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85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85
“후후, 원한다면 죽여주마. 너 하나 죽인다고 문제될 것도 없다. 과거 너의 행적을 소문내면 금방 잠잠해질 테니까. 물론 네 자식새끼들은 평생 인신매매범의 자식이란 오명을 가지고 살겠지. 운아!”
“예. 형님.”
“아무래도 얘기는 더 이상 안 되겠다. 깔끔하게 처리해라.”
“예. 알겠습니다.”
태운은 풍수호의 머리채를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간다.
“아..아닙니다. 마..말씀드리겠습니다. 제발!”
풍수호가 애원하며 발버둥치지만 일초와 태운은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그 새끼를 처리한 다음 이곳을 잿더미로 만들어라.”
“예. 형님!”
태운은 대답과 함께 문을 연다. 이제 밖으로 나가면 풍수호는 더 이상 살아날 방법이 없다.
“표..표국을 이용합니다. 표국을 이용해서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다.”
결국 심리전에선 일초가 풍수호보다 한 수 위란 게 증명된다. 이렇게 해서 간신히 목숨을 구한 풍수호는 거의 한 시진 가까이 초일과의 연락 방법에 대해서 떠들어댄다. 그의 입장에선 이제 초일의 몰락만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다음 날 새벽.
풍운장에선 한 대의 마차가 빠져나간다. 그 뒤로 네 대의 말이 호위를 하듯 따라간다.
여긴 북경에서 약 오백 리 정도 떨어진 대로변.
거대한 마차행렬이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지나가고 있다. 선두마차에 꽂힌 깃발에는 맹호표국이라고 적혀 있다. 제갈표국과 경쟁하고 있는 신생 표국이다.
석가장을 출발한 표국행렬은 북경이 최종 목적지다. 맹호표국은 남쪽 지방에서 올라온 표물들을 석가장에 모았다가 한꺼번에 북경으로 수송한다.
“황금상단이 무섭긴 한가 봅니다.”
“표국은 돈줄이 끊어지면 한 순간에 무너지니까 당연하지.”
“그래도 영업비밀인데 서찰 한 통에 순순히 내놓을 줄은 몰랐습니다.”
“국주가 초일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일이 쉽게 풀린 거지.”
풍수호의 말에 의하면 서찰은 맹호표국을 통해서 북경으로 전달되고 있다. 해서 일초는 맹호표국의 국주를 만나서 담판을 지었다. 서찰의 수신자가 누군지를 알기 위해서다.
국주도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했다. 영업 비밀은 표국의 생명이라 절대 누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금상단의 신패를 보여주자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국주 역시 황금상단 출신이며, 단주의 도움을 받아서 표국을 열었기 때문이다.
지금 일초 일행은 맹호표국의 표사 복장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한 건 국주의 이 말 때문이다.
< 우리가 북경에 도착해서 서찰이 든 상자를 열어보면 귀신같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
그래서 표사로 참여해서 상자가 들어 있는 마차를 호위하고 있다. 한편 월향과 사의는 소개와 함께 개방으로 갔다. 개방이 두 사람을 보호해주기로 한 모양이다.
오늘로 일초 일행이 석가장을 떠난 지 일주일이 되는 날이다. 오후가 되면서 찬바람도 불고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초겨울이 지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시점이고, 석가장에서 북경으로 가는 길이 중원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이즈음엔 날씨가 상당히 춥다.
“이야! 어디 가서 따끈한 국물이라도 마셨으면 좋겠다.”
“주막은 아직 한 시진 이상 가야 할 걸?”
“그렇다고 길가에서 쉴 수도 없고.”
표사들도 눈발이 굵어지자 몸을 움츠린다. 이때 앞쪽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멈..춰..라!”
행렬의 책임자인 표두 채홍이다.
“여긴 산적들이 있을 만 한 곳이 아닌데?”
“관병이야.”
“이런 허허벌판에?”
“상당히 많은 데요? 적어도 천 명은 될 것 같습니다.”
“천 명? 전쟁이라도 났나?”
“운아, 관병이 확실하니?”
“예. 멀어서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북경수비대 같습니다.”
“북경수비대가 여기까지 무슨 일이지?”
일초와 형제들은 앞쪽의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조충의 말대로 북경수비대는 북경에서 백 리 범위 내의 지역만 지킨다.
“황제가 근처에 왔나?”
“그건 아닐 거야. 원래 황제의 수행은 금의위와 동창의 몫이고, 황제가 북경을 비우면 북경수비대가 황실을 지키지.”
“그럼 뭐야?”
“설마 우리 때문은 아니겠지?”
“우리의 행로가 드러나진 않았을 거야.”
“그걸 어떻게 장담해?”
“요즘 느끼는 건데 초일의 세력이 중원 전역을 장악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보력만큼은 우리보다 앞서진 못하는 것 같다.”
“그렇지. 전하3대정보기관 중에서 개방과 묵사회가 우리 손아귀에 있으니까. 그리고 동창은 원래 큰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세세한 건 알지도 못해.”
“그렇다면 한 가지뿐입니다.”
지금까지 듣고만 있던 태민이 나선다.
“그게 뭔데?”
“반란!”
“뭐..뭐라고?‘
“냉정하게 생각해보세요. 군대는 영역과 역할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근데 저들은 그 두 가지를 모두 어겼습니다. 그건 반란 이외에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친위반란(親衛叛亂)!”
“충이 형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황제가 자기 군대를 동원해서 정적들을 숙청하는 거란다.”
“그 말씀은 저들이 황제의 명을 받고 이 근처에 있는 권력자의 집을 공격하고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지. 근데 이 근처에 누가 있지?”
“이곳은 시골 동네라 그럴 만한 곳이 없을 텐데.”
“자..잠시만!”
갑자기 일초가 소릴 지른다.
