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스 행성 - 타락한 자들의 이야기
자투스 행성 - 타락한 자들의 이야기
메페스인.
원래대로라면 인간을 가장 닮은 인간형 외계인이며 미지의 세계에 존재하는 또 다른 생명체다.
인류 과학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 상황이지만 이미 말도 안 되는 현실 속에 사는 나에게는 큰 의미는 없다.
단지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한 길목에 존재하는 NPG와 다른 게 없는 존재들이다.
"이봐, 친구 굳이 고통을 벌겠다는 이유가 뭔지 이해하기 힘드네."
나는 이들의 현실을 이미 모조리 알고 있다.
이놈이 나를 왜 붙들어 세운 것인지도.
"별로 맛없을 텐데?"
"먹어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 너 지금까지 꽤 잘 먹어 왔구나. 포동포동 살이 오른 것을 보니까."
사내는 메포리라는 단검 비슷한 무기를 왼손 오른손 번갈아 움직여 가며 천천히 접근하고 있다.
"이것으로 사흘 치 식량은 확보된 셈이네."
"저 스스로 죽으러 들어 온 놈에게 아량을 베푸는 건 사치지."
"야둘라. 남은 양념 죄다 가지고 와. 포리 넌 물 끓이고."
도시 변두리 지역이고 이 근처를 지배하는 조직인 모양이다.
우리 중세 정도의 생활력을 가진 이들이니 대충 어떤 모습일지 그려진다.
-팟
우직하게 달려든다. 잠시 맛보기로 경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제법 검 좀 휘둘러 본 솜씨다. 우리 인간에도 검술이 있듯이 이들도 자기 신체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독특한 움직임을 구사했다.
비정상적으로 긴 팔다리를 잘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 하긴 자기 신체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상황이긴 하다.
이곳은 왓처도 없고 악마가 설쳐도 천사가 내려올 상황은 아니고 어차피 멸족을 향해 가는 종족이라 악마도 따로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뭔가 꺼림직한 기분은 지울 수가 없다. 이런 곳은 악마에게 꿀 빠는 장소일 텐데 왜 그냥 두고 있느냐는 것이다.
하긴 악마가 관심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이 이곳 자체가 그냥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 습득한 정보로 인해 지금 이들의 사회상이나 생활상은 잘 알고 있다.
이들의 주 식량 공급원은 바로 동족이다. 이 행성에 다른 생명체가 없는 것은 모두 잡아 먹은 거였고 균열의 오염에 의해 타락한 것들은 본능이 커지는 바람에 포식자는 닥치는 대로 피식자를 죽였다. 그 결과 행성 전체를 아우르는 종의 붕괴를 초래했고 생명이 멸종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균열에 노출된 행성의 말로는 늘 이렇다.
내가 간단하게 공격을 피하자 구경하던 사내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사내라는 표현이 적당할까 싶긴 하지만 이놈들 수놈이니 사내라고 부르는 것이 맞겠다.
목적이야 날 식량으로 쓰려는 것이고.
그래야 자기 중에 누군가 끓는 가마솥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니까.
이들에게 난 굴러온 살진 돼지였다.
무기는 원초적이다. 다만 지원군 쪽에서 사용하는 것은 분명 싸이킥 파워의 일종이다. 뇌파는 일반적으로 전기적 활동하는 뇌 신호를 말한다.
이 전기적 신호에서 나오는 뇌파는 주파수 대역이 있는데 이 주파수 대역에서 나오는 전기적 에너지를 잠깐의 집중을 통해 물리적 에너지로 변환한다.
우리의 염력과 비슷한 원리지만 우리는 아스트랄계로부터 힘을 당겨서 쓰는 원리고 인간의 뇌는 단지 통로 역할을 하는 반면 이들의 뇌파는 인간의 약 삼백 배에서 오백 배 정도라는 것이다.
전두엽의 크기가 뇌의 절반 이상으로 이들 두개골의 구조가 뒤로 길게 짱구 모양으로 튀어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녀석들은 어리둥절해한다. 분명 강도 높은 싸이킥 에너지를 발산했다. 제대로 먹혔다면 팔다리 하나씩 뜯겨 나갔을 정도였다.
이들 종족의 특징 중 하나가 서로 네트워크상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어 연결된 네트워크상에서의 기억은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 놈이 왼팔을 잡아 뽑을 거니 힘을 보태달라고 생각하면 그 생각을 네크워크에 연결된 모두가 인지하고 적의 왼팔에 힘을 보탤 수 있는 것이다.
즉 한 명이 아니 여러 명이 적의 왼팔에 싸이킥 에너지를 집중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고 그 힘은 천줄을 가뿐히 넘겼다.
우리네 마인 정도면 충분히 잡아 찢고도 남을 파워였다. 두세 놈이 단검을 들고 근접전으로 몰고 가는 것은 역시 집중하지 못하게 방해하려는 수작이고 진짜는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놈들이 하는 싸이킥 공격이다. 내게 통할 리가···.
