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욕의 비밀 2
연옥의 비밀 2
"누굴 바보로 아나?"
"무슨 의미죠?"
"너희들 하는 짓거리 말하는 거지 무슨 의미라니···."
"하, 알고 있어요. 정동혁씨."
이모탈 시티의 존재 때문에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동혁이라는 본명을 썼던 것은 오래 된 일이다.
하지만 네크로폴리탄에서 릴림을 만났기 때문에 내 정보는 그때 습득한 것이라 판단했다.
절대 티를 내지 않는다.
"내 어머리라고 번찔거렸던 릴림은 어디에 있나? 차장?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돼?"
이소라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하하, 너희 릴림도 감정을 느끼는구나. 순간 조금 싸했지?"
"네, 그래요. 전 당신에 대해 많은 정보를 받았어요. 최근 7고리에서 일으킨 일도 알고 있고요."
"그럼, 여기서 난장판 피울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겠네?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 온 것도 알고 있을 테고?"
"물론이죠. 저희 정보망은 세상 모든 암컷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끊기지 않을 테니까요."
"하필, 내가 여기 왔고, 하필, 네 구역이고, 하필, 동양인이고, 하필, 한국인이고···. 좀 그럴싸하게 꾸미면 안 돼?"
"좀 앉을까요? 이렇게 문 앞에 서서 손님 맞는 것은 예의가 아니잖아요?"
"지금 누가 손님이고 누가 주인인지 헷갈려?"
그녀는 한숨을 푹 쉬더니 거실로 가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내가 네 장난질에 어울려야 할 이유를 들어 보자. 여기가 네 관할 구역이라고 했지? 싹 다 잿가루로 만들어 버리면 네 할 일도 없어질 테니 편히 쉴 수 있게 해 줄 수도 있어."
"그런 애들 장난 같은 협박은 말죠? 여기 앉아요. 왜요? 여자 옆에 오랜만에 앉는 거라고 떨리나요?"
"얘가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듣네. 하긴 사람이 아니긴 하지. 갈길 바쁜 사람 잡아 놓고 농담하는 거 나 싫어해."
공간을 압축하기 시작하자 거실 내부의 공기가 무섭게 빨려 들어왔다.
수소 원자를 다량으로 흡수해야 하는데 이곳은 지구의 대기와 같아서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여기서 당신이 힘을 사용하면 가면은 영원히 받지 못할 거예요."
"괜찮아. 대신 너희들이 감수해야 할 엄청난 손해는 감당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될 거라는 걸 약속하지."
'이 친구 왜 이어링에 검색되지 않지? 릴림도 악마이지 않은가?'
【저 여성 인간의 영혼에 빙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릴림이 아닌 한 명의 인간일 뿐입니다】
'그럼 다른 짓은 못한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단지 평범한 인간 여성일 뿐입니다. 그녀는 대화하기 위해 찾아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연옥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힘을 풀자 소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무얼 알고 싶은 거죠?"
"당연히 가면이지."
"솔직히 말씀드려 그건 쉽지 않은 일이예요. 어머니도 정확한 위치를 몰라요.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명 루시퍼뿐이거든요."
"왜? 한국인 여성 몸에 빙의해서 찾아온 거지? 본체가 오기에는 겁이 났나?
"아뇨, 당신이 편하게 이야기할 상대를 고르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죠."
"핑계는 잘도 주절대는군."
그녀 옆자리에 앉았다.
"여긴 원래 이래?"
"그렇죠. 여기는 연옥이예요."
"내가 알고 있는 연옥과는 다른데?"
"당신이 알고 있는 연옥은 어떤 곳인데요?"
"음, 반반이지. 선하지 않아서 가이아에 못 탑승한 영혼이나 그렇다고 지옥에 갈 정도로 악한 영혼이 아닌 영혼이 잠시 방황하는 곳 정도?"
"맞아요. 틀린 말은 아니죠. 다만 그곳은 연옥이 아니고 영혼 정화의 단계를 거치는 곳 초입부 지역이죠. 왜 인간 신화에도 많이 나오잖아요. 저승의 강이라든지 망각의 강이라든지."
