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파(7)
"전 천마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큰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진정 천마라면 여러분에게 이렇게 애타게 말을 늘어놓지 않을 겁니다. 제가 독하게 마음을 먹는다면 여러분은 이미···."
"닥쳐라! 이놈. 이제 본모습을 드러내고 제힘을 믿고 날뛰는구나. 우리는 절대 마에 굴복하지 않는다. 천문파 삼만 문인의 목숨을 걸고 네놈은 반드시 처단할 것이다."
양손이 뭉개진 설신의는 눈을 부라리며 호통쳤다.
하, 이렇게 꽉 막힌 사람들이 있을까? 쇄심장과 대환장을 사용하였더니 온몸이 후끈후끈 달아오른다. 아마도 기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혈맥이 열리고 기가 순환하면서 몸 전체로 마장기가 고루 퍼져 나갔다. 그리고 호흡도 더 안정되었다.
천수진인이 가슴 위로 양손을 모으더니 진한 덩어리의 무엇을 쏘아 보냈다. 살짝 몸을 틀어 피해냈다. 이들은 마장기를 고순도로 압축해서 사용하므로 평범한 마인이 때리는 주먹 따위와는 아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가공할 힘이 실려 있다.
무엇보다 마장기로 인한 상처는 외상이 아닌 내상이라 힐링 팩터로 치료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최대한 맞지 않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천수진인이 쏘아 보낸 그것은 창문을 박살 내고 빌딩 밖으로 사라졌다. 조위민이 그 틈을 노리고 검을 휘둘러 왔다. 이들이 쓰는 검은 던전에서 드랍 되는 평범한 검이다. 대신 검 위로 마장기를 덧씌워 검의 능력을 수백 배 증폭해서 사용한다.
일반 검은 마인의 피부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지만, 이들이 사용하면 말이 달라진다. 나조차 조심 해야 할 정도로.
당주라는 서열답게 그가 휘두르는 검의 궤적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난해한 움직임이었다. 별운검을 뽑지 않으려 했건만.
여덟이 더 달라붙은 반월륜은 크게 진동하며 떨렸다. 녀석들도 알 것이다. 이 반월륜이 풀리면 어떠한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을. 내당 총관 설신의의 팔을 간단하게 잘라 버린 무기다.
"이 보패를 막지 못하면 큰일 날 것입니다. 빨리 놈을 제압해야 합니다."
천수진인이 낯빛을 굳히고 다시 쌍장을 날렸다. 그 순간 조위민이 내가 피할 곳을 차단하며 검을 휘둘러 왔다. 이것이 이들 협공의 특징이다. 마냥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마치 짜인 흐름에 따라 딱딱 그 자리를 지키며 상대를 압박했다. 피할 구멍을 원천 차단한 채 말이다.
나는 이것이 진식이라는 것을 이때는 전혀 몰랐다. 이들은 강한 상대를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제압할지 백 년을 넘게 연구해 왔다. 그 결과가 이런 진식이다. 진식으로 짜인 협공에 걸리면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천수진인이 대환장을 날렸고 조위민의 검이 내 팔과 다리를 노리고 쇄도해 들었다.
-쾅, 캉!
요란한 소음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언노운이 급히 리엑티브 펄스 쉴드 즉 차원 에너지로 만든 방패를 소환했다.
대환장과 조위민의 검이 펄스 쉴드에 닿자 대환장은 폭발을 일으켰고 조위민의 검은 펄스 쉴드를 때렸다.
"놈이 호신강기를 사용한다. 호신강기를 파괴해라"
반월륜을 잡은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나에게 덤벼들었다. 펄스 쉴드는 차원 에너지로 만든 방패다. 이걸 인간의 힘으로 깨부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천수진인의 수염이 펄럭였다. 그가 마장기를 있는 대로 끌어모으는 것 같았다. 리엑티브 펄스 쉴드로 단단히 방어했다.
천수진인의 양팔에서 무언가 쏟아져 내왔다. 대환장이 아니다. 천수진인의 쏘아 보낸 기의 덩어리는 리엑티브 펄스 쉴드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쾅
엄청난 폭발음이 빌딩 전체를 뒤흔드는 것 같았다. 먼지가 날려 주변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는 약간의 충격도 받지 않았다. 마장기로 차원 에너지를 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론상으로 차원 에너지를 깨기 위해서는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 에너지로 공격하는 수밖에 없다.
"호신강기를 전문적으로 파괴하는 항마복호장을 맞고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니!"
천수진인은 매우 놀란 듯했다.
【천수진인의 대수인 해석 완료되었습니다. 업로드 하시겠습니까?】
"물론!"
나는 천수진인을 향해 예를 취했다.
"저와의 싸움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지금이라도 무기를 내리고 저와 진중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늘 아래 천마와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 과거 천마에 의해 우리 동포 수만 명이 학살당했고 그 치욕을 잊지 않고 있는데 어찌 타협이 있을 수 있겠느냐?"
"문주님 그것은 천마에 관한 일이고 저는 천마가 아니니 그런 노여움을 거두시기를 바랍니다."
