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65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65
“흥! 누군 새가 빠지게 고생하는데, 누군 손자 자랑이 늘어졌군.”
조충이 자리에 돌아와 태허를 구박한다.
“이놈아, 너도 결혼해서 애를 가져봐라. 너 같은 놈이 원래 자식에게 더 집착하는 법이거든.”
“그거야.... 인정하지. 근데 대형! 출산일이 언제쯤입니까?”
“아직은 멀었다. 이제 겨우 사 개월 정도 지났는데. 으음!”
조충의 말에 무진은 호란을 생각하는지 멍하니 허공을 쳐다본다. 북경의 무림맹 사건이 마무리 되자 무진 형제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호란은 뱃속의 애기 때문에 다른 여인들과 함께 북경의 안전한 곳에 남고, 나머지 형제들은 두, 세 명씩 역할을 나눠서 헤어졌다. 무진은 조충과 함께 초일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가자. 오늘은 일찍 쉬고 싶구나.”
“예. 대형!”
사건이 모두 정리되자 무진 일행은 숙소로 향한다.
무진 일행은 항주에서 한 달이나 더 보냈다. 그 동안 조충이 금진과 필구, 그리고 구리를 가르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무진은 한 달 내내 명상을 하며 지냈다. 구체적으로 무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태허는 그걸 보면서 흉내 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곤 무진은 조충을 데리고 다시 여행을 떠났다. 이번 목적지는 호북성의 성도인 무한(武漢)이다. 그곳까지의 여행은 순탄했다. 요즘 초일 측의 움직임도 주춤하다. 특히 태양장은 거의 봉문 상태다. 그래서 통일문과 대련회가 태양장의 영역까지 먹으려다 실패하면서 한꺼번에 잠수를 타고 있다.
“저긴 어떻습니까?”
“이름 때문이냐?”
무진과 조충은 무한으로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주루를 찾는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침도 거른 상태다. 그래서 주루에서 허기를 면하려는 것이다.
무한은 대도시답게 초입부터 주루가 줄을 지어 서 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띠는 간판이 있다.
낭인루(浪人樓).
두 사람은 낭인촌 시절을 떠올리며 낭인루로 들어간다.
“우우! 이게 뭐죠?”
조충은 문을 들어서는 순간 멈칫한다. 주루 안의 기운이 강해서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요?”
“글쎄? 개방에선 다른 말이 없었는데? 일단 들어가자.”
“예.”
무인들이 많은 탓인지 빈자리가 없다. 두 사람은 간신히 구석 자리를 찾아서 앉는다.
“정파에서 단합대회라도 하는 모양입니다.”
주루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정파인들이다.
“여기에 문파가 많니?”
“없진 않지만 대문파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림맹이 분타를 새롭게 만들지 않을 테고.... 오라! 이거 재밌겠네.”
무진은 주루 안 사람들의 마음을 읽었는지 연신 웃어댄다.
“무슨 일입니까?”
“호북성주가 무남독녀의 신랑감을 구한다는 구나.”
“호북성주가요?”
“재미난 친구로군.”
“당연히 다른 의도가 있겠죠?”
“있겠지. 원래 무림과도 인연이 깊고, 엉뚱한 친구로 소문이 났으니.”
“저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래?”
“예! 그릇이 꽤 큰 양반입니다. 중앙으로 진출했으면 승상 자리쯤은 차지했을 인물이죠.”
“후후, 네가 칭찬하는 걸 보니 만나봐야겠구나.”
“명이 형님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그 정도란 말이냐?”
“제가 주선을 해보겠습니다.”
“바쁠 테니 억지로 하진 말고.”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얘기하는 사이 창가 자리가 부산하다. 여러 명이 인사를 나누는 모양이다.
“소림과 화산도 참석했습니다.”
“신랑감을 뽑는데 소림이 왜?”
“잘 아시잖습니까? 소림이 오지랖 넓은 거.”
