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의 비밀 1
연옥의 비밀 1
18세 청년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비대해진 몸집을 가진 어느 백인의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침대에 앉아 있다. 그것도 온종일. 타임을 되감기 하는데도 변함이 없었다.
그의 외모도 그대로였다. 즉 남자가 있는 곳은 연옥이다.
화이트 노이즈 이후 다시 그 중년 남성의 삶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먹고 또 먹는다. 게으름에 운동조차 하지 않는다.
중년 남성의 삶을 거꾸로 따라가다 보니 금주법이 시행되던 90년대 초창기 미국이다.
중년 남성은 토마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였다.
토마스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며 외동이었다.
그는 부모의 사람을 듬뿍 받고 자랐는데 먹고 싶다는 것은 무엇이든 먹게 해 주었고 가지고 싶다는 것은 무엇이든 구해 주었다.
그것은 아이의 폭식을 가져왔고 먹기 위해 사는 것처럼 토마스는 인생을 그렇게 허비했다.
학업도, 사랑도 부모로서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외톨이가 되어 병원 침대 위에서 사망했다.
행복했던 아이 시절을 떠나 다시 화이트 노이즈
이번에는 아시아인 여성이다. 초라한 모습의 60대 후반의 노인이다.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 그대로 몇 번 움직이지도 않는다.
이곳 또한 연옥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여인의 삶을 되감아 갔다.
중국의 한 도시 그녀의 이름은 메이였다.
메이의 삶 또한 게으른 자의 하루하루였다.
계속 되감기를 했다.
중세를 넘어 그리스의 한 부호 귀족의 모습인 엑타리우스에 이르기까지.
공통점을 나열해 보자.
윤회한다는 것.
윤회할 때마다 가이아에게 탑승하지 못하고 연옥으로 온다는 것.
그들의 윤회전생은 매우 게으른 삶을 살았다는 것.
연옥에서 윤회 될 때의 중독된 게으름이 계속 유전되듯이 이 영혼의 삶을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과 연옥에서의 삶을 번갈아 가며 23명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왜 연옥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개성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왜 계속된 게으름을 단 한 번도 고치지 못하는 것일까?
처음 만났던 제이미의 영혼에도 게으름이 들어차 있었다.
영혼 자체가 왜 게으름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윤회한 사람들 전부가 모난 것 없이 평범한 사람이다.
즉 선한 사람이라는 소리다. 단지 게으름에 빠져 삶을 낭비한 것이 죄라면 죄일까.
그들은 가이아에게 탑승하지 못하고 지옥으로도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이 연옥으로 되돌아온다.
그럼 가이아에게 탑승하지 않았는데 윤회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연옥과 현실의 틈 사이에 화이트 노이즈가 있는데 아마 이 부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노이즈가 사라지면 그 사람의 죽음이 보이는 것으로 삶이 되감기기 시작하니까.
지금 눈앞 제이미의 윤회전생은 한결같다. 인종도 다양하고 세계 곳곳에서 윤회했지만 한결같이 게으름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스 시대 엑타리우스에서 한 번 변혁이 있을까 했지만, 그는 끝내 포기하고 게으름에 잠식되었다.
인간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은 다 피했다. 중세 흑사병도 세계 1, 2차 대전도 많은 전쟁도 희한하게 다 피해 가며 그들이 게으른 생활을 편하게 하도록 환경이 이미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이건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외부에서 무언가 개입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엇, 저건···.'
엑타리우스의 삶을 보다가 무언가 스쳐 가는 영상 속에 잡혀서는 안 되는 것이 잡혔다.
사람의 외형이지만 천사라는 것은 확실히 알수 있었다. 그의 몸에서 성스럽게 뿜어지는 것은 신성력이었기 때문이다.
젊은 남자의 외모를 한 천사는 엑타리우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그에게 그의 삶에 대해 충고했다.
나는 빨리 되감기 하여 지난 것을 다시 되돌렸다.
확실히 천사의 조언을 받아들인 그는 자기 가족을 돌아보고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한 여인이 그의 삶에 끼어든다.
그가 방문한 사창가의 한 창녀다.
그 창녀는 엑타리우스를 유혹했고 그를 다시 게으름에 빠트렸다.
시간을 빨리 감다 보니 놓친 부분이었던 거다.
