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이름으로 – 3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형제의 이름으로 – 3
“혹시라도 너와 엮여서 그 여인이 잘못될까봐 걱정하는 거지?”
“그걸 어떻게 아시오?”
“쯧쯧쯧, 내가 어떻게 알겠냐?”
“그럼 형님도 아가씨에게 고백하기 전에 나랑 똑같은 고민을 했단 거요?”
“아니면 내가 어떻게 알겠니?”
“으음!”
“결심을 했다니 다행이다 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니 자신을 믿으라. 나를 봐라. 니가 나보다 더 거친 삶을 살았느냐?”
“그건 아닙니다.”
“아니면 니가 나보다 용기가 없느냐?”
“실력이면 몰라도 용기는 지고 싶지 않소.”
“그럼 니가 나보다 못났느냐?”
“솔직히 그다지 자신은 없지만 그렇다고 내 얼굴이 흉하다곤 생각하지 않소.”
딱!
“아얏! 왜 때리고 지랄...”
“그러고도 니가 나보다 더 용기 있다고 할 수 있냐?”
결론적으로 못난 것이 없으면서 왜 주저하느냐는 뜻이다.
“으음!”
“더 얘기할 것도 없다. 만약 니가 밝히지 않으면 나라도 나서서 말할 테니 그리 알거라.”
“그..그건 안 됩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후후후, 당연히 그래야지. 동생들을 생각해서라도 마음을 굳게 먹어라.”
“알았소.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당분간만 눈을 감아주시오.”
“난 기다리는 걸 아주 싫어한다. 그걸 잊지 마라.”
“고맙소. 사실 형님이 나서주길 바랬소.”
“후후후! 자, 그 얘긴 그만하고, 구경이나 하자.”
“예!”
“애들 실력이 일취월장했구나.”
그 사이 동생들은 강시들을 거의 다 무력화시킨 상태이다. 일초의 말대로 가능하면 치명상은 입히지 않고 오랫동안 싸우려하지만, 워낙 많이 맞아선지 강시들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제가 다 무서울 정도입니다.”
“음흉한 놈! 엄살 그만 떨고 팔룡이나 찾아봐라.”
“왜요?”
“사라졌다.”
“후후후, 그거 잘 됐네. 지가 뛰어봤자지. 조금만 기다리시오. 금방 잡아올 테니까.”
“까불지 말고 신중하게 해라. 그래도 놈은 팔룡이다.”
“알았소.”
그 말을 남기고 일초는 수로맹의 본부을 향해 달려간다.
“준비 상황은?”
이곳은 수로맹의 본부에 있는 대웅전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대웅전에는 수십 명이 한 사람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다. 백여 개의 달하는 수채(水寨)의 채주들은 물론이고, 장로들도 모두 모여 있다. 수로왕은 싸움이 시작되자 곧바로 이곳으로 왔다.
“완벽하게 끝마쳤습니다. 설사 천하제일인자라 해도 빠져나오진 못할 겁니다.”
수로왕의 물음에 부하가 자신 있게 대답한다.
“흐흐흐! 절대로 죽이면 안 된다. 숨통은 내 몫이니까.”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콰아앙!
회의가 마무리될 무렵 갑자기 벽면의 한 쪽이 무너지면서 한 명이 안으로 들어온다. 일초다. 그는 무진과 헤어져 곧바로 이곳으로 왔다. 중간에 함정들이 있었지만, 그의 발걸음을 막진 못했다.
“웬 놈이냐?”
“놈? 흐흐흐! 그거 참, 욕지거리가 분명한데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고, 익숙하단 말씀이야. 안 그래?”
일초는 중앙 연단에 혼자 서 있는 수로왕을 보며 웃는다.
“건방진 놈, 아직도 내가 5단주로 보이니?”
“글쎄? 난 한 번도 네놈을 5단주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말이야.”
그렇다. 5단주가 바로 수로왕이자 팔룡이었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 5단주를 이용한 것이다.
“뭐..뭐라고? 그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야?”
“쯧쯧,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런데도 살려뒀단 말이지?”
“재밌잖아? 무슨 일을 꾸몄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흐흐흐, 그렇다면 궁금증을 풀어줘야지. 1단주!”