"그대가 천마가 맞든 아니든 지금 모습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오. 천마의 신체는 악마로부터 힘을 얻었고 그 표식이 바로 머리의 뿔이오. 이건 어떻게 달리 말해도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오. 그대의 몸에는 악마의 피가 흐르고 있소.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달리 증명할 수 있겠소?"
악마의 피!. 그래 머리에 뿔이 솟는 것은 악마의 피 때문이지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들이 천마라고 부르는 것은 나처럼 악마의 피를 계승한 인간을 말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들 이치로 따지면 나는 분명히 천마다. 이런 제기랄!
아, 여러분 저는 착한 천마예요.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자. 설신의는 비웃음을 날렸다.
"정곡을 찌르니 할 말이 없는 게냐? 순순히 포박을 받아라. 악마의 피를 이었다는 것은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악마의 발밑에 조아리고 그 힘을 얻어 인간을 핍박하는 놈은 이 세상 살 가치가 없는 놈이다."
이들이 왜 이렇게 천마를 싫어하는지 알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나다. 악마의 피든, 천마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후 그러나 골치는 아프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겠다. 이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란 걸 확실히 느꼈다.
"미안하지만 나는 나요. 천마도 아니고 악마도 아닌 정동혁이뿐이외다."
그때 복도 쪽 문이 열리고 많은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이미 건물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싸움이 났으니.
제일 좋은 방법은, 창문 밖으로 뛰어 달아나는 수가 있으나 아무리 나라도 백 층에 해당하는 높이에서 중력을 거스를 방법은 없다.
입구 쪽으로 돌파하려면 필연적으로 사망자가 나온다. 지금도 이 지경인데 사람까지 죽여 놓는다면 이곳에서 내 인생은 완전히 꼬이게 된다. 만약 저들이 나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한다면 네크로폴리탄의 존재가 드러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진짜 심각한 일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내 몸을 내어주면 당장이라도 머리통을 자를 기세이니. 한보 전진을 위한 열 보 후퇴를 택할 수밖에 없다.
나는 팔을 살짝 벌리고 양손에 마장기를 가득 올렸다.
천수진인의 눈이 살짝 떨렸다.
"저놈 아까 한 말이 빈말이 아니었구나. 저건 대수인의 기수식이다. 모두 조심해라."
나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발아래 콘크리트 바닥을 힘껏 후려쳤다. 내 힘에 대수인을 실어 때리니 콘크리트 바닥에 구멍이 뻥 뚫렸다.
"놈이 도망간다."
장로들이 검을 휘둘러 덤벼들었지만 리엑티브 펄스 쉴드가 구멍을 방어했다. 아래로 떨어진 나는 복도를 향해 달렸다. 어리둥절한 놈들이 나를 보고 기겁을 했지만, 녀석들이 검을 뽑는 순간보다 더 빠르게 복도를 치고 비상계단으로 뛰쳐나왔다.
나오자마자 검이 찔러 들어온다. 나는 계단 아래로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장로들과 총관들이 고함을 치며 뒤따라 왔다.
갑자기 옆에서 무언가 날아왔다. 급히 몸을 젖혀 피했다. 이 녀석도 상당히 강한 놈이다. 가장 강한 열 명 중 한 명에 해당하는 녀석인데 검을 다루는 품새가 보통 놈이 아니다.
검의 궤적과 움직임이 지금 이블스 폼인 나에게조차 정확히 잡히지 않았다. 등이 벽에 닿았다. 행동반경이 좁아지자 놈의 검이 더욱 신랄하게 움직였다.
녀석의 공격은 정말 빨랐다. 이 정도면 재앙급 데빌을 제압할 만큼 강한 놈이다. 언노운이 가르쳐 준 중국 무술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났다. 그것은 당연히 마장기를 이용하여 인간이 휘두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방향과 각도로 움직여 대기 때문이다.
"당철우 당주 그놈을 꼭 잡고 있으시오."
위쪽에서 고함이 들린다.
"상처를 입히기 싫어 검을 뽑으려 하지 않으려 했건만."
별운검을 뽑아 들고 날아오는 상대의 검을 후려쳤다. 역시 그가 들고 있던 검도 던전에서 드랍되는 검이다. 아마도 최상급의 검이겠지만 아가문드에 비하면 검도 아니다.
단번에 그가 들고 있던 검이 터져 나갔다. 나는 그것을 보고 안심했다. 하지만 경솔했다는 걸 바로 느꼈다. 이들은 백오십 년 동안 이런 싸움을 계속 해왔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다. 그 찰나는 한순간이지만 상대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는 시각으로는 충분했다.
검과 검이 부딪치고 상대의 검이 조각이 나 파편이 되어 흩날렸다. 나는 그 순간 됐다는 생각과 함께 도망치기 위해 아래쪽 계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상대의 검에는 마장기가 걸려 있었고 검은 조각 났으나 마장기는 그대로였다.
-핑
"아윽!"
가슴과 얼굴이 화끈했다. 놈이 조각난 검의 파편을 마장기로 날린 것이다. 내 몸이 어떤 몸인가 파멸급 데밀에 상응하는 몸체다. 그런 내 몸에 검의 파편을 줄줄이 박아 넣었다.
