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니지 크롤러스(Carnage Crawlers)
카르니지 크롤러스(Carnage Crawlers)
"저놈들은 다 비슷한 놈들이네. 넌 왜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지?"
"사연을 설명할 만큼 시간은 없는 것 같네. 폭력에 찌든 저놈들은 가장 효율적으로 디자인된 신체를 선호하지. 대 천사 전투에 특화된 놈들이야. 언젠가 있을 선악의 대결을 위해 준비된 녀석들이지."
데쓰로그를 닮은 붉은 피부의 악마들이 떼 지어 몰려나왔다. 확실히 한 마리 한 마리의 권능이 대단하다.
느낌상 저놈 한 마리만 1고리 림보에 데려 놔도 대량 학살을 일으킬 거다. 병기도 다양하다. 검, 창, 도끼, 방패, 헐버트, 심지어 채찍까지 보인다.
이 특수한 개체는 생명체이긴 한데 데몬에 가깝다. 전투력은 네필림을 몇 배나 웃돌아 지구상에 풀어 놓으면 그냥 멸망 각이다.
이런 놈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버글버글하는 곳이 7고리다.
게헤나는 절대 만만히 볼 수 없는 곳이다. 하긴 폭력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고질적인 문제는 모두 가지고 있다. 어찌 보면 인간의 역사도 폭력의 역사가 아니던가···.
살짝 호승심이 차올랐다. 핵분열로 놈들을 싹 쓸어 버리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언제까지 핵폭발에 의존한 싸움만 고수하기도 그렇고 해서 한 번 맨몸으로 비비대 보기로 했다.
ITB에서 로블록스를 꺼냈다. 검날을 타고 흐르는 하이퍼페이즈는 블랙홀의 위아래서 뿜어지는 블랙홀 제트에 속해 있는 물질이다. 블랙홀 제트는 매우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입자들이 극도로 강력한 블랙홀의 자기장에 의해 가속되어 발행한다.
그 에너지를 하이퍼페이즈라고 하는 데 고대신 로블록스는 그 에너지를 떼어다 압축해 한 자루의 검을 만들었다. 그는 그 검을 자신의 이름을 따 로블록스의 검이라 명명했다.
완전무결한 날을 가진 검. 우주 모든 물질을 절단할 수 있는 검이라 불리며 실제로 로블록스는 이 검으로 별 정도는 간단히 반으로 갈라 버렸다고 한다.
그래 맞다. 아직 내 힘은 고대신 발톱 밑에 때만도 못한 지경인데 로블록스의 위력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주 최강의 검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비록 내 손에 쥐어졌어도, 그 위력이 엄청나게 축소됐어도 최고는 최고의 가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베는 맛이 찰지다. 살이 갈리고 뼈가 사각 절단 되는 느낌이 손바닥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상대의 무기 따위는 낫으로 사탕수수 자루를 베는 정도로 쉽게 갈라 버린다. 생각해 보라고 로블록스 검날은 블랙홀에서 뿜어지는 블랙홀 제트가 담겨 있는데 이것에 닿는 순간 모든 것은 평등해지는 거지. 좀 과장해서 실수로 루시퍼를 베면 베인다는 거다. 진짜 억수로 운 좋으면 루시퍼의 멱을 딸 수도 있는 검이란 소리다. 물론 개 재수가 몇조승으로 붙을 때 해당하는 이야기겠지만···, 쩝···.
환상 박물관 무기 톱3 안에 드는 괴물 중의 괴물이란 거다.
과거 멋모를 때 중국에서 배운 검법이라는 것은 솔직히 이젠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검법의 화려한 모션,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사각으로 검을 찌르거나 베는 기술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초 단위를 넘어서는 전투에서 그런 동작은 오히려 방해만 된다.
극한의 속도 앞에 검법이라는 것은 어수선하고 어지러운 춤사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현천 검법 따위로 멋 부림을 하면 보는 악마가 코웃음을 칠 거다. 어이없어서···.
