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108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108
“뭐긴? 그건 원래 니들 전문이잖아?”
“호호호호! 감히 천상전을 상대로 진법을 펼쳤단 말이지?”
“그래야 재밌지. 난 원래 그런 걸 좋아하거든. 근데 말이야. 그 동안 정리를 생각해서 말하는데, 한 시진 안에 빠져나오지 못하면 아마 다신 숨쉬기가 어려울 거야.”
“한 시진?”
“아마 반 시진만 지나도 꽤 힘들 거야.”
“참! 너도 한심하다. 황후께서 언젠가 그런 말씀을 하셨지. 그나마 경천왕은 눈치라도 있는데, 네놈은 상황판단이 어린아이 수준이라고.”
“무슨 뜻이냐?”
“지금 이곳에 우리뿐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겠지. 일단 개방 거지 놈들이 있을 테고, 곤륜의 떨거지들도 개봉으로 들어왔단 보고가 있었지.”
“태허오라버니가?”
순간 미홍의 눈이 반짝인다.
“후후후, 그것도 모르면서 큰소릴 친 거냐?”
“그게 다야? 네가 파악한 게 그 정도면 승산은 우리 쪽에 있겠구나.”
양측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건방진 년, 선황의 귀여움을 받았다고 해서 웬만하면 살려 주렸더니 안 되겠다.”
“호호호호! 누가 들으면 지가 진짜로 황족인 줄 알겠다. 지금 황족 중에 진짜가 몇인 줄 아니?”
“호오! 그것도 알고 계셨어? 근데 어쩌나 난 진짠데. 그건 그렇고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더 준비한 건 없니?”
“왜 없겠어? 이런 건 어때?”
미홍은 왼손을 들어올린다. 그러자 갑자기 어둠속에서 뭔가가 날아오더니 천부왕의 바로 옆에 서 있던 자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간다.
“크아아악!”
“무..문주! 철궁입니다.”
“철궁?”
“잊었니? 우리가 화살의 가문이란 걸?”
“계집들이 철궁을 사용한다고?”
“네놈들은 무식하게 화살을 힘으로 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지.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한 번 놀아볼까?”
미홍은 이번에는 오른손을 들어올린다. 그러자 한꺼번에 열 명이 철궁에 맞고 날아간다.
“모두 엄폐물을 찾아라!”
천부왕은 소리를 지르며 자신도 거목 뒤에 몸을 숨긴다. 하지만 그걸로 철궁을 완전히 피하진 못한다.
“허억!”
철궁은 소리도 없이 날아와 그의 소매 자락을 뚫고 지나간다.
“홰..횃불이다. 불을 끄라. 빨리!”
천부왕의 말대로 횃불을 끄자 더 이상 철궁은 날아오지 않는다.
“선물은 어땠어? 필요하면 다른 것도 줄 수 있는데.”
“건방 떨지 말고 진식이나 풀어보시지.”
“안 그래도 전문가들이 열심히 풀고 있다. 조금 어렵긴 하다네. 시간을 조금만 더 주면 안 될까? 두 시진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여전히 미홍은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하하하! 뭘 믿고 여유만만인지 모르지만, 곧 후회하게 될 거다.”
“통일문이 대단하긴 하네. 중원제일의 진법전문가들도 생전 본 적이 없는 진법이란 걸 보면.”
“고금제일인 황룡이 만든 거니까 알 턱이 없지.”
“방금 고금제일인자라고 했니?”
“고금제일인자라고 하니까 겁이 나는 모양이지?”
“호호호호! 아니다. 고마워서 그런다. 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겁이 조금 났거든 근데 니가 설명을 해주니까 한층 더 자신감이 생기네.”
“개방은 쪽수 말고는 특별히 믿을 게 없을 테고, 그럼 태허도장인가? 아까 반가운 눈빛이던데.”
“그 분을 잘 아니?”
“내가 알아야 할 정도로 대단한 인물인가? 겨우 명맥이나 유지하고 있는 곤륜의 늙은이를.”
