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의 비밀 19 – 정신 분열
연옥의 비밀 19 – 정신 분열
공간이 뒤틀리고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두 싸이코키네시스가 부닥친 곳에서의 충격파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하고 압축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드라멜렉의 생긴 외모 때문에 힘 캐라고 짐작했는데 정작 까 놓고 보니 정신계인 모양이다.
나도 출력을 40% 정도 밖에 내고 있지 않지만, 녀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 대결의 끝은 누구의 싸이코키네시스가 더 강한가에 달려 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정신계 대결에서 결과는 뻔하다. 한번 시작한 이상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둘이 동시에 멈춘다고 가정해도 이미 쌓여 뭉친 에너지가 탈출구를 찾기 위해 밖으로 일시에 밀려 나오면 이 공간은 차원 통째로 터져 나갈 것이고 메마름의 도시는 연옥에서 증발할지도 모른다.
이솔데가 이 대결을 알고 있다면 사정이 다르겠지만···.
지금 둘의 에너지는 가운데 모여 극도로 포화한 상태. 이미 내심에는 공간은 물론 차원까지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 과정이 계속되면 별의 수축과 같은 현상을 보일 것이 뻔하다. 지금 중력 한계를 돌파한 지는 벌써 꽤 됐다.
별이 수축해서 초고밀도가 되면 초신성 폭발을 일으킨다. 물론 초신성에 비하면 거의 마이크로 크기의 수준이지만 터지면 이곳은 물론 연옥까지 폭발 범위에 들어가 버린다.
-파아아아악
잠시 고민하는 사이 힘이 내 쪽으로 밀려온다. 놈은 잠깐의 틈조차 허락하지 않고 거세게 밀어붙였다.
초거대 시냅스의 전자기 펄스 에너지가 50%에 육박하자 주변 공간은 빠르게 함몰되어 갔다.
두 거대 에너지가 맞붙은 곳은 초고열을 넘어서 태양 안쪽에서 가장 높은 온도의 2배에 해당하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기화도 아니다 증발이다. 시간 축이 비틀어지고 중력도 휘어지고 빛도 흡수되어 간다.
둘이 만들어 낸 에너지의 합산 물이 어마어마한 목표치를 향해 폭주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끝장임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멈추는 쪽이 증발하기 때문이다.
아드라멜렉의 목소리는 더는 들려오지 않는다.
말을 주고받을 만큼의 상황은 이미 지났다.
집중력이 흩어지는 쪽이 지는 거다.
이 상태라면 양쪽 모두 문제가 발생한다.
에너지가 맞은 쪽은 소멸하든지 아니면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지만 나도 결코 성한 모습으로 이곳에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
포른이 아닌 인간의 몸이었다면 아무리 펄스 쉴드 따위로 보호한다 해도 끝장났을 거다.
차원이 뭉개지는 판국에 차원 에너지를 빌려 쓰는 쉴드 따위는 무의미하니까.
공간을 압축하고 핵분열을 일으킬 수 없이 이미 공간이 분해 되기 시작한 시점이고 이곳에는 핵분열을 일으킬 만큼의 수소 원자가 없다.
이런 좁은 차원에서의 문제점이다. 그래비티 포스나 다른 기술도 먹히지 않는다. 이 막강한 에너지가 모든 스킬을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서 만들어진 태양의 노심은 극악의 상황을 향해 치닫고 있다. 60% 돌파.
시냅스의 크기가 원래 태양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그 안에 구성된 모든 신경망에서 쏘아내는 전자기 펄스의 총량의 60%가 한 점에 집중되었다는 소리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아드라멜렉의 에너지까지 합산하면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가 한 점에 집중되고 있다.
【붕괴 시점까지 28시간 39분 56초 남았습니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
에너지의 균형이 다시 내 쪽으로 밀린다. 아드라멜렉이 최후의 결단을 내린 것일까?
나도 질 수 없어 맞받아쳤다.
70% 돌파
【붕괴 시점까지 4시간 25분 29초로 남았습니다】
에너지가 더 커지자 붕괴 시점도 확 빨라졌다.
속으로 흠칫했다.
이 차원은 아드라멜렉이 만든 것이다. 그리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해야 하는 것이고 그런데도 이 정도 싸이킥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고?
속된 말로 평범한 행성 하나는 그냥 우습게 쭈그러트릴 만한 파워를 가졌다고 봐야 한다.