“그렇지. 원래 돌중들은 자기들이 심판을 봐야 직성이 풀리지.”
“근데 저 아가씬 왜 아까부터 우릴 쳐다볼까요?”
“너한테 관심이 많은 모양이지.”
“저보다는 대형이 아닐까요?”
주루의 중앙에는 여러 명의 여인들이 앉아 있다. 그 중 한 명이 두 사람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니가 상대해라. 너도 알다시피 난 여자에 약하다.”
“형님이요?”
“내가 여자에게 강했으면 지금 너랑 같이 있을 것 같니?”
“왜요?”
“왜라니? 너 그 동안 나랑 여행하면서 여자들이 나한테 추파 던지는 거 못 봤냐?”
“보긴 했죠.”
“그래. 그 여인들을 다 관리했으면 난 아직도 항주에 있을 거다. 물론 넌 여기에 있을 테지만.”
“그러니까 대형은 여인들과 놀고, 전 일을 계속해야 된단 말씀입니까?”
“잘 아네.”
“그 말을 아가씨께 그대로 전해드려도 되죠?”
“하하하! 농담이다. 농담.”
“뭘 드시겠습니까?”
여자보다 나이 어린 점원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온다.
“저기 저 사람들이 먹는 게 뭐냐?”
주문은 항상 해오던 대로 조충이 한다.
“유산슬하고 오리요리입니다.”
“그래? 맛은 믿어도 되겠지?”
“저희 객잔이 자랑하는 대표요리입니다.”
“그거하고 죽엽청 한 병만 가져오너라.”
“잘 선택하셨습니다. 역시 오리요리엔 죽엽청이죠.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점원이 사라지자 백의를 입은 20대 말의 여인이 조충 앞에 선다. 상당한 미인이다. 다소 차갑게 보이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혹시 묵사회의 회주님이신가요?”
그녀는 조충에 대해서 알고 왔다.
“그렇소만. 낭자는 누구시오?”
“전 북해빙궁의 장로인 소혜라고 해요.”
“북해빙궁의 장로?”
“아마 잘 모르실 거예요. 이곳으로 오기 전에 장로로 임명됐으니까요.”
“어쩐지 처음 듣는 이름이다 했소. 일단 앉으시오.”
“예, 감사해요.”
소혜는 무진에겐 달리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사를 한다.
“이 분은 제 형님이십니다.”
“예에? .... 죄송해요. 북해빙궁의 소혜라고 해요.”
“괜찮소. 무진이라고 하오.”
“예에.. 예? 그럼 혹시 내력도 없이 태양장과 맞선다는 그 무 대협이신가요?”
“내력도 없이 태양장과 맞선다? 그게 내 별호요?”
“별호치곤 상당히 기네요. 특이하기도 하고.”
조충은 재미있어 한다.
“호호호! 별호가 아니라 소문을 듣고 제가 생각한 거예요.”
“그래도 난 상당히 마음에 드는데.”
“후후후, 우리 형님이 조금 특이하세요.”
“아니에요. 저도 특이한 걸 좋아한답니다.”
“과거 북해빙궁에도 그대와 같은 이가 있었는데, 알지 모르겠네?”
“혹시 부궁주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부궁주 천려는 무진 형제와도 인연이 있다.
“부궁주는 현재의 인물이죠.”
조충이 끼어든다.
“그럼 누굴 말씀하시는지.”
“이름이 매령이었지. 아마.”
“예에? 그분을 아세요?”
“매령? 처음 듣는 이름인데....”
조충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림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솔직하고, 화통하며, 배포가 큰 여인이었지. 물론 북해빙궁의 최고수일 뿐만 아니라 무림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절대고수였지만.”
“저희 빙궁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분인데 무 대협이 어떻게 아시죠?”
“원래 제 형님은 옛날 분들을 많이 아신 다오.”
“그분은 200년도 전에 돌아가셨는데요?”