“호호호! 문주란 자가 무림에 대한 정보가 그 수준이니 자신감이 생기네. 오라버닌 통일문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생각하긴 거지발싸개보다 더 더럽다고 생각하지.”
어둠 속에서 태허도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근데 그는 천부왕은 본체도 하지 않고 미홍을 향해 걸어간다.
“괜찮아?”
“조금 힘들었는데, 오라버닐 보니 힘이 생기네요.”
“내가 조금이라도 힘이 됐다니 다행이다.”
“근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은? 널 찾아 왔지.”
“지금 상황에 농담이 나오세요?”
“넌 지금 상황에서 내가 농담하는 걸로 보이니?”
“제게 볼일이라도 있으세요?”
“볼일이야 오래 전부터 있었지. 그래서 이번에는 매듭을 지으려고 왔다.”
“제가 오라버니께 잘못한 일이라도 있나요?”
미홍은 태허도장이 진지하게 얘기하자 표정이 살짝 굳어진다. 그는 평소 농을 잘 하지만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잘못이야 내가 했지.”
“오라버니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러세요?”
“내 마음을 네게 말하지 않고, 수십 년을 네 주위를 맴돌기만 했으니까.... 큰 잘못을 했지.”
“오라버니!”
미홍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에 화들짝 놀라며 소릴 지른다.
“끝까지 들어라. 어쩌면 다시 듣기 힘들지도 모르니까.”
“예에....”
미홍은 대답을 한 다음 고개를 숙인다.
“난 그 동안 두 가지 문제로 수십 년을 고민했다. 한 가지는 너도 잘 알겠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고, 해답도 어느 정도 얻었다. 근데 나머지 한 가지가 내 평생 골칫거리였다. 넌 평소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난 너로 인해 수많은 번뇌의 밤을 보냈다. 그래서 오늘에야 결론을 내렸다.”
“오..오라..버니! 흐흐흐흑!”
미홍은 작은 목소리로 흐느낀다.
“난 이제 새롭게 시작하련다. 그 길을 너와 함께 하고 싶다. 그 말을 하려고 왔다. 네가 어떤 대답을 하든지 난 존중할 생각이다. 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답을 하면 된다. 시간이 필요하다면 충분히 주마. 이게 내가 수십 년 동안 하고팠던 얘기다. 이렇게 시원하고 편한 것을 그 동안 왜 못했을까? 허허허허!”
“저라고 왜 오라버니 마음을 몰랐겠어요? 그리고 저도 여자랍니다. 선황을 그렇게 보내고, 전 무척이나 외로웠거든요. 그 때마다 제 마음을 차지한 건 오라버니였어요. 하지만 우리가 넘을 수 없는 현실적인 벽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끝없는 좌절의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전 의도적으로 오라버니를 멀리 했고, 또 잊으려 했어요. 하지만 마음이란 게 그렇더라고요. 멀리하려하면 할수록 더 그리워지고,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 보고 싶어져 혼자서 많이도 울었지요.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다시 현실적인 벽이 저 앞에 턱하니 버티고 있었죠. 그 때의 제 마음이 어땠을 것 같아요?”
“미안하구나. 미안해. 이 못난 오라비가 널 힘들게 했구나. 그런데 미홍아!”
“예, 오라버니.”
“만약 그 벽을 뛰어 넘을 수 있다면 날 따르겠니?”
“어떻게요? 설마 그 벽이 무엇인지 모르진 않죠?”
“당연하지. 근데 내가 오늘 한 사람과 정식으로 형제의 연을 맺었는데, 그 분이 그러더군. 형제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너랑 맺어주겠다고.”
“그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상황 설명을 했는데도 그런 말씀을 했다면.... 서..설마 큰 오라버닌가요?”
“헐헐헐! 그렇단다.”
“오, 신이시여! 감사하나이다.”
미홍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태허도장을 쳐다본다.
“이제 답을 들을 수 있겠니?”
“무..물론이죠. 큰 오라버니가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당연히..... 오라버니를 따를게요.”
미홍은 마음을 가다듬고는 차분하게 대답한다.
