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게이트(17)
격벽 안에는 제단 위에는
이마의 혹 같은 뿔이 사라진
평범한 소녀라기보다는
차가운 미소녀에 가까운
소녀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허공에 누구인가 붙잡은 듯한
팔도 스르르 내려온다.
소녀주위로 시퍼렇다 못해 하얀
전류줄기가 소녀를 통과할수록 줄어든다.
마치 소녀가 전류를 흡수하는 것처럼
마지막 겹벽은
두 번째 겹벽의 폭팔과 함께
크리스털 마법진과
보석들은 제 기능을 잃고
나오려는 전류를 막을 뿐이다.
이윽고 소녀는 눈을 뜨고 사방을 돌아본다.
온 둘레를 막는 크리스털 벽이 보인다.
거기에는 약간 녹다만 흔적이 있다.
방해하는 겹벽이 없는 것처럼
벽 넘어를 본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보니
하얀 나신으로 제단 위를 떠있다.
인상을 찡그리다 제단아래 검은 물이
회전하는 것을 보고 손을 휘졌는다.
제단 밑의 검은 물들이 제단을 타고
파랐게 빛을 내며 소녀의 몸을 오른다.
소녀의 몸에 감긴
파란빛의 물들이 경화되며
허공을 거쳐 올라와
옷으로 바뀐다.
좀 불만스럽지만
그런데로 나신을 가릴 수 있기에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제단으로 발을 딛고
다시 제단 밑으로 발을 딛는다.
가볍게 깃털이 떨어지는 것처럼,
그곳에 계단이 있는 것처럼
제단 아래로 허공을 한걸음씩 내려간다.
그리고는 앞에 보이는
마지막 겹벽을 가볍게 튕겨본다.
“오랜 잠이었어.
계속 흉몽에 시달렸지.
내가 마수가 되는 꿈...하~
세계를 부수는 꿈....정말 오래 잤나봐!
......
그래도 꿈 깨기 전에 밝은 빛이
그것이 꿈이란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꿈이란 것을 안 순간
피의 절은 내 모습을
떨쳐 버릴 수 있었어...
그 빛은 뭐였을까?
.........
난 누구지?
분명히 잠들었던 것 같은데....
여긴 어디지?“
마지막 겹벽을 향해
주먹을 가볍게 휘두르니
마지막 겹벽 뿐만 아니라
땅위로 굳건히 버티던
겹벽들이 모래처럼 부셔져 흘러내린다.
크리스털의 건물 전체가
모래알갱이가 되어 쌓인다.
제단도 모래가 갈라진 바닥 아래로
흘러감에 따라 무너져 내린다.
이윽고 제단과 격벽이 있던 곳에는
마법진 마져 모래로 덮히어
거대한 모래 사막을 연상케 한다.
모래사장이 된 바닥을
가볍게 뛰어보고
몸을 이리 저리 움직이며
불편이 없는지 확인하고
다시 몸을 풀어본다.
“여기는 시체뿐인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잠실 주경기장 운동장처럼
넓은 곳, 유리건물이 있었던 주변에
미라같이 말라 빠진
5~6m크기의 오크들이
부셔진 채 모래에 뭍혀
일부만이 보인다.
드래곤의 레어만큼
큰 동굴 뒤쪽 바닥에는
무너진 벽 앞으로
길게 두 갈래 길이 생겼다.
그 끝에는 진우와 호연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호, 살아 있는게 있었네.”
천천히 호연에게 접근하는데
좀 더 떨어진 진우에게
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발걸음을 진우에게 돌려
천천히 천천히 접근한다.
가면 갈수록 마음과 몸이 무거워진다.
“나... 왜이래? 아직.......인가?”
피를 흘리는 그에게 다가 가
자연스레 그를 붙잡는다.
손에 뭍어오는 피를 바라보다
그를 뒤집어 본다.
진우의 얼굴을 본 소녀는
“진~하이~루~터펠~~로우~~~”
본인도 알 수 없는 외침이 터져 나온다.
아주 깊은 곳으로부터 떨려오며
잊고 있던 아니
없는 줄 알았던
온갖 감정이 요동친다.