나는 그 창녀가 평범한 사람이 아닌 릴림이라는 것도 바로 알아챘다.
결국 이들의 윤회에 릴림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계속 다른 사람의 윤회를 보고 나니 간혹 천사와 릴림 간에 벌어지는 숨바꼭질도 볼 수 있었다.
알기론 천사가 인간의 활동에 개입하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일이다. 이건 천사 관점에서 문젯거리가 될 소지가 분명하다. 그 천사가 어떤 사유로 이 영혼에 간섭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인간의 역사는 점점 퇴화하여 간다. 철기도 다루지 못하는 석기 시대를 지나 점점 더 나아가더니 갑자기 신호가 끊어졌다.
그만두려고 하다가 마지막으로 강하게 시간을 되감아 보았다.
그때 화면이 번쩍이더니 눈부신 광채가 쏟아져 들어왔다.
너무 밝아서 주변 구조물 분별이 안 될 정도였다.
그 밝음이 신성력임을 바로 알았다.
갑자기 환하게 빛이 나는 것이 점점 사그라지더니 검은 화면만 남았다.
진짜 끝인가 싶었다.
'들어와.'
시간은 계속 감기고 있었는데 어렴풋이 이 소리가 스쳐 지나간 것 같기도 했다.
다시 뒤로 시간을 돌렸지만, 그 소리는 더 들리지는 않았다.
정상적으로 시간을 재생시키니 조금 전 밝은 신성력이 환하게 보였다. 그리고 한 명의 원시인으로 가족 구성원의 일원이 된 남성이 보인다.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이 남자는 태연히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오직 혼자만이 멍하니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것이다.
타임 슬레이어를 끝냈다.
제이미의 영혼. 즉 이 HDD는 수많은 기록을 써왔고 또 포맷하고 또 쓰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한가지 공통점이 계속 따라붙는다.
전혀 다른 기록을 썼음에도 왜 게으름이 계속 따라붙는 것인가? 왜 이 영혼을 가진 인간들은 게으름에 지배당하며 살 수밖에 없는가? 자기 삶이 아닌 영혼이 이끄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인가?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게 말이 안 되는 것이 윤회가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고 가능하더라고 서로 다른 인격, 다른 성별, 모든 것이 달라야 정상이다.
하지만 이 영혼의 윤회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어리석은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다른 방으로 가 흑인 여자아이에게 타임 슬레이어를 걸었다.
놀랍게도 모두 같다. 이 흑인 여자아이를 품은 영혼도 제이미와 같이 게으름에 찌든 삶을 살았다.
이건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일이다.
거실의 아버지 역할의 사내. 이 사내도 마찬가지 부엌의 아내도 마찬가지.
모두 다 말도 안 되는 한결같은 윤회전생이다.
이들의 영혼은 모두 게으름에 중독되었고 전생도 그 전생도 계속 게으름 속에 살았다.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말이다.
충격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세상에 이런 삶을 살아야 할 수밖에 없는 영혼도 있다고 하는 생각에 솔직히 충격이었다.
악인이 되든 선인이 되든 부자가 되든 거지가 되든 그것이 어떤 운명에 의해 결정 되든가 아니면 노력으로 타개하던가 어떤 변화가 있어야 정상이지 않은가?
이들은 삶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똑같다. 복사해서 붙여넣기 한 삶이란 것이다.
이런 영혼을 왜 구제하지 않는 것인지 알수가 없다.
가련한 영혼이다. 언제나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강제된 영혼이라는 것이다.
'왜 이런 삶을 반복해서 살아야 하는 거지?'
【연옥에 관한 사항은 대부분 오픈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내 행동하기에 달려있다···.'
지금 내 능력이면 연옥을 뒤엎고도 남는다. 관리자도 보이지 않는데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무슨 상관인가?
당장 여기에 수소폭탄을 터뜨린다면 누가 막을 건가?
영혼은 물리적 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고로 영혼은 수소 폭발에 의해 소멸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대신 도시에 쌓인 권능은 깨끗이 타버리겠지?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패턴이 바뀌겠지?
제이미 앞에 섰다. 어떤 원리로 윤회를 거듭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상태로 다음 회차에 태어나도 똑같은 삶을 살겠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고 세상은 이미 피폐해져 다시 태어날 수도 없다. 태어난다면 이모탈 시티가 전부인데.
지금 가이아는 오염되었다.