기력을 모으니까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다. 이 느낌 정만 오랜만이다. 아! 그러고 보니 포른의 신체로 무공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사실 무공이라고 말했지만, 말도 안 되는 사이비라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다.
중국인들이 말하는 내공? 어이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하긴 그런 무지 속에 빠져 있으면 그렇다고 믿는 것이 진실이 되어 버리니까.
당연히 내공이 아니라 악의 권능이다. 기본적으로 마인의 신체에는 붉은빛의 오라가 흐르는 데 이건 그냥 권능일 뿐이지 내공이라는 황당무계는 아니다.
무당의 제운종이라는 든 지 삼제검법, 현천검법이라고 거창한 이름을 가져다 붙였지만 결국 권능을 응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뭐, 그때야 나도 뭣 모르는 시절이었으니까 우와~ 했지만 지금 보면 한편의 코미디 활극이었다.
그래도 자기들 딴엔 전통이니 뭐니 하면서 아직도 꼴값을 떨고 있을 거다.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가 하면 눈앞에서 단검을 들고 휘두르는 무리를 보니까 내 몸이 옛날 기억을 생각해 내고 보법을 밟았기 때문이다.
이건 효율적이긴 하다.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해서 사각으로 피하는 행위긴 하니까.
그리고 간만에 옛 생각도 났고 네필림인 혁련광도 중국인이라 자기 나름대로 무공에 심취해서 스스로 무공을 만들고 이름도 짓고 했으니까.
대환장이라는 거창의 이름의 무공은 그냥 손바닥에 권능 모아서 단순히 손도장 찍듯이 조패는 거다.
-뻑
아름다운 소리가 났다. 근데 조금은 걸쭉한 소리가 곁들여졌다.
대환장을 맞은 놈은 뒤로 벌렁 나자빠졌는데 당장 입에서 피거품을 뿜어 올렸다.
내부 충격이 얼마나 강했던지 두 눈이 뽑혀 튀어나올 정도였다.
가슴이 움푹 팼고 인간과 비슷한 위치에 있던 심장이 박살이 나 바로 절명해 버렸다.
근접전을 펼치는 놈들이 움찔했다.
녀석들은 뒤를 돌아보며 눈빛을 줬다.
아마 너희들 도대체 뭣하고 있는 거냐는 의미가 담겨 있을 터였다.
-뻑
두 번째 사내가 벌렁 나가떨어졌다. 첫 번째 놈과 같이 앞가슴이 아예 내려앉아 버렸다.
이건 최대한 힘을 뺀다고 했는데도 이 모양이다.
이들의 무기체계가 단검이나 원시적인 것에 머문 이유는 역시 싸이킥 파워라는 대단한 기술이 때문이다.
검 들고 달려올 동안 염력으로 찢어 버리면 그만이니까.
내게 물리적 염력이 통하지 않자 주변의 건축물 석재 더미를 들어서 투석기처럼 날려 댔다.
아군이 맞던 그런 것 따위 애초에 신경조차 쓰지 않는 공격이다.
당연히 쉴드에 의해 죄다 튕겨 나가 버리니 내 근처에서 깔딱대던 애꿎은 애들은 돌덩이 맞고 깔려서 비명 꽥꽥 질러대고 야단이다.
이 와중에 나는 문득 하늘을 올려 봤다. 큰 태양 하나 작은 태양 하나. 아. 이곳이 외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은 더 없이 파랬다. 너무나 파래서 바다가 거꾸로 매달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대기 중에 산소 농도가 아주 커서 저리 푸른 하늘을 만드는 것 같았다.
주변은 조용해졌다. 눈에 보이는 애들은 반월륜으로 모조리 멱을 따버렸으니까.
이들의 피도 역시 붉다. 산소로 호흡하는 생명체의 특징이다.
내부 장기는 많이 다르긴 했지만 그래도 기본이 되는 것은 심장과 뇌다. 뇌 용량은 무려 인간의 세배다.
이 도시에 의뢰자가 있다. 종교도 그 무엇도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교차로 악마를 불렀을까 했지만 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난 분명히 타락 교단 악마 새끼와 순번표를 바꾸었다.
안타리엘이 작업했던 행성이었다. 놈은 한 놈을 유혹해 소원을 빌도록 유도한 것이다.
메페스 종족은 손볼 수 없을 만큼 오염됐다. 종족 포식은 기본에 살인은 취미생활이고 무리가 많은 쪽이 적은 쪽을 잡아 먹는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여기서 누가 무슨 소원을 빌지 의아심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에서 구할 존재가 있다는 것도 황당했다.
천사는 거짓을 말하지 않으니 미카엘이 구하라는 자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레이는 그자에 관한 정보가 없다. 아마도 그것까지 미카엘이 넘겨주진 않은 모양이다.
그것은 네 능력으로 직접 구해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 셈이다. 날 시험하겠다고? 왜? 무엇을 위해?
뭐, 그걸 떠나서 미카엘에 빚 하나 얹혀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보상이라는 거다.
