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의 비밀 10 – 머리의 방
연옥의 비밀 10 – 머리의 방
지독한 수수께끼다.
별의별 짓을 다 해 봐도 의문은 해결되지 않는다.
어디를 봐도 머리통뿐인 세상.
발 디딜 곳도 없다. 빼곡한 머리. 온갖 인간 군상의 표본을 다 모아 놓은 것 같다.
인종별로 성별로 나이별로 모두 있다.
심지어 옹알이조차 하지 못하는 아기까지.
이빨이 다 빠져 오늘내일하는 노파까지 심지어 자연사해 죽어 교체되는 상황도 눈앞에서 직접 겪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특히 참기 힘든 건 사람들 아우성이다. 이 아우성에 귀가 터질 것 같아 이렇게 공간 안에 틀어박혀 있다.
무슨 짓을 해봐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언노운에는 일부러 말을 걸지 않았다.
어차피 나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언노운을 핑계 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날개, 분명 메기큘라에서 얻어야 할 것은 날개다.
날개와 이 머리통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수수께끼. 정말 딱 질색이다. 그냥 다 때려 부수는 것이 가장 내 성미에 맞다.
앞뒤 안 가리고 돌격 앞으로. 이게 딱 내가 표방하는 가장 기본의 모티브인데 말이다.
머리 쓰는 건 딱 질색이다.
아니, 이 머리통과 날개···. 아니, 태고의 악마와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 머리통이 태고의 악마를 통제하는···.
통제? 배움? 시험? 악마를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라?
언노운도 그것 때문에 시험에 임하라 했다.
이건 수수께끼 따위가 아니야.
시험이라고 날 가르치기 위한 시험일뿐이야.
뭘?
그걸 찾아야 한다.
내가 배울 것!
여기서 뭘 배워야 하지?
언노운도 세다 포기할 정도의 이 많은 머리통 속에서?
수십, 수천, 수만, 수억, 수조의 머리통이 저마다 자기 입으로 떠들어 대는 곳에?
옆에서 떠들어 대니까 서로 잠도 못 잔다. 애들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다.
어떤 곳은 단합하기도 한다.
이곳에도 리더가 있다.
가령 조용히 합시다. 지금은 답이 없습니다. 여러분 쉬어야 합니다. 잠을 자야 다시 기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등등.
앞서 이끄는 리더격이 있으면 그 반대로 더 날뛰는 부류도 있고 여긴 인간 군상 그 자체다. 작은 사회다. 단지 할수 있는 거라곤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좌우로 고개를 움직이는 것 아니 좌우가 아니라 시선이 가는 방향으로 360도 회전이 가능한 듯하다.
그러니 모두가 즉 가시거리에 있는 모두가 나를 집중해서 보고 있다. 이들에게서도 감정이 다 느껴진다.
괴로움, 답답함, 부러움, 시기, 미움, 원망, 나를 향한 갖가지 원념이 그대로 전해진다.
말 그대로 엉망진창 시궁창 같은 곳이다.
핵을 터트려 볼까? 어떻게 될는지? 어차피 여기 사람 진짜 사람도 아니고 영혼으로 재구성한 것들인데.
그러한들 이곳이 박살이 난들 무엇이 달라질까?
그렇다고 공간에 계속 틀어박혀 생각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다.
공간 밖으로 나왔더니 진짜 난리도 아니다.
아우성, 아우성, 고함, 서로 다른 개성의 인간들이 전부 나를 향해 외치고 있다.
제발 죽여 달라고 하는 부류가 가장 많다. 목을 뽑아 올리면 죽는다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죽어 달라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처연하게 빌고 또 빈다.
그래봤자 여기를 떠돌다가 사망한 다른 머리 대신 또 재생할 것이 뻔하다. 그래도 지금의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 난리다.
얼마나 많은 다양한 목소리가 일제히 들려오는지 구분조차 안 된다. 서로 자기 말을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의 목소리로 고함치고 부르짖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언어까지 다르니까 대 환장 파티다.
여기서 과연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뭘 배운다는 말인가? 어떻게 날개를 찾지?
갑자기 귀에 한 녀석의 목소리가 걸린다.
한국어다.
그리고 '야이 이씨발 개새끼야'라는 단어가 너무나 선명하게 들어왔다.
어렵지 않게 그를 찾을 수 있었다.
오른쪽 벽 중간 정도에 붙어 있었다.
"넌 뭐지?"
"야. 씨발 나 좀 죽여 주라."
"왜?"
"보면 모르냐고! 이게 사람 사는 꼴이야? 씨발! 잠 좀 자고 싶은데 이렇게 개 떠들어 대니까 잠을 잘 수가 있나?"
"내가 어떻게 보여?"