"그렇지. 그들이 잠시 대기하는 곳이 연옥이고 영혼 무게의 경중에 따라 가이아에게 탑승하겠지."
"정확히요. 하지만 진정한 연옥은 그게 아녀요. 결손품을 위한 보호구역이 연옥이예요."
"결손품?"
"조금 전 저들의 전생을 보셨죠?"
"오우, 놀라워라. 그걸 어떻게 알았지?"
"당연하죠. 저 영혼의 소유주가 관리자인 저 이니까요."
"제들이 그럼 결손품이야? 어떤 의미지?"
"과거 에덴에서 이 행성의 원시 인류를 개조할 때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어요. 하나는 신체 개조고 하나는 정신 개조인데 신체야 유전자 조작하면 쉽게 개조할 수 있는데 정신 개조는 더 난도가 높죠. 바로 아스트랄계와 연결되는 통로를 인간 영혼에 이식해야 했으니까요."
"그럼 그때 생긴 실수나 오류에 의한···. 그래서 저들을 결손품이라 부르는 건가? 실패작이라고?"
"강제적으로 여기 오지 않았다는 것은 낙자의 원혼이 가득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거고요.
그건 루시퍼가 허락한 거로 본다고 치고요. 그 낙자라는 친구가 에덴의 첫 번째 실험작이자 첫 번째 결손품이죠. 결손품을 행성의 가이아에 올려놓을 순 없고 아스트랄계와 접촉한 영혼이라 그냥 소멸시키기에는 아까운 부분이 있죠. 즉 재활용 가능하다는 것이니까. 따로 보관해야 할 장소가 필요했죠."
"그래서 만든 것이 연옥. 결손품, 즉 실패작들의 보관 장소라고?"
"네, 맞아요. 아담이 첫 성공 사례로 완성되자 더 많은 샘플이 필요하게 되었죠. 원시 인류 개조에 성공하자 이번엔 번식에 의한 연구가 시작됐는데 그때 제조된 영혼이 저희 어머니 릴리스였죠. 그녀는 번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특별한 자궁을 장착해서 한 번에 수천 명을 임신할 수 있고 고통 없이 수많은 생명을 출산할 수 있게끔 돼 있어요. 아담과 결합한 릴리스는 수많은 실험 샘플을 생산해 냈고 에덴은 수많은 영혼을 만들어 가이아에게 올려놓았죠. 그런 실험 중에는 불량품은 얼마든지 나오죠. 그 불량품은 바로 연옥으로 보내졌어요. 모두 저희 어머니 릴리스의 자식들이란 거죠."
"연옥의 기원에 대해서는 대충 알겠는데···. 쟤네는 왜 그런 거지? 어떤 이유로 똑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거야?"
"후, 결손품이란 것을 설명해 드리죠. 인간의 영혼을 아스트랄계를 연결하는 그 순간 아스트랄계에서 수많은 감정이 다양하게 넘어오죠. 천사는 그 감정을 정확하게 골고루 인간 영혼에 담아 넣어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접촉 당시 어떤 것과 접촉이 이루어지는지는 천사도 알수 없죠."
"랜덤인 상황이군."
"그렇죠. 정말 운이 따라 주지 않아. 그럴 확률이 아주 극소수라고 해도 분명히 불행한 것이 넘어올 수 있다는 거죠."
"그럼, 여기 영혼들이 그때 옮겨붙은 좋지 않은 감정들인 건가?"
"네, 그렇죠. 아스트랄계가 어떤 곳인지 잘 아시죠? 그곳은 우주가 만들어지기도 더 훨씬 전에 있었던 지성체의 무수한 감정들이 뭉쳐 생겨난 곳이란 걸요."
"결손품이 발생한다는 것은 그 감정이 섞인 아스트랄계에서 평범한 것이 아닌 직접적으로 그 감정 자체에 접촉해 발생한 거로군."
"정확히요."
"그럼, 말이야. 상당한 악의에 찬 감정도 있을 텐데? 그 감정에 접촉하면?"