그리움, 후회, 기다림, 애정....
인내....반가움....기쁨.....
그것들은 이내 섞이며
너무나 아파,
목이 메이며
가슴이 아프고,
몸이 떨린다.
눈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
서릿발 같던 표정이 풀리면서
입에서는
“진~하이~루~터펠~~로우~~~
으~~으~~
으으으~~~~엉~~~~엉~~~
아~ㅇ, 흐~ㄱ, 흐~~~ㄱ, 흐~~ㄱ
진~하이~루~터펠~~로우~~~
엉~~~엉~~ㅇ”
......
자신도 모르는 같은 말이 반복되고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한동안 그를 껴안고
울다가 떨어지는 피를 보고
그의 몸에 난 상처가 심함을 느낀다.
그가 죽어가고 있었다.
더 마음이 아려온다.
가슴이 찟어진다.
상처를 보고 통곡하며, 울면서 치료한다.
한손으로는 진우를 껴안은 상태로
다른 손은 진우의 몸과
약간 떨어져 은은히 빛을 뿜는다.
튕겨 나가며 생기를 잃어갈 때
방어하던 반투명 실드도 사라졌다.
부딪치는 몸을 보호하지 못했다.
소녀의 치료에
폭팔 압력으로 벽과 충돌하며 생긴 상처가
이내 아물기 시작한다.
조금 뒤 상처가 완전히 나았다.
죽음직전에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는 조금 멀리 떨어진 호연에게도
관심 없는 듯 손을 내밀어 상처를 치료했다.
치료 중에도 계속 만남의 기쁨,
너무도 오랜 동안의 그리움
기쁨과 슬픔등등
원인 모를
온갖 감정이 솟아오르는데....
완전히 치료된 지금도
자신이 왜 그런지 알 수 없다.
손을 놓으면
다시는 복구할 수 없는
후회가 밀려올 것 같다.
다시 한 번 울면서 불러본다.
“진~하이~루~터펠~~로우~~~”
오랜 동안 진우를 조심히 끌어안고
머리를 그의 가슴에 묻고
눈물을 흘린다.
그러는 동안 마음이 좀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제 감정을 추수릴 수 있게 되자
생각해 본다.
이것이 제대로 된 행동인지.
이것은 오랜 잠에서 깬 혼동이라
애써 생각하며
본인도 알 수 없는 이 생명체를
놓기 싫어하는 팔을 떼어낸다.
옮기기 싫은 다리를 움직여
무너져 내린 바위에 기대어 앉혀 놓고
몇 발 뒤로 물러가서
속으로는
‘진~하이~루~터펠~~로우’
이 그리운 단어를
끊임 없이 반복하며
그 앞에 앉아 가만히 바라본다.
진우가 눈을 뜨다 이상한 것이 보였는지
급히 눈을 감았다 살며시 뜬다.
“호연아, 나 이상한 것이 보여
내 앞에 청색의 튜닉을 입은 미소녀가 있어!
또 나 꿈꾸나봐!
왠일이냐!,....... 왠일야!!!! ........
꿈이면 어때
내 눈아 호강한다.”
뜻밖에 선물(?)에 호들갑을 떨며
호연을 찾았지만 보이지도 않는다.
절친이 대답하지 않자
풀이 좀 죽는다.
“이번에는 혼자 꿈속을 헤매는 구나.
아름다운 꿈!
나는 계속 자각몽(Lucid Dream)을 꾸니 좋네.
그렇지만 혼자라 좀 쓸쓸하네.”
진우가 다시 눈을 부비며 앞을 보자
앞에 고등학생 정도로
여리디 여린 소녀가
다소곳이 앉아
자신을 지긋이 보며 미소를 짓는다.
“아무리 꿈이지만
이건 아니다.
철컹철컹 급인데
나에게 화연이 있는데
왜 이런 꿈을 꿀까?
그래서
너무 현실감이 떨어지네.
현실이라면 이런 아저씨 하며
생깔 나이인데....
그래도 나를 봐주는 아가씨가 있으니
기분은 좋네.”
진우는 꿈이라지만
자기 잠재의식에
좀 변태스런 종류가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헤이 아가씨,
나 별로 좋은 놈 아니에요.