언노운이 필요 없다고 말하면 가차 없이 레이를 쳐낼 거다. 귀찮게 레이를 달고 다니는 것은 지금까지는 꽤 유용한 일이라는 것이다.
천사와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소중한 매개체의 역할을 충분히 하는 셈이니까.
"건물은 죄다 석재네."
문지기 로우슬로가 준 자투스 행성 정보를 보면 이곳의 공전 주기는 569일이다. 지구 시간으로 자전에 의한 하루는 63시간.
날씨는 초여름 날씨가 이어진다. 이 행성도 골디락스 존에 위치에 있는데 대기층이 아주 두터워 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는 행성이다. 특히 두 개의 태양이 고루 빛을 발산해 북극 남극 관계없이 일정한 기후를 유지한다.
건축양식이 독특하다. 단순히 석재를 쌓는 기술로 만든 건축물이지만 가공에서의 차이가 우리와는 넘사벽 수준이다.
육체적 노동 없이 생각하는 데로 즉 싸이킥 파워로 석재를 다듬을 수 있으니 상상력만으로 생각하는 그런 건축물이 이곳에는 즐비하다.
기하학적인 모양새, 마치 중력을 거스른 듯한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종족이 타락하여 멸족을 향해 가고 있다니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미 행성 자체가 오염되어 생명체는 대부분 멸종하였고 생명체가 아닌 것만이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태고신의 사념이 이래서 무서운 거다. 균열의 크기에 따라 은하 수십 개는 집어삼켜 버릴 수 있다.
선한 사념이었다면 그 은하는 대 축복을 받은 것이고 고등 생물의 진화가 폭발적으로 일어났을 것이다.
그와 반대가 된다면 지금 이 꼴이 된다. 정신적으로 훌륭한 종족인 메페스는 특히 사념의 오염에 극도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별에 존재하는 생명체를 모두 말살하고 최후로 살아남았고 이제는 동족까지 잡아 먹으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이 지금까지 이룩했던 찬란한 문화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천사도 포기한 곳이라고 생각하니 과연 이곳이 진정한 지옥인가 싶었다.
소원을 빈자와 교차로 악마는 정신적으로 이어져 있기에 위치 파악은 쉽다. 난 단지 행성을 몸으로 직접 경험해 보기 위해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했을 뿐. 원래는 의뢰자를 바로 만나러 가야 한다.
참고로 내 손에 죽은 영혼은 절대 구원받지 못한다. 게헤나로 가는 직통 노선 열차에 올라탄 셈이 된다.
나는 지금 여기 교차로 악마의 신분으로 와 있기 때문이다. 고로 내 손으로 접수한 영혼은 모두 교차로 악마의 소유가 된다.
하늘을 나는 생명체는 물론 벌레 한 마리도 없다. 내가 가야 할 곳은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높이를 자랑하는 한 건물 위다.
뭐든 높은 곳에 있는 존재는 그만한 권력을 가진 자다.
최상층 꼭대기로 날아올랐다.
사방이 뻥 뚫린 공간이라 시계가 정말 멋진 곳이다.
노인 한 명이 흔들의자 비슷한 것에 몸을 누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유루우바. 힘없는 노인네여. 그대의 소원을 들어주러 균열 너머에서 왔노라."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실망이 크군."
유루우바라는 이 노인네가 내 의뢰자다. 유루우바에 대한 것은 모두 알고 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도.
-짝
그는 의자에 앉은 채로 손뼉을 쳤다. 그러자 계단 아래서 제법 그럴싸한 무장을 한 경비들이 우르르 올라왔다.
"무슨 일을 하자는 건가?"
"그대가 과연 내 소원을 들어줄 만한 능력이 있는지 알고 싶어질 뿐이네."
"그래? 그럼 다른 방법을 보여주지. 여기에 괜한 피 냄새를 만들고 싶지 않아."
나는 오른손을 들어 저 멀리 한쪽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대들은 별의 자손. 내 힘은 곧 별이니 그 위대함을 찬양하거라."
-번쩍
-콰콰콰쾅!
온 세상이 가장 밝게 빛나며 거대한 불기둥이 거꾸로 하늘을 치솟고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났다. 저 멀리 별의 힘을 정면으로 맞은 곳은 오직 재만 남긴 체 모든 것이 소멸했다.
'쳇, 생각만 해도 수소폭탄을 터트릴 수 있게 되어 버렸어.'
먼젓번 림보에서의 수련이 제대로 효과를 내고 있었다. 데엑마의 힘과 탱그리의 힘을 적절하게 빠른 시간 내에 혼합하여 광범위한 지역을 초토화할 수 있게 되었다.
꽤 먼 거리라 피폭의 영향은 받지 않겠지만 두려움을 끌어내는 지진파와 불덩이같이 훅 달아오른 뜨거운 먼지 폭풍은 이곳까지 밀고 들어왔다.
모두 말이 없다. 자연의 섭리를 지켜온 이들에게 수소폭탄의 위력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기에. 이래서 과학이 마법보다 위대하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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