녀석은 이 차원을 유지하면서까지 나에 맞서고 있다.
지금 내 에너지는 70%에 육박하는데도 말이다.
만약 녀석이 본심을 낸다면?
'붕괴하면 어떻게 되지?'
【차원이 붕괴하면 다른 차원으로 튕겨 나가거나 현 차원 즉 연옥으로 다시 튀어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럼 전자를 기대할 수밖에 없군.'
언노운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거대한 시냅스와 별개로 내 작은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스트랄계에 만들어진 초거대 뇌에서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이지 내 작은 뇌는 가져다 비빌 수도 없으니 다른 생각을 해도 부하가 걸리는 일이 없다.
아드라멜렉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뜨거운 열기가 미치도록 뿜어져 나온다. 이미 걸친 의복은 잿가루가 돼서 기화도 아닌 원자 단위로 분해 되어 버렸다.
수십 겹의 쉴드는 무용지물. 포른 세포까지 증발해 가는 상태다. 물론 증발 수치만큼 분열이 일어나서 공간을 채우기는 하지만 5도 이상 화상을 입을 정도로 겉 피부가 타서 증발하면 새로운 피부가 솟아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런 물리적 공격에 생체적 신체는 매우 불리하다. 비록 포른의 몸이긴 하나 역시 세포로 이루어진 몸뚱이니까 말이다.
그나마 언노운이 일렉트릭 마그닉필드 차원 역장 쉴드를 유지하고 있기에 몸체가 이 정도로 버티는 것이다. 아니라면 파괴 속도를 분열이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
포른 세포는 고통이 없다. 신경 반응은 있지만 고통 레벨 지수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실제 사람이라면 살갗이 타서 눌어붙어 쪼그라드는 작열통 수준일 거다.
그레이트 볼텍스는 행성 파괴 중자기력을 발사하는 것인데 지금 상황에서는 무의미한 기술이다.
이미 중력까지 빨려 들어가는 판국에···.
솔라버스트도 무의미한 기술이고 이곳처럼 한정된 차원에서는 그 흔한 수소와 헬륨 원자가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플라즈마 코어보다 더한 녀석이 가운데 있는데 이 기술도 의미 없고 타임 슬레이어는 상대에 직접 접촉이 이뤄져야 발동하는 기술이라서 이 또한 의미 없다.
지금 눈앞에 있는 초거대 에너지 앞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기술도 통하지 않는다. 모조리 집어삼켜질 뿐이다.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악마나 천사보다 물론 우리엘과 전면전을 하지는 않았지만, 현재 상황이 지금까지 경험상 최고 난도라고 할 수 있다.
【1시간 18분 29초 후 붕괴합니다】
'타개할 방법을 찾아봐.'
【에너지 밀집 상태가 너무 과밀화되어서 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쿠오오오오오
'저 미친 새끼가!'
이 와중에 힘을 더 밀어 넣는다. 느낌이 오긴 왔는데 녀석도 분명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녀석도 영체가 아닌 실제 보디를 가진 생체 생물이다. 녀석이 아무리 고강도 몸체를 가졌다고 해도 이 미친 에너지의 파동 앞에서는 제 녀석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
녀석은 마지막 힘으로 이걸 끝내고 싶어 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에너지는 정신력이다. 그러다 보니 녀석의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 넘어왔다.
녀석도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수 있었다.
"한번 해 보자."'
90% 수준까지 되받아쳤다.
【차원 수축이 진행됩니다. 분열까지 3분 29초】
여기서 멈출 수가 없다. 멈추는 놈이 지는 거다.
아니 멈춰도 둘 다 자멸이다.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거대한 에너지 구체가 갑자기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초신성 폭발과 같은 현상이 벌어지려 한다.
【마그네틱 쉴드에 모든 에너지를 집결시키겠습니다】
【붕괴 30초 전!】
-쓕! 쑤아악! 슉!
뭔가 앞에서 싹 끌어당기고 뒤에서 훅 미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붕괴 3초 전!】
나는 몸을 웅크리고 태아 자세를 취했다.
-번쩍
차원이고 뭐고 간에 모조리 싹 다 에너지 구체를 향해 빨려드는 듯한 착각 아닌 현실을 보았다.
모든 것이 증발.
그 밝음이 무한의 암흑으로 변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내가 살아 있는 그것조차 느낄 수 없다.
