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고리
제 7고리
1고리 림보 따위의 악마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이어링 뜬 경고등은 진짜다.
7고리에는 칠죄종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이곳의 악마를 두려워해서 못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귀찮으므로 들어가지 않는 것뿐이지만.
나에는 모처럼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두 녀석이 들어 있는 공간을 압축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광활한 불모지를 닮은 환경이다. 지평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황무지인데 산소는 희박하고 중력도 지구의 4분의 1 수준이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것은 1고리 전체를 감싸고 있는 유황 냄새가 아예 없다는 것이다. 대신 흙 비린내가 진동했다. 텁텁한 모래 냄새다.
대기가 거의 없는 곳이긴 해도 바닥에는 사람 키 정도의 모래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어링을 통해 추측해 보건대 메피스토 이놈이 의도적으로 7고리 한가운데로 보낸 모양이다.
뭐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악마는 악마니까.
자신의 낙인을 받은 놈 정도 되니까 이 정도 환경은 문제없이 극복하리라는 자긍심이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놈은 의심이 엄청나게 강하다. 직접 보고 듣는 것조차 믿지 못해 스트레스 지수를 쌓는 놈이다 보니 직접 내 능력을 보고 싶다는 뜻도 포함되었을 수도 있다.
몸이 찌그러지는 고통이 놈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모양이다. 갓 눈뜬 강아지가 어미를 알아보고 애처롭게 보내는 눈빛을 보냈다.
그것 또한 거짓임을 안다. 치졸한 악마 새끼들. 이것들은 존재가치를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는 비열한 족속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을 권능으로 삼고 있는 녀석들. 이놈들에게 아량을 베풀어 봤자 뒤통수 맞는 것이 전부라는 것을 안다.
공간에 작용하는 엄청난 압력은 데엑마의 힘이다. 이따위 것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특히 상성이 이렇게나 좋지 않으면 내게 시비를 걸지 말았어야 했다.
바알도, 루시퍼도, 몰렉도, 메피스토도 특히 레이를 통해 미카엘도 보고 있을 것이다.
-쉬이이익
가장 먼저 도착한 놈은 의외의 악마이다.
늙은이의 모습에 외눈 안경, 지팡이를 짚고 있다. 그냥 인간형 외모에 19세기 영국에서 유행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70~80대의 모습인데 특이하게 새하얀 머리카락이 엉덩이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다. 참고로 성별은 남자다.
놈은 순간이동으로 온 것 같다.
좌우로 압축되어 가는 두 마리 악마를 흘깃 바라보더니 의외의 말을 했다.
"이곳은 자네들의 놀이터가 아니네."
의외로 차분하고 담담했으며 마치 나이 많은 어른이 아이를 너그럽게 타이르는듯한 느낌이었다.
난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 감정의 느낌은 분명 녀석의 권능으로 인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키 180 정도의 확실한 백인의 외모다. 눈빛은 인자하고 인상은 수수했다.
누가 악마라고 하겠는가?
놈의 몸에서 뿜어지는 권능은 엄청나다.
"이곳이 7고리 맞지? 폭력에 찌든 악마치고는 애처롭게 보이는군."
"너에게선 독특한 냄새가 나. 여러 명의 칠죄종 냄새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어. 묘한 놈이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날 방해할 생각이면 빨리 시작하는 게 좋을 거야."
"아니, 단지 호기심일세. 난 구경하는 것을 좋아해서 말이지. 다만 저 친구들은 아니니 조심하시게."
"아, 그런가? 이렇게 만난 것도 운인데 구경한다니 조언하나 하지. 곧 별의 힘이 소환될 텐데 너희들에게 치명적인 현상일 거고 이 어둠의 공간을 밝힐 태양이 두 개나 뜰 건데 조심해야 할 거야."
"별의 힘?"
"10초 뒷면 경험하게 될 거니. 아마 평생 보기 힘든 멋진 장면이 될 거라고 장담하지 살아남는다면 말이지."
-팟! 팟! 팟!
공간을 밀어내고 등장한 7고리 악마들. 언 듯 데쓰로그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데쓰로그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단 덩치로 보면 데쓰로그의 서너 배 수준이고 붉고 윤기 좔좔 흐르는 피부는 강철보다 더 단단해 보였다. 등에 매달린 박쥐 형태의 날개 또한 붉디붉다. 전형적인 악마의 흉상을 하고 있으며 귀밑까지 찢어진 입과 아래위로 솟아 나온 송곳니는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만들 정도였다.
아, 내가 진짜 오금이 저린다는 것은 아니고 표현상 그렇다는 거다. 이놈들 권능은 공포와 두려움이니까. 평범한 사람 기준으로 이놈들을 눈앞에서 보면 온몸이 얼어붙을 거고 죽음의 공포에 질려 자신도 모르게 똥오줌을 싸 갈길 테니까.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거로 봐서 어디서 싸우다 나를 느끼고 달려온 모양이다. 바람처럼 나타났지만, 저 노인 영감처럼 순간이동은 아니고 무지막지하게 빠르게 움직인 것뿐이다.
