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의 비밀 17 – 큐리어시티 시티
연옥의 비밀 17 – 큐리어시티 시티
자, 이제 문제는 오류를 찾는 일이다.
판타오그레나
그레고리아에게 정보를 흘린 사도는 이미 알고 있다.
이 범우주적인 뇌는 마녀의 기억까지 더듬을 수 있었으니까.
언노운이 사용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요구해서 될 일이 아니다.
사고가 현실화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사고를 끊는 수밖에 없는데 고생해서 만들어 놓은 시냅스를 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사고가 현실화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사고해야 한다.
즉 이 시냅스를 완벽히 제어할 수 있도록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태고의 악마를 제어할 훈련이기도 하겠지.
내 유도 질문에 그레고리아가 생각한 것은 이솔데다.
'이솔데 정보 띄워 봐.'
이솔데 천사의 외모에 정말 아름다운, 갖은 찬사를 다 해 놓은 절세 미녀 릴림이다. 심지어 천사의 날개까지 지닌 거의 완벽에 가까운 천사의 외모를 가진 릴림이다.
십이사도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단지 천사와 구분할 수 있는 것은 그녀 머리 위에 솟은 악마의 뿔뿐이다.
그 외에는 여성형 천사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9구역의 지배자다.
9구역은 메마름의 도시. 색상은 화이트.
메마름의 도시는 이기적인 사람들을 대변하는 곳이다.
타인에게 절대 피해를 주지 않지만, 자신도 절대 피해를 받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
철저한 개인주의적 사고가 만연하는 도시다.
절대적으로 타인에게 관여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지닌 영혼들이 끝도 없이 몰려 있는 곳.
이처럼 연옥의 인간은 지옥에 갈 정도의 죄목도 아니고 그렇다고 천국으로 갈 정도의 선함이 있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인간군상들이 모이는 곳이다.
구역 구분은 장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또한 태고신의 사념으로 만든 차원 결계 막이다. 인간 영혼은 당연히 넘을 수 없고 릴림만이 이동할 수 있지만 서로의 존중으로 남의 지역에 웬만해서는 넘어가지 않는다.
지금 7구역이니 8구역을 통과해서 9구역으로 넘어가야 한다.
언노운이 계산하기 전에 내가 먼저 최단 거리를 계산해 움직였다.
연산 처리 능력이 언노운을 웃돈다고 하더니 진짜인 모양이다.
난 그저 최단 거리라는 생각만 했는데 머릿속에 지형의 구조와 하늘길이 딱 떠오르는데 언노운에 최단 거리 알아봐 주라고 말할 짬보다 더 빨리 머릿속에서 이미 구현이 되어 버리니까.
솔직히 두렵기까지 하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든다.
완벽을 넘어서 신의 경지에 들어섰고 다시 그 신의 경지를 넘어서면 초월자의 경지에 들어간다.
난 그 중간쯤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초월자가 되기에는 아직 미흡하고 신의 경지는 넘어섰고 몸체는 인간형이고 삼자가 짬뽕이 된 정말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존재가 나인 것이다.
천사나 악마 둘 다 이용 가치가 너무나 큰 황당한 오류. 루시퍼조차 예측하지 못했던 황당한 존재. 물론 언노운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행보를 이어올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악마나 천사가 보기에는 내 존재가 놀라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9구역 차원 막을 통과 했다. 설명대로 화이트의 도시다. 유럽의 그러니까.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이탈리아풍의 도시들이 즐비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비탄의 도시나 게으름의 도시는 현대 사이버틱한 도시풍이라면 이곳은 시골 마을 같은 분위기다. 즉 높은 빌딩은 아예 없는 단층형 주택인데 오와 열이 정말 칼같이 맞아떨어지고 집의 구조가 전부 비슷비슷했다.
지붕이 흰색이라 세상이 하얗게 보였다.
'오류를 찾아봐.'
【검색 중입니다】
천천히 하늘을 날며 생각에 잠겼다.
'이곳도 엄청나게 넓은 곳이군.'
끝도 없이 펼쳐진 이 세계 또한 많은 영혼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근데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것이 그래비티 포스 맞지?'
【그렇습니다. 그래비티 어노멀리 30%에 싸이킥 에너지 40% 권능 30% 정도의 비율입니다. 】
'지금 내가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고? 네가 아니고?'
【그렇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동안 받을 중력에 따른 가장 적은 에너지 효율에 따른 판단 같습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내가 아니야. 시냅스가 자동으로 판단해서 그런 것 같은데···. 환장하겠군. 몸에 부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마치 풍선처럼 떠다니는 느낌이야. 이걸 제어하려면 한동안 고생 좀 하겠군.'
【자율 신경계의 범위가 너무 과도하게 확장되었습니다】
자율 신경계는 내가 제어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움직이는 부류, 심장박동 같은 걸 말한다.
