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을 향해
눈에 띄게 바닥이 들썩였다. 이현희가 말한 스크리머란 몬스터일 거다. 철길의 레일이 불쑥불쑥 솟아 올라왔다. 바닥 자체가 두더지가 통과하는 형세로 흙더미가 솟아 올라왔는데 물론 작은 두더지는 아니란 것은 거대한 흙더미로 알 수 있다.
박현이 아가문드 검을 뽑아 들고 바닥을 노려 보다가 발아래로 검을 박아 넣었다.
듣기 싫은 비명과 함께 흙더미 위에서 검은 피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이 시발점이 되었을까 바닥에서 수많은 스크리머가 솟아 나왔다.
거대한 두더지 몬스터다. 두 발은 낫 같은 날카로운 발톱이 달려 있고 머리도 영락없이 두더지의 그것과 닮았고 엄청난 송곳니는 덤이다.
반월륜을 날려 스크리머를 베었다. 일반 몬스터였기에 속절없이 잘려나갔다. 가늠해 보니 A 레벨 던전의 몬스터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니 이 정도의 몬스터는 마인 혼자서 아무런 도움 없이 학살할 수 있다.
"전 또 대단한 몬스터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왜? 시시해?"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약하다고 생각해서 말이죠. 레더스컬에 비하면 이것들은···."
"레더스컬은 악마종이고 이놈들은 평범한 몬스터야."
우리는 잡담을 하면서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의 격차는 컸다.
박현과 김성우, 강희운, 이성규는 레더스컬에 당한 분노를 풀기라도 하듯이 가열차게 스크리머들을 쪼갰다.
"이놈들 땅의 진동을 느끼고 모여드는군요."
"정확히! 그래서 끝도 없이 몰려오지."
"약하긴 한데 몹시 귀찮군요."
"우리가 아무리 마인이라고 해도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싸우지는 못해."
"지하에 있으니 그래도 레더스컬의 공격은 면할 수 있네요."
"그래 그것이 우리가 지하로 이동하는 이유지."
눈앞에 멈춰 버린 지하철이 보였다. 멈춘 지 거의 150년이 되어버린 것이지만.
"저 지하철에서 조금 쉬자."
이현희와 나는 지하철 위로 올랐다.
"두 분 여기서 쉬고 있으세요. 저희는 드랍템이나 주어 올게요."
박현과 세 명은 스크리머들이 드랍한 아이템을 수거하러 갔다.
"여기는 자원이 매우 부족해 몬스터가 드랍한 것을 하나라도 모으지 않으면 곤란하거든."
"자치령은 서울역을 본거지로 하고 있군요. 몇 명 정도가 모여 살죠?"
"자치령은 천여 명 될 거다. 150년이 지난 지금은 딱 그 정도지. 연합은 천 오백 정도, 반군은 삼백 정도 될까?"
"반군이 이모탈 시티에서 왜 난리를 피우는지 알겠군요. 그들이 마인을 늘이려고 발악을 하는 것을 보면···."
"반군은 원래 연합소속이었던 사람이 반기를 들고나와 세운 단체야."
"하, 이 좁은 땅덩어리에 주변에 공동의 적을 두고 서로 싸우는 것은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우리 원로들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모든 인간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야."
"그렇다고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봅니다. 수시로 악마군에게 당하면서도 손을 잡지 않다니 정말 이해가 안 되는군요."
"애초부터 두 집단은 싸우면서 커왔어. 지금에 와서 손을 잡자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 인원으로 악마군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네크로폴리탄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마인도 죽지 않습니까? 인구가 줄어들면 이곳도 끝일 텐데요."
"인원 수급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왜 이모탈 시티가 중요한 것인지 알겠지? 우리는 이곳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있어. 그 희생분에 해당하는 손실만큼 이모탈 시티가 채워줘야 해. 그것은 연합과 불사의 회람이 협의한 내용이었어."
"자치령은 그동안 어떻게 무각성자를 충당했어요?"
"알게 모르게 작업을 했어. 그때는 정현규를 이용했었지. 그는 야망이 아주 컸던 사내였어."
"지금은 정현규가 없어졌기에 그나마 있던 끈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닙니까?"
"그 말 대로야. 우리는 다른 계획을 세워야 할 참이었어. 그때 악마군이 내려오는 바람에 전원 동원령이 내려서 이모탈 시티로 가는 건 미뤄졌지."
"그들이 창원으로 오지 않았다면 제가 이곳으로 올 생각을 못 했을 겁니다. 이모탈 시티는 더없이 평화롭고 조용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거든요."
"봤지? 이곳은 생지옥이 계속되는 곳이란 걸. 이곳 사람들이 이모탈 시티를 에덴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지?"
"만약 네크로폴리탄의 마인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 악마군은 하우레스 라인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가능성이 크다고 봐. 그들은 매우 집요하고 영리하거든."