"모였나? 그럼 인사 정도는 해야겠지?"
두 녀석을 가둔 공간 안의 수소는 벌써 플라즈마 상태가 됐고 녀석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아! 마구 질렀겠지만 들리지 않았을 뿐이었나···. 권능은 원자 단위로 분해 되어 버렸다.
벌써 타락 교단의 정예 악마를 몇 마리째 소멸시켰는지 모른다.
이 두놈도 교차로 악마로 활동하는 알토란 같은 녀석들인데 말이다.
이렇게 아함리오 만티리우 이노메우타 안타리엘과 나스투룩은 완벽히 소멸했다.
나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한 어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7고리 악마는 문답 무용이다. 가장 먼저 도착한 일곱 마리는 무작정 달려들었다.
"아토믹!"
-번쩍
끝도 보이지 않는 지평선 덕분에 0.0001초의 찰나의 순간 수소폭발의 범위 밖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거대한 버섯구름은 언제봐도 뿌듯했다. 모든 것을 무로 돌려 버리는 참된 힘이다.
곧 높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흙먼지 폭풍이 세차게 몰려왔다.
대지가 흔들리고 세상이 뒤죽박죽되는 듯했다. 산소는 희박해도 이곳에는 양질의 수소가 가득했다. 이미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수소를 압축해 중수소와 삼중수소로 분리해 두었으니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대략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과거 인류가 보유한 가장 강한 수소폭탄 10발을 동시에 한 장소에서 터뜨리는 정도의 위력이다.
더욱이 수소폭탄의 경우 전술상 대부분 공중 폭발하지만 나는 거의 지면 가까이서 터뜨렸으니 파괴력의 범위는 줄어들었지만, 중심부의 충격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냥 눈앞에 초 극소량의 질량을 가진 태양 두 개가 탄생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앞에 악마 따위야 한 줌 재로 소멸할 뿐이다.
탱그리의 힘을 사용하면 할수록 늘어간다는 것이 느껴졌다. 저번 자투스 행성에서 마지막까지 짜내 핵융합했던 탓에 나도 섬뜩한 기분이 들 정도로 위력이 증가해 있었다.
별이 탄생할 때 즉 수소폭발이 일어날 때 각종 뿜어지는 열선 또한 악마에게 치명적이다. 즉 권능을 소멸시켜 버린다.
이는 지성체건 생물체건 가리지 않고 싹 기화 시켜 버리기 때문에 폭심지 내에 있다면 칠죄종도 타격을 받을 정도다.
루시퍼가 놀라 직접 뛰쳐나와 탱그리의 마법서를 회수해간 이유이기도 하다.
"워워. 충고해 주지 않았다면 이곳이 내 무덤이 될 뻔했지 않은가?"
이 영감 센스가 좋다. 그 짧은 순간에 내가 이동하는 것을 느끼고 따라온 거다.
"영감, 남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악취미가 있는 모양이군."
"음, 나도 살아야 하지 않겠나?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한 것뿐일세."
"내가 두렵지 않아? 당장 널 소멸 시킬수도 있어."
"난 말만 앞세우는 놈은 신용하지 않지. 그런 생각이었다면 나타난 순간, 네 스킬로 날 가뒀을 테니까. 넌 조금 물러터진 놈이야.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놈이지."
"넘겨짚지 마. 호기심 때문에 살아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
"나도 마찬가지야. 호기심이지. 과연 어떤 미친놈이 이곳에 들어왔나 보려고. 방금 소멸시킨 녀석들도 평범한 놈들은 아닌 것 같은데?"
"어, 타락 교단 소속의 상급 악마 놈들이지. 아마 계급은 공작 정도 될걸?"
"그럼 그대는?"
"상대 이름을 묻기 전에 먼저 자신을 밝히는 것이 도리 아닐까?"
"자네 참으로 재미있는 친구로군. 근데 묘해, 정말 묘하게 뭔가 달라. 참, 난 렉토스카르 (Rekthoskar)라고 하네. 참고로 이곳에서 내 이름을 모르는 놈은 거의 없을 거야."
"렉토스카르···."
언노운이 이어링에 렉토스카르의 정보를 띄워 주었다.
불굴의 챔피언, 7고리의 제왕, 수만 년 동안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괴물, 분노와 공포의 대악마 등 그를 지칭하는 단어가 수십 가지도 넘었다.
이 영감이? 하긴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유명 인사였네?"
"네 차례잖아? 내가 내 입으로 진명을 이야기한 경우는 잘 없어."
"살고 싶은 거겠지···."
"조금 전 네 기술이라면 충분히 회피할 수 있어. 그거 하려면 어느 정도 준비 시간이 필요하지?"
한차례의 폭풍이 가라앉았다.
영감 주위의 공간을 잡아 놓았다.
이제 꼼짝하지 못할 거다.