“왜 그래?”
“민아, 여기가 어디쯤이냐?”
“북경과 정남쪽으로 가까운 곳이니까 아마 평송 근처가 아닐까 싶습니다. 혀..형님?”
“그래. 낭인촌이 옮긴 곳이다. 초일이 공격을 시작했다. 민아!”
“예. 형님.”
“니들은 여기 남아라. 막내를 통해서 대형께 연락하고.”
“예, 알겠습니다.”
“충아, 가자!”
“그래. 니들도 조심해라.”
“예. 형님들도 조심하십시오.”
일초와 조충은 바람처럼 사라진다. 잠시 후, 전방을 막고 있던 관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천여 명의 정예부대가 두 명을 막지 못해 방어막이 뚫린 것이다.
한편 이곳은 평송(坪松)이란 작은 마을이다. 불과 백여 가구뿐인 동네를 거의 만 명에 가까운 관병들이 완전히 에워싸고 있다. 좁은 도로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다. 지금 선두의 지휘부에선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대체 어찌된 일이요? 전진을 못하는 이유가 뭐요?”
“그걸 알 수가 없습니다. 분명 아무 것도 없는데 거대한 벽에 막힌 것처럼 마을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마을 전체가 거대한 벽의 보호를 받는 것 같습니다.”
“대체 여긴 뭐하는 곳이냐?”
“예에? 그건 대장군께서 설명을 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난 그냥 명령을 받았을 뿐이다. 여길 공격해서 마을 사람들을 모두 처단하라고.”
“이유도 없이 말입니까?”
“역모 사건과 관련된 자들이라고만 들었다.”
“장군, 우린 폐하의 명령만 받는 북경수비대입니다. 누구의 지시를 받으셨습니까?”
“그건 말 할 수가 없다.”
“대장군!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잘못하면 우리가 반역죄로 몰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도 회군을 하셔야 합니다.”
“명령을 내리신 분은 폐하보다 더 무서운 분이다. 그렇게만 알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진입로를 만들어라.”
지금 말을 하는 자는 북경수비대장인 맹룡이다. 그는 부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격 명령을 내린다. 근데 황제의 직할부대인 북경수비대가 황제가 아닌 다른 자의 명령으로 근무지를 이탈한 것이다. 황제보다 더 무섭다는 그의 정체는 뭘까?
“대장군!”
장군들이 막사를 나가려는 순간 한 명이 급하게 들어온다.
“무슨 일이냐?”
“방어막이 사라졌습니다.”
“뭔 소리냐? 방금까지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랬습니다만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그럼 뭘 망설이냐? 진군을 해야지.”
“대장군, 진정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거대한 진법을 설치할 정도면 보통 놈들이 아닙니다. 만약 함정을 파고 기다린다면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충분히 상황을 검토한 다음 공격을 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 새끼들이 돌았나? 니들이 정말 중원의 최정예 부대가 맞긴 한 거야?”
“대..대장군!”
“여기 모인 병력만 해도 북경수비대 최정예 부대원 만 명이다. 근데 고작 백 가구도 안 되는 동네를 치는데 상황판단이 필요해? 그러고도 니들이 북경수비대의 장군이냐?”
“대장군, 여긴 전쟁터가 아닙니다. 상대가 무림인들이라면 좀 더 신중해야 합니다.”
“무림인이라고 판단하는 이유라도 있냐?”
“조금 전에 막혔던 벽은 진법의 일종입니다. 그런 건 무림인들만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으음!”
대장군은 무림인라는 말에 다소 감정이 누그러진다.
“먼저 선발대를 보내는 건 어떻습니까?”
“그게 좋겠습니다. 제가 오백 명의 선발대를 이끌고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좋다. 일각의 시간을 주마. 그 안에 마을을 샅샅이 뒤져라.”
“충! 명을 받들겠습니다.”
북경수비대의 제1장군이 명령을 받고 밖으로 나간다.
“이런! 비까지 오는군. 대웅아!”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발이 날렸는데 갑자기 비로 변한다.
“예, 장군.”
“느낌이 안 좋다. 최정예로 선발대를 구성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불길한 징조다. 진법에다 비까지 내리고, 우린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다. 더구나 놈들이 진법을 거뒀다는 건 준비가 다 됐다는 걸 의미한다.”
제1장군은 한 동안 생각에 잠긴다. 잠시 후, 제1장군을 중심으로 한 선발대가 마을로 진입하기 시작한다.
“장군님, 갈수록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곧 어둠이 내리면 앞을 구분하기 어려워집니다.”
“돌아가잔 말이냐?”
“저흰 어떤 결정이든 장군님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고맙다. 해가 지기 전에 신속하게 마을로 진입한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3인 1조로 움직인다. 함정을 조심하고, 전력 질주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오백 명의 선발대는 모두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그 뒤로 두 사람이 나타난다.
“흐흐흐, 이놈들아! 지옥을 찾아온 걸 환영한다.”
“오래 살다 보니 군발이도 상대해보고, 대형께 감사드릴 일이 또 생겼네.”
대소쌍불(大小雙佛)이다. 이들은 원래 악명 높은 흑백쌍마였으나 무진에 의해 이름을 바뀌고, 낭인촌에서 수련 중이다. 그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원래 낭인들만 해도 거의 천 명에 육박하고, 이후 무진의 명에 따라 들어온 사람들도 거의 백 명에 이른다.
그 중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자들이 꽤 많다. 적마대군 조훈, 묵사회 금곡분타주 금종, 일룡 마륜, 삼룡 임화, 사룡 왕개, 태허와 제자 소훈 등이다. 천마경극단과 ‘중원의 빛’도 들어와 있다. 이들은 촌장인 곽정과 총사 청사를 도와 체계적으로 낭인촌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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