“고맙구나. 고마워.”
태허는 금방이라도 잡을 듯이 손을 앞으로 내민다. 비록 진식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지만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때 지금까지 지켜보기만 하던 천부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하하하! 이것들이 드디어 미쳤구나. 선황의 계집과 도사 놈이 결혼을 하시겠다고? 그것도 사내놈은 내일 모레가 백 살이 다 되고, 계집도 시집을 가도 몇 번을 갔을 할망구가. 으하하하하! 이런 걸 웃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미친놈이야. 미친놈!”
“이놈, 주성아! 네가 그러니까 아직도 후손을 보질 못한 거란다. 사랑을 모르고 허구한 날 반반한 어린 계집만 거두니 어찌 삼신할망이 후손을 점지해 주시겠니?”
“뭐..뭐라고?”
태허도장은 천부왕의 가장 큰 약점을 자극한다. 천부왕은 50이 넘도록 아직 자손이 없다. 아들은 물론이고, 딸도 하나 얻지 못했다. 그렇다고 부인이 없는 것도 아니다. 본처는 물론이고, 후처가 무려 열다섯이나 된다. 그런데도 단 한 번의 임신을 시키지 못했다. 물론 아들, 딸이 여럿 있긴 하다 하지만 모두 양자와 양녀이다. 그러니 흥분하는 건 당연하다.
“네가 지금이라도 진정한 사랑을 한다면 하나가 아니라 열 이상의 손을 볼 수 있을 거다. 내 말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런다고 기회가 있을 진 모르지만.”
“크크크크, 오냐. 그렇게 원한다면 니가 사랑하는 계집이 보는 데서 죽여주마.”
천부왕은 화를 못 참고 내력을 끌어올리더니 그대로 주먹을 태허도장을 향해 내민다.
퍼어어어엉!
두 사람의 거리가 불과 삼 장 정도밖에 되지 않아선지 충격음과 파장이 만만찮다. 충격파는 주위에 있던 통일문의 고수들이 귀를 막을 정도고, 파장으로 진식이 흔들린다. 그런데도 태허도장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헐헐헐! 제법이구나. 하긴 통일문주면 그 정도는 돼야지. 근데 니가 문주가 맞긴 하냐?”
“무..무슨 소리냐?”
태허도장의 물음에 천부왕은 상당히 놀란다.
“그건 니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아니면 저놈에게 직접 물어야 하나?”
태허도장은 갑자기 뒤쪽에 있는 중년인을 가리킨다.
“후후후후! 이래서 중원은 넓고 인재는 많다는 거구나. 무림 출도 이후 날 알아보는 자는 늙은이가 처음이다.”
“무식 한 놈. 그건 무림에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네 주변에 그저 그런 놈들만 있어서 그런 거야. 그것도 모르고 지 잘난 줄 만 알고 무림을 통일하겠다고? 그러니까 항상 대련회에 당하지.”
“뭐..뭐라고? 네놈이 어떻게 대련회를 아느냐?”
“헐헐헐! 그게 바로 네놈의 문제다. 누가 니들이 통일문이고, 대련회란 걸 알았냐? 니들이 스스로 우린 통일문이고, 저들은 대련회요 라고 떠들고 다니니까 알 수밖에. 어리석은 것들! 그러고도 지들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꼴이라니. 태양장을 봐라. 니들은 태양장이 멸문 당했다고 생각하겠지? 정말 그럴까?”
“태양장이라고? 웃기고 있네. 그게 언제 적 얘긴데 다시 꺼내는 거야?”
“사실 니들은 천상전이 아니라도 조만간 태양장에 의해서 멸문을 당할 처지였어. 그때 네놈들을 한꺼번에 보내야 하는데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가네.”
“죄송해요. 제가 오라버니 계획을 방해했군요.”
미홍이 태허의 말을 듣고 사과한다.
“아니다. 모두가 대형의 지시로 이렇게 된 거니, 니가 사과할 일은 아니다.”
“아. 예.”
“영감탱이, 아까부터 대형, 대형 그러는데 누굴 말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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