상대를 가장 효율적으로 죽이는 것은 단지 속도의 리듬감 그 하나뿐이다.
불필요한 동작을 완벽히 배제하고 오로지 스피드의 승부다. 누가 빠르냐에 따라 삶이 갈린다.
이놈들 덩치가 커도 움직임은 초고속이다. 평범한 사람은 아예 눈으로 움직임을 포착할 수 없을 정도다. 눈앞으로 뭔가 스치듯이 번쩍 지나갔다고 느끼기도 전에 자기 몸은 반으로 갈려져 있을 테니까.
아. 이런 표현이면 딱 맞겠네. 이놈들 순간 스피드가 M4의 탄속과 비슷하다. M4가 약 975m/s인데 딱 이 탄두의 속도로 움직인다.
이 덩치가 움직이는 데 공기 역학이나 중력은 어디? 라고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이곳의 환경은 지구와 다르다. 중력도 4분의 1수준이고 대기 정도는 화성의 환경과 비슷하거나 그 이하다.
그러니 이런 움직임이 가능하고 7고리가 이런 환경을 유지하는 데는 우주 공간에서 싸워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검을 휘둘러 총알과 같은 빠르기로 움직이는 대상에 현천검법 따위의 검 쇼는 애초에 무리수라는 이야기다.
여기서 결론은 상대 움직임보다 좀 더 빠르게 검을 휘두르면 그뿐이라는 소리다.
검으로 m4 카빈총에서 발사한 탄두를 마음 놓고 어느 순간에도 어느 각도에서든 깔끔하게 잘라 내면 된다.
"멋진 검이군. 이놈들 몸뚱이는 헬오어의 네 배 정도인데···"
"영감도 만만치 않네. 그 지팡이도 괜찮아 보이네?"
"자네에 비하면야. 자네를 보니 몇 만년 만에 가슴이 다 뛰는걸? 근데 자네 왜 스킬을 사용하지 않지?"
"일단 이네들 전투력 테스트할 겸 겸사겸사. 그런데 이 정도 전투력으로는 능천사 바짓가랑이도 잡기 힘들어 보이긴 하네."
"무시하지 말게 이놈들은 멈추지 않는 기계와 같으니까."
렉토스카르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머릿수가 쌓기 시작하자 검으로 베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황당한 것은 잘린 놈들의 몸뚱이다. 이것들이 스스로 물론 권능에 의한 것이겠지만 대충 짝을 맞춰 결합해 부활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잘게 토막을 쳐도, 제 조각이 아니라도 비슷한 크기끼리 들러붙어서는 빠르게 부활한다는 것이다.
이놈들 이렇게 부활하는 숫자도 만만치 않다. 렉토스카르를 보니 정확히 대가리만 노리고 깔끔하게 부수고 있다.
대가리를 잃은 몸통은 죽지는 않으나 명령체계가 없어서 전투 능력을 상실해 버리는 거였다.
이놈들도 뇌가 있고 그걸 터뜨리면 된다는 소리구나 싶었다. 미치도록 빨리 움직이는 데 내게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은 녀석들도 공격 순간에는 어찌하든 멈춰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그 틈에 로블록스를 휘두르면 간단하다. 하지만 확실히 보내기 위해서는 검만으로는 힘들고 강력한 타격 무기로 머리통을 아예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박살을 내야 했다.
주먹과 발차기로도 충분한 에너지를 끼칠 수 있으나 조금 전 렉토스카르의 말대로 이 새끼들 몸뚱이가 헬오어 4배의 강도를 가지고 있어 아무리 포른의 몸이라 해도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 악마 그래도 7고리 악마다.
인간의 몸이었다면 애초에 이 정도까지 전투를 이어 갈 수 없었을 거고 이놈들에게 그래비티 포스라든지 권능을 사용하려 치면 그 낭비되는 정도가 심각한 수준일 거라는 소리다.
