어져 내렸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산산이 부서진 카르니지 크롤러스의 육편들이 수 없이 하늘로 빨려 올라갔다.
거대하고 치열한 전장이 바로 내 발아래서 벌어지고 있었다. 수소 폭발의 잔재는 중자기력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고 그 위에서 악마는 몸이 녹아내리는 것도 망각할 정도로 폭력의 희열에 빠졌고 그 흥분도는 최고조에 올라 있었다.
죽고 죽이고 먹고 먹히는 맹렬한 전투의 권능이 주변 일대를 빠르게 감염시켜 나갔다.
놈들이 뿜어내는 권능은 어마어마할 정도였다.
렉토스카르는 아직 죽지 않았다. 놈은 하늘 위로 힘차게 날갯짓하며 솟구쳐 올랐는데 입에서 새하얀 열선을 지상으로 마구 쏘아 댔다.
열선에 맞은 존재는 깨끗이 소멸했다. 놈은 영감의 탈을 쓴 악마가 아닌 진정한 본모습을 보인 카오스 크러셔스였다.
한바탕 폭력의 희열을 맛본 녀석은 나를 향해 곧장 날아올랐다.
-번쩍
인간 영감일 때와는 아예 파괴력 자체가 다른 열선이 쏘아져 나왔다.
마그닉필드를 펼쳤다.
펄스 쉴드를 간단히 부수고 차원 공간 다섯 개를 간단히 뚫어 버린 열선도 마그닉필드는 어쩌지 못했다.
자그마한 열기조차 내 몸에 닿지 못했다.
그때 이어링에서 경고음이 굉장한 소리를 냈다.
서쪽 방면 9시 방향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접근하고 있었다.
【또 다른 카오스 크러셔스입니다】
'이놈들 폭력의 냄새를 맡고 모여드는구나'
카오스 즉 혼동을 일으킬 만큼 폭력에 미친 악마. 7고리의 지배자 카오스 크러셔스 두 마리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다.
렉토스카르의 열선이 멈췄다. 놈도 다른 이방인의 존재를 느낀 모양이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놈을 기다렸다.
렉토스카르는 내 반대쪽으로 돌아 날았다. 몸집이 거대한 만큼 움직임 또한 육중하게 느껴졌다.
날개 길이만 100m에 육박했다. 저 거대한 몸체가 어떻게 작은 인간 영감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지 재미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또 한 마리 등장한 이 녀석의 속도는 렉토스카르보다 훨씬 더 빠른 것 같았다.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벌써 그 존재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지평선에 모습이 걸리더니 점은 순식간에 커지고 거대한 몸체의 무엇이 내 앞으로 곧장 날아왔다.
역시 외견은 드래곤의 모양이다.
녀석은 공중에 멈춰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나와 렉토스카르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네 쌍의 눈과 푸른 비늘이 덮인 몸체 그리고 날개에 왓처와 같이 수많은 눈이 박혀 있었다.
공작의 눈을 닮은 눈이 날개에 빼곡히 박혀 있는 모습은 소름보다는 추악한 느낌이 더 들었다.
"실망이군. 렉토스카르 기껏 네필림 하나 상대하지 못하고 추잡한 모습을 보이는 거냐?"
말하는 드래곤이라고 놀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정도는 이제 느낌도 오지 않는다.
"모욕적이군. 모욕적이야. 카오스 크러셔스 명예에 먹칠하지 마라."
녀석이 날개를 활짝 펼치자 날개 안 공작 눈이 새하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조심해. 바드락! 저 녀석의 능력은 모든 것을 태우는 태초의 불꽃이다."
날개에서 뻗쳐 나온 빛줄기는 나는 물론 렉토스카르를 향해 쏘아져 왔다.
렉토스카르 또한 입에서 열선을 뿜었다.
그 중간에 내가 끼인 셈이다.
마그닉필드는···.
"이거 너무 멋진데? 리엑티브 펄스 쉴드는 아기 장난감이었네."
고대신의 힘이 이토록 강력할 줄이야 새삼 놀랐다. 바드락의 공격은 확실히 렉토스카르보다 월등히 높은 고출력 에너지다.
바드락 또한 렉토스카르와 마찬가지로 7고리 파괴신 중 한 마리로 태초의 공포라 불리는 악마다.
카오스 크러셔스가 대부분 드래곤의 외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바드락을 보고 이해했다.
렉토스카르만 드래곤의 외형인 줄 알았더니 바드락 또한 드래곤인 것을 보고 카오스 크러셔스는 고대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들의 정보는 언노운이 띄워 놓은 상태였다.
