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만 가자
한 방만 가자.
"별거 아냐. 소문 좀 뿌려 달라는 간단한 의뢰 정도니."
녀석의 빨간 토끼 눈이 요리조리 꿈틀거린다. 소름 끼치는 놈이지만 그래봤자 내겐 안 통한다. 시냅스가 이미 이놈의 대부분을 속속들이 인지했기 때문이다.
"세상엔 간단한 것이 없어."
"그건 그렇고 너 내가 누군지 알지?"
"소문의 네필림이 아닌가?"
"걸린 현상금이 얼만지도 알고?"
"순돌이 천 개라고 알고 있어."
"네가 알 정도면 소문이 다 퍼졌을 텐데···. 케리스칼피움에서는 아주 미쳐 날뛰던데 여긴 쌉 조용하네?"
"그곳과 여긴 분위기가 달라. 널 모르는 놈이 태반이야. 정확히는 관심이 없다고 봐야겠지. 고위층에서는 네가 여긴 온 것을 알지 모르지만 쉽게 덤비지는 않을 거야. 네가 가진 낙인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더 잘 알 테니. 완벽한 함정에 가두기 전까지는 지켜만 볼 거야 그러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덤비는 놈은 인생 결딴난 놈 중 될 대로 되라는 녀석일 테니까. 그네들이야 너 정도면 충분히 갈아 버릴 수 있겠지."
녀석은 숨 한번 안 내쉬고 막힘없이 줄줄 화법을 구사했다. 마치 외워 놓은 문장을 읊듯이 듣는 사람을 편하게 했다.
"한데 외모가 왜 그렇지? 메아리 새 대가리 아니었나?"
"아, 이보라고 난 변신의 귀재야 소문을 들으려면 그곳의 분위기에 맞추는 것이 당연한 거지 적어도 너처럼 인간 모습으로 활보하는 미친 짓은 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지."
나는 크로포드를 슬쩍 바라보고는 말했다.
"이놈 썩 믿음이 가질 않는데? 권능이 소문인 것은 알겠는데 소문 권능으로 삼는 녀석이 한둘이 아니고 3품계면 좀 약하지 않나? 행색도 허술해 보이고 어디 숨어서 소문 몇 개 듣고 설쳐대는 삼류···."
-탕
"술맛 떨어지게 만들지 마. 너 나에게 의뢰한댔지?"
"그래서 인페르노 호니와인 값이라도 할는지···."
"너 계속 도발하는 의도가 뭐야?"
"난 말 돌리는 거 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말인데 네 능력을 확실히 하고 싶다 이거지."
"네필림 새끼가 쪼잔하기는···. 여기 어딘지 알지? 피의 교단 영역 안이란 말이다. 넌 초대 받지 못한 현상금 덩어리고!"
"그래서?"
"그래서라니 네 소문을 살짝 흘리면 어떻게 될까?"
-짝, 짝, 짝
나는 손뼉을 쳐 댔다.
"자, 능력을 보여봐. 한번 보자고."
-뻥
녀석의 머리가 갑자기 새대가리로 변했다.
"괜찮은 거지? 네가 숨겨놓은 한 수가 있다고 해도 여긴 피의 교단 영역이라고. 널 도와줄 녀석들이 와도 별 도움이 안 돼. 넌 이미 호랑이 우리 안에 들어온 상태란걸. 겁도 없이 말이야. 그걸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오만한 행동이라고 하지. 그 결과가 어떨지 넌 감히 상상도 못 할 거라니 우습네. 여기 있는 모든 존재가 순식간에 적으로 돌아서는 거지."
"내가 알고 싶은 거다. 왜 여기만 소문이 나지 않은 건지 말이야. 더군다나 피의 교단 영역인데? 소문이 나도 가장 먼저 나야 할 곳이 아닌가? 내 말 틀리지 않았지? 감히 날 속이려 들면 그 대가리 으깨 버린다?"
녀석의 눈알이 데구루루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어이, 어이, 대가리 굴리지 말아."
"기가 차군. 넌 영악해. 네 말이 맞아 여기 소문은 통제되고 있어."
"누가 한 짓이지? 무엇 때문에? 날 여기로 유인 한건가? 크로포드?"