신체에 감각이 전혀 없다. 손발도 눈도 입도 호흡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멍한 느낌의 생각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아스트랄계와 전혀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거대 시냅스와의 통신이 끊어졌다.
'언노운 사태 파악해봐.'
답이 없다.
'언노운! 대답해.'
말도 나오지 않고 생각뿐이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다.
'레이 있나? 레이 들려?'
레이도 응답이 없다. 차원이 폭발되었다면 그림자 속의 레이 차원도 휘말렸을 텐데?
이게 아무리 손발을 움직이려 해도 감각이 전혀 없다.
진짜 생각만 빈 곳에 떠 있는 기분이다.
오감이 싹 사라졌다. 그냥 마지막 육감만 남아서 사고 하는 것이 전부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감촉도 없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내 몸 자체가 존재하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언노운도 레이도 답이 없다.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왜 아스트랄계의 시냅스와 연결이 끊어졌을까?
미치겠다. 아무리 허우적거리고 발버둥 쳐도 뭔가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무한의 심연에 빠져버린 느낌.
그 어떤 기술도 먹히지 않는다.
심지어 기가스 시더로··· 신성력, 권능 뭐 하나 작동하는 것이 아예 없다.
나는 이것이 오롯이 내 정신체 사고 즉 인간이라면 영혼이라는 그 자체만 떨어져 나온 것임을 알았다.
참고로는 나는 영혼이 없다. 이식할 때 영혼이 아닌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파편 조각을 영혼 대신 심었으니까.
그 파편 조각이 인간의 몸을 얻음으로써 인간과 같이 생활하며 인간 생활을 학습해 가는 과정을 똑같이 거쳐서 하나의 인격이 형성된 것이 바로 나 정동혁이다.
보육원에서 적성 검사에 낙방하고 정크 보이로 내몰릴 때의 자괴감은 내 인생 가장 큰 트라우마다.
살벌한 들판에 내몰려 녹슨 쇠막대기 하나 들고 고블린과 마주쳤을 때의 공포를 나는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루시퍼와 처음 만났을 때의 공포감보다 그 고블린이 몇 배는 더 두려움 속에 남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크 보이 시절 상황이 떠오른다니 황당하긴 했다.
나도 구석으로 몰리니까 별 희한한 트라우마에 사로잡히나 하고 생각했다.
일단 주변이 암흑, 아니 보이지 않는다는 편이 맞겠지. 눈에 감각이 없으니 세상이 다 암흑으로 보이는 걸 거다.
어쩌면 주변은 색상과 공간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한동안 세게 발버둥 치다가 지쳐 늘어졌다. 늘어졌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그냥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한때는 차라리 이대로 영원히 이곳에···. 아니지, 세상이 지금 어떤 세상인데 내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육체도 없고 언노운도 없고 레이도 없다면?
그럼 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한 조각, 파편만 퉁겨져 나온 것이 되는 셈인가?
분명 차원이 붕괴하였고 아드라멜렉도 나도 모두 붕괴한 차원의 틈 속으로 빨려 들어간 그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아마 그때 어떠한 요인에 의해 튕겨 나온 모양이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환경이라는 생각이 점점 밀려들자 느낌이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과거를 떠올리면 거대한 시냅스가 마치 당시 현장에 있는 것처럼 대사 한 마디 안 틀리고 똑같이 영화처럼 상영해 주었는데 지금은 그저 막연한 감정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확실히 거대 시냅스와 단절이 되었거나 아니면 완전히 떨어져 나간 상태라는 것을 직감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여긴 어디지?
1시간? 하루? 한 달? 일 년?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한심한 존재였나. 언노운이 없으면, 거대한 시냅스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그저 불편한 조각 한 덩이에 지나지 않는가?
기척이라도 느껴지면 발버둥이라도 쳐 볼 텐데 아무런,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드라멜렉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인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이제 감도 오지 않는다.
나는 마지막으로 모든 사념을 다 털어 내고 오직 하나만을 생각했다.
나 자신도 버리고 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하나만 생각했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것 난 그의 조각이다.
아스트랄계에서 또 심연의 존재에 이어진 것은 끊어질 수 없는 단편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이 다 끊어졌다 해도 지금 사고하는 나는 그의 조각이고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믿을 것은 오직 이 하나뿐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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