"하우레스 라인이라건 도대체 누가 어떤 의미로 붙인 겁니까?"
"마인들 중 모험심이 큰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네크로폴리탄을 떠나 주변 지역을 오랫동안 탐색했어. 그들이 남쪽으로 내려왔을 때 어떤 소리를 들었지. 하우레스라는 고위악마의 보금자리가 있어 그 누구도 방해하지 말라는 경고의 소리였어. 옛 도시 대전을 중심으로 위아래로 오십 킬로미터에 해당하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라인이 처졌다는 걸 알게 됐어. 그것은 악마의 사념을 접해 우연히 습득하게 된 정보였지. 그들이 돌아왔을 때 마인들은 그 지식을 공유했고 믿지 못한 사람들이 하우레스 라인에 들어갔는데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 서창배 팀을 제외하고는 말이야. 서창배는 최초로 하우레스 라인을 통과하고 이모탈 시티의 존재를 밝혀낸 역대 최고의 모험가였어."
"우와, 서창배는 어떻게 하우레스 라인을 통과했을까요?"
"우리는 개구멍이라고 통칭하는데 그는 굴을 팠어."
"백 킬로미터의 굴을 팠다고요?"
"아니, 원래 파 놓은 굴이 있었어. 백오십 년 전 인간들이 진공 고속 열차를 위한 굴을 파는 공사를 하고 있었던 거야. 서창배는 그 통로를 이용했지. 나머지 구간은 자신들이 직접 굴을 파서 드디어 남쪽으로 내려갈 수 있었어."
"지금은 그 개구멍이란 곳을 사용할 수 있나요?"
"서창배는 정말 행운이었어. 지금은 몬스터가 득실거려서 그곳을 통과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네크로폴리탄은 의식주를 어떻게 해결하나요?"
"가보면 알아. 우리는 옛날 인간들이 남겨놓은 시설을 복구해서 사용하지. 서창배 덕분에 우리는 이모탈 시티의 과학력을 많이 배워왔어. 가장 큰 축복은 엘리시움 광석에서 에테르를 추출하는 기술이야. 그 덕분에 우리는 몇십 년 동안 전기 없이 살아왔는데 처음으로 저녁에 빛을 밝힐 수 있었고 각종 전기 기기를 작동시킬 수 있었어."
그때 아이템을 수급한 박현들이 돌아왔다.
"너희들도 조금 쉬어. 삼십 분 정도 있다가 출발할 거야."
나는 이현희를 마주 보며 말했다.
"그때 이모탈 시티에서 저를 처음 만났을 때 이런 말을 했었죠?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겠다고? 그 말이 이제야 실현되는군요."
"후후,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어서 하는 것만 보고 들으려고 하지. 귀를 닫는 것은 자신의 지키기 위한 행동에 불과해. 그걸 깨는 사람만이 진정한 영웅이지."
"저는 영웅이 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해온 걸 보면 그러고도 남아."
"네크로폴리탄의 마인은 필수불가결의 존재네요."
"그렇다고 봐야지. 우리가 버티기 위해서는 이모탈 시티가 도와줘야 함은 물론이고 그들은 인간을 너무 낭비하고 있어. 정크 보이도 쓰레기 취급해 버리고 있는 실정 아니니? 우리에게는 그들 모두가 소중한 자원이 되지만 이모탈 시티는 쓰레기 취급일 뿐이고."
"그럼 그런 사람을 데려다가 마인을 만들면 확률은 어느 정도입니까?"
"던전이 하나 있어. 최초로 마인이 탄생한 던전 우리는 아담의 던전이라 부른다. 그 던전에 평범한 인간이 들어가면 악마의 부름을 받게 되지. 마치 에덴의 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은 것처럼 말이야. 그 선악과를 먹고 정신을 악마에게 빼앗기지 않으면 마인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레지던트 마인이 되는 것이지."
"레지던트 마인은 어떻게 되나요?"
"그 던전에서 살처분된다. 그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어."
"마인이 되는 확률은?"
"열 명 들어가면 한 명 겨우. 아닐 때도 있고."
"그건 학살이군요."
"너희가 정크 보이를 학살로 내모는 것과 무슨 차이야? 이모탈 시티 인구의 인구수 조절이라고 그럴싸한 핑계를 대지. 하지만 학살이라는 데는 너도 의의가 없지?"
"물론, 저도 정크 보이 출신이니까요. 그런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용케 살아왔으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우리는 생존에 직결한 문제니까. 학살이 아니고 발버둥이지."
"만약 백 퍼센트 마인을 제조할 방법이 있다면요?"
"하하, 세상에는 그런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 단연코."
"그렇겠죠. 저도 단지 그럴 가능성에 대한 작은 바람에···."