마그닉필드에 부딪힌 바드락의 에너지는 필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데엑마가 가르쳐 준 기술 하나를 떠올렸다.
태양의 코로나에 포함된 수소와 헬륨 분자를 고 압축하여 방사선을 방출 하는 방법.
쿼크-글루온 플라즈마는 단일 대상 표적이지만 이 태양의 코로나는 거대한 지역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광역 범위 공격이다.
생각을 떠올리고 집중하자 몸 주변으로 중자기력이 회오리치며 자기장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가느다란 실선처럼 주변으로 그물을 치듯 뻗쳐 나갔다.
즉 내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자기장의 그물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리고 그 자기장을 따라 작은 불꽃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고압축 된 수소와 헬륨 원자가 폭발적으로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전기와 같았다. 주변 일대로 태양의 코로나가 부챗살처럼 퍼져 나갔다. 수소 폭발과 같은 강력한 빛을 뿜어내며 소용돌이치는 코로나의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수소 폭발이 순간적인 별의 힘을 보여주고 금방 사그라드는 반면 코로나는 계속 뿜어져 나왔다.
아스트랄계에 연결된 데엑마의 힘이 고스란히 나를 통해 현실계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코로나의 빛이 악마의 몸뚱이며 권능까지 모조리 태워 버렸다.
주변에서 우왕좌왕하던 카르니지 크롤러스는 빛에 닿는 순간 기화 되어 버렸고 아비스 애쉬즈도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깡그리 기화했다.
수소 폭발처럼 거대한 버섯구름과 후폭풍 따위는 만들지도 않는다. 그냥 태풍처럼 불어 닥치는 데 걸리는 것은 모조리 기화 시키며 계속 휘몰아치니 감히 누가 상대하겠는가?
열선과 태초의 바드락의 빛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악마들은 태양의 힘을 견딜 수 없다. 어둠의 신봉자들에게 태양의 빛은 죽음과 같다.
코로나의 휘몰아치는 불꽃을 뚫고 두 마리의 드래곤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바드락과 렉토스카르다. 녀석들의 날개는 코로나의 찌꺼기가 달라붙어 불타오르고 있었고 군데군데 누더기처럼 구멍이 뚫려져 있었다.
치유할 시간도 없이 둘은 코로나의 회오리를 피해 허공으로 날아오른 것이다.
바드락을 확인하고 놈에게 중자기력을 휘감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장을 어떻게 알아챌 것인가? 권능도 아니고 신성력도 아니다 말 그대로 자기장이다.
악마가 무슨 수로 자기장을 느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과학의 힘이다.
과학의 힘은 우주의 힘이고 자연의 힘이고 진리의 힘이다.
방사선을 중자기력화 시키고 상대 질량을 재구성하자 바드락의 몸에 가해지는 질량이 일순간 변해 버렸다.
"쿠아아아아악"
악마도 비명을 지르는구나. 몸무게가 50톤에서 1천 톤으로 늘어난 상태에서 상대 밀도를 반대로 500배로 축소 시키고 그 상태로 중력 약 백배를 걸었더니 정신을 잃고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이 모든 것은 언노운의 도움 없이 실제 나 혼자만의 능력으로 실현한 거다.
7고리의 폭군 바드락이 바닥에 추락해 거대한 폭발음을 일으켰다.
휘날리는 불기둥과 먼지 한 올의 질량조차 구현화 시킬수 있다. 먼지 한 톨에 중력 100배를 걸어 버리니 주변 모든 것이 바닥으로 침하 되듯이 떨어져 내렸다.
먼지 한 톨 날리지 않는 순수한 고정된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바드락은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있었는데 입과 코에서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고 있었다.
나는 렉토스카르를 자기장 사슬로 묶어 끌어 내렸다.
그는 이미 전투력 차이를 실감하고 저항을 포기한 상태였다.
"바드락! 카오스 크러셔스의 명예를 실추했으니 어떻게 할래?"
"크윽. 네가 가진 재주가 나를 뛰어넘으니 내 말을 실언이라고 인정하··· 쿨럭."
드래곤이 피를 토하니 내가 되어 흘러내렸다. 그걸 또 언제 나타났는지 카르니지 크롤러스들이 달려들어 핥아 먹고 있다.
"크으으으윽"'
끌려 내려온 렉토스카르는 방사선 사슬이 죄어들자 비명을 질렀다.
"아니 7고리 최강의 고룡이 왜 이리 허약한 신체를 가진 거지?"
"미친 소리 마라. 능천사 수백 마리가 붙어도 두려움 없이 그들을 몰살한 나다. 네가 너무 황당한 능력을 소유한 것뿐이다."
