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헤나로
게헤나로
이곳의 시간은 게헤나의 시간에 비하면 두 시간도 안 되는 시간이고 천사들이 움직이고 있어도 거의 백 년 정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 의회의 결정이 번복될 수도 있고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내가 찾아낸 것은 재앙급이 아닌 멸살급 데빌이다.
중국에서는 탈혼수라 부르던 놈이고 네크로폴리탄도 이놈을 직접 상대한 적이 있다.
멸살급 정도라고 하면 1고리에서 충분히 먹히는 전투력을 가진 데빌이긴 한데 치명적인 것은 이들의 신체가 생명체가 변화한 것이라 생명체로서의 단점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공포의 존재가 되었던 것은 마인의 공격 따위가 먹힐 정도로 허접한 존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저걸 잡겠다는 거야?"
"왜? 두려워? 안 될 건 없지. 처음에 불주사를 맞아 두는 것이 후일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래도 저 건 좀···."
"두 여성분은 어때?"
대지를 걷고 있는 저 거대한 것을 바라보는 두 여성은 말이 없다.
아무리 그녀들이라고 해도 저 기괴한 것의 외형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놈은 아프리카 열사의 대지 위에 끝도 없는 차가움과 악몽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대단히 크고 무시무시한데 인간형 육체인데 대략 50m에 이르는 거대한 몸집을 자랑했다.
머리에 뒤집어쓴 투구형 가면은 찢어져 눈, 코, 입이 드러나 있었고, 악마의 갈망과 비참한 울음소리로 치솟은 입술은 다크네스의 심연을 상징하듯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참혹한 악마의 모습은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굉장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놈의 외모는 타고난 악마의 재능과 어둠의 힘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놈의 체형은 힘과 육체의 상징이며, 근육은 탄탄하고 강력하게 발달해있다. 놈의 피부는 어둠의 그림자로 뒤덮여 있어 빛을 흡수하는 듯한 차가움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두려운 것은 부서진 가면 사이로 언 듯 보이는 그림자와 같은 얼굴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비참하게 웃고 있으며, 불꽃처럼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는 공포와 악마의 갈망을 담고 있었다.
몸체는 살이 달라붙은 갑옷과 울퉁불퉁한 피부는 찢어지고 갈라진 곳이 많다. 놈의 손은 짐승 발톱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강화되어 있으며 적들을 갈라 버리는 데 최적화된 무기로 사용될 것이다.
신기한 것이 지금 대낮이지만 놈의 주변은 그림자만큼 어둡다는 것이다. 데빌의 몸에서는 빛을 흡수하는 어둠의 광휘가 돋보이며, 놈의 주변은 끊임없이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형 외모를 가진 데빌은 처음이라 그것이 더더욱 공포를 자극했다. 두 여전사도 저 괴물에 압도되어 있다.
누구라도 저놈을 처음 대하면 소름이 끼치고 초자연적인 공포감을 일깨우게 된다. 놈의 외형은 죽음과 파멸의 상징이며 세상에 대한 절망과 악의 존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진정한 데빌이다.
"어이, 두 사람 정신 차리지? 좋은 연습 상대인데 시작부터 주눅들 필요는 없잖아. 내가 자신 있게 말하지만 충분해. 자!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쏟아내."
"저런 건 본적도 없어요."
"그럴 테지. 아프리카에서 인간의 씨를 말린 놈이거든. 저놈을 마주하고 살아난 자가 없으니 당연히 처음 보는 거가 맞는 거지. 너희는 그동안 운이 좋았을 뿐이야. 하지만 언젠가 저놈이 케이프타운으로 들어오는 날이 있을 거야."
두 여성은 좀처럼 파이팅을 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악마는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공포와도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가진 무기는 지옥의 악마 데이몬이 사용하던 무기야. 신체 비율에 맞게 축소되긴 했어도 그 위력은 변함이 없어. 참고로 데이몬은 1품에 속하는 진정한 악마야. 그 무기를 잘 만 사용하면 저 녀석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자신감을 가져. 그럼 다 해결될 거야. 너흰 이미 저 녀석과 싸울 기술을 가지고 있어. 지금 당장 할 일은 두려움을 지워야 한다는 것뿐이야. 그럼 시작하자."