너무 가까워.....”
가녀린 미소녀가 앙증맞게
진우를 향해
“진~하이~루~터펠~~로우~~~”
진우의 이마에선 문신이 희미하게 빛난다.
진우는 의아해 한다.
미소녀가 말하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뭐라시는 건가요?”
‘오크말도 알아 듣는 나인데
꿈이라 그렇겠지.’
“진~하이~루~터펠~~로우~~~”
“이봐 아가씨 난 무슨 소리인 줄 몰라.”
진우는 말을 하며
자기에게 적개심등이 없는 것을 보고
자기보다 많이 어린 것 같아
슬며시 말을 놓았다.
미소녀는 슬쩍 웃어주며
“나도 몰라요, 당신을 보니
‘ 진~하이~루~터펠~~로우~~~’
말이 절로 나오네요.”
“왜, 모르는 소리를 말해
혼동을 주나......
아니, 내가 아가씨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네.
아가씨도 내말 알아 듣네
꿈이라 좋다.
대단하다 진우, 어우우우~~~~”
그의 리엑션이 시작되었다.
온몸을 비틀며 허공에 오른손을 치켜든다.
방방 거리며 깡충거린다.
허공을 몇 바퀴 회전한다.
꿈인 줄 알고
온갖 뻘짓을 한다.
호연 같으면 몇 번의
비아냥이 나올 법 하건만
미소녀는 두 손을 모우고
계속 무엇이 좋은지
미소 지으며 계속 계속 쳐다본다.
그는 뜨끔하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난다.
“이봐 아가씨 나 이상하지 않아?
아무리 꿈이라지만
아가씨가 봐도 내가 이상하지.”
“네, 이상하지 않아요!”
뒤로 가다 멈추고
“하긴 나만 이상한 것이 아니라
아가씨도 좀 이상해요.”
“뭐가요?”
““진~하이~루~~~로우~~~가 뭔 말인데
알아 들을 수 가 없어.”
“네 저도 ‘진~하이~루~터펠~~로우~~~’ 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럼 그 말을 왜 내게 해?”
“당신을 보니 이 말이 절로 나네요.
그리움, 애뜻함, 절실함......이 느껴져요.”
진우가 자신의 몸을 손으로 가르키며
“나를.....”
“네 ‘진~하이~루~터펠~~로우~~~’
이렇게 당신을 보면 절실해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도 모르겠지만요.”
진우가 소녀의 발음을 들어보니
가슴을 찟는 듯한 매우 슬픔 속에
애뜻하게 느껴졌다.
“나 닮은 누군가가 있나봐.”
“네,
...아니요,
...모르겠어요.”
이때 호연이 일어나며 진우를 불렀다.
“진우야 무사 하냐,
나는 잠을 좀 잔 것 같은 기분이다.
분명히 아까 크리스털 벽을 두두렸는데...”
호연이 사방을 둘러봐도
모래 사장만 있을 뿐
크리스털 조각이나
마법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말라 비틀어져 부셔진
시체조각만 보였다.
“진우야 우리 오크랑 싸웠던 것이 아니냐?
수 백 년 전에 싸웠고
그동안 잠들었던 것 아니냐?
나 무서워진다.”
진우가 접근하는 친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오크랑 싸운 줄 알았는데
보시다 시피 사막이다.
비록 덥지 않지만...
이상한 것 말하면 한이 없다.
저기 조금 떨어져 있는 아가씨도...
즉 꿈이라는 이야기이지.”
“그래 저 아가씨 매우 예쁜데.”
“그렇단 말이지.
와, 나만 변태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아!
호연도 변태에요.
..........”
또 진우가 방방 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소녀가
그가 방방 뛰는 모습을 보며
입을 가리고 웃는다.
호연은 방방 뛰는 진우를 붙잡아
얼굴을 꼬집으며
“어리다고 너무 실례하는 것 아니니
자중해라!”
진우는 꼬집힌 볼이 아파 찡그린다.
호연의 이런 모습을 본 미소녀는
얼굴이 차갑게 굳어지며
눈썹이 치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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