가이아에서 환생 루트를 밟은 영혼은 모두 에테르 결정이 되어 엘리시움 광석이 되어 버린다.
엘리시움 광석이 에테르를 품고 계속 자라는 이유는 인간 영혼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정상적으로 어미의 배 속에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과정이지만 그것이 사라짐으로써 가이아가 뱉어내는 영혼은 낙상하여 에테르 결정이 되어 버린다.
그걸 어미의 자궁 대신 품는 것이 엘리시움 광석이고 우리는 그것을 원료로 사용하여 동력을 만들어 생활하고 있다.
하물며 내 ITB속에 들어 있는 원료로 움직이는 모든 제품은 에테르 배터리를 주원료로 한다.
에테르는 인간의 영혼이다. 지금 우리는 멀쩡한 인간 영혼을 태워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과거 생물이 만들어 놓은 화석 연료를 사용했듯이 말이다.
지금 세상이 이렇다는 것을···.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다시 원래대로 돌리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 연결된 많은 인연과 사람들을 깡그리 지워 버려야 한다.
나는 과연 그 짓을 할 수 있을까?
아! 짜증이 나는 생각은 스트레스 지수를 높인다.
나는 제이미의 영혼에 간섭하려 한다. 도시의 권능은 신성력으로 간단히 밀어낼 수 있지만 이 영혼 자체에 고정된 게으름의 감정은 이 영혼 자체이기 때문에 잘못 건드리면 영혼 자체가 소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강압적인 윤회를 반복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소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제이미의 영혼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중지하십시오. 영혼이 소멸할 확률이 98% 이상입니다】
손을 뗐다.
'어떻게 방법이 없나? 천사는 신성력으로 이 영혼을 구제하려 하던데?'
【방법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저장된 영상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시간을 엄청나게 빨리 감았지만, 그 그리스인인 엑타리우스에 접근한 천사의 장면은 원래의 시간대로 재생했기 때문에 언노운이 분석하면 뭔가 건질 수 있을 것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그 거대한 신성력의 빛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그 신성력이 사라지니 검은 어둠밖에 남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천사는 엑타리우스 본인이 스스로 자각하여 깨우치도록 자극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신성력만으로는 엑타리우스의 영혼을 정화할 수 없습니다】
'왜지?'
【제 정보를 모두 취합한 결과···】
-삐~ 삐~ 삐~
벨 소리?
'뭐지?'
거실 밖으로 나갔다. 이 날카로운 소음은 분명 벨 소리다.
나는 현관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어링에 표시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즉 악마도 그 외 어떤 존재도 없다는 것이다.
따로 보지 않아도 현관문 밖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약간의 향수 냄새. 그리고 인간 특유의 암컷 냄새다.
-삐, 삐, 삐
벨 소리는 계속 울린다. 나는 이 집의 주인은 아니지만, 누군가 이 집을 찾아왔다면 뻔한 일일 거다.
"문 열려 있어. 그냥 들어와."
나는 일단 라틴어로 말했다.
"그럼 들어갈게요."
깜짝 놀랐다. 대답은 한국어였기 때문이다.
순간 살기가 솟아올랐다.
-삐이꺽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평범한 여성이다. 사무직 복장에 올림머리 동그란 안경을 쓴 키 165 정도의 아담한 체구를 가진 동양인 여성이다.
중국계는 아닌 거 같고 일본계? 설마 한국계? 한국어 설마?
그리고 그녀의 가슴에 붙은 패찰을 보았다.
'이 소 라'
"너 한국인이야?"
"네, 맞습니다. 이소라예요."
그녀는 가슴의 패찰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넌 중독 되지 않은 자군."
"그렇죠. 뭐. 여기 CZ-24 지역 관리업무를 맞고 있는 이차장이예요."
"차장? 악마는 아닌 것 같고 평범한 영혼도 아니고 뭐냐 넌?"
"그건 제 쪽에서 먼저 말해야 하는 질문이 아닐까요?"
- 작가의말
내일 저녁 약속이 있습니다.
술 약속이라.
만약 일찍 끝나면 늦게라도 글을 올리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자리가 길어지면 힘들수도 있겠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이고 주말에 시간이 안되어서
어쩔 수 없이 평일에 약속을 잡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부탁드리며
제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에게 감사와 함께
오늘도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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