개구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맹세합니다. 믿지 못하시면 당장 절 사역마로 만드셔도 됩니다. 두 분 대화에서 저는 제외해 주십시오. 왜냐하면 아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개구리 말은 진짜야. 녀석이 들을 수 있도록 네 이야기를 흘린 것은 솔직히 나야. 이 개구리가 널 찾아갈 거란걸 알았기 때문이지. 네가 4고리에 왔다는 것은 뭔갈 찾는 것이 있겠구나 싶었어. 그렇지 않다면 이런 모험을 할 수는 없지. 과연 찾는 게 무얼까? 생각하니 궁금하더라고."
"왜 내 목이 탐이 난다고 그러지? 이곳 소문을 통제한 것은 역시 너구나."
그때 닭대가리가 와인과 안주를 서빙했다.
위스퍼모어가 왜 새대가리로 머리통을 바꾸었는지 이해가 됐다.
"본 대가리를 찾아야 와인의 맛을 진퉁으로 느낄 수 있는 거구나."
"얼레? 그것까지 알아? 이거 대화할수록 무서운 놈이네. 그것이 이 와인을 마시는 방법이지. 변신하면 아무래도 입안 구조가 바뀌어서 제대로 된 맛을 온전히 느끼지 못해서 말이야."
역시 꿍꿍이가 있겠다 싶었다.
"우리 이제 슬슬 각자 본론을 이야기할까?"
"내 능력 알고 싶다면서?"
"물론 그걸 통과 해야지. 네 능력이 써먹을 만큼···."
-쾅
문이 거칠게 열리고 몇 무리의 악마가 들어왔다.
거대한 흑표범의 모습을 한 악마와 서큐버스 두 명을 거느린 입이 모기처럼 가느다랗고 등이 휜 꼽추에 두 다리가 곤충의 외형을 가진 악마 한 마리 그 옆에 밥맛이 확 떨어지는 외형의 추한 노파 한 명 얼굴과 팔다리에서 피고름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진즉에 밥을 먹었기에 망정이지 폭식의 권능을 최대로 올리더라도 밥맛이 싹 가시게 만드는 족속들이다.
"오세님이다."
3층에 있던 놈들은 허둥지둥 자리를 빠져나갔고 2층에 있던 놈들조차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오세라는 놈이 보통이 아님을 말해 준다.
오세는 모든 짐승을 관장하는 악마로 직위는 총통이다. 뭐 그리 높은 녀석은 아닌데 2품계 애들까지 피하는 걸 보니 불편해서든지 아니면 엮이기 싫어서 피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어서 오십시오. 오세님."
"그놈이구나. 현상금 걸린 인간 놈이 하나 굴러들어 왔다고 하더니."
위스퍼모어는 키득키득하며 웃더니 말했다.
"내 능력을 보고 싶다고 했지? 그래서 소문을 잠깐 흘렸어."
"알아. 새 대가리로 바뀌는 순간 권능이 한 번 출렁했어. 그때 소문을 보낸 거지."
"얼레? 알고 있었어. 너 볼수록 대단한 놈인데? 그걸 알아차리다니. 그럼 내 능력 확실히 보여 준 것 맞지?"
"시시해. 그딴 것도 능력이라고."
"뭐야? 지금 네가 처한 상황이 어떤지 알고서나 하는 소리야? 오세는 인간 고기를 최고로 좋아하는 미식가다. 옆에 있는 메라토 총통님은 모든 모기들의 왕이시다. 너의 뇌수로 만찬을 즐길 수 있는 분이시지."
"하, 내 몸값을 노리고 이런 거면···."
위스퍼모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건 아니지. 너도 내 능력을 확인했으니 나도 네 능력을 확인해야 공평한 것 아니냐고?"
녀석은 어깨를 으쓱한다.
오세가 다가오자 찐한 비린내가 풍겨왔다. 이건 야생의 들짐승이 내뿜는 피부 기름의 냄새다. 상당히 고약한 이 냄새는 포식자의 오만함을 관철하는 것이며 희생자로서는 가장 두려운 냄새이기도 하다.
"야, 넌 확실히 관계없지?"