나는 녀석의 위에서 공간을 해제했다.
우리 네 사람은 곧장 데빌 위로 낙하했다.
죠반니는 두 여전사를 도와 싸울 준비를 했다.
"넌 아니지. 빠져."
죠반니를 밀어내고 두 여성은 멸살급 데빌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결국 이놈도 외모는 거창해도 전투력은 중국 탈혼수 보다 약간 앞서는 정도다.
즉 두 여성이 솔직히 가지고 놀아야 한다는 표현이 나와야 정상이다.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이번 싸움의 가장 큰 과제다.
죠반니 옆으로 날아내렸다.
곧 전투는 벌어졌다.
"첫 전투를 너무 과하게 잡은 건 아니지?"
"이어링에 찍힌 전투력 차이는 폼이냐?"
"아, 이거? 굉장히 가변적이던데? 전투력이 너무 들쑥날쑥해."
"하긴 감정에 의해 힘이 증폭되는 부류도 있으니까. 너희 네필림도 그렇고."
"허, 넌 네필림이 아닌 것처럼 말하네."
"맞아. 난 네필림이 아니지."
"그럼 뭔데?"
"글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얼씨구. 오. 제네 생각보다 잘하잖아."
"아직이지. 제힘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면 두려움을 완벽히 떨쳐 버릴 수 있을 거야. 그때 제대로 된 힘을 구경하겠지."
방패와 검을 든 에이미리아는 서서히 고요한 힘과 냉철함을 내비치며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상대에 맞서 가족을 지키려는 의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보는 즉시 상대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데이몬의 검은 흠 없이 빛나는 강철로 만들어져 있었고, 휘둘러지는 동작에 따라 날카롭게 빛을 반사했다.
에이미리아의 눈은 푸른빛의 불꽃으로 타오르며, 신성한 힘과 결단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녀는 몸에 식재된 엔젤 시드로부터 싸이킥 파워를 효과적으로 끌어내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50m짜리 거대 괴물과도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는 민첩과 완력과 지혜를 주었다.
앤젤라는 거리를 유지하며 정확하고 순발력 있는 움직임으로 데빌에게 화살을 날렸다.
그녀의 화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나아가 어둠을 가르고 신묘한 명중률로 목표물을 맞히었다. 그녀는 신성력을 잘 활용하며 정밀한 사격을 펼치고 있었다. 강력한 싸이킥 파워는 멸살급 데빌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강력한 일격을 끼쳤다.
근접전의 에이미리아보다 거리를 두고 싸우는 앤젤라가 먼저 두려움을 떨쳐냈다. 그녀의 몸은 빠른 움직임과 유연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녀의 화려한 공격은 데빌을 위협하는 침범할 수 없는 힘이 되었다.
그에 자극받았는지 에이미리아는 데빌의 발톱을 방패로 방어하며 맹렬한 반격을 펼치고 있었다. 그녀는 데빌의 공격을 차단하고 데빌의 움직임보다 더 빠르게 검을 휘둘러 데빌의 몸을 찔러 나갔다. 그녀의 강철 같은 의지와 뛰어난 전투 기술은 데빌의 상처를 늘려 갔고 신성력은 그녀의 검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상하네. 저놈들 상처 회복이 상당히 빠른데 왜 치유하지 못하는 거지?"
"잘 봤네. 심장에 심은 엔젤 시드는 천사의 힘. 즉 디바인 파워라고! 신성력에 상처받으면 회복이 상당히 더뎌. 저런 하급 악마는 아예 상처 치료도 안되지."
"저게 하급 악마야?"
"아, 미안 내가 말을 잘못했네. 실제는 하급도 안 돼."
"어휴, 덩치 차이가 저런데도···. 어떻게 풀 스윙을 저 조그만 방패로 받아 내는 거지 물리 법칙을 완벽히 무시하는 거라고. 아! 생각났다. 언젠가 우리 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말하길 어둠을 걷는 죽음의 거인을 봤다고 하더라. 뭐라고 불렀더라? 워킹 데드라고 하는 것 같았어."