“예에? 험! 험! 그랬군요.”
“그보다 빙궁의 장로님께선 제 동생에게 볼일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저를 알고 오신 것 같은데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소?”
무진과 조충은 대충 얼버무린다.
“아, 예. 다른 게 아니라....”
소혜는 주위를 살피며 말하기를 주저한다.
“여기서 말하기 곤란한 일이오? 그보다 조금 전에 소림과 화산의 제자들과도 인사를 하던데, 저들에게 부탁해보지 그랬소?”
“저분들이 회주님을 만나보라고 해서 왔어요.”
“아, 그랬군요.”
결국 소림과 화산의 제자들은 무진과 조충에 대해서 알고 있단 뜻이다. 그런데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전음으로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하시오.’
‘제가 중원으로 들어온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한 가지는 중원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예요.’
‘북해빙궁과 관련된 사람이겠죠?’
‘그래요. 저희 북해빙궁은 중원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서 몇 군데의 비밀분타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건 알고 있소. 아마 이곳에도 있지요?’
‘회주님도 알고 계시군요.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에 비밀분타가 모두 사라져버렸어요.’
‘사라졌다는 게 무슨 뜻이오?’
‘책임자는 물론이고, 제자들까지 모두 사라졌어요.’
‘모두 몇 명입니까?’
‘많진 않습니다. 전부 이백 명 정도예요.’
‘모두 여자겠죠?’
‘그건 아니에요.’
‘빙궁의 제자가 여자가 아니라면?’
‘모두 남자예요.’
‘.....’
조충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순간 당황한 것이다. 북해빙궁은 여자들만 사는 곳이다. 근데 비밀분타가 모두 남자들로 이뤄졌다니, 놀랄 수밖에.
‘빙궁이라고 남자가 없는 건 아니에요. 안 그러면 후대를 어떻게 이어가겠어요? 대신 북해에는 들어올 수가 없어요. 그래서 비밀분타를 만든 거죠.’
‘한꺼번에 사라질만한 이유라도 있소?’
‘정보조직의 책임자시니까 잘 아시겠지만, 저희 비밀분타도 항상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에요. 특히 요즘처럼 혼란기에는 더욱 그렇죠. 그렇다고 해서 한꺼번에 사라질만한 이유는 없어요.’
‘이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혹시 최근에 빙궁이 무림의 운명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지 않았소? 물론 비밀분타를 통해서 말이오.’
‘으음! 그건 말씀드리기가....’
‘그럼 우리도 도와드릴 수가 없소.’
조충은 즉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린다.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단 뜻이다. 이때 무진이 나선다.
‘현재로선 세 가지의 가능성이 있소.’
‘어떤?’
‘하나는 누군가가 건장하고, 사라져도 큰 문제가 없는 사내들이 필요한 경우요. 그것도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경우지요.’
‘두 번째는 요?’
‘내 동생이 말한 것처럼 무림의 중요한 정보에 관심이 많은 자들의 짓일 가능성입니다.’
‘그럼 마지막은 요?’
‘두 가지가 한꺼번에 관련될 가능성, 즉 빙궁의 비밀조직에게 중요한 비밀을 들킨 자들에게 건장한 남자들이 많이 필요한 경우죠.’
‘현재로선 세 번째가 가능성이 제일 높겠군요.’
‘그렇소. 그게 누군지는 짐작이 가오?’
‘무 대협께선 세심각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과거엔 세심각이지만 지금은 통일문이라고 하오.’
‘예에...’
‘우린 세심각이나 통일문에서 만든 강시를 여러 번 경험했소. 근데 그들이 어디 출신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소. 지금 추측해보면 빙궁의 비밀조직처럼 외부에 거의 노출되지 않은 무림고수일 가능성이 많소이다.’
‘으음!’
소혜는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녀도 무진의 추측에 공감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상당히 놀란 눈치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약간의 설명을 했을 뿐인데도 사건의 핵심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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