"그럼 어떻게 되겠어? 해피엔딩이라도 바라는 거니? 사람은 지독히 간사해. 만약 자치령이 그런 힘을 손에 넣으면 바로 연합이랑 반군을 지워 버리겠지. 그리고 이모탈 시티도 강제 점령하여 인간 사육장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이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뻔한 행보라고."
그녀의 말에는 날카로운 칼이 숨겨져 있었다. 정말 베일 것 같은 칼이 말이다.
"동혁아 네가 지금 꺼낸 말은 다시는 하지 않는 게 좋아. 이 세계 균형을 완전히 깨버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왜 우리에게 생식능력이 없겠니? 우린 규격 외품인거야. 신으로부터 존재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존재.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소비성 제품이 되어야 하지."
나는 무심코 품 안에서 담배 꺼내 들었다.
"아!"
"와!"
이현희가 먼저 환호성을 질렀다.
박현과 김성우, 강희운, 이성규 모두의 눈이 초롱초롱 빛을 발했다.
"하하, 여긴 담배가 귀한가 보군요."
"어머, 어머 얼마 만이야 이게? 몇 달 동안 담배 냄새가 얼마나 그리웠는데 나 한 개비 주라."
"저도, 부탁드립니다."
다들 담배를 보고 정신을 못 차린다. 나는 담배 한 개비씩 돌렸다.
"와아. 좋다. 너무 좋다. 하, 이 맛이지 이 맛에 핀다니까!"
이현희는 깊이 한 모금 들이켰다가 뿜어냈다. 새하얀 담배 연기가 객차 안에 꽉 차기 시작했다. 그래도 즐겁다. 담배 한 대에 모든 시름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즐거움으로 모두의 표정이 활짝 폈다.
담배 한 개비가 이렇게 분위기를 바꿀지 몰랐다.
"저 잠시 급한 볼일 좀 보고 올게요."
나는 객차 사이로 가 소변을 해결했다. 그리고 ITB에서 담배 새것을 한갑 꺼냈다.
"3023, 카피너로 담배를 복사해줘."
【알겠습니다. 카피너 시행합니다. 에테르 –1000소요】
다섯 개의 담배를 카피해서 돌아왔다.
"자, 만난 기념으로 이것 조촐 하지만 이것 하나씩 드릴게요."
"어머, 짱이네. 짱이야. 잘 피울게."
"감사합니다. 이거 아까워서 피울까 고민되네요. 하하."
다들 담배 한 갑을 손에 쥐고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 담배 한 대도 오랜만에 피워 봤으니 슬슬 이동하자."
"아, 배가 너무 고프네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레더스컬과 싸웠더니 뱃가죽이 등에 붙었습니다."
다들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나는 ITB에서 비상식량을 넣어 놓은 냉장고를 꺼냈다. ITB에 무슨 냉장고냐고 헌터가 간이 식량을 이렇게 작은 냉장고에 넣고 가지고 다니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나는 충분한 돼지고기를 꺼내고 버너 위에 고기판을 올리자 박현과 다른 친구들은 개침을 흘리며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다.
"좋아, 뭐 바쁜 일도 없으니 여기서 그냥 배불리 먹고 가자. 동혁이 덕분에 우리 팀 전원 생존했으니 축하 파티라도 벌여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
-차르르
달군 고기판에서 삼겹살이 비명을 지른다. 그 소리가 천상에서 들리는 소리 마냥 박현과 김성우는 이성을 집어 던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이들은 이런 고기를 감히 먹어 보지 못했을 테니까. 나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캔맥주를 꺼내 돌렸다.
"이왕이면 맥주까지 곁들이죠. 하하."
"으아, 이게 맥주. 맙소사 여기서는 비싸서 감히 사 먹을 생각도 못 하는 건데."
"에덴에는 이런 거 자주 먹습니까?"
"뭐, 그렇죠. 하하."
"카. 죽인다. 죽여 주는 맛입니다. 뱃속까지 시원해지는 맛."
"후후, 이거 동혁이 덕분에 여러 번 천국 가는구나."
"자, 고기가 다 익었으니 한 점들 드세요."
젓가락으로 고기를 잡은 박현의 표정이 울 것 같이 푸들푸들하더니 한 점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으아, 으아. 이건 뭐 씹을 필요도 없는구먼. 그냥 녹네! 녹아. 이게 진짜 고기 맛입니까. 오. 신이시여. 이건 우아. 진짜 작살이구나."
"다른 분들은 이모탈 시티에 오신 적이 없구나."
"그렇지 뭐. 그곳은 허락 없이 가는 곳이 아니니까. 나중에 이들에게 이모탈 시티 꼭 구경시켜 준다고 약속만 해 놓았어."
"와, 녹습니다. 녹아. 감칠맛이 끝내줍니다. 이런 고기가 아직도 이 세상에 남아 있다니."
박현과 김성우, 강희운, 이성규는 정신없이 젓가락을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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