전투는 격앙되어 갔다. 데빌은 두 전사의 공격에 분노와 분통을 느끼며 광기 어린 공격을 퍼붓는다.
전장은 두 여전사의 치열함과 데빌이 뿜어내는 절망의 기운으로 가득 차 갔다. 두 전사를 한 몸으로 맞서 결전을 이어가는 데빌은 점차 쇠퇴하여 약화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자신의 목표에 대한 확실한 신념과 용맹함으로 데빌을 극복하고 종족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갑옷처럼 몸에 둘렀다.
물론 실제는 그녀들이 사용하는 신성력에 의해 데빌이 직접 타격을 받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래서 내가 처음에 가지고 놀아야 정상이라고 말했던 거다.
"곧 끝날 것 같군."
에이미리아는 정확히 적의 급소를 찾아내 공격했다. 데빌의 공격을 피하고, 강력한 일격으로 데빌의 취약한 부분을 찔렀다. 그녀가 가진 데이몬의 검은 데빌의 갑옷을 훼손시키며 놈을 고통에 빠뜨렸고, 신성력이 검에 흐르는 빛을 강화했다.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이 왔음을 감지하고 데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기 위해 힘을 모았다.
앤젤라는 화살을 쏘아 올리고는 빠르게 움직여 데빌을 공격을 피했다. 그녀의 화살은 데빌을 몸을 관통하며 어둠의 힘을 불태우고 있었다. 신성한 힘을 집중하여 화살에 공격력을 부여하고, 데빌에게 강력한 일격을 끼칠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싸이킥 파워로 데빌을 밀쳐냈고 앤젤라가 쏜 화살은 데빌의 심장을 관통했다.
데빌의 분노와 적개심은 두 전사의 힘과 결의에 무너져 가고 있었다.
나는 전에 보이지 않던 것을 이제는 확실히 볼 수 있었다.
멸살급 데빌도 감정이 있고 강한 상대를 맞이해 전의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마지막 발악하는군. 입 근처에서 고에너지가 집중되고 있어."
"도대체 그런 것을 어떻게 알아?"
"집중해 그럼 느낄 수 있어. 공기의 흐름과 파동을 말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공기라면 바람은 느낄 수 있어."
"닥치고 구경이나 해."
파멸급 데빌의 입에서 지옥에서 건져 올린 고통의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두 여전사의 움직임을 데빌은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녀들의 움직임은 데빌의 반사 신경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장 50m의 거인을 상대하는 여전사의 키는 170cm에 불과했다. 쏘아나간 파괴 광선은 닿는 것을 모두 재로 만들어 버렸지만, 신성력이 가득 담긴 화살 하나가 자기 목을 뚫는 순간 데이몬의 검은 기다란 검기를 일으켰고 휘둘러진 채찍의 움직임과 같은 거대한 검기는 단숨에 워킹 데드의 목을 잘라 버렸다.
"게임 오버."
원래 더 빨리 끝날 수 있었지만 그녀들이 두려움을 떨쳐내고 자신감을 찾는 것에 시간이 걸렸었다.
"가자."
죠반니에 그녀들의 무용을 보여줌으로써 이제 자신이 없더라고 충분히 아프리카를 지킬 수 있다는 안도감을 심어 주었다.
죠반니는 전투형이 아니지만, 그의 능력을 정말 특별하다.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할 수련의 과정을 극도로 줄여 버릴 수 있다.
자신을 포함한 여섯 네필림은 세 번의 각성을 했다고 하니 그 전투력 또한 2품 악마 수준에 다다라 있었다.
이제 이들이 자신의 본신을 찾았을 때는 일품 악마와도 충분히 겨룰 수 있을 것이다.
아쉽지만 두 여전사와 빠른 작별을 고했다.
이제 이 둘이 죠반니 대신 케이프타운을 지킬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인 워킹 데드를 잡았으니 이제 이들을 두려움에 빠트릴 존재는 없을 것이다.