"네. 그렇다니까요. 전 관계없습니다. 그런데 소문만큼은 이 녀석이 확실히 퍼뜨릴 수 있다는 것은 증명된 셈이죠. 그러니 이용 가치는 충분하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난 이미 오세가 등장하기 전부터 공간을 접어놓고 고압축 해 놓은 상태였다. 수소 원자가 임계치를 돌파하기 위해 숨을 헐떡대고 있었다.
이들은 내 진정한 힘을 모른다. 탱그리의 힘을. 그 위대한 과학의 힘을!
"너 운 좋은 줄 알아. 쓸모없었다면 잿가루로 변했을 테니까."
오세가 크르렁 거리면 말했다.
"간만에 인간 고기를 먹게 될 줄이야."
"착각은 자유지. 안 말려."
-휘리릭
크로포드와 위스퍼모어를 공간에 담아 천정 위로 집어 던졌다.
"아쉽네. 이곳 음식 꽤 맛 있던데···."
모기 주둥이 메라토가 잠자리 같은 날개를 펼치는 순간.
나도 순간 이동을 했다. 오세가 빠르게 따라 붙는 것도 느꼈다.
-번쩍
화려한 휘광이 눈을 뜨지 못하게 했다. 거대한 별의 힘이 주변 일대를 환하게 비추었다.
-콰쾅
지축은 뒤집히고 초고압으로 압축된 공기가 진공을 형성한 중심부로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갔다. 오세가 빙글빙글 돌며 폭압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대폭발. 거대한 버섯구름이 하늘을 뚫고 미친 듯이 치솟아 올라갔다.
초 거대한 버섯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는 순간 대폭발의 후폭풍이 대지를 집어삼키며 파도처럼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스텔라 녹티스 타베르나. 밤의 별은 말 그대로 별이 되었다. 별의 힘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헤일로 같은 찬란한 빛줄기는 주변 모든 사악한 것을 불태워 버렸다.
거대한 후폭풍의 해일이 크림슨 베일을 휩쓸었다. 제주도 두 배 크기의 크림슨 베일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폭발이었고 벨페고르의 권능으로 지어졌다는 커럽션 오아시스까지 폭풍이 바람이 휘감았다.
한마디로 주변은 잿더미가 되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아쉬운 것은 아직 차원을 제어 못 해 차원 속으로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폭의 피해를 벗어나려면 전폭기처럼 공중으로 피해 달아나야 한다.
공간 속으로 피한다고 해도 물리적 데미지는 걸러내지만 핵폭발 시 발생하는 광선은 막을 수 없다.
먼저 감마선. 고에너지의 전자기파는 공간을 뚫고 들어온다. 핵분열 반응 시 발생하며 물체를 통과하는 특성을 가지며 공간 결계의 원자를 이온화시키는 것은 물론 생명체의 DNA까지 손상 변형시키며 방사능 오염과 방사능 질병을 가져오는 파괴적인 광선이다.
두 번째 알파 입자 헬륨 원자핵이 이온화된 형태로 이루어진 입자. 베타 붕괴나 알파 붕괴와 같은 핵 방사능을 뿌려대는 광선. 피부와 물질의 표면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세 번째 베타 입자 전자 또는 양전자가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입자. 핵붕괴나 핵반응 중에서 발생한다. 감마선과 함께 가장 위험한 광선이지만 감마선보다는 더 훨씬 짧은 거리밖에 이동하지 못한다.
감마선이 가장 치명적인 광선이다. 공간을 구성하는 결계를 허물고 들어오면 그 사이로 알파 입자와 베타 입자까지 따라 들어오니까.
물론 직접적인 피해 거리 이상으로 물러나면 피폭의 영향은 받지 않는다. 포른의 몸인 나는 방사능이 극한 환경인 1급 블랙홀에서 태어난 존재다. 그러니 감마선 정도는 우습다. 우주에서도 생환이 가능한 신체다.
영체도 우주에서는 타격을 입고 하물며 생명체인 놈들은 이런 별의 힘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핵폭발은 태양이 눈앞에서 폭발하는 것을 직접 보는 것과 같은데 햇볕만 쫴도 권능이 타는 악마들이 핵폭발에 노출되면 그냥 소멸이다.