"그러고 보니 너 한국말 하잖아? 한국 사람이야? 야, 같은 동포끼리 좀 부탁 들어주라."
"어디에 있다가 왔어?"
"어디라니?"
"이전에 네가 살던 곳 말이야."
"그게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는데···. 1978년도 서울 강남구 개포동 어디더라 여하튼 그 어디쯤이야."
옆 사람이 난리다. 고래고래 악을 쓰는 이 할멈은 눈을 흘겨가며 아주 난리다.
언어를 보니 독일 사람 같다.
"야 개씨발 할망구년아 그 주둥이 좀 처닫으라고! 이 씨발 할망구년아."
그만큼 소음이 지독할 정도로 진짜 스스로 고막을 터트리고 싶을 정도의 소음이다.
주변 일대를 날려봐도 금방 머리가 솟아 올라오니까 소용이 없다.
난 크게 외쳤다.
"조용히 해. 안 그럼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끔찍한 고통을 주겠어."
내 목소리는 모든 이들의 잡음 속에서 크게 울려 나갔다. 그러나 그런다고 조용해질 리가···.
"야, 눈 감아봐."
"왜?"
"여기 좀 조용히 시키게···. 이름이 어떻게?"
"김동운."
"동운씨 눈 감아."
동운이 눈을 감자 한 바퀴 회전하면서 고통의 시선을 쏘아 보냈다.
이 시선을 받으면 상대는 끔찍한 고통에 빠진다. 고통은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감정의 출발점이다.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고 가시거리 내 모든 머리통은 고통을 시선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원초적인 고통이 이들을 엄습했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작열통이다. 살아 있는 상태로 불에 탈 때의 고통. 그 작열감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런 고통 위에 있는 것이 고통의 시선이다.
고통의 시선에 쐬면 원초적인 모든 고통을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고통의 시선이 무서운 점은 따로 있다.
보통 고통이 한계치를 넘어서면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단절시킨다. 즉 졸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통의 시선은 절대 기절할 수 없다. 타의에 의한 살해는 가능해도 본인 스스로 기절하거나 자살하지는 못한다.
고통이 너무나 끔찍해서 그따위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기 때문이다.
비명이 이상하다. 너무나 끔찍한 고통에 비명이 토해지지 않고 아니 토할 수 없으므로 숨만 컥컥거린다.
이 정도 소음은 아주 낮은 데시벨이라 주변이 갑자기 평온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눈 떠도 돼."
눈을 뜬 동운은 주변을 휘둘러 본다. 바로 옆 노파는 입에 게 거품을 물고 눈을 까뒤집고 발발거리고 있었다.
살아생전 느껴보기 힘든 최악의 고통에 정신이 나가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기절하거나 해서 고통에서 달아날 수 없는 상황이다.
고통의 시선이 풀릴 때까지 고스란히 고통을 느껴야 한다. 원초적 고통이 인간성 한계 이상으로 밀어붙일 것이다.
"조용히 하라고 부탁했는데 말을 안 들어 처먹으니까 훈계를 좀 했어. 여긴 어떻게 왔어?"
"내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네 나이 몇 살인데 반말하고 그래? 나 52 둘이다."
"생긴 건 이리 봬도 너보다 나이 많아 걱정하지 말고. 연옥에는 왜 온 거야?"
"연옥? 그게 뭔데? 지옥이야? 난 모질게 산 적은 없는데 천국에는 못가도 지옥에 갈 정도로 살지는 않았다고."
"52이면 한창인데 왜 죽었어?"
"담낭암이래. 씨발거. 졸라 일만 하다가 결국엔 암 따위나 걸려서 뒈져 버렸지."
"담낭암이라면 술 좀 작작 마시지."
"그게 인생 낙인데 어쩌라고. 그러지 말고 나 좀 이 고통에서 해방 시켜줘."
"여기 얼마나 있었는데?"
"몰라 기억도 없어. 몇 년 됐나 아니 모르겠어. 제발 부탁해."
"내가 널 죽이더라고 다른 곳에서 또 튀어나올 거야. 돌고 도는 곳이거든."
"야. 씨발거 그럼, 여기 날려 버려. 확 불 싸질러 다 죽여 버려."
"그러기에는 너무 많아 너 같은 머리통은 몇조 단위로 깔려 있거든. 물론 다 죽일 순 있어도 몇백 년은 족히 걸릴 거야. 나 그럴 시간이 없어서 말이지."
"그래도 지금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움직이지 못한다는 거. 잠도 못 자고 술도 한 잔 못 먹고 씨발 거 이게 지옥이지 어디가 지옥이냐고 내가 뭘 그리 잘못했기에 이런 곳에 오냐고. 살인을 했어? 사기를 쳤어? 내가 뭘 잘못 했다고! 마누라 말 잘 듣고 애새끼를 잘 키워 놓았는데 십장 하면서 밑에 애들 잔소리 좀 한 것이 뭔 그리 큰 죄라고."