나는 바드락과 렉토스카르에 걸린 중자기력을 풀었다.
그러자 바드락은 누더기가 된 날개를 펼치며 고개를 들었다.
"내 경솔을 인정하마. 너는 특별한 존재다. 지금 네 힘은 감히 말하건대 칠죄종을 능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지 마라. 사악함에 있어서는 그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해. 왜 나를 살려주는 거지?"
"흥미를 잃은 대상에 더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렉토스카르의 모습이 다시 영감의 모습을 돌아갔다. 정장을 입은 신사의 모습으로 돌아간 그는 작은 구슬 하나를 던졌다.
"교차로 악마 집회소로 가는 열쇠다."
"이걸 메피스토에게서 받았나?"
"그렇다. 너와 한번 싸워 보는 조건으로 받은 거지. 나는 패배했고 너는 그걸 가질 자격이 된다."
"아. 이쪽 악마들은 왜 이리 천사 같지?"
렉토스카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가 살아온 이래 들어본 욕 중에 가장 최악의 욕이구나."
그때 바드락이 자기 피를 핥고 있는 카르니지 크롤러스를 한입에 집어삼켰다. 그걸 시작으로 마구잡이로 크롤러스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약한 애들에게 분풀이하는 거냐?"
"아니. 상처 치유다. 저들도 꼴에 쓸만한 권능을 지니고 있거든. 바드락은 상대를 섭취해서 상대의 권능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그는 너와 싸운 피해를 복구하는 중이야."
"넌?"
"나도 마찬가지지. 카오스 크러셔스는 각자의 치유 능력이 따로 있어. 한숨 푹 자고 나면 회복이 끝나지."
"메피를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이야."
"다크 로드를 이용하고 싶다면 그냥 두는 편이 좋겠지."
"아. 간만에 힘을 썼더니 몸이 가뿐하네."
"너, 정말 데엑마의 봉인체가 맞냐?"
"맞지. 그러니 이 정도 능력을 사용하는 거잖아."
"봉인체는 에덴에서 만든 인간이라고 들었는데? 인간의 신체를 가지고 그런 힘을 버틸 수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눈치를 챘다면 어쩔수 없지. 세상 살다 보니 별 희한한 일이 자꾸 생기더라고."
"날개들이 너희 은하계로 모이는 건 알고 있지?"
"와. 7고리에도 벌써 소문이 퍼졌네?"
"물론. 우리도 보는 눈과 귀가 있어. 그리고 그런 전투는 언제나 환영이지. 문이 열리면 폭력에 굶주린 애들이 쏟아져 나갈 테니까."
"문은 누가 열어?"
"게헤나의 제왕. 오직 그 한 사람만이 이곳의 문을 열 수 있지."
"루시퍼 그가 전쟁을 원한다면···."
"당연히 문을 열겠지."
"쩝, 내가 할 일이 갈수록 많이 지네."
"무얼 하고 싶은 거냐?"
"글쎄 내 생각에는 말이야. 세상에 빛과 어둠이 있듯이 선과 악은 공존해야 한다고 떠들잖아. 서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발광하고 말이야. 그거 게헤나와 성력 둘 다 조져 버리면 힘들게 균형 맞출 필요가 없지 않겠어."
내 발밑으로 다크 로드가 열렸다.
"다음번에 만나면 더 제대로 싸워 보자. 그동안 힘을 갈고 닦고 있을 테니."
"물론, 참 너희 고룡 종족을 7고리에 가둔 것도 루시퍼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엄연한 계약에 의한 것이니 루시퍼의 독단적인 행동은 아니야."
"게헤나는 볼수록 재미있는 곳이구나. 악마란 어떤 의미이지?"
"나약한 존재가 만든 공포와 두려움이지. 강자에게 악마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너처럼 말이지. 골골하는 약자들이 만들어낸 추악한 찌꺼기들이 모여 지성을 갖추게 된 것이 악마니까. 비굴하게 영원히 나약함을 먹고 살아야 하는 존재인 거지."
"그럼 다음 만날 때까지 열심히 노력하라고···."
알몸인 상태로 나와도 누구 하나 관심 있게 보는 악마는 없다. 걸을 때마다 거시기가 덜렁거려서 신경 쓰인다.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할수 없이 ITB에서 정장 한 벌을 꺼내 입었다. 구도도 맞춰 신고 난 다음 집회소 한 가운데에 서서 크게 고함쳤다.
"메피야. 메피야. 날 가지고 놀았으니 혼 한 번 나자. 고개 안 내밀면 여기 다 때려 부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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