인간은 악마의 노리개가 될 수 없는 것이 아담이 먹은 지혜의 열매 즉 과학적 사고를 할수 이도록 뇌가 변형된 것이 크다.
루시퍼 때문에 아담은 선악의 열매. 실제 선악과는 아니고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제조된 약제일 뿐이다. 바로 뇌를 활성화하는 약제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이 모든 신화가 과학적 토대 위에 서 있다는 현실을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일까나.
에덴은 분명히 존재한다. 야훼의 실험실로서 말이다.
"오! 맙소사. 네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알고 있어?"
"한 번만 주둥이 처 놀리면 그 안에서 터뜨려 주지."
"아! 이건 산정 밖이다. 산정 밖이라고! 도대체 어디서? 무슨 속임수를 쓴 거냐? 저건 별의 힘인것 같긴 한데?"
"같긴 한데가 아니라 별의 힘이다. 수소를 고 압축해서 임계 질량 이상으로 만들어 한 번에 방출시키는 거라고 별이 폭발할 때 내는 그 현상과 같아. 헬륨 원자가 만들어지는 것과 봐도 수수 핵융합이라는 사실이 확실하지."
"미친! 이건 뭔가 계산 오류가 났어. 너, 넌 네필림이잖아! 네필림이 어떻게 그런 힘을···."
"내 능력 보고 싶다며?"
"너! 너!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알기나 해? 피, 피의 교단 시설을! 오! 맙소사."
녀석이 머리를 쥐어뜯는 것은 교단 시설이 망가져서가 아니다. 이 새끼는 철저한 악마 새끼다. 개인 기득권이 우선이 되는···.
이놈이 미친 듯이 괴로워하는 것인 당연히 이번 일에 자신이 관여됐기 때문이다. 교단에서 조사가 나오면 자신은 어떻게 될지 직접 보고 듣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개구리 중심 잘 잡아 일단 이곳을 벗어날 테니까."
"그, 그럼?"
"뭐가 그럼이야.! 사고 쳤으니 튀어야지."
"네? 넵! 그, 그렇죠."
개구리는 완전히 얼이 빠진 모습이다.
가학적인 속도로 날았다. 공간 한 개를 들고 나는 데는 별반 문제 될 것이 없다. 시냅스로 공기 흐름까지 다 파악해서 진짜 미친 듯이 날았다.
빛의 속도 30%까지 효율을 냈으니 어마어마한 속도로 크림슨 베일을 이탈했다. 커다란 버슷 구름이 안 보일때까지 계속 날았다. 다행히 쫓아오는 놈은 없다.
오세와 그 무리들은 어떻게 됐을까?
"뜨, 뜨거운데요?"
"그래?"
미친 듯한 속도로 날다 보니 공기 마찰로 공간이 데워진 모양이다.
바닥으로 내려왔다. 어딘지 모를 거리다. 조금 한적한 곳을 찾아 악마도 드문드문 보이는 거리에 내렸다.
다크 로드를 사용하려니 이 둘은 통과 못 한다. 황천문을 찾아야 했다.
"어이, 개구리 가까운 황천문은 어디에 있지?"
"에, 그러니까 가만 저를 따라오십쇼."
"너도 이 새끼야. 같이 가야지."
난 슬슬 뒷걸음치는 위스퍼모어의 양 날개를 움켜잡았다.
"너도 인마 이번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어. 오세를 불러온 것이 너였지? 즉 아까 핵폭발 원인 제공이 너란 사실을 마구 떠들고 다니겠어. 교단에서 얼쑤 좋아라 하겠네?"
"지,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이 새끼야. 네 명줄이 내 손에 있다는 소리지. 그러니 도망만 가봐 바로 이 사건의 핵심은 너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테니까 가. 도망가 보라고."
나는 날개를 놓아주며 손을 털었다. 기분 나쁜 감촉이다. 오염은 없겠지만 악마 새끼는 만지기도 싫다.
녀석은 한동안 멍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악마도 이런 표정을 짓는다고 하며 히죽 웃었다.
"소름 끼치는 웃음인데요?"
"왜 갑자기 그렇게 고분고분해졌어?"
"제기랄 똥 밟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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