ITB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잔에 따랐다.
"자 마셔."
"그거 소주잖아. 어서, 어서 내 입에!"
-쭈욱~
"크으. 진짜네. 진짜 소주야. 아. 당신은 신님이시어. 신님. 드디어 제 부탁을 들어 주러 오셨군요. 잔에 말고 그냥 병째로 입에 물려 주십시오. 신님."
씨발새끼가 소주 한 병에 신님이 되는 순간이다.
-벌꺽, 벌꺽, 벌꺽
소주 한 병을 원샷 때려 버렸다.
"크아~ 술 김 올라온다. 코에서 김빠진다. 이게 얼마 만이고."
바로 얼굴에 홍조가 떠오른다.
"신님아 한 병 더 줄 수 있습니꺼?"
"그러지."
또 한 병을 원샷 때리고 나니 술기운이 갑자기 확 올라오는지,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지 헤벌쭉 웃기 시작했다.
바람 부는 제주에는
돌도 많지만
인정 많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도 많지요.
감수광 감수광,
날 어떻할렝 감수광
설릉사랑 보낸시엥
가거들랑
혼조옵서예
좋다~~
무슨 노래인지 모르겠지만 동운이 살던 시대에 노래인 것 같다. 혼자 걸쭉하니 노래 한 곡 땡기더니 말한다.
"한 곡 잘 땡기지에? 이기 소주 안주 아입니까. 그때가 정말 좋았는데 말입니다. 새마을 운동한다고 새벽같이 일나서 공사장에서 죽도록 일했는데 말입니다."
"···."
김동운이라는 인간의 삶이다. 그는 그곳에서 멈춰 있었다.
"신님아 부탁 좀 들어 주이소. 내 마 그냥 죽여 주이소. 이래 있으면 뭘 하겠습니꺼?"
"그래 봤자 다른 곳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나올 거야."
"신님이 그런다고 반드시 그리된다고 보증할 수 있는 건가에? 전 말입니다. 단 하나의 희망이라도 아니 희망이 없더라도 한 번 걸어 볼랍니더. 어찌 압니까? 진짜 세상에서 다시 환생할 수도 있을지 말입니다. 희망이 없다면 죽을 의지도 없는 기라에. 부탁합니다. 진짜 부탁 합니데이."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비티 포스로 김동운의 목을 뽑아냈다.
"끄륵, 가···감···."
말도 못 끝맺고 스르륵 눈이 감기더니 머리통은 공기 중으로 모래알처럼 흩날려 사라졌다.
"달라?"
옆에 다른 머리통을 뽑아 올렸더니 그대로다. 한 참 들고 있다 보니 그제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한 점 육편으로 줄어들었다가 그마저 녹아 없어졌고 빈자리에는 곧 다른 머리가 솟아났고 또 떠들어 댔다.
"희망이라. 희망이라. 인간이란 이런 곳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고 있구나. 이 소음들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발악 같은 거기도 하겠군."
그러고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기억을 다 가지고 있다. 이들은 지금 환경에 미쳐 실성한 상태였다.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옆 사람과 이야기하는 거도 지쳤을 거고 그 고통이야말로 고통의 시선보다 더한 진정한 고통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들을 구원할 방법은 없을까나?"
아까 김동운 말대로 지옥 갈 만큼 극악무도한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지옥 보다 더 지옥 같은 곳에서 고통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기를 끌어 올렸다.
【안 됩니다. 여기서 기가스 시더를 사용하면 시험장이 깨져 버립니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나는 놀라 급히 신성력을 껐다.
언노운이 제지하지 않았다면?
'너 인마 지금 역사에 개입한 거지? 내 행동을 제지했으니까 말이다. 역사는 내 하기 나름대로 흘러간다며?'
【옳은 길로 유도하는 것 또한 저의 일입니다】
입씨름해서 언노운을 이길 수 없으니 아싸리 포기하는 편이 제일 속 편하다.
'그럼 앞으로도 이곳에서 신성력은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는 소리냐?'
【그렇습니다. 이곳은 릴리스의 세상입니다. 그녀는 특히 다른 악마보다 더 강렬하게 신성력을 싫어합니다. 그것은 12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데모니카는 왜 그런 중요한 경고를 해 주지 않았지? 좆대 보라고 하는 건가 다음번에 만나면 제대로 따져봐야겠네. 씨펄 여기 다 날릴 뻔했네.'
동운이 말했던 희망이라는 단어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희망이라, 희망이라 좋은 거지. 판도라의 상제에서 마지막 남은 것이 희망 하나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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