"당연히 사악한 악마보다 훨씬 사악한 아예 악으로 뭉쳐진 존재가 탄생하는 것이죠. 에덴에서는 감정의 등급을 분류해 놨어요. 당신도 잘 아는 절대악이 악마 등급인데 그 등급 위에 존재하는 태고의 악이란 것도 있어요. 악의 감정과 접촉한 대상은 무조건 폐기 처분되지만 게으름과 같이 선도 악도 아닌 어중간한 영혼은 재처리 과정을 위해 연옥으로 보내져요. 연옥에는 악도 선도 아닌 어중간한 영혼이 들어온다는 거예요."
"친절한 설명 감사하긴 한데 귀찮게 이런 장난할 이유가 없지 않아?"
"당신은 지금 제 행동과 말이 장난으로 보이나요? 제가 온 것은 당신이 연옥이 대해 제대로 알고 이 불쌍한 영혼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 차원에서죠. 연옥에 손해를 끼치면 당신을 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어요."
"난 연옥에 관해 관심 없어. 여기 영혼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난 분명한 목적이 있어.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생각이고. 나, 무지 바쁜 사람이야."
"알아요. 당신이 가면을 원한다는 것을. 제가 온 이유에 그것도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이야기 빠르게 진행되겠네. 가면의 정보만 주면 충분해."
"저를 따라오시겠어요."
"물론, 단 날 속이면 그만한 대가를 받게 될 거야."
이소라가 일어서자 그래비티 포스로 내리눌렀다.
"어머? 무슨 일이죠?"
"네가 말했잖아? 연옥에 대해 제대로 알라고···"
"흥, 관심 없다면서요" "방금 관심이 생겼어."
소라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알고 싶은 것이 구체적으로 뭐죠?"
"이 영혼들 영원히 게으름에 벗어나지 못해"
"태고신의 재앙이 깃든 영혼이죠. 초월자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오염물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태고신의 사념인데 어떻게 할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 아네요?"
"그럼, 여기 계속 두면 되지 왜 윤회시켜?"
"후, 정말 애들 교육하는 것도 아니고···."
"애들이라고 생각하고 가르쳐 줘 봐."
"봐요. 그들은 기억이 없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죠. 이곳에는 게으름에 중독된 영혼만 모아놨기 때문에 더 그렇죠. 오염 방지 차원으로 같은 감정을 가진 영혼을 한곳에 모아 두긴 하는 데 대신 단점이 있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면 영혼 정체기에 빠지고 그걸 넘기면 퇴화 과정에 들어가요. 그리곤 자연 소멸이 되는 거죠. 저희는 그걸 막기 위해 순번 대로 강제로 인간의 몸에 활착시켜서 재활성화 시키죠. 물론 그들이 똑같은 삶을 산다는 것을 알면서도요."
"원래 불량품은 다 처리하는 것이 편해. 천사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을 굳이 너희들이 관리해야 할 이유가 없는 거지. 그냥 폐기 처분하면 간단히 끝나는 거잖아? 내 말은 이윤이 없는 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봉사 활동이 아니라면야."
"좋은 지적이에요. 우리의 행동은 연옥의 벽을 두껍게 하는 것이에요. 이는 삼자 간에 이뤄진 깨어지지 않는 협약을 지속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이고요. 연옥이 연옥의 역할을 잃어버리게 되면 존재 가치가 없는 거로 생각하죠? 하지만 그럴 일은 없죠. 가이아에게 편승하지 못하고 게헤나에도 떨어지지 않는 영혼은 전체 영혼의 약 30%에 해당해요. 그들 모두 연옥으로 온다는 거죠. 만약 연옥이 없어지면 어떠한 사태가 벌어질까요? 그 30%의 영혼은 인간계를 떠돌게 될 거예요."
"30%면 상당한 수치인데?"
"아무렴요. 악마도 천사도 우릴 건드리지 않는 이유죠. 우리만이 그 영혼을 재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으니까요."
"누구로부터?"
"누구긴요. 이곳을 창조한 존재겠죠."
"그렇군. 여긴 수많은 연옥 중 하나일 뿐이네."
"그렇죠."