물론 깊이 박히진 않았지만, 굉장히 짜증 나는 고통을 선물해 준 것은 맞다.
"이놈이!"
나는 설신의의 쇄심장을 실은 오른손을 놈의 가슴에 내 뻗었다.
"으악"
녀석은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 콘크리트 벽을 부수며 나가떨어졌다. 쇄심장! 과연 위력이 어마어마한 기술이다. 순간적으로 마장기를 고 압축해 뿜어내는 방식인데 파멸급 데빌의 힘이 담긴 한 방이니는 아니고. 사실 쇄심장을 날리는 그 순간에도 상대가 즉사할까 봐 힘을 최대한 빼고 내칠 수밖에 없었다.
얼굴에 박힌 검파편에서 쓰라린 고통이 전해져 온다. 가슴에도 최소 열댓 개의 파면이 박힌 것 같다.
이놈들 정말 싸움의 전체들이다. 네크로폴리탄 마인은 그냥 가지고 놀 수준이다.
임기응변과 상황 대처 능력이 발군이다. 부서진 검 파편을 날릴 줄이야.
계단 아래는 소음을 듣고 달려 나온 천문파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유일한 통로가 비상계단이니 모든 사람이 비상계단으로 몰려나온 것이다.
"저기다. 당철우 당주님이 당했다.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놈을 막아라."
나는 별운검을 검 자루에 집어넣고 어떻게 힘 조절을 해야 할지 고민에 휩싸였다.
한편 위층에서 반월륜을 제어하고 있던 당주들이 고함을 쳤다.
"천마가 보패를 버리고 도망갈 줄이야. 그래도 보배 하나를 얻었으니···."
그가 말을 끝내는 순간 신기루같이 반월륜이 사라져 버렸다. 어차피 반월륜을 계속 유지한 것은 이 사람들을 붙잡아 놓기 위해서였다. 반월륜이 여덟 명이나 붙잡고 있는 덕에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나는 마장기를 이용한 공격법이 마인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제 언노운이 이미 싸움 전에 내 피부와 세포를 가압중압체로 바꾸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입었다.
마장기 즉 마인의 붉은 기류는 잘만 사용하면 엄청난 무기가 된다는 것을 중국에 와서 처음 으로 배웠다. 이현희의 소닉 커터는 정신력으로 만들어낸 무기인데 재앙급 데빌에는 겨우 생채기 정도 낼 수준의 공격력이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마장기를 운용한 무공은 단번에 재앙급 데빌의 목을 쳐서 떨어뜨리기에도 충분할 정도다.
내 몸에 검의 파편을 박아 넣을 수 있다는 것은 잘만 하면 내 목도 쳐 낼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쪽 동네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곳이다. 공석인과 주엽비를 보고 우습게 생각했더니 그건 나의 크나큰 착오였다.
리엑티브 펄스 쉴드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쉴드로 사람들을 찍어 누르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올라올 때도 지겹더니 내려 올 때는 더 지겹다. 수많은 사람과 상대를 해야 하고 위쪽에서 당주들이 맹렬한 속도로 따라붙고 있었다.
어쩌다 일이 이 모양이 되었는지 정말 난감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내 인생 통틀어 제일 꼬인 날인 것 같다.
【심장 가까이 있는 파편을 즉시 제거해야 합니다. 움직일수록 심장 쪽으로 밀려들고 있습니다】
"야.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뽑냐? 최대한 막아봐."
【심장 위 근육을 경직시키겠습니다. 약간의 고통이 수반됩니다】
"아후, 이거 뭐야. 으아."
가슴에 불을 달군 인두로 지지는 고통이 몰려 있다.
"약간의 고통만 수반된다고 했잖아? 이게 약간의 고통이냐? 이건 정신이 나갈 버릴 정도라고!"
내 몸 위로 검과 무언의 힘이 계속 쏟아졌다. 리엑티브 펄스 쉴드로 방어하고 있지만, 에테르가 무지막지하게 뽑혀 나가고 있다. 이런 차원 에너지급 기술을 계속 사용하려면 에테르의 소비가 어마어마하다.
겨우 놈들을 해치고 로비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온몸이 욱신욱신했다. 정문을 차고 나오는데 천수진인과 나머지 당주들이 입구를 포위하고 반원형으로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이들은 반대편 계단으로 먼저 내려온 모양이다.
"문주님. 아직 저를 천마로 여기시는 겁니까? 저는 천문파 사람을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천수진인은 근엄한 표정으로 아무 말이 없었다.
"모두 물러나라."
천수진인의 한마디에 내 뒤쪽으로 따라 나왔던 천문파 문인들이 모두 물러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나는 천수진인이 품 안에 안고 있는 물건을 바라봤다. 작은 그러니까 우리나라 가야금의 축소 버전이랄까. 길이 50cm 정도 되는 매우 작은 금(琴)이었다.
"네놈을 잡기 위해 천문파 최고의 보패인 천수현은금을 가져왔다."
뭔 소리야? 금(琴)을 연주하려는 건가? 저것이 무기가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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