이 자율 신경계가 근육이나 몸에 걸리는 부하까지 자동으로 제어하는 모양이었다.
자, 그건 그렇고 이 넓은 도시에서 오류를 찾아야 한다.
연옥에서 태어난 영혼.
잠시 생각했다. 언노운은 어쩔수 없이 소멸성 나노봇을 복제해 살포하는 방법으로 신호를 감지하지만 난 아직 오감만 활용할 수 있다.
오감을 확장하면?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도시 전체의 이미지가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혼의 개수가 저절로 머릿속에 이미지화 되어 떠올랐고 수많은 정보가 일시에 쏟아져 들어오는데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 이게 전부 알 것 같고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아니 슈퍼컴퓨터라도 부하가 걸릴 것 같은 다양한 정보가 모조리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속도를 높여도 상관없겠군.'
빠르게 날았다.
【너무 빠릅니다. 이러면 제대로 검색할 수 없습니다】
'넌 좀 쉬어 내가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어떻게 오류를 찾아내겠다는 겁니까?】
'가용 범위 내 영혼의 기억을 모두 점검하고 있어. 연옥에서 태어난 영혼이라면 이곳 외의 기억은 없을 테니까.'
【여기 영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그들 머릿속을 모두 들여다 보는 것은 효율이 너무 떨어집니다】
'찾았다. 저기군. 넌 좀 조용히 해.'
이곳 도시의 구조는 단일 주택이 바둑판처럼 구성되어 있다. 어느 집이 더 크고 작고할 것 없이 대부분 같은 구조에 같은 크기를 가진 집들이 바둑판 위에 올려진 바둑알처럼 빼곡히 나열되어 있다.
나는 한 집 앞에 내려섰다.
공기의 떨림으로 집안에 네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즉시 알았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지금까지 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지 못했지만 이게 삼차원 공간이 방정식이 되고 이걸 제어할 수 있게 되면서 정말 내가 신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 안 공기의 흐름과 미세한 온도 변화를 감지해 안에 들어 있는 영혼, 네 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쳇, 정말 내가 신이 되어 버렸나?"
문 앞에 서 있는 나 자신도 황당하다.
여긴 연옥이고 난 인간인데 뭐 이런 일이···.
-딩동
벨은 또 왜 눌렀을까? 내 행동을 나도 모르겠다.
그냥 쳐들어가기에는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일까?
예의라는 것을 이곳에서도 적용하고 싶은 기분일까?
"누구시죠?"
여성의 음성. 부인이다.
"댁의 아이 좀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로요?"
영어다. 평범한 미국인 가정?
"열어."
간단한 명령에 그녀는 더는 대꾸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나는 지금 그녀의 사고에 오류를 일으키고 내가 전혀 악하지 않은 안전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누구십니까?"
아내가 문을 열자 남편도 걸어 나왔다.
나는 즉시 그에게도 최면을 걸어 버렸다.
기억 조작은 이쪽에서 싫어할 테니까 최면으로 두 영혼을 사로잡은 뒤 거실로 들어갔다.
열 서 날 정도의 남자아이 하나. 그리고 일곱 살 정도의 여자아이 하나.
영혼의 색깔이 확실히 다르다.
두 부부는 내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소녀를 안아 들었다.
전형적인 금발의 미국 여아다. 하지만 내게는 그 속의 빛나는 영혼의 실체가 다 보였다.
이곳 영혼의 색깔 또한 화이트의 밝은 전구 색깔이지만 이 아이 영혼은 검은 연기처럼 보인다.
뭔가 이 아이의 영혼에 접촉했다는 거다. 이 검은 연기는 당연히 권능이다. 이런 권능을 릴림이 옮겼을 리는 없고 있다면 악마뿐이겠지.
이 아이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어디서 태어나서 어떻게 이 가정에 오게 됐는지를.
'이솔데는 생각보다 영악한 면이 있군. 이 아이를 폐기처분 하지 않은 것은 연결 고리를 만들어 놓고 싶었던 거겠지.'
즉 이 아이에 영향을 준 것은 칼데아의 악마 중 하나일 거고 그놈을 찾기 위해 보험용으로 놔둔 것이다.
나는 안고 있던 아이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짝, 짝
나는 박수 두 번으로 주변을 환기하며 말했다.
"자, 하던 일 계속하세요. 그럼 저는 이만···"
집안을 나와 도로를 따라 걸었다. 하늘을 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바닥의 감촉을 느끼며 걷는 것도 나름 기분이 좋은 일이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 대형 쇼핑센터도 있고 각종 음식점, 편의 시설 등 있을 것은 다 있다.
이발소.
머리가 거의 벗겨진 노인 한 명이 낮의 햇살을 의미하며 가게 앞 작은 탁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그는 동그란 안경을 손가락으로 살짝 치켜세우며 신문을 읽고 있었다.