"악도 아닌 선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영혼들의 안식처인가?"
"정확한 표현이에요. 여기 영혼은 구제받아야 해요. 그것이 협약의 중요한 일부분이니까요."
"연옥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대가인가? 천사는 몰라도 악마가 지금까지 그걸 지키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 아닌가?"
"맞아요. 그게 난센스죠. 제가 여기 온 본론 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허, 설마 나더러 바퀴벌레 잡으라 하는 것은 아니지?"
"설마가 설마가 되는 것이 진리죠. 가면의 정보를 얻고 싶다고요? 연옥은 게헤나처럼 기브 앤 테이크가 절대적 규범은 아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죠. 가면의 정보를 얻고 싶다면 저희 부탁도 들어 주셔야 할 거예요."
"날 협박하는 거야? 이 도시 전체를 날려 버릴 수도 있어. 그깟 정보 하나 때문에 너희 뒤치다꺼리할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야. 그리고 가면의 존재는 루시퍼만 안다고 한 사람이 너야."
"물론이죠. 하지만 당신이 연옥을 파괴하면 저희뿐만 아니라 게헤나와 생텀 의회 양측에 척지게 되는 거죠. 득보다는 실이 더 클 거예요. 그리고 제가 아는 바에 의하면 당신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힘으로 지혜를 이길 수는 없을 거예요. 연옥을 다 파헤쳐도 가면을 찾을 수 없다는 거죠. 루시퍼는 자신이 숨긴 곳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찾을 방법을 어머니가 알고 계시죠."
"즉 숨긴 곳은 모르되 찾을 방법은 알고 있다? 그럼 가장 간단한 루트를 타면 되겠네. 연옥을 다 파헤칠 이유가 있나?"
"호? 그분을 직접 만나겠다는 어리석은 망상을 하는 것은 아니겠죠?"
"왜? 안 될 게 있나? 뒤지다 보면 나오시겠지. 아니면 연옥이 망해가는 걸 지켜보기만 하지는 않을 것 아니야?"
"그런다고 가면이 당신 손에 들어올 거란 생각은 망상이죠. 그분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알면 더 그럴 테지요."
"어떻게 되어 있는데?"
"봉인되어 있어. 오랜 일이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구원자가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이라고 믿고 싶긴 하지만."
"그런 경이적인 일이 일어났는데 일개 차장 한 명 달랑 찾아오고, 실망인데?"
"나름 우리대로 내린 결정이에요. 우르르 몰려가면 오히려 당신이 놀랄 테고 그나마 당신에게 가장 익숙한 모습으로 찾아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너 한국인 아니지?"
"정말 한국인이라고 믿었어요? 우린 특별한 인종을 선택하지 않아요. 넬림은 널림일 뿐. 단지 보여지는 모습이 당신에게 친근감이 들도록 배려한 것뿐이니까요."
"릴리스의 봉인이라. 너희는 그녀의 딸들이니 어떻게 하든 봉인을 풀고 싶다는 거고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나다? 그래서 내가 그때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급히 손을 쓴 거군. 중국에서 핵폭탄 터졌을 때 나를 급히 소환한 것이 너희 릴림 중 한 명이었지?"
"빙고. 우린 계속 당신을 지켜 보고 있었어요."
"네크로폴리탄에서부터냐?"
"아마도요. 그날 처음 당신이 우리 눈에 포착이 됐으니까요. 릴림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고요."
"그때 나를 살려준 은혜를 갚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군."
"좋은 생각이에요."
"먼저 한가지 확인받을 것이 있어."
"말해보세요."
"내가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이뤘을 때 별 탈 없이 가면을 손에 넣을 수 있느냐는 거지."
"솔직히 말할게요. 가면을 찾는 방법을 아는 분은 어머니뿐이세요. 가면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분의 봉인을 풀고 이 땅 위로 모셔야 하지요. 그리고 그 결정은 그분이 내리는 것이기에 지금 이 시점에서 제가 할 말은 없다는 거예요."
이소라의 말은 모두 진실이다. 이곳까지 날 만나러 와서 헛소릴 지껄일 이유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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