맘몬의 탑에서 아스모데에 받은 살육의 권능, 바알의 초대로 먹었던 음식은 바알의 권능이고 루시퍼의 낙인, 멀록의 낙인에 메피스토의 낙인까지 받았다. 주종 계약에 따라 주인의 권능을 소량 받았다고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악마 서열 중 하위 그룹인 공작의 신분을 받은 것도 다 권능이 고만고만해서라는 거다.
즉 마음먹고 권능을 사용하기에 권능의 양이 아직 한 참 부족하다는 거다.
칠죄종 정도의 악마들이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권능을 모아왔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나는 단지 몇 년 동안 어거지로 선물 받듯이 받은 권능이라 그들의 권능에 빗대는 것조차 민망하다는 거다.
여기에 권능으로 헬하운드를 소환해 봤자 이건 돼지 목에 진주 거는 꼴이고 데쓰로그 소환해 봤자 전투력이 아예 상대되지 않고 고통의 시선도 이놈들에게 먹히게 하려면 권능의 소비가 많고 효율 면에서도 별로다.
그렇다고 여기서 신성력을 사용하면 진짜 엄청난 사고를 치는 것이다. 지옥 한가운데서 신성력을 사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루시퍼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언노운이 거품을 물고 절대 안 된다고 몇 번이나 경고를 울리는 것을 보면 더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것도 폭력에 미친 7고리에서? 이건 자살보다 더한 끔찍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악마를 상대하기에 로블록스 보다 글로디 던이 좋겠다고 생각했더니 언노운이 즉시 제지하는 것만 봐도 이곳에서는 천사의 능력은 아예 사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감당할 수 없는 짓거리란 거다. 내가 감당할 능력이 되면 권능을 사용하든 신성력을 사용하든 차원 에너지를 사용하든 상관없다. 감당이 안 되니까 말리는 거다.
폭력에 분노만 가증시킬 뿐이라는 소리다.
그래비티 포스나 휴먼 서벌라이징 포스, 반월륜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차원 에너지가 필요하고 차원 에너지 또한 한정된 양이다. 미국에서 간이 인간 사육장 하나를 먹어 치우긴 했는데 그 정도 차원 에너지로는 이것들과 정면 대결할 수 없다.
특히 디멘션 아크 입자포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고정된 표적에나 사용할 수 있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놈들에게 발사 시간도 한참 걸리는 기술은···.
와. 이거 이러고 보니 진짜 탱그리와 데엑마의 힘이 없다면 나는 죽도 밥도 아닌 게 된다.
왜 칠죄종이 나를 의구심에 가득한 눈빛으로 보는지 알 것 같다.
아니 생각해 보면 좆도 아닌 새끼가 겁도 없이 주둥이 털고 형성하나 부수고 돌아다니니까 뭐꼬? 이 새끼? 라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탱그리의 힘은 자연의 힘, 존재하는 진리의 힘이기 때문에 무한 에너지다. 공간을 분리해 내고 다른 공간을 재구성하고 압축하는 것은 에너지가 아닌 원소 자체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데엑마(데우스 엑스 마키나) 능력 그 하나 때문이다.
점점 쌓인다. 날개까지 있으니 위아래 사방팔방에서 날아든다. 이건 지옥의 초파리 수준인데. 잡아도 잡아도 끝도 없이 몰려든다.
얕보지 말라는 말이 이런 뜻이었나 보다.
그럼 잘 사용할 수 있는 힘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진짜 탱그리의 힘을 손에 넣지 않았다면 오르지 못할 나무를 오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개의 공간을 압축해서 플라즈마 상태로 만들었다.
렉토스카르는 여유가 흘러넘친다. 영감은 내가 공간을 압축 할 때부터 느꼈는지 내게서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나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최대한 놈들을 끌어모았다.
몸 위로 쏟아져 내리는 것들을 보면서 방어막을 쳤다. 이어링에 찍힌 숫자는 벌써 만 단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래서 칠죄종도 귀찮아서 안 온다고 했구나.
-팟
놈들을 뚫고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 순간 공간을 빼내 타고 이동했다.