"잠시 옆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그는 안경 너머로 힐긋 나를 올려 보더니 아랫입술을 삐죽했다.
"그러시오. 그런데 의자가 하나뿐이라."
ITB에서 의자 하나를 꺼내 옆에 앉았다.
노인은 허공에서 의자에 나왔음에도 전혀 놀라거나 의식조차 하지 않았다.
"메기큘라에서 검은 날개를 받았고 난 시간이 많지 않아서 말이지. 뭔 시험이든 빨리하자고."
"햇살이 좋지 않습니까? 이해해 주신다면 조금 더 이 햇살을 느끼고 싶군요."
"허, 이런 가짜를 뭐 하러 느껴? 현실로 돌아가자고."
"가짜라고 해서 제 느낌도 가짜는 아니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좋은 햇살이 되는 겁니다. 딱 나른하고 온몸이 따뜻하지 않습니까?"
"야, 그런데 잘도 복제했다. 그 아이 아니었으면 찾지 못했을 거야."
"아, 판타오그레나 말인가요? 불쌍한 아이죠."
"알고 있으면서 왜 그냥 놔둔 거야?"
"협약 때문이죠. 제가 할 일이 아니거든요. 그건 릴림이 하는 일인지라."
"네가 뭔데 불쌍하다 마라야. 악마 새끼 주제에."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요. 그러다 진짜 찔릴 수도 있습니다."
"허, 반응이 미지근하네. 오랫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성질이 많이 죽었나 보네."
"루시퍼가 말한 사람이다 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서 그렇지요."
"호오? 다들 루시퍼님이라고 부르던데 넌 그냥 루시퍼로 퉁치는 구나. 레벨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악마니까. 힘으로 치면 루시퍼와 같은 등급이라 이거지? 그럼 아드라말렉이겠네."
"후후, 진명으로 불린 것이 몇만 년만인지···. 뭐 다 알고 오셨으니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혹시 이곳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아니겠죠?"
"아, 그랬다간 이솔데가 금방 뛰쳐나오겠지. 어디 좋은 곳은 없어? 어차피 시험 장소는 마련해 뒀을 거 아니야. 빨리 시작하자고."
"아, 그전에 한 가지 부탁해도 될는지?"
"지금 뭔 역할 놀이 하자는 건지? 이 보라고 그냥 현실로 가지?"
-탁
난 손가락을 딱 튕겨 보였다.
"전 현실입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커피 한잔했으면 해서요."
"진짜 아드라말렉 맞지? 뭔 악마가 커피를 다 찾아?"
"몸풀기 전에 작은 유흥이라면 어떻습니까?"
"누가 보면 악마가 아니라 천사라고 오해하겠네."
"커피같이 하실 거죠? 한 잔 내어 오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내가···."
ITB에서 최고급 루왁 커피를 꺼냈다. 이모탈 시티에 있을 때 구해 놓은 것이다.
물론 카피너 복제품이지만 원물과 차이점은 아예 없다.
"커피 내릴 테니까 잠깐 기다려봐 이게 루왁 커피인데 이런 곳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귀한 커피지."
"허, 좋은 공간을 가지고 다니네요. 그곳에는 진귀한 물건이 많겠지요?"
"뭐, 그렇지. 그동안 모아 놓은 잡동사니가 많이 담겨 있으니까."
"커피 그라인더를 사용하지 말고 그거로 하시죠. 적절한 굵기를 맞추기 편할 테니까요. 그것이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 그럼 어느 정도 크기로 해 줄까?"
"요 정도면 적당하죠. 에스프레소 머신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쥐어짜는 것이 원초적인 맛이 나요."
"필터는 어떻게 할까?"
"그것도 하실 줄 아시잖아요. 온도는 80도를 맞춰 주세요. 그때가 가장 맛있는 온도거든요. 원두의 양은 33그램으로 해주시고 추출량은 350CC에 맞춰 주세요. 참 거를 땐 침지식으로 맞춰 주세요. 그래야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거든요."
"네가 바리스타야? 악마야?"
모든 것은 주문받은 대로 싸이킥 파워를 이용해 커피를 내렸다. 괜히 기계를 통과하면 커피 본연의 맛이 저해된다는 그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했다.
"됐어. 딱 네가 원하는 요구에 정확히 부합되는 거야. 약 99.8%네. 나머지 0.2%는 지금 주변의 공기 흐름이 변수로 작용해서 온도가 초당 0.3도씩 감소하고 있거든."
아드라말렉은 커피를 받자마자 홀짝였다.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부릅뜨고는 굽어진 허리를 폈다.
"이거 진짜군요. 이런 향기의 커피는 처음입니다."
''내가 그랬잖아. 루왁 커피라고 향기론 지구 최강의 커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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