메피스토는 무슨 생각으로 날 7고리에 보냈을까? 단지 유흥? 아니면 내 능력을 직접 검증해 보기 위해서?
이어링에 또다시 악마가 잡혔다. 그 엄청난 폭발을 못 느꼈을 리도 없고 셀 수도 없는 악마들이 이곳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이봐, 그 기술 좋긴 한데 너무 관심을 크게 끌어. 아직 네 진명을 말하지도 않았고···."
순간 깜짝 놀랐다. 분명 공간 안에 잡아 두고 있는데 어떻게 음성이 들리지?
【공간 안에 잡은 것은 허상입니다】
'이놈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어.'
분명 옆에서 이야기하는 걸 보고 넉넉히 공간을 감쌌는데 그새 허상을 만들고 빠졌다고?
"좋은 스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네."
"후후, 이 고리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보다 뛰어난 재주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진명을 대!"
이놈 수소폭탄의 위력을 보고서도 놀라지 않는다는 것은 그 대비책을 마련해 두고 있다는 이야기다.
'뭐 볼일은 다 끝났으니까.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겠지.'
다크 로드를 열었다.
'뭐지? 왜 안 열리는 거지?'
【원인을 분석 중입니다】
"왜?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고 있나? 올 때 보니 다크 로드 사용하던 데? 진명은?"
눈치 빠른 영감탱이.
"호기심이라고 했잖아. 신경 쓰지 않지."
"나야 상관없지만 쟤네들은 아닌 것 같아. 싸움에선 양보 없이 제대로 굶주린 녀석들이거든."
몰려오는 놈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메피스토가 준 검은 구슬 모양의 이동석이 다크 로드 구조적 형성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회복될 겁니다】
'와, 이 새끼 봐라? 어느 정도란 얼마나 걸린다는 거야?'
【이곳 시간으로 최소 하루 정도는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참, 악마란 새끼들은 진짜 찡한 놈들 뿐이네.'
분명 내가 가진 힘에 대한 궁금증 때문일 거다. 행성 파괴자란 칭호를 어떻게 받았는지 과연 그만한 능력이 되는지 궁금했을 법도 하다.
왜냐하면 실제 중요한 정보는 언노운이 전부 커트시켰으니 주종의 낙인을 찍어도 놈이 이해할만한 정보는 없었을 테니까.
그니까 타임라인이 걸린 아이템을 던져 주고 그 시간 안에 살아 돌아오면 굿인 거고 뒈진다 해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오리발 내밀겠지.
아! 아니면 루시퍼 때문이라도 급박한 순간이라고 판단하면 구해 줄지도 모르고.
분명한 것은 7고리에 던져 넣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뻔한 이야기라는 거다.
찍소리 못하고 소멸한 안타리엘과 나스투룩도 공작 신분을 가진 고위 악마이다.
그걸 간단히 소멸시키는 것을 보고도 알짱거리는 것을 보면 믿는 구석이 있다는 소리겠지.
"내 앞에서 알짱거리는 것을 보니 나와 한 번 진하게 싸워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잖아. 너도 똑같은 놈이지. 안 그래?"
"이곳의 악마는 다 똑같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일걸세. 아직 진명을 말하지 않았어."
"그래, 그렇다면야. 난 들어오는 악마 거부해 본 적이 없거든. 근데 어쩌면 좋냐. 제들이 방해 심하게 할 건데?"
"둘이 힘을 합치면 싸울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지 않을까 싶군. 진명을 말해!"
"뭐, 그러든지. 이제부터 조심해야 할 거야. 어쩌다 폭발에 휘말려도 날 원망하지 말고."
"내 앞가림은 내가 할 테니 걱정은 자네나 하게나. 나와 싸우기 전에 치명상을 입고 헐떡이지만 않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고. 진명은?"
"내가 할 소리. 반병신 된 녀석과의 싸움은 김빠지는 일이니까. 씨발! 그만 말해! 아라곤!"
말은 그렇게 했는데 이어링에 찍힌 숫자는 엄청나다. 이거 얼렁뚱땅 넘어가기에는 소름 끼치게 많은 숫자다.
"아라곤? 이게 네 진명?"
엄청난 위력의 수소폭발이 있었으니 7고리 관심은 다 끈 것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지금 다크 로드를 사용할 수 없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싸워야 한다.
녀석은 내 감정을 교묘하게 건드려 놓았다. 즉 도망가면 개 쪽팔리게 만들어 놨다는 소리다.
파리 교단에도 수치고 낙인을 찍은 주인들(?) 물론 좆같은 표현이지만, 그네들에게도 좋지 않을 거란 소리다. 이곳은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상이고 작은 틈만 보이면 무조건 파고든다.
그런다고 힘을 다 끄집어내면 루시퍼의 의구심을 확신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다가는 진짜 루시퍼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놈이 작정하고 움직이면 지금의 나 정도는 간단히 소멸 시킬수 있으니까.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