“예, 수로왕 전하.”
1단주가 대답과 함께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대웅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벽 쪽으로 이동한다. 그러자 지붕에서 거대한 기구가 내려온다.
꾸웅!
거대한 충돌음과 함께 철창이 내려와 일초를 완전히 가둬버린다. 일종의 일인용 감옥인 셈이다.
“겨우 이거냐?”
일초는 손으로 쇠막대로 촘촘히 만든 철창을 휘어서 빠져나온다.
“후후후,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군. 내가 당한 걸 돌려주려면 쉽게 끝나면 안 되지.”
수로왕은 일초의 행동에 놀라지도 않는다. 오히려 좋아하는 눈치다.
“난 실망인데 어쩌나? 소꿉장난은 그만하고 제대로 된 걸 보여줘 봐.”
“후후, 기대가 컸던 모양인데, 미안하이. 이번엔 실망하진 않을 걸세.”
수로왕이 손을 들어 올리자 바깥에서 백여 명의 수적들이 들어오면서 일초를 향해 뭔가를 던진다. 그들이 던진 것은 암기로 각자 다섯 개를 던진다. 순간 수백 개의 암기가 일초를 향해 날아간다.
펑!
근데 날아가던 암기가 공중에서 터지면서 다시 십여 개의 암기로 변한다. 결국 수천 개의 암기가 일초를 덮친 셈이다.
휘리리릭!
일초는 몸을 회전하면서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그러자 암기들이 마치 새처럼 그를 따라 올라간다.
“와아!”
실내에 있던 수로맹의 간부들이 그걸 보며 감탄한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금방 변한다.
“허..허억!”
“어..어떻게 저럴 수가!”
“말도 안 돼!”
일초를 따라 올라가던 암기들이 공중에서 그대로 멈춰 서 있다.
“나도 좀 놀랬다. 암기가 공중에서 터질 줄은 몰랐거든. 사천당가의 작품이겠지? 후후후! 자, 그럼 받은 건 돌려주마. 간다!”
일초는 공중에서 내려오면서 암기를 향해 손을 휘젓는다. 그러자 공중에 멈춰있던 암기들이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진다.
“피..피하라! 어서!”
“타..탈출하라!”
수로왕은 물론이고, 장로들이 소리치지만, 그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암기들이 몸속으로 파고든다.
“크아아악!”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바닥에 쓰러진다. 수십 개의 암기들이 그들의 몸을 뚫고 나가자 대웅전 바닥은 핏물로 그득하다.
“어이! 어딜 급하게 가시나?”
일초는 도망치는 5단주, 아니 수로왕을 부른다. 다른 사람과 달리 그는 전혀 부상을 입지 않았다.
콰앙!
그는 창문을 뚫고 밖으로 몸을 날린다.
“후후후! 유인을 하겠다면 그렇게 해줘야지.”
일초는 천천히 수로왕을 쫓는다.
“하긴 놈의 입장에선 육지보단 물속이 유리하겠지.”
수로왕이 도망친 곳은 대웅전의 뒤쪽에 있는 커다란 연못이다. 말이 연못이지 호수라고 할 만큼 크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자신이 유리한 곳으로 은신한 것이다.
“형님!”
이때 동생들이 모두 도착한다. 태민 사형제는 옷이 너덜너덜할 정도로 엉망이다. 강시들과의 대결이 치열했다는 증거이다.
“얻은 게 많은 모양이구나.”
“그래도 형님과 비무했을 때보단 덜합니다.”
“어째 욕하는 것 같다.”
“하하하! 그렇게 들렸습니까?”
일초의 말에 태민이 약간 멋쩍어한다.
“근데 모든 게 대형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문제야. 너무 잘 맞으니까 재미가 없다.”
“그래서 불만이냐?”
무진의 목소리다. 그는 호란과 나란히 걸어온다.
“거참, 우리끼리 얘기할 땐 그냥 못 들은 척 해주면 안 됩니까?”
“알았다. 그럼 우리도 니가 없을 땐 욕을 해주마.”
“내가 들을 욕이 있나?”
“있으면 해도 된다는 뜻이냐? 예를 들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선 입도 못 뗀다든지....”