다시 엄청난 폭음이 들리며 하늘과 지면이 동시에 뒤흔들렸다.
이어링에 찍힌 거대한 붉은 점 가운데가 싹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점들이 점점 밀고 들어와 순식간에 빈 곳을 메웠다.
"와, 진짜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다. 각 고리 크기는 원뿔을 뒤집어 놓은 것으로 표기된 것을 봤다. 즉 고리 아래로 내려가면 점점 좁아진다는 소리다.
1고리 크기가 평면으로 은하계 수백 개를 합친 크기다 보니 7고리에 와서도 그 넓이는 추정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놀라운 것은 이 넓은 곳에 악마들이 꽉꽉 들어차 있다는 것이 기막힐 노릇이라는 거다.
과거 선악 전쟁에서 은하계 몇 개를 소멸시켰다는 말이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와. 이건 뭐 수소 폭탄으로도 한계가 있다. 금방금방 자리를 메꾸니.
저 영감 아니 렉토스카르는 이 환경에서 수만 년을 버텨왔다고?
탱그리 능력이 없이 이곳에 왔다가는 뼈도 못 추릴 상황이다. 차원 에너지나 가진 권능을 다 쥐어 짜내도 사흘을 버틸 수 있을까 싶다.
여긴 지옥이다. 폭력이 지배하는 곳. 끝도 없이 싸운다. 본능이 싸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죽음의 공포 따위 없으니 그냥 돌격이다.
-번쩍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터트리는 것뿐이다.
영감은 아슬아슬하게 나와 거리를 유지하고 있고 심지어 영감 쪽으로 이동해 터트렸는데 영감은 내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 순간 피해 버렸다.
내가 움직이는 속도보다 약간 더 빠른 것 같다. 0.001냐 0.003초냐의 차이를 논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고통의 시선도 살짝 사용해 봤지만, 효율은 제로. 너무 빨라서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는데···.
데쓰로그는 소환하자마자 죽처럼 녹아내렸고 차마 헬하운드는 소환하지 못했다.
이건 제대로 고위 악마 한두 마리 추적하고 몰아붙이는 거지 이런 대규모 전투에 사용할 것이 못 된다.
바알이 건네준 책에서 배운 기술 외에 과거 내가 익혔던 모든 기술은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중국의 검법이나 장법? 개가 웃을 일이다. 이젠 씨알은커녕 흉내조차 낼 필요조차 없는 기술이고
웬만한 열기, 냉기 공격은 7고리 악마에게 먹히지도 않는다. 오직 수소폭발 정도는 돼야 잡는 거지. 그 아래 공격으로는···.
그래비티 포스를 사용하면 총알같이 움직이는 놈 몇 마리 정도 눌러 버리긴 하나. 햐~ 수천 마리 동시에 덤벼드는데 백마리 정도 누른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런 막강한 전투력을 지닌 떼거리를 광역 삭제시키는 것은 역시 탱그리의 힘 밖에는 달리 방법을 못 찼겠다.
아, 물론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은 당연히 다크 로드가 재가동될 때까지 시간 끌기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를 통해 절대다수와 싸우는 경험치라도 쌓기 위함이다.
1고리 림보 악마는 그냥 장난 수준이고 7고리 정도 되니 살짝 긴장감이 느껴지는 정도라 연습용으로는 딱 그만이긴 한데···.
저번에 자투스 행성에서 용을 쓴 게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자고로 실전 경험이 최고다.
한참 때려잡고 있는데 갑자기 영감이 불쑥 무리 속에서 튀어나왔다.
"언제까지 카르니지 크롤러스(Carnage Crawlers)와 놀 참인게야? 긴장해야 할걸? 아비스 애쉬즈(Abyss Ashes)가 몰려오고 있으니까!"
"뭐여? 카르니지? 애쉬즈? 뭔 소리야?"
"이런 맹한 놈을 봤나? 뒈지기 싫으며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소리지. 뭐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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