죠반니도 그 사실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교황청으로 돌아왔다.
그는 감사의 마음으로 나에게 증폭화 기술을 사용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인간의 몸도 아니고 능력 자체가 이미 죠반니의 기술 따위는 먹히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하루라도 빨리 연옥으로 가는 수수께끼를 풀고 공포의 가면을 얻어야 한다.
자드키엘과 마지막으로 의견을 나눈 후 악마 집회소로 돌아왔다.
교차로 악마의 특성 때문인지 이곳은 올 때마다 느껴지는 거지만 솔직히 내 집처럼 편안하다.
집회소 옆 매표소에 들러서 내 순번을 확인했다.
교차로 악마면 일정 기간 내 반드시 일해야 하며 기간 내에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신분 박탈이다. 그러면 다크 로드를 이용할 수 없으니 게헤나로 올 방법이 없다.
물론 게헤나를 벗어나지 않으면 상관없지만 그럴 수 없으니 다크 로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다.
"에? 한 달? 아. 벌써 그렇게 됐나?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오티우르스에서 성과급이 장난 아닐 텐데? 그때 내가 수거한 영혼이 한둘이 아니라고 말 하더구먼! 교차로 악마 중에서 역대급이라고 했잖아. 여유 시간도 넉넉히 준다고 들었는데? 업무 처리 왜 이리 이거?"
"그렇습니까? 잠깐 시간 주시겠습니까? 확인해 보겠습니다."
"시간 없어. 빨리 확인해 봐."
매표소 직원은 서류 한 장을 들고 부리나케 나가 버렸다.
나 때문에 뒤쪽에서 기다리는 악마들은 황당해하는 얼굴로 수군거렸다.
"어이, 그런 일은 조용할 때 하라고. 대기자들 안 보여?"
"피곤하게 시리. 누가 또 시비야?"
뒤돌아보니 해마 비스름한 것이 다섯 개 나 달린 머리를 가진 악마였다.
"아니꼬우면 내 앞에 서던가?"
이 다섯 대가리 새끼가 주변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갑자기 나를 향했다.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이었냐?"
"여기 너 말고 누구 있냐?"
"지금 내게 시비를 거는 거 맞지?"
"뭐라는 거냐? 이 닭대가리 악마 새끼는? 대가리 박살 내기 전에 아가리 처닫아라."
갑자기 이 해마 새끼의 회색빛 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니 핏빛으로 변했다.
조용한 곳에서 갑자기 권능이 폭발하자 주변의 악마가 모두 우리를 주시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묘하게 생긴 녀석이 뱀처럼 기어 왔다. 해마 녀석의 다리를 타고 기어오르더니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피같이 붉게 달아올랐던 녀석의 피부가 순식간에 원래 회색빛으로 되돌아왔다.
"몰라뵈었습니다. 제가 오랜만에 오는 터라 미쳐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시비를 걸었다면 노여움을 푸시기를 바랍니다."
"뭘? 못 알아봐."
"소문의 아라곤 님이 아니십니까?"
"소문? 어떤 소문인데?"
"지혜 교단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타락 교단의 악마 여럿을 소멸시킨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야, 네가 뭔데 내 진명을 들먹이고 그래?"
"에? 아라곤이 진명은 아니잖습니까? 진짜 진명은 알고는 있지만 감히 누가 함부로 입을 놀리겠습니까?"
"그럼 너 진명은 뭐야? 어디 소속이지?"
갑자기 해마 새끼의 감정이 출렁거린다. 난처함이다.
"어? 내 말을 씹네? 지금 시비 터는 거라고 알면 되는 거지?"
난처함의 감정이 증폭한다.
"야, 내가 진짜 메피스토 봐서 참으려고 했는데···. 시비 거는 놈을 그냥 무시하고 가면 체면이 말이 아니지."
이곳은 교차로 악마의 집회소고 교차로 악마끼리 집회소 안에서의 충돌은 엄격히 금하고 있다.
문제를 일으키면 자격 박탈은 물론 죄질에 따라 감옥에 수감 되거나 최대 소멸형까지 당할 수 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