“아..알았소. 무조건 항복이오. 항복!”
일초는 즉시 꼬리를 내린다.
“대체 형님은 대형께 무슨 약점을 잡혔소?”
“약점?”
“예. 언제부터인가 여자 얘기만 나오면 즉각 항복 선언을 하잖아요?”
태운이 눈꼬리를 올리며 끼어든다.
“야, 동생이 형님한테 꼬리 내리는 게 뭐가 이상해? 오라, 넌 민이한테 항상 개기는 모양이구나.”
“좀 그런 편이죠.”
태민까지 나서서 싸움을 키운다.
“됐다. 농은 수로왕을 잡은 다음 술자리에서 하자.”
“예. 대형!”
“저부터 하겠습니다.”
곤일이 나선다.
“최대한 많이 배우고 나오너라.”
“예!”
그는 무진에게 목례를 하고는 물속으로 들어간다.
“괜찮을까요?”
“쉽진 않겠지. 하지만 좋은 경험이 될 거다. 상대가 중원제일의 수공 전문가니까.”
무진은 동생들의 수공 수련을 위해 이런 계획을 세웠다.
“저희들에게도 기회가 오겠죠?”
“일초는 몰라도 너희들까진 돌아갈 거다. 만약 수로왕이 황제수전(皇帝水戰)을 익혔다면 일초까지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황제수전은 처음 듣습니다.”
“황제수전은 수공과 관련한 무공을 집대성한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그걸 대성하면 용왕도 이길 수 있다고 한다.”
태민의 질문에 일초가 설명한다.
“일설에는 용왕이 직접 만들었다는 말도 있는데, 아직까지 대성한 인물이 없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한 번 배워보고 싶습니다.”
“차라리 수로맹을 맡는 건 어떠냐?”
“제가요?”
무진의 뜻밖의 말에 태민이 당황한다.
“당장은 아니다. 어차피 수로맹을 맡을 사람이 필요하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그때 해도 된다.”
“고민해 보겠습니다.”
“하하하! 잘 생각했다.”
“형님은 수로왕을 내 칠 생각이 아니오?”
“니 생각은 어떠냐?”
“하긴 당장 대안이 없으니 당분간은 끌고 가야겠죠. 근데 놈이 말을 들을까요?”
“후후후!”
무진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진다.
“이런, 이런! 또 당했군.”
“뭘 말입니까?”
태민이 일초를 보며 말한다.
“대형이란 사람이 이렇게 매번 동생들을 놀려도 되는 거니?”
“날 네놈이랑 도매금 취급 마라.”
“형님, 무슨 말씀입니까?”
이번에는 태운이 끼어든다.
“저 양반은 처음부터 5단주를 제거할 생각이 없었다.”
“그럼요?”
“적당히 길들여서 계속 부려먹을 생각인 거지.”
“구룡단과 태양장이 가만두지 않을 텐데요?”
“황제수전을 이용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걸 익힌 사람이 없다면서요? ...으음! 그랬군요.”
“그러니까 당했다는 거지. 황제수전을 미끼로 놈을 길들여서 수로맹을 장악하겠다는 거지.”
“그래도 그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누가 잘못됐다고 했냐? 숨겼다는 거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일이나 데리고 나와라.”
“일이가 졌단 말씀입니까?”
“수로왕은 단전도 파괴됐잖습니까?”
태민 사형제는 곤일이 수로왕에게 당했단 소리에 놀란 눈치다.
“쯧쯧, 이놈들아. 팔룡이 그냥 팔룡인 줄 아느냐? 그만큼 했으면 잘 한 거다.”
“수로왕이 우릴 속였군요.”
“그걸 우리 대형께선 눈감아줬지.”
수로왕, 즉 5단주가 단전이 파괴된 것처럼 행동했단 말이다.
“일이가 그걸 모르고 내공을 사용하지 않은 게 실수였다.”
“예에? 내공도 없이 수로왕과 싸웠다고요?”
“이번에는 둘 다 들어가거라.”
“그래도 어려울 수 있단 말씀인가요?”
“이길 생각 말고 배우고 오너라.”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태민 사형제는 동생 걱정에 전력을 다해 연못을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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